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최종장 퍼스트 10
카시레타는 떨리는 이를 멈추기 위해, 뿌득 갈며 검을 들어 올린다. 처음 소드 마스터가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가?마치 선물을 받은 어 린아이처럼 숨기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검술제에서 이겨서, 자랑스러 운 친구에게 자랑하면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토록 화려했던 자신의 푸른 오러가 저 거무튀튀한 검 앞에 서.
이리도 초라해 보이다니.
“그것이 당신의 검인가.”
“그렇다 카시레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각오하라.”
묵묵히 대답하는 로아도르. 오만함으로 보이지만 그건 절대적인 자 신감에 가깝다. 카시레타는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것 따위, 이미 알고 있다.
카시레타는 고개를 저어 이마의 땀을 떨쳐내며 빈틈을 찾는다. 저토 록 무식한 검이다. 병장기가 크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어 딘가 허술한 구석이 많을 텐데.
저토록 흔들림 없이 검을 들고 있는 로아도르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가벼운 손목 스냅 한번에 모든 공격이 무산으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갑자기 나타난 압도적인 크기에 놀랐을 뿐이야. 그리고 그것을 휘두 를 힘 정도는 있는 것이겠지. 모든 것은 자신이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 는 것일 뿐이라고. 그것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카시레타는 전의를 다진다.
“오지 않는가”
그러나, 로아도르는 카시레타로부터 공격이 오지 않자 조용히 중얼 거린다. 이 검이 손에 쥐어져 있는 이상, 상대의 반격을 기다리고 있어 야 할 이유 따윈 없다.
그렇다면 먼저 가지.
투웅!
로아도르가 땅에서 발을 띠자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인다. 그것만 으로 마치 일부러 파낸 것처럼, 무대가 움푹 파인다. 지금까지와는, 그 힘이 다르다. 그리고 그 넘치는 힘이 속도로 바뀌어 카시레타의 앞에 커다란 검이 닥치고 있다.
부아아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엄청난 속도다. 순식간에 검이 와 닿고 있다. 생각할 세도 없이, 본능 적으로 그것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는 카시레타. 그러나, 피할 사이도 없었겠지만 그것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서는 안되었다.
콰아아아앙!!!!
방금 전까지 카시레타가 서 있던 곳을 내려찍는 거검. ‘어?’
기묘한 부유감이 그를 지배한다. 마치, 세상이 기울어져 있는 듯한, 아니다. 실재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저절로 떠져 있다. 어 마어마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하고 있지만 그것 까지 느낄 여유는 없 다.
투두두두두두두두!
그와 동시에 땅에 내려친 충격으로, 무대의 바닥이 마치 분수처럼 뿜 어져 나온다. 그것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카시레타의 전신이 부딪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는데 막을 틈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제야 몸이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다. “크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카시레타. 부웅!
검을 접어 거리를 두는 로아도르. 그는 상대방의 전의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알기에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준다.
“크윽....”
순식간에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카시레타. 그를 노려보며 검에 기대 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눈에는 의심이 가득 차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관중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 고 있다.
관중들이 보기에는 서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돌로 이루어진 커다란 분수가 쏟아져 나왔고, 그 다음에는 쓰러져 있는 카시레타가 전부였으 니.
“크윽. 아,아직이다. 아직 할 수 있어!크압”
기합을 주며 힘겹게 검을 들어 올리는 카시레타. 그러나 그 꼴이 결 코 정상적이지는 않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마스터의 상징이 마치 다 타오른 촛불처럼 초라하게 흔들린다. 푸른색은 이미 기운이 빠져 하얀 색으로 다시 바뀌어 있다.
로아도르 역시 정식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카시레타. 이미 눈이 풀려가고 있다. 방금 전과 같은 일격이면 이 녀석은 죽는다. 아니, 이미 지금도 충분히 위험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검에 의해.......
로아도르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검으로 내려찍는다. 쿵!
챙그랑.
그 절대의 상징이던, 그의 검이 반토막 나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다.
“하,하하하....이.,이럴리가....”
털썩.
무릎을 꿇으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웃는 카시레타. 로아도르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며 회한의 눈빛을 띤다. 나도 그랬다. 믿을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리도 이리 비참하게 깨졌기에.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나 자신이 고작 그 정도의 녀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겠지. ‘카시레타, 너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척.
로아도르가 가슴으로 검을 모으자, 그 검신에 의해 땅이 구궁 거리며 파인다. 그렇게 예를 표하고 돌아서 내려가는 로아도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들것을 안으로 들여 카시레타를 내 려 보내고, 무대의 중앙에서 승자의 이름을 외친다.
“스,승자는 로아돌입니다”
커그너스의 입가가 묘한 웃음이 떠올라 있다. 뿌듯함이랄지, 어이가 없다 랄지. 아마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라고 는 그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엘리엇인가 뭔가 하는 녀석도 보이긴 했 을 것이다.
“검 하나에 괴물로 바뀌다니. 저건 마치...”
커그너스는 검은 장갑을 끼고 한 없이 비웃음을 날리던 한 남자가 떠 오른다. 분명 전혀 다른 성격에 체구이건만 누가 제자가 아니랄까봐, 느껴지는 위압감까지 똑같다니.
커그너스는 그 남자를 봐왔다. 그렇기에 가르안이라는 존재를 보더 라도 남들만큼 놀라고, 숭배해야 할 대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신이 니 뭐니 해도 이미, 세상에는 그런 괴수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저기에, 새로운 괴수가 하나 더 태어나 있었다.
“것 참. 시합 때문이었다니까.”
드워프는 담배 연기를 빨아 들이며 태연히 의자에 앉는다. 그러자 한 병사 차림을 한 남자가 버럭 외친다.
“그럼 그렇다고 말이라도 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하아, 덕분에 이게 무슨 창피인지, 시말서 쓰게 생겼네 거”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도 드워프의 옆에 앉은 그의 얼굴에는 한가득 기대감이 차 있다. 저 폭주 드워프의 감시역이다. 그 마차 돌진의 이유 가 검술제에 참가한 이의 검을 조달하기 위한 것만을 듣고, 모든 조사 를 뒤로 미루고 시합을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제 결승전, 아니 결승전도 아니다. 저 검의 신이 모습을 드러낼 그 상대자의 검이니 당연히 우대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특별히 우대석에 앉힐 수는 없다. 그저 관중들 사 이에 껴서 볼 수 밖에 없다.
“행!결국 검이 좋은 것 뿐 아냐?”
꿈틀.
공허하게 텅빈 무대를 바라보던 드워프는 한 남자의 말에 눈썹을 꿈 틀 거리며 시선을 돌린다.
“그렇지. 저 검이 명검이니까. 검이 없으면 별 것 없는 놈일 게야.”
저 검을 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건만, 만사에 부정적인 주정뱅이들이 투덜투덜 거린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늙은 드워프. 그는 한가득 화가 난 얼굴로 묵묵히 그의 앞에서 한개의 주머니를 꺼내 만지 작거린다.
그것은 마치,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것이 들어 있는 듯 손가락이 움직 일 때마다 따라 움직인다.
“자네, 이거 한번 만져 보겠나?”
“뭐유, 영감?”
“닥치고 한번 만져봐.”
쌍소리에 욱한 주정뱅이는 주먹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상대가 흔치 않은 드워프라는 것. 그리고 분노가 눈에 보일 정도로 화가 나 있었기 에 주정뱅이는 주춤거리며 그것을 만진다. 그가 만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캉말캉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저건, 검을 보수하면서 남은 거검의 재질이다. 광물을 만지고 사는 드워프로서도 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네 녀석이 만지면 이렇게 말랑말랑하지. 네 녀석의 의지는 이정도 라는 게다”
의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주정뱅이가 그를 말리려던 병사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의지라는 것, 그거 하나 들고 저 신과 맞서 싸우는 녀석이 있어!!
명검이라? 저게?!저 검은 네 녀석들에게는 그리도 말랑말랑한 것에 불 과하겠지!
그러나 저 녀석에게 있어서는 신과 싸워도 부러지지 않아!오로지 그 것 하나 가지고 싸우고 있는 녀석을 모독할 셈인가!!”
무슨 얘기인지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정뱅이는 드워프의 박력에 밀린 듯 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옆에 있던 병사까지도 무의식적으 로
그러자 드워프는 다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쉰 다.
“그래, 누구의 손에 들려 있어도 부러지지 않는 게 명검이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나 역시 그런 검을 만들어야 하건만. 그 사용자에 따라 천 하에 둘도 없을 명검이 될 수도, 한낱 진흙이 될 수도 있다니. 저건 이 대장장이로서 얼마나 한스러운 물건이더냐. 그리고, 당대 최고의 사용자가 그것을 들고 있다. 그것은 아마, 드워 프가 노려야 할 목표.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신에 한스러운 듯, 그와 동시에 동경의 대상인 듯. 무대를 바라보는 드워프는 다시 공허한 눈빛을 띤다. 대기실에 홀로 남은 로아도르는 천변기를 접어 바닥에 내려놓고, 옷 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한다.
흉터로 뒤덮인 상체. 아니, 상처 자국이 없는 곳은 몸에 그 어디하나 없다. 그러나 너덜너덜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육체는 굳 건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저주스러웠던, 그러나 이제는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육체. 포기하고 좌절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육체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로아도르는 가지고 온 괴짝을 연다. 안에는, 하얀 옷이 가지런히 접 혀 있다.
새하얀 옷에, 가슴을 가로 지르는 하얀 가죽 지지대. 하얀 반 망토가 있었지만 천변기가 있으니 저것을 입을 수는 없다. 그리고 타이트한 하 얀 가죽의 롱부츠에 각 관절을 보호하기 위한 경갑. 입혀주는 이가 없건만, 로아도르는 이제 혼자서 이 복잡한 옷을 입는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모아 끈으로 질끈 묶는다. 언제고의 소년은. 이 옷을 입고 자신의 필생의 목표에 도전했다. 그리고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이 자리에 서 있다. 많은 것들을 버리고, 많은 이들을 상처 입혔다.
그러면서 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작은 소망을 위해. ‘가자 ’
와아아아!!
