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운명 같은 것을 느끼며, 로아도르는 돌아섰다. 제목 최종장 퍼스트 2
웅성웅성.
아마도, 본격적으로 인파가 모이는 것은 본선의 전날일 터. 예선전에 는 구경을 온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가한 귀족들이나 혹은 참가자 의 가족들이나 몇 모였을까? 혹은 오전 시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 중에, 로아도르가 한 (<집사 이름입니다. 수정하면서 이름을 주었 습니다. 과 함께 서 있다. 벽지에 적혀 있는 수백명의 이름들 중 자신의 것을 찾으며 로아도르가 묻는다.
“예선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이제 곧 시작할 것입니다. 시합이 워낙에 많아서 이 연무장 여덟 곳 에서 동시에 시작하며, 제한 시간은 15분이라고 공문에 적혀 있군요”
비록 여덟곳이나 된다 하나, 시합이 수십번이나 있으니 그것도 긴 편 이다. 15분도 상당히 길게 준 시간 일 터. 한은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간 다.
“그리고 도련님은 오전 5번째 시합입니다. 첫 상대는 가스턴이라 불 리는 이군요”
알고 있으면 말을 해주던가. 지금 까지 찾고 있었건만. 로아도르는 묵묵히 벽에서 시선을 땐다. 한은 장난스럽게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다. 역시, 일부러 그런 것임이 분명하다. 로아도르는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가스턴은 누구지?
가스턴이 누구인지 까지 분명 조사해 왔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다 다 를까, 한은 품을 뒤적거리며 종이를 꺼내 이름을 찾는다. 다른 이들의 이름이 잔뜩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본선에 가기까지 붙을 가능 성이 있는 상대는 모조리 조사해 온 것 같다.
“그냥 힘 좀 쓰는 용병이라는 것 밖에는 정보가 없습니다. 죄송합니 다.”
한은 정녕 송구스러운 듯 고개를 조아렸지만 로아도르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힘이라.
“흐음!자,자네도 제, 제법 힘 좀 쓰게 생겼군”
아니다 다를까, 무대에서 로아도르와 마주하고 있는 이는 상체를 벗 어재낀 근육질의 남자. 그는 커다란 도끼를 등에 메고 있는 것이 척 보 기에도 자신의 힘을 믿는 이 같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로아도르의 덩치에 겁을 먹은 듯 눈치를 보고 있 다. 가스턴, 그도 분명 작은 덩치는 아닌데 로아도르는 그가 올려다봐 야 할 만큼 컸고, 쫙 벌어진 어깨는 그의 존재를 왜소하게 만드는 듯 했 다.
“로아돌이오.
쾅!
등에 메고 있던 검을 앞으로 내미는 로아도르. 검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연무장의 바닥에 깨어진다. 진행을 위해 나와 있는 남자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것은 눈앞의 가스턴 역시 마찬가지. 들고 있는 검 또한 상식 이상 의 무기다. 저런 덩치를 가지고 고풍스럽게 기사의 형식으로 인사를 건 내니 그 위압감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흐,흐흠!!가,가스턴이다!”
그 역시 제법 이름이 난 용병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알아 차린다. 열세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차원이 다른 상대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해 보고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시작!
“크아아앗!”
진행자의 외침과 동시에, 커다란 고함을 지르며 도끼를 들어 달려드 는 가스턴. 그의 도끼에는 옅은 오러가 섞여 있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 서, 그의 전 힘이 실린 듯한 그 도끼날은 무겁게 로아도르를 내려치고 있다.
그러나.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향해 단한번 그어버린 로아도르의 검에 의 해.
콰장창!!
그의 도끼는 단번에 깨져 ’ 나간다.
“계속 하시겠소?
자신의 도끼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그는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저었 다.
그를 향해 승자의 예를 취하고는 다시 등으로 검을 메며 내려가는 로 아도르. 풀이 죽어 자신의 도끼를 주섬주섬 주워 들고 있는 가스턴을 보며. 언젠가, 저자와 같았던 한 소년이 떠오른다. 그 역시, 부러진 검 을 들고 울고 있었다.
기묘한 기분이 든다. 단 한번도 자신을 강자라 여긴 적이 없기에, 언 제나 비교의 대상은 가르안 뿐이었기에 자신의 강함을 실감한 적이 없 다.
그랬군. 가르안.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던 것이군. 생각해보면, 가르안이 소드 마스터임을 드러낸 건, 자신과의 대결에 서가 처음이다.
그리고 계속 이겨나간다는 것은, 저런 이들을 등에 한가득 짊어지게 된다는 것인가.
가르안, 너는 그 막중한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단 말인가.
“다음 상대는 옐런 왕국의 기사입니다. 데이드리함 경이라고 하는 군 요.혹시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과거의 로아도르는 대 바이파가의 차기 후계자였다. 국내의 귀족들 과 기사들의 사정은 어지간한 이는 모조리 알고 있었고, 그것은 국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들어 본적이 없는 이름이다. 그리고 로아도르가 그런 사정에 밝았던 것은 10여년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갔 고,새로운 강자가 탄생했을 런지. 다름 아닌 가르안만 보더라도 알 일 이다.
