듀얼 레전드 1화
프롤로그
“여기서 이 근을 구하려면, 자, 보거라. 1/6/a*(36*c*b*a-108*d*a^2-8*b^3+12*3^(1/2)*(4…….”
타닥거리는 칠판의 분필이 움직이는 소리가 강단 가득 울렸다. 학생들은 교수의 필기에 따라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하아…….”
지루하다.
미칠 것 같은 이 지루함…….
“그래서 이렇게…… 8*b^3+12*3^(1/2)*(4*c^3*a-c^2…….”
교수는 여전히 길고 긴 공식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쯤 끝나는 걸까?
타닥타닥.
계속해서 들리는 분필 소리.
도대체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분필을 쓰는 교수가 있단 말인가?
“후우…… 분필 냄새 짜증 나.”
학교에서 유일하게 PC와 전자 필름으로 된 칠판이 없는 강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참관하는 이런 아이러니하고 이상한 강의, 아마도 그건 전적으로 그가 이 학교의 총장이자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만 준다는 WMP(World Mighty Prize)의 수상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쿨럭, 쿨럭.”
교수는 자신이 사용하는 분필의 가루 때문인지 기침을 했다.
이제는 유물로 생각해도 될 법한 분필을, 몸에 좋지 않다고 이미 판명된 그것을 사용하는 이 이상한 교수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보게, 학생?”
“하아…….”
“거기 뒤에서 세 번째 줄, 자네 말일세.”
그가 날 불렀다. 처음에 한 번은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두 번째 불렀을 때 고개를 들었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 자네는 수업 도중에 졸고 있는 겐가?”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년의 교수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날 보고 있었지만, 나 역시 이런 것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니 뭐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제가 어찌 세계 최초로 6차 방정식을 해명하신 교수님의 수업에서 졸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수업도 잘 듣고 있었다는 말이겠군?”
“물론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지금 설명해 주고 있는 이 3차 방정식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먼.”
교수가 피식 웃었다.
연륜에서 나오는 그 웃음은 바로 학생들 앞에서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것에서 나오는 즐거움의 웃음, 아마 그 놀림거리는 내가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
“그래, 이 방정식에 대해서 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나가서 풀이를 쓰라는 말씀이신가요?”
“오오, 그럴 필요가 있겠나? 자네처럼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던 학생이라면 그런 힘든 일을 할 필요는 없지. 그저 말로 설명해 줘도 된다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편하게 말로 설명하라니? 저런 소심한 사람이 WMP의 수상자라니…… 그저 그는 방안에 틀어박혀 연구만 할 줄 아는 소심쟁이에 불과하다.
“교수님이야말로 3차 방정식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보군요. 그저 말로 공식을 설명해 보라니…… 흐음, 어떻게 WMP를 수상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원하시면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시작되었다.
놀림거리에서 놀리는 입장으로 변하는 순간,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에서 유일하게 날 즐겁게 만들어 줄 그런 순간!
“1/6/a*(36*c*b*a-108*d*a^2-8*b^3+12*3^(1/2)*(4*c^3*a-c^2*b^2-18*c*b*a*d+27*d^2*a^2+4*d*b^3)^(1/2)*a)^(1/3)-2/3*(3*c*a-b^2)/a/(36*c*b*a-108*d*a^2-8*b^3+12*3^(1/2)*(4*c^3*a-c^2*b^2-18*c*b*a*d+27*d^2*a^2+4*d*b^3)^(1/2)*a)^(1/3)-1/3*b/a…….”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공식들은 너무나도 유연하게 나왔다. 하나하나 토시조차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c^3*a-c^2*b^2-18*c*b*a*d+27*d^2*a^2+4*d*b^3)^(1/2)*a)^((1/3))입니다.”
“음, 음…….”
“틀렸나요?”
“아, 아닐세. 잘 알고 있구먼.”
“네, 물론이죠. 이런 공식 따윈 일곱 살짜리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이런 걸 대학 강의라고…… 전 이런 분필 냄새 나는 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네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이 빠진 듯한 그의 모습…….
“자,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화가 난 듯 그가 날 불렀다. 하나 난 더 이상 그에게 일이 없으니, 굳이 내가 몸을 돌려 그를 볼 수고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저 저보다 먼저 태어난 것을 감사히 생각하시죠, 교수님. 그렇지 않았다면 WMP는 제 것이 되었을 테니까요.”
“뭐, 뭐야!”
마지막쯤은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는 것이 좋겠지?
“땅에서 기어 다니던 자동차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론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의 기술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시대에 분필로 하는 강의라니. 백묵 가루가 몸에 나쁘다는 것은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알려진 사실인데, 그걸 가지고 수업을 하다니! 당신은 그저 과거 유물에 얽매여 학생들까지 죽이려는 살인 미수자에 불과해. 이 머저리야.”
난 가방을 들었다.
애초에 책 따윈 들어 있지 않았으니 너무나도 가볍게 내 손에 들려 올려진 가방.
“뭔가 새로운 것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흥, 시시할 뿐이군.”
일곱 살짜리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그 말은 그저 단순히 교수를 놀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난 정말 일곱 살에 그 모든 것을 배웠으니까.
“누가 세상이 공평하다고 했지?”
교수의 노한 목소리가 강의실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들렸다.
하나 이미 돌아간 내 발을 그의 목소리가 멈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시시할 뿐이잖아, 이런 재미없는 세상.”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천재 소년? 그따위 관심도 이젠 지겨울 뿐이다.
세상아, 뭔가 더 재미있는 것을 보여 봐. 내가…… 숨 쉬는 것조차 지겹다고 느끼기 전에!
1장. 이 내가?
“학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때려 치웠어.”
“네?”