해는 이미 중천. 로아도르가 거검을 들고 나오자 관중들의 커다란 환 호가 쏟아진다. 그와 동시에 놀란 시선을 보낸다. 지금까지와는 복장이 다르다. 머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딘가 용 병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순식간에 품위가 어울리는 기사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귀족의 문양은 그려져 있지 않다. 상석 의 귀족들에게는 눈에 익은 복장인 듯. 서로 수군거리며 귓속말이 오가 고 있다.
저벅저벅.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상석을 지나갈 때, 어디선가 시 선이 느껴졌지만 로아도르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엘리엇. 누이.
당장이라도 달려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싶다. 이 제멋대로인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가족들에게 둘도 없는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기에.
저 가르안을 이기는 것은 한 이름 없는 검사에 불과해야 했기에. 또 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의외다. 저 쟉셀이 멀쩡한 복장으로, 로아 도르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군. 지켜봐주러 왔나 친구.
상석을 지나 일반석에 이르자 또 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커그너스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히죽 웃고 있다. 로아도르는 걸어 나가며, 그를 향해 마주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또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입에서 뭉글뭉글 연기가 올라가며 그의 검 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
그에게도 커다란 은혜를 입었다. 그 대가는 오로지 이 검으로 밖에 보여 줄 수 밖에 없겠지.
그러나. 어딘가 마음속 한구석에서 원하던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 다.
‘그녀는 오지 않았나 ’
이제와서 무슨 미련을. 자신에게 깊은 자책감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 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나쳐.
툭.
무대의 중앙에 선 로아도르.
방금 전 까지는 마음속이 고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제야, 이 순간이 닥쳐와서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지금까 지 너무나 고대하며 기다려 왔던 순간, 그리고 너무나 무서운 순간이 다.
전과 같이, 다시 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약한 마음마저 든다.
아니야.
질 리 없어.
다시 마음을 다지려고 했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사부가 머리 라도 한대 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사부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는 듯 했다. 그 아무것도 없던 들판 위에서, 검을 겨누던 한 노인과 사부의 모습 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네가 가르쳐 주러 가거라. -
그 의미.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부가 자신을 믿어 주고 있다. 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그때.
저벅.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저 무대의 가장 위편에서, 누군가가 관중들은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숨을 멈추면서도 황송해 어쩔 줄 모르 고 있다.
저벅.
그는 점차 다가온다. 방금 전과 다른 또 다른 흥분이 솟아오른다. 그 것은 마치.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투지라고 불러야 할 그것.
우뚝.
발걸음 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거대한 태양을 등지고, 한 남자가 모 습을 드러낸다.
부르르르.
“이번에야 말로.....
투지가 억눌러지지 않는다. 아니, 억누를 생각도 없다.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데, 내가 왜 억눌러야 한단 말인가!그 동안 그 죽을 듯이 괴로운 것을 참아 왔던 것이 무슨 이유였는데! 놈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왜!
“이번에야 말로....”
쿠구궁!
있는 힘껏 거검을 들어 올리며.
그는 검의 신에게 외친다.
“이번에야 말로!”
-네 놈을 이기고야 말겠다!-
제목 최종장 퍼스트 11
가르안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본다. 뭐지?
누구지?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경고를 보내왔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가르안은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뭐야 저 녀석...”
“가르안님이 앞에 있는데, 저런 불경한 태도라니”
“너무 뻔뻔한 거 아냐?”
이제까지 로아도르를 응원하던 이들이 서로에게 말하며 인상을 찌푸린 다. 감히, 신에게 검을 치켜 올리며 소리를 지르다니. 그게 있을 법한 일인가.
관중들의 웅성거림에 그제야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가르안. 그 는 저 커다란 검에, 갑작스러운 외침에 잠시 놀랐던 것뿐이라고 생각하 면서 무대위로 뛰어 내린다.
그리고 커다란 바람이 휘몰아치며 가르안은 마치 새가 착륙하듯, 사뿐히 무대의 중앙에 나타난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사그라 들며 어마어마한 환호로 바뀐 다.일단, 검사이면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관중들에게는 놀 라운 일이다. 마검사라 불리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저 정도의 수준 높은 마법은 구사하지 못하니. 관중들의 환호에 자신감을 찾은 가르안은 빙긋 웃으며 로아도르에게 손바닥을 펼쳐 내민다.
“....”
그러나 그 상대는 말없이 여전히 자신을 노려볼 뿐이다. 한껏 치켜 올렸던 검은 다시 내렸지만. 어쩐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무언 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관중들 사이에서는 다시 웅성거림이 퍼지기 시작한다. 하나 같이 로 아도르를 노려보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혹시 귀가 안 좋은가.’
상당히 이상한 상대다. 자신과 검을 맞대는 것을 황송해 하며, 둘도 없는 감격을 나타낼 줄 알았는데? 가르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으 려던 찰나였다.
“10년 전을 기억하시는지.”
그제야 눈앞의 검사는 입을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름을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저 말투는 대체 뭔가? 불쾌해진 가르 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간다. 그게 아마 루리아를 만났던 시기던가?한눈에 반했던 그 시기 쯤인 짓는다.
그리고 그녀를 얻기 위해.
가르안은 누군가 ’와 결투를 했었다.
“아.
-저어, 가르안. 혹시 로아도르란 이름을 기억하나요?이었지.
아아.
뇌리 속에서 봉인되어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잊겠다고 했었지. 자신 에게 그리 맹세했기에, 그래서 잊었었지. 그래. 그때는 그러고 보니 그때의 복장과 똑같다. 저 무식할 정도로 커진 덩치와 검. 그리고 망토의 색이 변했을 뿐 완전히 똑같다. 저 무뚝뚝한 재미없는 얼굴조차도.
“로아도르 반 바이파?”
대답을 하지 않는 상대. 그러나 그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가르안 은 진정 놀랍다는 듯 그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놀랍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것은 당연하다. 잊겠다고 한 맹세는 둘째문제 왜냐하면.
“....”
그는 여전히 답이 없다. 이제 가르안에게는 불쾌함보다는 의아함이 감돈다.
어야 할 녀석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악한 흑마법 의 힘을 빌려?그런 것조차도 녀석에게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마나 한 점 안 느껴지는 저 몸에 흑마법은 무슨.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엘 카이자의 지식에서도 알 수 없는 일이라니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말없이 가르안을 노려보는 로아도르의 시선에 느껴지는 명백한 적 라보는 등산가의 눈길이 저러할 런지. 나?
가르안은 문뜩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그리고 저 사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저럽게 매섭게 노려 보고 있다는 것은.
“하,하하.....
어이가 없어진 가르안은 헛웃음을 흘린다. 설마, 그 시절의 승패에 아직도 연연하고 있단 말이지? 즉, 고교 시절 때의 일로 이제 서서히 30줄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까 지 끌고 온단 말인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살 아남았다면, 좀더 건설적인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좋겠지.
그 철없는 생각, 이 내가 다시 고쳐주마. 척.
가르안은 양보한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예를 취한다.
“ 나는 가르안 반 카이자. 현재 영광스럽게도 카이자 대공의 작위를 가지고 있고, 저 영광스러운 주신의 명을 받아 대마왕을 쓰러뜨린 자이 다.”
차마 신이라고 스스로 자청하기에는 쑥스러웠는지. 검의 신이라는 것은 빼었지만 그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먼저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한가득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 알 수 없는 우월감. 10년 전에는 자신이 녀석에게 굽신거려야 했거늘 이번 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다.
그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으나 변한 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로아도르 역시 검을 땅에 깊이 내려 그으며 고개를 숙인다. 로아돌?
이름 없는 사부에게 검을 배웠고.
저 먼 옛날, 잊혀진 이의 검을 들고 있는 자. 로아도르의 알 수 없는 소개에 가르안은 눈을 깜빡 버린다. 그토록 오만하던 녀석이 로아돌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이유도 알 수 없다. 아 니,애칭인가? 하지만 애칭을 내세우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뭐 아무래도 좋아.”
저 갓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순한 푸른 불꽃. 로아도르가 보 았던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랗고 푸르다. 어마어마한 환호성과 함께, 가르안은 로아도르의 거검보다도 한층 더 크게 타오르는 빛 덩어리를 들어 올린다.
“가르안님 만세”
“저 건방진 녀석을 단번에 꺾어 버려요!”
그건 물론이다. 전과 다를 것은 없을 테니까.
“자,시작해 볼까!”
멋들어지게 외치며 가르안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르안은 푸른 잔상과 함께 로아도르의 거검을 향해 베어나간다. 그간 뭔가 하기 는 했는지 녀석도 마주 베어 오는 것이 느껴진다. 놀랍긴 했지만 그래봤자, 이 절대적인 마나 앞에 대항할 수 있을 리 콰광!!
어?
부우우웅!
로아도르의 검과 마주하는 순간.
가르안은 빙글빙글 돌며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 이건.
순식간에 자신의 몸에 마법을 걸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멈추는 가 르안. 어느새 30 여 미터 이상의 상공에 떠 있다. 게다가 검을 쥐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 이게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알 수가 없 다.
이상하다. 녀석의 검이 반토막나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생각하고 있을 세도 없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녀석이 검을 등 뒤로 돌리고 있다. 검을 던지려 하고 있다.
“웃기는 짓거리를”
파사사사!
가르안은 검을 아래로 겨누고 검 끝에 마나를 모아 쏘아 보낸다. 이 미 그랜드의 경지를 뛰어 넘은 자. 가르안의 아래에는 순식간에 짙푸른 마나가 퍼져 나간다.
퍼버벙!
그와 동시에, 로아도르는 검을 던지고, 자신 역시 하늘로 뛰어 오른 부우웅!
쏘아 보낸 마나와 마치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며 격돌한다. 가르안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린다.
“이럴 리가”
지금도 쏘아 보내고 있는 마나가 전부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이 분명 히 느껴지고 있다. 흩어지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전혀 제지를 못하 고 있다. 검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며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파아아아앙!
한층 더 마나를 뿜어내 보지만 마찬가지. 으득.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할 자신의 마나를 분쇄시킬 힘이 있다는 것 따 위,결코 인정할 수 없다.
지잉.
무리 강한 공격이라 할 지라도.
“하지만 피해버리면 그만이지.”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은 가르안의 신형이 검이 향하고 있는 곳에 서 사라진다.
