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최종장 퍼스트 4 (공지겸 )
밤이 되었다. 로아도르는 집사의 정원에 나와 검을 휘두르고 있다. 검을 천으로 단단히 묶고 그 위에 연결 시켜 놓은 바위 두개. 이제 이 정도는 이제 단련의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 가벼운 몸풀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습관이라 불러야 함이 옳으리라. 게다가 이것은 원래 그의 검이 아닌 터이니.
“후욱.
깊이 숨을 들어 마시며 마음을 다듬는다. 마음속의 검은 한 치도 흐 트러짐이 없으니. 드디어 내일은 결선이다. 그리고, 이 시합의 끝에는 그토록 다시 한번 검을 마주하길 원하던 가르안이 있다. 물론 질 마음 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난전이 되리라 생각은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으로서다. 지금의 자신은 완전하지 않다. 너무나 부족한 육체라서, 자신의 일부인 그 녀석이 없는 한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로아도르 다.
철컥.
바위가 매달린 검 끝을 바라본다. 무척 좋은 검임에는 분명하다. 바 위를 가르고, 철을 갈라도 마치 갓 만들어진 검처럼 매끈하다. 그 드워 프의 노인을 믿고, 내일 있을 커그너스, 카시레타와의 시합에 버텨줄 것이라 믿기는 하지만.
칼의 한계 정도는 이미 느끼고 있다. 마스터들을 상대로 몇 명이나 버틸 수 있을런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다. 사락.
작은 발소리에 로아도르는 몸을 획 돌린다. 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베일을 쓰고 그를 바라보며 서 있다. 단련된 그의 육체가 본능적으로 적이 아님을 느낀다. 저 자는 무를 걷는 자가 아니다.
“거기 있는 자, 누군가.”
그자가 무를 익힌 자이건 아니건 간에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는 이 이니 나오는 말이 고울리 없다. 게다가 이 곳은 자신의 집도 아니지 않 은가?
그러자 그, 아니 그녀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베일을 벗는다. 드레 스가 아닌, 마치 마법사처럼 검은 로브를 입고 있지만 그녀의 당당한 기품은 감추지 못한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현실은 눈앞에 그녀가 서 있을 따름이니. 저 화사한 금발에, 지혜로 가득 찬 것 같은 두 눈. 로아도르는 그녀를 보고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시선 또한 마주 치지 못한다. 무슨 면목이 있어서 감히 그녀를 바라보겠는가. 발랄했던 소녀의 없고 어딘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성장한 한 여인이 로 아도르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다.
“난 항상 당신을 찾아가고, 기다리기만 하는군요. 아시나요? 당신이 먼저 와 준적은 한번도 없어요. 단 한번도요.”
그 어렸을 적, 자신의 방문을 두들긴 것은 그녀였고. 부러진 검을 들고 울고 있을 때, 찾아와 다시 검을 들라고 말해준 것 도 그녀였으며.
황궁에 갔을 때, 문 앞에서 기대어 기다리고 있던 것도 그녀였다. 로아도르의 고개는 한층 더 숙여진다. 사실은 너무나 아름다워진 그 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자신에겐 그조차도 자격이 없을 테니까. 그 모습에 화가 났던지,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며 그의 앞으로 한걸음 나선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어떠한 말이라도 받아들일 테니까.”
로아도르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검에 묶어둔 바위를 푸 르고, 검을 추슬러 집 안으로 걸어갈 뿐이다. 그녀를 지나쳐, 문 앞에 서자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나갈 셈인가요?”
“죄송.......합니다”
할말은 오로지 이것뿐이니. 간신히, 한마디 꺼내보지만 그녀의 앙칼 진 답이 돌아온다.
“그렇군요. 그게 당신의 답인가요? 하지만, 전 그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니, 이제부터 잘하겠다 는 의미인가요? 그도 아니면, 이미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죄송하다는 의민가요? 그도 아니면, 저 같은 남자는 잊고 좋은 사람 만나길, 같은 삼류 대사를 읊을 생각인가요.
“....세번째입니다.”
“하,하하하!”
그녀가 크게 웃는다. 어딘지, 어이가 없다는 듯, 동시에 가슴이 아파 오는 웃음이다.
“이것 봐요. 이런 저런 핑계가 있었지만, 결국 난 당신을 10년 동안 기다린 사람이에요. 그 철없던, 고작해야 15세에 했던 그 약속 하나 때 문에 지금까지 기다려온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그게 할 말인가요? 엎 드려서 빌어도 모자랄 판에?”
그녀의 말에는 이제 분노마저 서려있다. 그리고, 로아도르는 묵묵히 그녀의 분노를 받아낸다. 다른 방법 따위는 모른다. 달콤한 말로 달래 고,멋있는 말로 포장하는 것 따위는 예전에 잊었다. 그저 그녀가 당장 자신의 뺨을 때리고, 온갖 모욕을 준다 해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리라.
한동안, 그녀를 등 뒤에 두고 서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반대로 그녀는, 로아도르가 달리 어떤 말이라도 해주길 애타게 기다렸 지만 그 남자는 묵묵히 뒷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탕.
얼마나 기다렸을까? 로아도르는 다시 걸음을 옮겨 한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상처 받는 눈으로 문을 바라본다.
“뭔가요......로아도르....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