차를 타고 5분을 달려서야 집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5분의 거리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 5분은 무려 우리 집 대문에서 진짜 ‘집’까지의 거리였다.
“때려 치웠다고. 배울 것이 없으니 이젠 안 갈 거야.”
난 항상 집으로 향하는 동안의 만들어진 정원을 보며 느낀다. 도대체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큰 정원을 만들어 놓으신 걸까? 5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는 나에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자기가 발명해 놓은 텔레포테이션 시스템을 막상 자기 집엔 설치도 안 해 놨다니. 이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어?”
날 가르치던, 그 시대에 뒤떨어진 교수도 나름 실력이 있었지만, 내 아버지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찬사받는 이동 기술, 텔레포테이션을 발명한 발명가였으니까.
“도, 도련님.”
집사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지금 나의 기분으로 그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없음을 알기에 난 한달음에 내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쉴 거야. 그러니까 들어올 생각하지 마.”
뒤따라오려는 집사에게 엄포를 내린 난 방으로 들어섰다. 퀸 사이즈도 넘어 세 명은 족히 누워도 될 것 같은 거대한 침대. 대충 가방을 던진 난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
“하아…… 그래도 오래 버틴 건가?”
이로써 나의 학교생활도 끝이 났군. 그래도 반년이 넘게 다녔으니 나로선 스스로도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이라도 날 흥미롭게 해 주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첫 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 메일에서 모든 교수가 나에게 만점이란 터무니없는 점수를 주었을 때부터 느꼈다.
‘아, 더 이상 이곳에 있는 것은 시간 낭비이겠구나.’
그리고 그 분노가 결국 총장에게 터져 버리고 만 것이니까.
“뭐, 잘된 건가?”
아무리 잘나도 교수보다 학생이 뛰어나면 안 되는 곳이 학교다.
그 역시 ‘나’라는 존재가 분명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겠지만, 그렇게 철저히 무시당하고 나선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후우, 아버지한텐 뭐라고 말하지?”
분명 이 소식을 들으면 노발대발하실 것이 분명했다. 부모님은 너무나도 뛰어난 나를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 걱정하고 계시니 말이다.
“뭐, 상관없나?”
그런 것조차 고민하고 있을 시간조차 나에겐 지루한 것이었다.
뭔가 날 흥미롭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게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연아!”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 방의 위치는 3층. 두 개의 벽을 뚫고 들릴 정도의 목소리라니, 도대체 누구지?
“연아!”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난 그제야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삼촌?”
“하하하! 연아! 오랜만이구나!”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 누군가가 날 와락 들어 올렸다.
캑캑, 숨이 막히잖아!
“이거 놔요, 삼촌! 으악!”
“요 녀석,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는데?”
허리를 꽉 조여 오는 삼촌의 두꺼운 팔에 난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하하, 여전히 삐쩍 마른 건 똑같구나. 운동은 하고 있는 게냐?”
지금까지 체육에 관련해서 만점을 놓쳐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삼촌의 관점에선 무척이나 많이 다른가 보다.
“걱정 마세요. 제 몸 하난 건사할 정도론 건강하니까.”
“하하하! 말하는 것도 여전하구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내가 한마디를 하자, 삼촌을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터질 듯한 삼촌의 셔츠가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이거 변변치 않지만…….”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삼촌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집사는 여유롭게 그를 맞이해 주었다. 삼촌은 한 손 가득 선물이랍시고 들고 온 것들을 그에게 주었다.
“어디 하와이라도 다녀오신 거예요?”
화려하다 못해 조금 부끄러워질 정도의 원색 셔츠를 보며 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하, 하와이는! 그동안 삼촌이 얼마나 바빴는걸!”
그렇게 말하지만 적당히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탄탄하다 못해 과할 정도의 근육질 몸매까지, 아무리 봐도 내 눈엔 휴가를 다녀온 사람 같단 말이지.
“뭐,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끝나서 조금 쉬다 오긴 했지만 말이야. 하하!”
내 눈이 뭘 말하고 있는지 느꼈는지 삼촌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요 녀석 하여간 변한 게 없구먼!”
“으악! 이거 놔요!”
뭔가 불리해진 것 같으니 또 날 휙 들어 올리는 삼촌이었다.
하여간 도대체 우리 가문에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태어난 거야! 난 운동기구가 아니란 말이야! 으악!
“힘자랑은 이제 그만 하세요, 삼촌. 저도 어린애도 아닌데.”
“하하, 미안. 반가워서 그렇지 않니.”
“그렇게 보고 싶으셨으면 좀 자주 오셨어야죠. 몇 년 만에 오신 거면서 만나자마자 사람을 휙휙 들어 올리질 않나.”
“삼촌이 일이 바빠서 그랬다. 미안하군.”
겉으로 보기엔 차라리 격투가가 어울려 보이는 삼촌이었지만, 어울리지 않게 그의 직업은 프로그램 디자이너였다. 그래도 역시 우리 핏줄이긴 한가 보다.
“그래, 형님은 아직 안 오셨을 테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요즘이요? 뭐 매일 똑같죠.”
“학교는? 아, 벌써 졸업했겠나?”
“삼촌, 제 나이가 도대체 몇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하하. 네 녀석이 워낙 특이한 녀석이란 걸 아니까. 난 그저 조기 졸업이라도 했나 싶었던 거지.”
삼촌은 내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물론 그가 헝클어뜨린 머리를 다시 정돈하고 나서야 그의 말에 대답했고 말이다.
“과정이야 박사까지 다 밟았죠. 뭐, 최근에 다시 학교를 가긴 했지만…… 때려 치웠어요.”
“음? 언제?”
“……바로 몇 시간 전에요.”
“하하하! 이런, 어째서?”
삼촌은 나의 대답에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뭔가 또 흥미 있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