푸슛.
좌표를 정할 필요도 없다. 이미 모든 공간은 그의 지배 하에 있는 바. 자신이 힘이 닿는 곳이라면 그는 얼마든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 나타난 순간. 가르안은 자신의 머리 위가 어둡다는 것을 깨닫고 올려다본다. 후둑후둑.
온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진다. 털끝이 곤두서며 닭살이 올라 온다.
어째서, 이 자리로 피하게 될 것이라고는 그 스스로도 생각지도 않았 는데. 그의 검을 던진 곳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인데. 어떻게 저 녀석이 먼저 와 있는 거지?
그의 머리위에 로아도르의 주먹이 한가득 뒤로 당겨져 있다. 이미 어 떻게 저 자리에 가 있는지는 의문을 가질 여유조차 없다. 설마. 주먹으로?
난 가르안 반 카이자. 검의 신. 그 무서운 마법을 사용하던 대마왕조 차도 긴장을 금치 못했던 존재.
그러한 나를. 저렇게 야만적인 방법으로? 주먹으로 내려치겠다고?
이 나를?
퍼어어억!
이빨이 우수수 입 밖으로 빠져 나가며 잇몸이 뭉그러지는 것을 느낀 다.광대뼈 부근은 완전히 부스러져 버린다.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흠집도 내지 못할 자신의 신체에.
“크아아악!
자신의 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한 고통이 느껴진 다음에야 땅으로 떨 어진다.
투웅!
등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고 몸이 튀어 오르는 가르안. 그는 그 아온 검을 쥐고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쿠웅!
차마 자신이 먼저 공격할 상황이 못 되었던 가르안. 파아앗!
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마나만 있으면 설령 어떤 상태에서라도 완벽 하게 재생을 이루어 내니까.
다시 한번 공격을 하려던 가르안은 검을 우뚝 멈춘다. 검을 들고 있는 저 남자.
로아도르는 울고 있었다.
데.이기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패배를 생각지도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불안감 속에서, 하기 싫어 도 가르안에게 지던 자신의 모습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십 수백번이고 검을 마주하여, 있는 힘을 다한 끝에 쓰러지는 모습.
결코, 일격에 검이 갈리며 끝나는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래. 그때에 나는.
-패배조차도 만족스럽게 하지 못 했다 한 소년이 울고 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하얀 공간에 홀로 서서 소 리를 내가며 울고 있다. 그 화려한 바이파의 예복을 입고, 부러진 검을 들고.
끊임없이 울고 있다.
로아도르는 그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울지 마라 -
내가 못나서, 참으로 오래 걸렸지만. 참으로 힘겨웠지만. 스윽.
소매로 눈물을 스윽 닦은 로아도르는 검을 치켜 올리며 말한다.
“지금, 한발자국 나아갔으니까”
제목 최종장 퍼스트 12
조용.
아무도, 단 한명도 입을 열지 못한다. 수만명이 모여 있음에도 숨소 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신은 신이어야 했기에.
감히 신에게 저렇게 대항할 수 있는 ‘인간 ’ 따위는 있어서는 아니 되 었기에.
“말도 안돼.....”.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그제서야 정적이 깨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 린 그들의 수군거림이 점차 커져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저 거친 검을 들고 있는 사내를 노려본다. 그리고,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다시 누군가가 꺼내는 시작의 말.
“악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커져간다.
“그래. 저 놈은 악마야.”
“악마가 아니고서야, 마왕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대마왕이 남긴 저주야.”
“그래. 그냥 죽지 않았던 거야. 대마왕의, 그 루스 사이퍼의 화신이 나타난 거야.”
점차 확산되어 가는 이야기. 그러나 누구 하나 달려들 용기는 없다. 그저, 적의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들의 신에게 대항하는 인간을 노려보 며.
자신들이 굳게 믿고 있는 구세주를 희망에 찬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 다.
루리아는 어딘지, 파리해진 모습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 는 로아도르를 걱정했다. 아니, 로아도르라기보다는 아르시엘을 걱정 했다는 것이 옳다. 그토록 사랑하는 동생이 사랑하는 남자. 보나마나 같은 일이 벌어 질 텐데, 그렇다며 아르시엘은 또 얼마나 상처 받을 것 인지.
하지만 그녀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 반대의 상 그럼에도, 무섭다. 이건 근본적으로 다른 공포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가르안의 결투 장면은 아카데미 때에, 저 로아 도르를 상대 했던 그 당시 밖에 없다. 그때의 가르안은 참 멋있었다. 순식간에 무너진 얼굴이 재생되는 남자 따위, 그녀는 모른다. 저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검.
그리고 빛에 휩싸인 가르안.
과연, 어느 쪽이 인간에 가까운 것인지. 그녀는 처음으로, 남편이 인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이 무서웠다.
“크윽. 전과 같지는 않은 모양이군. 제법이다.”
입가에 남아 있는 핏줄기를 소매로 스윽 닦으며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린다. 함몰되어 있던 뼈와 없어져 버린 이빨은 완벽하게 돋아나 있 다. 그러나 이제 그 거대한 빛의 검은 좀 전과 달리 광휘롭지 않다. 저 적어도, 접근전은 불리하다.
그렇다면.
순식간에 순간이동으로 하늘로 떠오른 가르안. 이번에는 로아도르도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기색은 변함이 없다. 그가 뭘 한다 하더라도 놀랍지 않고, 냉정을 잃지 않을 자신이 로아도르에게는 있었다.
언젠가 사부가 말했었다. 가르안은, 네가 그토록 침 토해가며 달린 거리를 1초 안에 올 수 있는 녀석이라고. 그래서, 그것조차 감안해서 강해졌으니까. 팟!
태연이 무슨 짓을 하나 보는 듯한 로아도르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 가르안이 입술을 들어 올리며, 검을 든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자. 파지지지직!!
하늘은 순식간에 뇌전으로 뒤덮인다. 정확히는, 무대위의 하늘만이 쿠궁!
번개가 치는 소리마저 들려오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그러자 관 중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는 이들이 하나 둘씩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 다.
“후후. 마법이라고 비겁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어지간히 마법을 파고 든 자만이 쓸 수 있다는 뇌전 마법. 그것을 신 인 가르안이 시전한다면 이 정도는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 지나 시합. 적당히 조절해야겠지.
어마어마한 마나가 가르안의 몸에 축적된다. 그리고 그가 만족할 만 큼 하늘이 뇌전으로 가득 차자.
“자, 받아라!”
검을 아래로 내린다.
소리조차 없다.
공간 자체가 하얀 빛줄기로 가득 찬다.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나뒹굴던 자갈 하나 조차 광휘로 물든다. 개의 빛이다. 그는 천변기를 휘둘러 자신의 머리와 함께 반신을 가린 다.
그와 동시에, 검을 무대의 중앙에 박아 버리고 손을 땐다. 그 뇌전의 힘은 순식간에 검으로 쏠린다. 치지직.
치지직.
그리고 번개는, 그 이름에 걸맞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천 변기의 겉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사라지자, 즉시 망토를 걷어 하늘을 올 려다본다.
그러나, 가르안은 없다.
어디지?
그러자 시야의 한쪽이 순간적으로 색이 변한다. 타닷!
어느새 지상으로 다시 순간이동을 한 가르안. 푸르른 검을 치켜세운 그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로아도르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 다.
예상했던 대로다. 애초에 뇌전 쪽의 마법을 쓴 것은 검을 손에서 때 어놓기 위한 것이다. 시합이 아니었다면, 적이었다면 헬파이어라도 갈 아마 저 어마어마한 번개 앞에서 검조차도 새카맣게 타올랐을 터이 다. 그러니 녀석에게 무기는 없다.
방금 전에는 어쩌다 방심해서 한대 맞은 것이 불과하다. 막으려 하는 것이 보인다.
‘어리석기는! 그 따위 망토로 그랜드 마스터의 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감히 자신의 공격을 멈출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콰아아아악!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저 얇은 망토조차 뚫지 못한 자신의 검에 가 르안은 기가 막힌 듯 입을 벌린다.
뭐지? 어째서?
내 검이 어째서 저 망토조차?
어이 없이 있을 틈조차 없다. 로아도르가 거칠게 망토를 걷어내자 가 르안은 그 힘에 다시 몸이 쓸려 나간다.
“큿.”
방금 전과 같은 모욕은 다시 겪을 수 없기에 땅에 확실히 발을 딛고 로아도르를 주시하는 가르안. 그래도 검은 다시는 쥘 수 없을 정도로 타올랐을 것이다. 아니, 완전히 녹아 버렸겠지. 그러나.
척.
가르안이 멀어지자, 로아도르는 아직까지도 치지직 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검을 잡는다. 검 안에 남아 있는 뇌기는 반항이라도 하듯 타탁 거 리며 타올랐지만 천변기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가르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만 다.
검조차 타오르지 않았다. 번개를 한가득 머금은 그 검은 여전히 거무 튀튀한 쇳빛 그대로이다.
비겁하다고 할 수 없냐고 물었나. 물론이다. 최선을 다해준다면 로아 도르에게도 고마운 일.
하지만.
“어째서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가르안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가르안의 전력이 아니다.
가르안의 본 모습은, 세상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광체 를 자랑하는 위대한 빛의 검.
그러자 가르안은 입술을 꽉 깨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검의 신으로 변모한다면 승부는 한순간에 끝날 터이다. 하지만 어째서, 인간에게 자신이 최선을 다해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상 대는 대마왕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변신하지 않더라도 녀석을 이길 길은 무궁무진 할 터 이다. 검과 마법.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오로지 검의 신에게만 허락된 것.
“좋아. 보여주도록 하지”
내가 신이라는 것을!
허공을 향해 손을 내미는 가르안. 그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문을 열듯이, 두 손을 쭉 내밀어 힘겹게 당기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을 그 허공의 공간에서. 화르르륵!
커다란 푸른 불길과 함께.
끼이이익.
하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가르안의 곁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다는 푸른 불꽃을. 그곳은 선택받은 자들의 공간. 검을 든 이들에게 있어서는 누구나 바 라는 성지.
