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최종장 퍼스트 5
“도련님?”
습관적으로 새벽 일찍 일어난 한은 거실에 홀로 앉아 있는 로아도르 를 불러보았지만, 이윽고 입을 다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물러난다. 두 손을 꾹 잡고, 촛불하나 밝히지 않은 저 어둠 속에서도 선 명한 저 눈빛으로 무엇인가.’바라보고 있는 그. 감히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다. 으스러지도록 자신의 두 손을 꾹 잡고 그저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다.
커다한 벽에 막혀 그 동안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로아도르. 그 벽을 깨고, 그 앞에 있는 광경을 보는 날. 그는 지금도 그 벽을 보고 있다.
‘오늘이다. 오늘로 분명 끝날 것이다 ’ 남은 것은 단 세 번. 세 번을 이기고 올라간다면. 오늘 분명 끝난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걸고, 단 하나 바래왔던 목표와 대면하는 날이 바 로 오늘이다. 그는 자신에게 수십, 수백, 수천번이고 물어왔다. 아니,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 후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하지만 남는 것은 역시, ‘그것 ’밖에 없다. 언제고, 누군가가 외쳤던 것 같다.
-바로 내가 남소이다!-
그리고 로아도르 역시 외칠 수밖에 없다. ‘내 가 바로 그 의미이며, 바로 내 ’가 남는다고.
“난,잘못되지 않았다”
그는 홀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넌 그냥 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잖아. 그렇지?그래, 나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한다 할지라도.
비록 질투와 시기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난 그 어떤 더러운 짓도 하지 않았다. 로아도르는 다시 한번 손에 힘을 꾹 주고 일어났다. 그러니, 당당하게 나아가자.
와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인파의 환호성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그들 사이를 지나 가는 그. 결선에 오른 자인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도록 느껴지지만 로아도르는 그런 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로아도르는 아직도 예복을 입지 않고 있다. 전처럼 천변기만을 두른 검은 복장이다. 이 예 복만큼은, 가르안과 마주했을 때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멋을 부린다고?그래, 분명 그러하다.
어차피, 나의 인생은 그런 것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가르안을 이기고 자 하는 것도 그러한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본선에 진출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이르자, 한 남자가 다급 하게 그를 향해 달려온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이미 어서 올라가세요”
어딘지, 다른 높은 분들은 다 먼저 와계시는데 주제에 왜 이리 늦었 냐는 말투다. 로아도르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가 안내한 곳으 로 올라간다.
어둡디 어두운 복도를 지나간다. 그 복도를 지나, 커다란 빛을 향해 나아가기 전, 한이 그의 등에 허리를 숙인다.
“그러면 전 이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에도 마지막까지 배웅을 해주었던 이는 한이었다. 하 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로아도르는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더 기다릴 필요는 없어. 그 동안....수고했다.”
“도련님?”
전혀 예상외의 대답에 한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로아도르는 앞의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한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그의 등 을 바라본다.
어딘지, 가슴이 아파오는 광경이었다.
오로지 본선만을 위해 마련된 거대한 회장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몇 배나 큰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본선에 오른 이들이 로아도르를 지긋이 노려보고 있다. 늦은 것을 탓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문의 대 검을 사용하는 이를 보며 호승심을 불태우는 이도 있다. 그리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그를 맞이하는 커그너스. 그리고 카시레타는 그를 바 라보고 있지도 않다. 팔짱을 끼고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의문의 검사! 대검을 사용하는 로아돌 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사회자의 설명에 관중들이 환호를 지른다. 이들 중 가장 파워풀한 경 기를 보여준 것이 저 로아돌이 아닌가.
늘어선 여덟 명의 저 끝에서는 커그너스가 무언가를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서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감히 말조차 건내지 못한다. 모 두가 알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강한 이가 누구인지.
피스트 마스터 커그너스. 비겁한 스트리트 파이터라 불린 적도 있지 만 대마왕과의 전쟁을 걸쳐 지금은 가르안 다음으로 강한 이라고 불려 지는 이이다. 바이파 가문의 엘리엇의 말에 의하면, 가장 그랜드 라는 칭호에 가까운 사나이니까. 그런 그가,
저 로아도르에게 다가온다. 수많은 인파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그에게 슬쩍 말을 건다.
“왔냐?”
“네.
“안 봐준다”
“마찬가지로.
짤막하게 대답하는 로아도르. 커그너스는 씨익 웃으며 주먹으로 그 의 가슴을 두들긴다. 그러자 옆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달리진다. 의문의 대검을 사용하는 검사. 범상치 않은 실력이라 생각했지만 커 그너스와 연관이 있는 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듣자하니 커그너스가 전력을 다해야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가 아닌가. 로아도르는 카시레타를 바라본다. 예전에도 건장했지만 이제는 한층 더 강인한 육체를 지닌 듯 한 그의 모습. 예전과는 달리 어딘가 기품도 느껴진다. 후작이라는 직위가 그를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많이 변했군.
그때. 카시레타와 눈이 마주친다. 아무래도 관심 없다는 듯 앞만을 바라보고 있던 카시레타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로아도르를 주시하고 있 다. 로아도르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격식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인사를 한다. 그의 지금의 작위는 후작. 예전과는 달리 자신의 존중을 받아야 하는 상대이니까.
그러자 카시레타는 당황스러운 듯 대충 인사를 받고는 다시 고개를 획 돌린다. 떠오르지 않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 무렵.
“으아아아악!”
“피,피해라!”
수도의 서쪽 성문에서는 일대의 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앞을 향해 진군 ’하고 있는 거대한 12두 마차 때문이었다. 행사 때문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자칫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거칠었 다.
또 하나 다행이라면, 말들이 반쯤 죽어가고 있는 지경인지라 속도도 그리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는 점이랄까.
“비켜라 멍청이들아!내 마차 다루는 솜씨를 믿어!”
마차에서 걸걸한 노인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게 문 제가 아니다. 그는 검문조차 무시하고 달리고 있으니 그게 문제였던 것 이다.
성문의 책임자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외친다. "잡아!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 폭주하는 마부 석에 올라와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드워프. 그는 다 급해 보이는 와중에도 능숙하게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다시 한번 외친 다.
“늦지 않았어야 할 텐데!”
그의 등 뒤에는. 천으로 뒤덮인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한 무엇 ’인가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