이 세상의 모든 마스터라 불렸던 이들이 최후에 초대 받는 곳. 그것 의 중심에는 가르안이 우뚝 서 있다. 솟아 올라와 있는 것은 일백개의 검. 각각의 형태가 모두가 다르다. 그들 모두가 가르안을 받들 듯 일제히 검을 치켜 올리며 2열로 나열한 -어서오라. 나의 발할라에. -
“오오오오!!”
“결국, 결국 검의 신이 강림하셨다!”
감격에 젖은 사람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일백의 검에 둘러싸여 가르안은 한껏 가슴을 핀다.
그래, 이거다. 보라. 이것이 검의 신. 나의 힘이다. 가르안은 한가득 웃음을 띠우며 로아도르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 ’을 마주하는 그의 시선에는 겁이 담겨 있지 않다. 선망의 시선 조차 담겨 있지 않다. 아무런 감정 없이, 전과 같은 투지에 가득 찬 눈 으로 그들을 쭈욱 둘러볼 뿐이다.
어째서, 저 녀석은 이 성스러운 광경에 변함조차 없는가. 어째서 하 나하나를 조사라도 하듯, 아니, 오히려 ‘어떤 이 가 저들 중에 있으면 곤 란하기라도 하듯 행동하고 있는가.
“이들이, 모두 마스터들입니까”
“그렇다.”
이제야 느낌이 오는 모양이군. 가르안은 다시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또 다시 표정이 굳는다.
“다행이군.”
그것이, 일백의 마스터 앞에서 나올 소리인가. 로아도르에게 무서운 것은 마스터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얼마나 푸 른빛을 뿜어내는 가가 아니다.
진정 두려웠던 것은.
만약 저들 중에.
꺼질 것 같은 하염없이 약한 마나를 뿜어내며.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검법을 쓰는 이가 있었더라면. 제목 최종장 퍼스트 13
일백의 오러 소드들 사이에서 고고히 떠 있는 가르안.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다.
이들 전부가 마스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신계에 남 아 있는 데이터. 마스터들, 즉 상급의 전사라고 신계에서 인정받은 이 들의 기록을 토대로 마나를 사용해 만들어 낸 것. 그 중에는 그랜드 급이라 여겨지는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 들 까지 불러낼 생각은 없다. 그 이유는 남아 있는 자존심 때문에. 애초에 마스터들 백을 상대해낼 수 있는 자 따위, 이 세상에 있을 리 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 녀석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인가.
“일백의 마스터들 사이에도 꽤나 당당하군. 그 자신감. 어디까지 갈 지.”
가르안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 검들의 끝은 일제히 로아도르에게로 향한다.
“두고 보겠다!”
하늘로부터, 검의 비가 쏟아진다. 좀 전의 뇌전과는 다르다. 그 하나 하나가 일만 병사에 필적한다던 마스터들의 오러인 것이다. 이제 바로 눈앞에까지 와 있다.
한다. 그의 온 몸에 마치 줄과도 같은 힘줄이 울그러져 올라온다. 그야말로 전신 전력.
한번도 해본적은 없다. 하지만,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말했으니까.
나야말로 검의 마스터라고.
그러니, 저런 빛 덩어리들 따위에게 질 리가! 로아도르는 기합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른다. - -
느린 것 같으면서도, 그 검은 빠르다. 검신이 휘어진다. 보통의 검이 그가 쥐고 있는 것은 의지의 검.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 전혀 유연한 검 이 아님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찌지직.
무의 공간에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선이 그려진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것조차도 가르며 그 검의 끝에 지나가는 것 은. 모든 것이 사라진다.
파팡! 파팡!
바로 지척에 이르렀던 오러소드들이 소멸되어 간다. 근처에 있던 것 만이 아니다. 아직 다가오지 못했던 뒤의 것들조차. 눈 앞에 나타난 이공간. 그곳을 매우기 위해 세상의 마나들이 그 검 은 곳에 모여 들어 수복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스터들의 데이터를 유 지하고 있던 오러 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쿠웅!
단 일격. 일격으로 일백의 오러를 없애버린 로아도르는 가르안을 올 왜. 어째서.
축 늘어진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물리력으로 공간을 가른다고?
그건,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검의 신이 된 자신조차도. 마법으로 간섭은 할 수 있지만 그저, 힘으로 갈라 버린다는 것 따위. 있어서는 안 로아도르는 가르안을 노려본다.
이 덜 되었는가.
“언제까지 빛 장난질 을 할 셈인가.”
존대조차 잊은 로아도르는 그리 말하며 한발자국 내딛었다.
“난 인간이다.”
신조차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이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칭하며.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심장을 쿡 찍는다.
“여기를 노리면 난 죽는다.”
로아도르는 다시 대검을 치켜들며 가르안을 향해 겨누며 외친다.
“그 검을 들고, 직접 오라!”
이제는 가르안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두려움? 그런 것도 있다. 저런 녀석,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대면해야 하지? 난 영웅이다. 신이다. 난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아야 하는 이잖아. 존경 받는 위치였잖아. 결코 나 쁜 짓은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내가......
와아아아아!!
그때, 문득 가르안의 귀에 관중들의 환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르안님 만세!”
“가르안님!부디 승리하시기를”
“악마를 물리쳐요!!”
방금 전, 눈앞에 나타난 검은 선 때문에 사람들은 한층 더 로아도르 가 악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저 검을 뿐, 선도 악도 아닌 힘인 데도.
가르안은 자신감을 되찾는다.
그래, 드래곤을 물리쳤을 때에도, 발로그를 물리쳤을 때에도, 마지막 으로 대마왕을 물리쳤을 때에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 나에게는 이들이 있어.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이렇게 자, 이토록 세상에는 내가 이기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 네가 이기길 웃음을 띠며 그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가르안은 보았다.
짝!짝! 짝!
해가 져가는 건지, 아니면 뜨는 것인지. 전 세상이 붉게 물든 한 벌 판. 그곳에 쓸쓸히 말라가고 있는 나무 하나. 이 무척 어울릴 듯한 한 남자다. 그런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 다.
짝!짝! 짝!
그는 이렇게 웃는 것이 무척 어색한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감추면서도
오로지 로아도르만을 위해 박수를 치고 있다. 그 남자의 박수 소리는 너무나 커서. 이 수만명의 관중들의 환호보다도 더 커서.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군요. 한, 2, 3일 사이에 끝날 듯 싶습니다. (에 필로그야 작성은 이미 완료되어 있으니까요. 최종화 최종장 올리는 날 데, 가르안은 뭐, 2 단 정도.....
제목 최종장 퍼스트 14
헛것이었는지. 가르안은 눈을 깜빡거리며 다시 한번 로아도르의 뒤 를 보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것은 수만의 관중들과 그를 향해 보내는 야유들뿐이다. 머리를 휘저어 정신을 차리는 가르안.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랜드 마스터? 그런 수 준에 이른 이가 10 명이 있다 하더라도 버텨내기 힘들 공격을 퍼부었다. 비록, 그것이 가르안 자신의 최선이 아닐지라 할지라도. 가르안은 분했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이 녀석에게는 그 철없던 어린 시절의 패배가, 이 모든 이들의, 세상 의 모든 이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극복해야 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아니야.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어. 저들의 환호와, 저들이 로 아도르에게 보내는 야유가 그 답이다. 이유가 있다면 그 시기에 사로잡 힌 저 녀석이 머리가 이상한 거다.
거다. 세계의 운명이 걸린 결전이 아닌. 고작 이런 시합 따위에.
하지만 그런 쉬이 이길 수 없으니.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저토록 자신만만하게 눈빛을 빛내고 있는 저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겠지.”
정 그렇다면 보여주마.
꽈득 깨문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그런 작은 상처조차도 단번에 회복이 되는 가르안.
탁.
그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마치, 뭔 가를 계산이라도 하듯 관중들이 있는 곳을 샅샅이 흝어 본다. 그리고 끝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쫙 펼치며 관중들에게 외친다.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러운 가르안의 인사. 그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박수 를 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가르안은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멈춘 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로나 제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지금의 저로서는 이기기 힘이 듭니다!”
“저건 악마이니까”
“대마왕의 화신에게 지지 말아요!!”
악마, 대마왕의 화신이라. 그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 공간 인 그가 마왕의 힘을 못 알아 볼 리는 없으니까. 눈앞에 있는 것은. 어쨌거나 일부러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 그들의 응원에 힘을 얻은 가르안은 다시 외친다.
“그렇기에, 저의 전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 에서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 주시길 바랍 니다!물론, ‘경기 ’는 계속 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부디 부탁드 립니다!”
갑작스러운 가르안의 부탁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린다. 그건 상석에 앉아 있던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 한참동안이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탁을 그 누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이윽고, 하나둘씩 자리에 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가면서도 그들의 얼굴에 불만이 서려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있는 얼굴들. 전력을 다한다는 뜻. 다름 아닌, 검의 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던가. 귀족들을 시작으로 수만명이나 되는 관중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다. 그들을 뒤로 하고 서 있는 가르안과 로아도르. 심한 야유가 쏟아졌지 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묵묵히 검을 치켜들고 있을 뿐. 그리고 휘오오오오.
텅빈 공간에 고요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 관중석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무대위의 가르안과 묻는다.
“하나 묻고 싶군.”
좀 전에 떠올랐던 의문이다.
“무엇 때문이지? 나는 마왕이 아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이라. 그래.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거창한 게 걸려 있지도 않아.
그것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망설이지 않고 답하는 로아도르. 그러자 가르안은 텅 빈 공간을 손으 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웃는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 하하핫! 웃긴 말이다! 지금 한번 자신을 돌이 켜 봐라. 진정 너를 위한 길이냐?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까지 야유를 받 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냐?”
그래, 몇 번이고 돌이켜 봤지. 무엇 때문에, 왜 이 자리에 오려 했는 지 몇 번이고 의심했었고. 그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늘어가고, 하나둘씩 줄어갔다. 그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 손안에 남아 있는 작은 어떤 것. -어디서 잘난 척이야! 그 높디높은 콧대를 콱 눌러 버리겠어! “그래도, 너를 이기고 싶은 나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군. 이 녀석은 그 십년 전부터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그때, 로아도르가 되묻는다.
“가르안. 너는 무엇을 위해서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르안의 말문이 턱하니 막힌다. 그런 것 따위,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루리아를 위해서였고, 엘 라이라를 위해서였고, 자신에게 보내주는 환호가 기뻤고. 대마왕의 학살에 분노했다. 그리고 영웅이 되었으며 신 이 되었다.
이토록 누구나 부러워 할 인생이다. 이 나에게 못하는 것이 없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그딴 거,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토록 행복한데.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고 느꼈던 허무함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바라보며, 힘껏 달려가 던 감정이 사라졌던 그 때의 느낌.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무엇을 원했었나. 이제는 먼 옛날의 이름인, 강성훈이라는 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 나.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것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것. 나 자신이라?
머릿속에 복잡해진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누군가 속삭여 온 다.
-그대는 사명을 다했다.
위대한 황금의 용이 그에게 말한다. -앞으로의 모든 영광은 그대에게.
빛의 검이 그에게 말한다.
그래, 그런 머리가 아파와 지는 것. 생각할 필요는 없지. 내가 무슨 철학자도 아니고.
“이쯤에서 시시한 대화는 관두지. 어쨌든, 영광으로 생각하는 게 좋 다.”
콰쾅!!
허공으로 다시 떠오르는 가르안. 하지만 이번에는 마법이 아니다. 그 의 몸에서 방출 되는 어마어마한 힘에 의해 절로 떠지는 것이다. 로아 도르는 검을 세워 그 충격파를 막는다. 나의 모든 것을.
그러자, 로아도르의 눈에 긴장감이 감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그 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충격파라니. 좌, 사부였다. 하지만, 가르안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그 사부조차도 가 볍게 상회할 정도였다.
스스스.
가르안의 신체가 조금씩 사라져 나간다. 옅은 빛의 입자처럼 흩어지 고, 그것들은 점차 검의 형태를 띠어간다. 아니, 형태라고 부를 수도 없 다.
고오오오.
그것은 오로지 빛일 지니.
가르안의 머리칼 하나까지도 빛으로 변하고. 이제 허공에 떠 있는 것 은.
검의 신. 소문만이 무성한 가르안의 실체. 신의 무를 대변하는 자.
화려한 빛의 검만이 떠 있다.
처음 보는 것일 터인데. 어쩐지 낯이 익다. 그래. 그 모습이야 말로.
로아도르가 강철의 검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두들기며, 끊임없이 바라보았던 그 검.
이제야 만나는군.
로아도르의 입가가 씨익 웃음을 띤다. 저거야 말로, 내가 꺾고 싶었 던 그 검이다.
파파팟!
새 하얀 공간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로아도르는 놀라지 않는다. 신을 상대로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다 한들 놀라울 일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공간. 10 년 전에도 겪었으니까. 그때는 아티팩트니 뭐니 했지만, 역시, 그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던 공간임이 틀림없다. 그러자 빛의 검이 전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곤란 하다는 듯 말한다.
-전의 마력만으로 만들었던 공간과는 다르다. 이곳은 오로지 나의 간에서의 일. 저 세계에서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 흠. 그나저나 아무래도 혼자서 떠 있자니, 검의 신으로서 위엄이 좀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이군. -
파파팟!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빛의 검을 중심으로 일백의 푸른 검들이 솟구쳐 올라온다.
그러나, 전과는 조금 다르다. 늘여서 있는 일백의 마스터들 뒤에, 훨 씬 더 길고, 강하고 푸른 검이 세 개 솟아나 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우뚝.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흔들림 없이 서 있을 것 같던 로아도르. 그의 숨이 한순간 멈춘다. 무엇이라도 부숴버릴 듯 힘이 들어 가 있던 그의 거검이 땅으로 내려온다.
그는, 옆에 솟아 있는 커다란 검들 중 왼편에 있는 것을 뚫어져라 바 -음?-
빛의 검은 의아한 듯 검신이 흔들린다. 이제 와서 저 녀석이 겁을 먹 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아......”
게다가 입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째서 인지, 눈물까지 고여 있다.
있다.
비록 그의 잔재뿐일지라 할지라도.
쿵!
그 왼편의 검을 향해 검을 내려찍고. 로아도르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인다. 바이파. 그 이름의 위대한 시작.
엑시엘 반 바이파의 검이었다.
제목 최종장 퍼스트 15
어째서냐.
검 안의 가르안은 옆의 검을 보며 고개를 숙이는 로아도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에게는 그리도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녀석이 어째서 저 검에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고 개를 숙이는가.
자존심 상한다. 저 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나다. 이 검의 신인 가르 안 카이자란 말이다.
그때.
지이이잉.
검신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 분노 때문인가. 아니다. 이 것은, 이제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 이 검의 의지가 가르안을 떨게 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가 보면서 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저 로아도르가 들고 있는 검 이다.
그저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 만 단단하기만 저 검.
떨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 빛의 검은 명한다. -가라 -
빛의 검의 명령에 따라 녀석은 일백의 푸른 검들이 로아도르를 둘러 싸기 시작한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로아도르는 저것을 일격에 무 너트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차분히, 일단 사방을 둘러 싸고 일제 히 공격을 하면 녀석도 어쩔 방도가 없겠지. 주변이 온통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자, 로아도르는 다시 검을 들고 눈 빛을 굴린다. 빈틈? 그런 것은 없다. 이미 앞뒤좌우, 머리 위까지. 촘촘 그리고, 그것들은 소리도 없이, 일제히 돌격해 온다.
투투투퉁!
이번에는 공간을 가를 시간조차 없다. 로아도르가 검을 몸 주위로 휘 검들, 천변기로 머리를 둘러 그것들을 막아낸다. 천변기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검들. 로아도르가 천변기를 걷어내 자 10 여개의 오러소드들이 허공으로 튕겨 오른다. 연신 검을 돌리며 사 방의 검들을 쳐내고 있던 로아도르. 그는 회전을 멈추고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는다.
콰쾅!!!
하얀 허공의 땅에 검이 닿자. 보이지도 않는 어떤 파편들이 튀어 올 라 검들을 막아낸다.
파앗!
그때 생긴 빈틈. 천변기의 아래로 차마 보호하지 못한 부분에 검 하 나가 로아도르의 허벅지를 찔러 온다.
“크윽!”
인간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검처럼 절대 베어지지 않는 육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뼈에 근접할 정도로 깊숙이 박힌 검. 로아도 르는 천변기를 쥐고 있던 손을 때, 허벅지의 검을 손아귀로 움켜쥔다. 그러자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한 푸른 검의 형상은 반토막이 나며 푸른빛 으로 화한다.
허벅지의 고통을 느낄 세도 없다. 또 다시 왼쪽 날갯죽지에 새로운 검이 파고든다. 순간적으로 검을 떨어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어깨에 박 힌 것조차 터트려 버린다.
파팟! 파팟!
미세한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한 다. 새하얀 예복은 빨간 피로 물든다. 퍼엉!
하지만. 그러면서도
파팡!
검을 휘둘러 오러들을 터트리고, 천변기로 그것들의 공격을 막아내 고, 몸에 박힌 것들은 손아귀의 힘으로 터트리며. 피에 물들어가면 일백의 검들을 물리치며 조금씩 앞으로 다가온다. -괴물 같은 놈. -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빛의 검. 역시, 미친놈이다. 피에 물든 로아도 명하니까.
“후우후우.”
숨을 몰아쉬며 로아도르는 검을 두 손으로 쥔다. 다행히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치명상은 없다. 허벅지와 어깨에 박혔던 것의 데미지가 크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저것들로 막아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빛의 검은 생각에 잠긴다.
다시 한번 발할라를 불러내기에는 마나의 소모가 크다. 그의 마나도 무한히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것보다 비효율적이다. 겉보기에는 저 래 보여도 저 녀석의 힘은 아마.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지.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저 커다란 검. 세 개.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가 르안, 그 본인의 기억에 근거하여 만든 그랜드 급의 오러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이 녀석들을 상대해 보....
스스스스.
그때 세 개중 하나의 검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아도르가 울 먹거리며 바라보던 검이다.
-음?
어째서? 검의 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작해야 기록을 토 대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의지를 가지는 것 따위는 불가능한 일인 쾅!
크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로아도르는 충격을 이겨내며 검을 튕겨낸다. 감 황하며 그것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다. 쾅!쾅!
제 아무리 그랜드 급의 오러라 하더라도 로아도르의 힘은 당해낼 수 없다. 그 대신, 다른 오러들처럼 일격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쾅!
힘을 이겨내지 못해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위로 떠오른 그 검은, 다 시 몇 번이고 로아도르를 향해 달려든다. -멈춰라!-
빛의 검도 당황하며 명령을 되풀이하지만, 통제를 듣지 않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가 공포스러운 것은, 저 검은 로아도르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것.
저 검을 저대로 로아도르와 맞대게 해서는 안 된다.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쳇. 그렇다면. -
빛의 검은 저 검에 대한 기록 자체를 삭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랜드 급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마나는 아까웠지만, 제대로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스스스스.....
미친 듯이 로아도르를 향해 달려들던 그 검은, 서서히 빛이 옅어져 그때.
-딱 한번만 보여주마. -
로아도르의 귀에.
알지 못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사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환청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저 검이 자신에게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칭!
옅어진 검은 날카롭게 로아도르를 향해 베어온다. 그러나 그것은 지 금까지처럼 묵직한 공격이 아니다. 아니, 저것을 공격이라고 해야 할 지. 그저 날카로운 잔상만이 남아 로아도르를 스쳐 지나간다. 칭!
그리고. 허공이 남아 있는 잔상에 새로운 잔상이 부딪치며 튕겨 오른 다.
칭!칭!
그 잔상들은 눈에 보이지도, 절대예지로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 기? 그 뿐만이 완벽한 궤도를 그려가며, 남은 잔상들은 서로 부딪치며. 칭!칭! 칭!
별들을 만들어낸다.
칭!칭! 칭! 칭!
그것은 분명, 이제까지 로아도르가 봐온 것들 중 가장 아름다웠고 강 했던 검술. 풍차 앞에 있던 노인에게 비해서도. 칭!칭! 칭! 칭!칭!
결코 한 치도 뒤쳐지지 않는 궁극의 검술이었다. 칭!칭! 칭! 칭!칭! 칭!
결코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단 한번이지만, 이 검술을 본 적 이 있다.
-잘 봐두도록 해라. 이것이 우리 바이파 가문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 는 검술의 비기중의 비기. -
그의 전신을 둘러싼 일곱 개의 별 ’이. 로아도르의 눈앞에 생겨나 있었다. 파파팟!
옅어질 때로 옅어진 마나가, 로아도르의 살갗에 스치며 소멸되어 간 다. 제대로 된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고, 아스라니 사라져 간다.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성장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성장 할 여유 따위는 없다가 정답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로아도르는 분명히 보았다.
저것이, 아마 자신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길. 최후로 내딛을 한걸음 이라는 것을.
에구에구....모처럼 쓰려니 힘이 듭니다. 귀차니즘의 압박을 이겨내 고 쓴 것이건만.....
제목 최종장 퍼스트 (완 )
저것이었나. 그 알 수 없던 불안감은 저것이었나. 한눈에 알 수 있다. 모든 검들의 궁극적인 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 빛의 검이 자신에게 말하 고 있다.
저 단 한순간이었지만 찬란하게 빛나던 저 일곱 개의 별이, 저 로아 도르가 쓸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라고. 저것을 저 자에게 보여주어선 안 되었다고.
어째서야. 이해할 수 없어.
녀석이 제 아무리 마왕급의 힘을 지녔다 하더라도 몇 번이고 쓰러질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왜 저 녀석은 쓰러지지 않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만년의 수명을 지닌 드래곤의 지식으로도. 신인 빛의 검에게서도
무엇이 녀석을 쓰러지지 않게 하는지. 저토록 버티게 하는지. 그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넌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것이냐!!!커다란 외침과 함께 빛의 검이 앞으로 나서고. 그 뒤를 따라 두개의 그랜드급이 따라 움직인다.
고오오오옹....
강철의 거검과, 빛의 검이 맞부딪치며 커다란 충격파를 만들어낸다. 빛의 검이 만들어낸 이 공간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일격만으로도 무대 전체가 날아갔을 터.
그러나, 빛의 검도, 저 검도.
그리고 로아도르도.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
“크으윽!!”
로아도르는 이빨을 꽉 깨물며 버티고 있고. 카강카강.
빛의 검의 검신이 부르르 떨리면서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낸다. -크아아앗!!!-
빛의 검에게서 이성을 잃어가는 듯한 외침이 들려온다. 녀석은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선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저 거무튀튀한, 화려함 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저 검은 결코 부러지지 않았고. 저 그랜드 마스터급의 오러 소드가 두개나 힘을 보태주고 있는데도, 저 검은 망토조차 뚫지 못한다.
그래, 나서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마법을 쓰고, 마나의 소모가 심한 발할라를 두 번이나 불러냈다.
어째서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어.
불안했어. 만약, 빛의 검인 내가 나서도 저 녀석을 이길 수 없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이상 나를 도와줄 존재도 없어. 아니, 이 빛의 검 이상으로 강한 자가 이 세상에 있어서도 안돼. 인간으로서 신을 넘어선다니, 그런 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지고 싶지 않아. 지면 안돼. 나는 영웅이야. 패배한 영웅 따위, 세상 에서 알아줄 리가 없어.
루리아가 나를 떠나가고, 엘 라이라가 나를 떠나가고. 많은 이들이 나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 볼 테지. 그들의 시선은 마치.
언제고, 힘없는 소년을 구타하던 그 경멸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그 눈들과도 같은.
정신이 흔들려서 일까.
빛의 검안에 있던 그 머나먼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빛의 검이 전 부터 가지고 있던 그 불안함의 실체. 가르안은 보았다.
무수히 많은 빛무리들을 검 하나로 가르며, 그래, 마치 지금의 로아 도르와 같이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그 자신의 힘으로 다가와, 이 빛의 검을 가르는 모습을.
내가 받은 힘이, 이 무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힘이 옛날 저 검 에게 꺾였었다고?
그리고 저 검을 로아도르가 들고 있다고!!
가르안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안돼!!! 나는 지면 안 된단 말이다!!!
퍼퍼펑!
빛에서 수십줄기의 검기가 뿜어져 나오며 로아도르를 덮친다. 그 옆 에 있던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들조차 그의 공격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 고 만다.
가르안의 창조해낸, 그 하얀 공간이 하얀 파편으로 변해 올라온다. 자신이 창조해낸 것을 스스로 파괴하니, 파괴된 부분은 점차 다시 원래 의 세계로 돌아온다.
보기에도 힘들다. 이미, 그 곳은 전부 초토화 되어 땅이 흉악스럽게 드 러나 있다.
-으아아아아악!!!!-
한 줄의 바람조차 베이는 공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수십개의 검줄기 들이 자신을 노리는 듯한 착각에 휩싸인다. 검의 옆면으로, 천변기로 머리를 막으며 로아도르는 묻는다. 쿠쿵!!!
“버틸 수 있겠나 천변기”
제 정신을 잃은 빛의 검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을 퍼붓고 있다. 검에 대한 신뢰는 말할 것도 없지만, 과연 그 마저 버티어 줄 런 그러자 천변기가 어조 없는 말투로 답한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말했을 터다. -
천변기속, 제왕의 무기로 이루어진 한줄기의 실이 그에게 답이라도 그 일천의 무기가 하나. 제왕의 실이 끊어지지 않는 한! 퍼퍼펑!!
수백 줄기의 오러 소드 앞에서.
로아도르는 가볍게, 웃음을 띤다.
“그래, 그렇다면, 절대로 괜찮군.”
-그렇다. 절대로 괜찮다 -
사부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라고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슨 그런 이 름인지. 멋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이 로아도르 반 바이파는, 절대가 붙어 있는 의지, 그리고 예지로 버 텨 온 것이 아닌가.
그래. 감히 선언한다.
‘절대 ’란 말이 어울리는 자는 우리들 뿐이다! 버티고 있는 로아도르의 앞에, 아무도 그것을 쥐고 있는 자가 없는 빛의 검.
그의 절규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질 수 없어!난 지면 안돼!!-
과아아아아앙!!
힘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신이란, 결코 허투로 붙은 이름이 아니다. 그가 뿜어 내고 있는 기운은 마침내, 점차 공간 자체가 검으로 화한 다.
부아아아앙!!
검의 신 그 자체의 검신조차 옅어져 가고 있다. 그것은 마치 괴물처 럼, 스멀스멀 기어 나와 모든 것을 베어가며 분쇄시키고 있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 로아도르 그 자신은 버티어 내고 있 지만.
“크윽, 멈춰라 가르안!!위험하다!”
이 상태로라면 바깥세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이 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 상태로라면, 가르안도, 그리고 로아도르도 죽을 수밖에 없다. 아 니, 저 공격이 세상에 퍼진다면 황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일곱 개의 별. 전방위 공격 검술.
그 검로는 제대로 보긴 했다. 아니, 이제까지 바이파 검술, 그리고 다 른 검술은 풍차의 노인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 외에는 없다. 로아도르의 가장 근본이 되는 바이파의 검술 그 자체가 저 것을 위한 것이다. 바이 파의 이름을 지닌 이가 못해낼 리가 없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짧은 망설임.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 따위는 무의미하다. 생각만 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어!!’
마음을 먹은 로아도르의 전신에 힘줄이 붉어져 올라온다. 일곱 개의 별. 마나로 잔상을 남겨, 그것을 이용해 고속으로 사방을 둘러쌓는 검술이다.
하지만 그건, 로아도르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일. 마나가 없는 그에 게는 불가능한 일인 듯 싶지만.
하지만 오히려 로아도르이기에 가능한 것이 있다. 그의 일곱 개의 별 은 다른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마 이것은, 이 세상에서 로아도르만이 가능한 기술일 것이 쿵!
“크아아아아압!!!”
로아도르는 기합을 지르며 달려 나간다. - -
로아도르가 달려가고 있는 그 길 자체가, 새까맣게 갈라진 공간이 입 을 벌린다. 폭주하고 있던 마나가, 아니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세상을 원 래대로 돌리기 위해 그 찢어진 공간으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크으으으윽!!!!”
마침내 그어진 일직선. 팔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러나 로아도르는 고 통을 참아내며, 힘껏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저 검은 공간에서 벗어나 다시 그 곳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튕겨내는 것이 불가능 했기에
그것은 별이되,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아닌,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어둠의 별.
“크아압!!
로아도르의 검이 가속되어 간다. 그어진 검은 선에 닿기 직전, 전신 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손목을 꺽어 검을 틀어내고, 앞으로 검은 선을 만들어낸다.
- -
결코 선조의 그것처럼 정교하지 않다. 별들은 뭉뚝하고 선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별들은 공간을 제대로 둘러싸지도 못했다. 하지만.
애초에, 검술이고 재능이고, 로아도르에게 주워졌던 것은 아니다. 단 한번 보았던 검술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그에게 가능했던 것은, 이 무식할 정도로 키워온 힘과. 키워낼 수 있던 정신력 밖에 주어진 것은 없으니. -크아아아악!!!-
이미 전신이 검. 그 비대해진 공간 자체가 그의 몸과 다름 없으 니.
콰장창!
그리고, 빛의 검의 공간은 파괴된다. 두 존재.
가르안은 쓰러져 있다. 이미 빛의 검의 형태도 유지하지 못하고 원래 의 인간의 육신으로 돌아와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로아도르. 이미, 누가 봐도 이 미 승패는 명백했다.
쿠구구궁..
힘겹게 검을 들어 올리는 로아도르.
“패배를, 인정하는가, 가르안.”
“나,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가르안은 차마. 졌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말 을 입에 담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하지만 몸에 힘이 없다.
어떡해 하면 저 녀석을......
쿵!쿵!
로아도르가 한걸음씩 자신에게로 다가온다. 그 두려움에 가르안은 몸을 떨면서 필사적으로 방법을 갈구한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하나 있다. 순간 이것은 너무 비겁한 것이 아닌 가 싶었지만.
쿵!쿵!
그의 발걸음이 다가올 수록, 더 이상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가르안은 온 몸의 남은 마나를 짜내 로아도르에게 손을 내민다.
“파, 파워워드...킬!!!”
지이이잉!
로아도르의 몸이 우뚝 멈춘다.
파워 워드 킬. 사람의 정신을 모조리 파괴하는 대 정신계열의 최고급 마법.
그러나.
캉!
쇳 부딪치는 소리가 한번 울릴 뿐.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는다.
파괴하기 위해 들어 왔건만. 아무것도 없다. 그토록 넓은 공간에, 남 아 있는 것이라고는 깊게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 하나와 시들어 있는 작은 꽃밭하나.
그리고, 그 앞에 꽂혀 있는 거검 하나. 그것에 가로 막혀 그 작은 것 조차 파괴하지 못한다.
이 삭막한 공간에서, 가르안은 커다란 공포감을 느낀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난, 지금까지 이런 녀석을 상대로 싸워왔나. 아니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녀석은, 나를 이긴다는 그 이유하나 만으로 이렇게 까지......
에.
로아도르 역시 가르안의 마음을 보고 있다.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 화 려하다. 사방에는 아름다운 꽃과 바다, 그리고 산들이 펼쳐져 있고 사 슴들이 평화롭게 뛰어 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위대한 것들. 빛으로 화한 검과, 그 검 위에 올라타 있는 황금빛의 드래곤이 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장엄해서, 로아도르조차 감탄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데, 가르안은 어디에 있나.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로아도르는 그 빛의 검을 지나, 자신 을 내려다보는 드래곤을 무시하며 그 앞으로 나아간다. 한 소년이 있다. 로아도르는 보지 못했던 이상한 복장을 한 한 소년 이 다리를 모아, 머리를 숙이고 울고 있다. 설마.
설마.
네.......
“이것이 가르안, 너의 실체인가........”
허탈한 마음에 로아도르는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저 끝도 없이 높을 커다란 검과 그 위에 올라타 있는 황금의 드래곤. 화려하게 빛나는 백금의 빛에 뒤에 숨어서 울고 있는 이 소년이, 가 르안이었나.
고작해야 이런 녀석이 내 모든 것을 받친 필생의.......
그때.
-쯧쯧. 또 멋대로 사람을 무시하고 있구나. 한심하다는 어조가 한가득 담긴 꾸짖음이 들린다. 다름 아닌, 사부의 목소리가 로아도르에게 들려온다. 허무함에서, 실망에서 벗어나 로아도르는 가르안을 바라본다. 무릎 언제고, 한 노인의 시체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로 눈물을 흘 리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에게 말했지. -네가 가르쳐 주러 가거라. -
그랬나. 사부가 말했던 것. 가르안에게 자신이 가르쳐 줘야 하는 것.
“나도. 물려받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소년의 울음이 멈춘다.
그래, 바이파라는 거대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그 후계자로서, 등 뒤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감인지. 그것은 너 무나 무거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지.
“하지만, 난 그 뒤에 숨지 않았어.”
저 앞에 있는, 커다란 빛덩어리를 향해 손가락을 내민다.
“일어나라. 난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억지로 너를 일으켜 세우지 도 않는다.”
“일어나서, 당당히 저 앞으로 나올 때까지, 지켜봐 주겠다. 뒤에 숨지 마라. 앞에서 저것을 당당히 쥐는 그 모습. 내가 봐주겠다.”
그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분명, 나 자신이 노력한 덕분이다. 하지만, 결코 혼자서 있지는 않았지.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봐 줬고 도 와주었어.
하지만, 이 녀석은 아무도 없었던 거야. 그저, 주어지기만 한 힘. 그 래서 그 뒤에 숨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몰라.
“일어나.”
기어서라도, 어떤 꼴사나운 모습이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서. 그러 다가 일어나고. 한걸음씩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어느새, 달리고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울음을 멈춘 가르안은 로아도르를 올려다본다. 로아도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르안의 앞에 우뚝 서서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눈빛은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나는, 반드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소년은 후들 거리며.
그리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한걸음씩.
‘성훈 ’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 난......”
가르안, 아니 성훈은 침을 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무섭다.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할까봐. 또다시 아무런 악의 없는, 그러 나 상대방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 폭력이라는 것에 시달릴 것 같아서.
하지만.
그래도 없는 용기를 짜내서.
“난....가, 강성훈이야”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무서워서 벌벌 떨리며 숙여지는 고개를 있는 힘껏 들고.
로아도르의 눈과 마주한다.
“강..성..훈...”
로아도르는 발음하기 어려운 듯 어색하게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다.
쿠웅!
로아도르는 검을 아래로 내리 찍으며 예를 표한다.
“강, 성, 훈. 난, 로아도르 반 바이파이다.”
쾅!
성훈은 역시 오들오들 떨면서도 그와 마주 예를 표한다. 성훈은 갓블 레이드를 손에 쥐고 이제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로아도르를 향해 검 을 휘두른다.
빛의 검과 드래곤의 지식은 전부 가지고 있다. 그 육신도 엘 카이자 에게 받았던 그대로. 지금까지 로아도르와 싸워왔던 힘이 변한 것은 아 니다.
그저, 자신이 직접 이 힘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기에, 어색하고 서툴 을 마주해 나간다.
결국, 성훈에게서 패배를 시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솨아아아아..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오며.
로아도르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던 나무에, 잎들이 떨어져 나간다.
아아, 그 언제였던가. 사부와 함께 했던 그 그리운 순간. 그 시작에 사부가 해주었던 이야기.
자신은 마나부적응자라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연 나는 가 르안을 이길 수 있을까? 라고 물었을 때.
“글쎄. 그건 나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추측만이 가 능할 뿐이지.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는 한 그루의 나무가 쓸쓸히 서 있었지.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그 소녀 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나무 뿐. 소녀의 상태는 점차 악화 되어 갔다. 애초에 낳을 수 있는 병이 아니 었던 것이지. 그와 동시에, 나무의 잎들도 하나둘 씩 쓰러져 가기 시작 했지. 소녀는 그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 여겼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순간, 자신도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그렇게 잎은 하나 둘씩 떨어져 가고,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것 이 언제 떨어질까, 소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체념의 마음으로 그것을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거야. 헛된 것이라고 해야 할지. 소녀는 결국, 나뭇잎이 떨어질 째까지 죽 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뭇잎도 떨어지지 않았다. “
이야기를 마친 사부는 쿡쿡 웃는다. 로아도르는 무슨 이야기인지 제 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그 나뭇잎은 왜 안 떨어 진 것이지? 그가 되물으려는 찰나, 사부가 먼저 말을 꺼내며 로아도르의 입을 막 “너도 마찬가지 일 거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 까지는, 아마 어떻게 든 되겠지. “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지.
“의지가 끝나는 때에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로아도르는 잠시 생각했다가 답한다. 사부는 고작해야 내 논 답이 그런 것이냐는 듯, 한심하다는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틀렸어. 그 의지가 바라는 방향, 그 곳에 도달했을 때이다. 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언제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넘어선다면. “마지막 남은 잎은 떨어지고 말겠지. 어떠냐,”
차라리 계속해서 지면 죽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네 녀석은 이길 셈이냐? 라고.
그리고.
-이기겠습니다. -
예. 사부.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정말로,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도 많았고. 가슴 아픈 것도 많았고.
하지만.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고.
원하던 것을 이루었습니다.
-이제.....조금만 쉬어도 되겠지요.....눈앞의 성훈 외에는 아무도 없는 이 하얀 공간에서.
“좋은 승부였다.”
투두두두둑
로아도르는 땅에 박힌 검을 끌어 가슴에 붙이며, 쓰러진 성훈에게 예 를 표한다.
설령.
그 마지막의 마지막이라 할지라도. 예를 표해야 할지니.
로아도르의 이제는 하얗게 변한 백발이 흔들리며. 온 몸에 힘이 빠지듯, 그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진다. 성훈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그에게 손을 내민다.
“뭐야, 뭐야.......로아도르. 이건......”.
아니.
고작이라 말할 수 없겠지.
그의 이 모든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한 없이 어리석어 보이는 이 단 한번의 승리를 위 해.
아아. 10 년 전의 모든 것이 떠오른다. 나는 이 사내를 무시하고,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기쁨에 가득 차 있 었다. 품 안에 부드러운 루리아를 안고. 그래 기분은 좋았다. 단번에 꺾 저 쓸쓸하게 홀로 걸어 내려가던 그 사내를 뇌리 속에서 지웠었다. 뒤돌아서서, 소리조차 내지 않고 울던 저 남자를. 부끄럽다.
하다못해, 그에게 다가가 손이라도 한번 내밀었어야 했거늘! “끄으으윽.”
괴로운 신음을 참아내며, 성훈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다.
“이건 아니다. 이, 일어나, 일어나! 로아도르......비겁하다! 네가 가 버린다면, 나는 이제 누구에게 도전을 하란 말이더냐!”
성훈의 외침에도 로아도르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니, 들지 못한 다.
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납득하기 위해.
로아도르 라는 자가 이 정도 라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에게 납 득시키고 싶었기에.
만족스럽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 끝났다고 허무하지 않았다. 정말로 다행이 다.
정말로.
그런 그에게 이 순간은.
자신에의 영광의 순간.
이제는 검이 기대어 서 있는 로아도르. 변화가 없던 그의 입가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그래, 내가 바랐던 것은 이것. 오로지 이것이었다. 환하게.
너무나 환하게.
로아도르는 웃었다.
제목 에필로그 1 강성훈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교실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 해는 너 무나 붉어서, 마치 피투성이인 자신의 모습과도 같아서 한층 더 서글퍼 진다.
창 밖의 하늘과, 그리고 그 아래를 멍청히 내려다보던 소년. 그는 이 윽고, 벌벌 떨리는 몸으로 창 위에 올라선다. 무섭다. 이 곳에서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괜찮겠지.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 나 같은 놈 하나 없다고 하더라도. 돈 몇푼 던져 놓고 부모인 척 하는 그 사람들도 나 같은 것은 더 이상....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소년은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탕!
소년은 떨어졌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엉덩이에서 생생한 고통이 느껴진다. 데자뷰라고 해야 하나?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장소만 다르다. 그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앉아 있는 곳은 학교의 뒤 뜰 위의 아스팔트다.
소년은 한참동안이나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 보지만. 이 모든 것은 그 괴로워서 죽음을 선택했던 그 현실, 그대로였 다.
아, 이 모든 것은 꿈이었나.
아름다운 루리아와, 엘 라이라와 사랑을 나누고. 좋은 친구들과 멋진 우정을 나누고
그 무서웠던 대마왕을 물리치고.
마지막으로
앞에서, 자신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봐 주겠다던. 그 거대한 검을 들고 있던 사나이와 모든 것을 걸고 검을 나누었던 것은 모두가 한줄기의 꿈이었던가. -그것은 환상이 아니에요 -
그때 귓가에 속삭이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상이었던지, 아니었던지, 그것은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한 여인의 목소리다. -당신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잖아요? 또 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속삭인다. 과분하게도 자신을 너무나 사랑 해주었던 다른 여인의 목소리다.
“그래.”
방금 전과는 너무나 다른 그 소년은 일어난다. 그의 두 주먹에는 한 가득의 힘이 들어가 있다. 숙여진 고개와 움츠린 어깨가 지금까지의 소 년.
하지만 소년, 성훈은 이제야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해야 할 것이 있어서 이 곳에 돌아왔어.”
다시 교실로 올라와 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선다. 그의 걸음걸이는 좀 과 같이 힘이 없지 않다.
바깥의 세상은 너무나 낯익은 광경이어야 할 텐데, 왜 이렇게도 낯선 지. 그 화려하던 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건물들과 마차와는 비 교도 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내다니는 자동차들.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자, 어딘지 피곤에 쩔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한가득 올라타 있다. 신문을 읽는 이도 있고, 귀에 이어폰 을 끼면서 두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결코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거다. 나는 그렇게도 괴로워했지만.
“크..하, 지만, 그중에서도 최, 고의 판타지가 뭐였는지 알아?”
그것은.
그 하늘을 가를 듯한 거검을 들고 자신의 앞에서 서 있던 남자. 신이게 도전했던 한 인간.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일어나라고.
“난,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안돼. 모든 것을 걸고 나를 목표를 했던 남자가 지금도 내 앞에 서 있어.
그 녀석에게 결코 창피한 꼴을 보일 수 없어.”
“전혀 창피하지 않아.”
진정 부끄러운 것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야.
아프고.
괴롭고.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했었지. 그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나는 약하다고 그저 울기만 하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의 두 다리로 힘껏 일어나지 않는 것이.
“몇 배나 더 창피한 거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으아아아!!
성훈은 일어나서 다시 녀석들에게 달려든다. 그러자 그들은 성훈을 둘러싸고
하지만,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다시금 일어나 달려든다. 바지자락을 이로 깨물고,
녀석들의 주먹 앞에 몇 번이고 쓰러지고. 주먹을 마구 잡이로 휘두르면서도. 온갖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성훈은 몇 번이고 녀석들에게 달려든다.
“쳇!”
“씨발 놈. 다음에도 또 이러면 뒤질 줄 알아!”
질렸는지, 녀석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사라진다.
“하하하.....”
학교의 뒤뜰의 벽에 기대어, 성훈은 해맑게 웃는다. 전보다 몇배나 더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자신이 자랑 이제 시작일 뿐이야. 세상에는 몇 번이고 더 괴로운 일들이 한가득 있겠지.
하지만 괜찮다.
이제 막 밝게 빛나기 시작한 태양을 바라보며, 성훈은 주먹을 앞으로 쭉 내밀며 누군가에게 말한다.
“봤어? 나도, 나 자신의 힘으로 한 걸음 내디뎠어.”
기다려라. 이제 내가 너를 따라 잡을 테니까!
제목 에필로그 2 꽃나무
로아도르는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 제 자신이 힘껏 만들어냈던 검. 그리고 시들어 버릴 대로 시들어 버린 꽃들. 그 꽃들을 보면서 절로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미안함이 가슴을 한가득 채운다.
로아도르는 힘겹게 손을 뻗어 꽃을 어루만져 본다.
“로아도르 반 바이파! 일어나라! 몇 번이고 쓰러졌어도 다시 일어나지 않았나! 그 긍지 높은 바이파의 적자가 아니더냐!!”
-자신과 함께 가슴 아파해주던 이도 있었고.
에리지에는 가슴의 안긴 아이를 로아도르에게 내밀며 울먹인다.
“로아도르,이 아이가 네 조카야... 제발, 제발!”
-자신에게 꿈을 심어준 누이도 있었고-
바이파 공작은 말없이 서 있다. 그저 아무런 말 없이,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아들의 쓰러져 있는 모습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공작부인은 말 없이 남편의 몸에 기대어 서 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그녀는 공작의 부인. 그녀는 소리도 내지 않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묵묵히 자신을 지켜봐준 아버지와 언제나 엄격했던 눈빛만은 따뜻했던 어머니도 있었고.-
“로...아...로..아..도 ..."
쟉셀이 더듬거리며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 한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몇 번이고. 멍한 눈으로, 손으로 허우적거리며 몇 번이고 로아도르의 이름을 부르려 한다.
-함께 미래를 꿈꾸던 친구도 있었고.-
커그너스는 이를 뿌득 갈며 한가득 분노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가. 지금, 이기고 튀는 거냐! 이 나를 이겨놓고, 저런 꼴 다 보여주고 지금 톡까고 있냐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빈정거리면서도 자신을 응원해준 이도 있었고.-
그리고......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인도 있었지.
“아니다 카시레타. 너는.....”
나는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기대어 쉴 나무 같은 이도 있었다. 이토록 자기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살아온 이를, 그래도 사랑해 주었던 거다. 마지막까지 응원해 주었던 거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내 모든 것을 걸었던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래. 나는 최선을 다 했어. 열심히 했어.
이런 말, 스스로 하니까 부끄럽다.
“하하 .....”
쑥스럽게 웃으며 로아도르는 한층 더 나무에 기대어 몸을 뉘인다. 로아도르는 조금씩. 서서히, 서서히 눈이 감기며 편안한 잠을......
“얼씨구. 잘 하는 짓거리다. 누구 맘대로 쉬래?”
낯익은 목소리에 로아도르는 천천히 눈을 뜬다. 어딘지, 한가득 웃음을 띠고 있는 남자. 그가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자신이 믿었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사부......”
다. 마치, 잘 자란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저러할 런지. 로아도르는 더듬거리며 사부에게 말한다.
“하지만, 사부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저는 더 이상....”
쾅!
참으로 오랜만에. 로아도르의 머리에 사부의 강맹한 주먹이 떨어진다. 정말이지 멍청한 것은 고칠 수가 없다더니, 사부는 혀를 쯧쯧 차면서 로아도르가 어루만지고 있던 시든 꽃을 꺾어서 그가 기대어 누워 있던 곳으로 다가온다.
“사, 사부??”
“비켜봐라 멍청아”
사부는 힘없이 누워 있던 로아도르를 발로 치우고 나무에 정성스럽게 꽃을 묶는다. 사부가 꺾은 꽃은 나무에 스며들어 다시 한번 화사하게 피어난다. 사부는 그렇게 하나둘씩, 꽃을 나무로 옮겨심기 시작한다.
어째서인지.
“알고 있느냐 로아돌? 내가 진정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화사하게 하나둘씩 꽃이 피어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던 나무는.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한다.
“난 말이다. 그 노인이 이 농락의 좌를 이긴 후, 동네로 가서 힘껏 자랑하길 바랐다. 내가 살인마를 무찔렀다고, 나 자신이 용사라고, 마을이 떠들썩할 정도로. 그리고 어쩌다, 거기에 홀딱 넘어간 골빈 동네 과부라도 하나 만나서 말년에 자알 살다가. 나중에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내가 마왕을 무찔렀을 때는 말이야, 하면서 자랑하기도 하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자듯이 조용히 눈을 감기를 바랐다.“
이제 바닥에 남아 있는 꽃은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 했지? 뭘 혼자서 또 비장한 척 하고 있냐. 오오! 난 내 모든 것을 바쳐서 꿈을 이루어 냈다! 이제 뒤져도 여한이 없어! 아무리 세상에 지 잘난 맛에 산다고 해도 정도껏 해야지. 뭐야 그게? 멋있냐? 하나도 안 멋있다.“
자 봐라.
꽃을 전부 나무에 단 사부는 히죽 웃으며 로아도르에게 손을 내민다.
진짜 멋있다는 것은 이런 거야.
“얼마든지 다시 피지 않느냐.”
작아졌지만, 너무나 화사하게 핀 꽃나무.
“사부......”
슥슥. 사부는 손을 뻗어, 로아도르의 머리를 거칠게 문지른다.
“그토록 제 멋대로 굴었으면, 이제는 너 때문에 시들었던 꽃들에게 가서 죄송했습니다! 하고 넙죽 엎드려 빌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그래. 한껏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이제는.
친구랑 웃고 떠들다가 다투기도 하고.
애인이 생겨서 한도 끝도 없이 행복해하고.
그녀가 다른 남자를 보면 질투를 하기도 하고.
부모님의 고마움을 깨닫고.
그 자신도 부모가 되어서 그들의 마음을 깨닫고.
손자 앞에서 옛날에 이 할애비가 이랬단다 하고 힘껏 자랑하면서.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면서 살아야지.
얼마나 멋있는 삶이냐.
슥슥. 한참이고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은 사부는 천천히 돌아서 나무의 아래를 떠난다.
“사부 .....”
“이제는 진짜 가봐야겠다. 원래 한참 전에 가야 하는데, 깡으로 버티느라 원."
마지막으로 빙글 돌아선 사부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부턴 잭 하운드 사부님이라고 부르거라-
“로아도르?”
아름다운 목소리에 그의 눈이 살며시 떠진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외눈 안경을 쓴 아름다운 공주님. 로아도르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안경을 벗긴다.
“별로 안 어울립니다.”
“나도 알아요...”
울먹거리며, 그녀는 자신의 뺨에 닿은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싼다.
이제야, 이제야 이 두 손이 다시 닿았다. 어디선가, 사부가 장난스럽게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도착지 따위가 어디 있겠나.
죽을 때까지, 그 죽는 순간 까지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끝까지 달리는 거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