“무기는 레이피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들었 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강한 기사라 하는군요. 본선에 진출할 확률 도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사로서의 지명도도 무척 높은 편입니 다.”
이번에도 로아도르는 상관없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 로 나아간다. 확실히, 지명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전의 몇배에 이 르는 인파가 모여 있다.
로아도르는 묵묵히 단상으로 올라간다. 이미 데이드리함은 먼저 나 와 팔짱을 끼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지런히 잘 정리한 장발에 깨끗 한 피부. 하얀 전포. 태양에 광이 번쩍번쩍 빛나는 흉갑. 모든 것이 수수한 차림에 천변기 하나만을 두르고 있는 로아도르와 는 대조적이다. 이미 로아도르의 모습은 확인해 둔 듯, 로아도르의 덩 치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로아도르가 앞에 서자.
그의 소매 아래에서, 작은 무엇인가가 반짝이며 로아도르의 오른 팔 을 향해 쏘아진다.
로아도르의 장갑에 아주 작은 침이 박혀 있다. 물론 박히지는 않았 다.그의 건틀릿이 보통의 물건이었다면 모른다. 그러나 그의 건틀릿은 다름 아닌, 사부가 남겨준 천변기다.
-뭔가 이건 -
천변기의 무뚝뚝한 말에 로아도르의 뇌리에 울린다. 어쩐지, 어이 없 어 하는 것 같다.
로아도르의 눈썹도 꿈틀거리며 올라간다. 이것은, 어새신들이 자주 사용한다는 암기가 아닌가.
데이드리함은 자신의 암기가 완벽히 먹혔다고 여겼는지, 환한 웃음 을 지으며 레이피어를 뽑아 하늘로 들어 올린다.
“나의 이름은 데이드리함 라 파르텔!저 대마왕 루스 사이퍼가 이 지 상에 강림했을 때, 위대한 검의 신 가르안님의 뒤를 수호하던 바로 그 기사의 이름이다”
와아아아아!
그의 거창한 자기소개에 관중들은 커다란 환호로 응한다.
“하하하!”
체체체쳉!
데이드리함은 자랑이라도 하듯, 크게 웃으며 레이피어를 사방으로 놀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얀 선이 그어진다. 마치 하얀 철장이 그를 둘 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채찍처럼, 길고 유연한 마나다. 어지간히 자신이 쏘아 보낸 암기를 믿는 듯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히 죽이죽 웃는다. 그는 눈으로 말하고 있다. 어디 검을 뽑을 수 있으면 뽑 아 보라고.
“와아아아!”
“데이드리함경 만세!”
그의 기술에 관중들은 그런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 기사, 겉으로 보면 가만히 있는 로아도르에 비해 몇배나 화려해 보일 터이다.
로아도르는 입을 꾹 다문다. 조금 전에 싸웠던 가스턴이라는 용병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정당하게 싸웠고, 정당하게 패배 를 시인 했건만.
그의 패배한 모습이 느낀 것이 많았건만, 이게 기사라는 자가 할 짓 인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는 실력을 가진 기사가? 사부.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그건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비겁하고.
별로 강해보이지도 않고.
그런데도 이런 자에게도 자신은 최선을 다해야 한단 말인가. 무시하 지 말고 진심으로?
가서 주먹을 한대 휘두르고 싶다.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그걸로 끝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을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누구보다도 믿었던 사나이의 말을 떠올리며. 정중히 예를 취하며.
로아도르는 등 뒤의 검을 꺼내 그를 향해 겨눈다.
“로아돌이오.
그러자 데이드리함의 눈이 놀람으로 물든다. 그의 전 시합은 데이드 리함도 지켜본 바였다. 마나조차 무시해버릴 저 무시무시한 힘. 순간 겁을 먹은 것도 사실.
그러니 저 검만 뽑지 못하게 하면 분명 자신의 승리라 여겼다. 침도 확실히 맞췄으니 틀림없이 손에 마비 증상이 와서 들지 못해야 할 터인 데.
생각을 바꾼다. 있는 힘껏 괜찮은 척 하고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게다가 어차피 힘만 믿는 자가 아닌가.
촤촤착!!
그의 하얀 철창 같은 마나 소드가 어부가 던지는 그물처럼, 로아도르 를 향해 날아간다. 얇아서 약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데이드리함 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사나이, 그 마나의 한줄기한줄기의 위력 은 분명 보통이 아니었다.
“하하하!,이 현란한 마나의 움직임을 따라 올 수 있겠는가?!힘만 믿 는 용병은 감히 눈에 보이지도 못할 터이다”
그러자 로아도르는 검을 들쳐 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그 따위 것.
“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섬광과 같은 일격으로, 마치 하늘에서 덜어져 내리는 재앙과 도 같은 위력으로.
로아도르는 검을 바닥에 내려친다.
-콰콰쾅!-
그의 화려한 기술에 박수를 치던 관객들도. 심판들도, 게다가 옆에서 자신들의 시합을 하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도.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을 지킨다. 그 굉음의 중심에 있는 것. 쓰러져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데이드리 함.그리고 그의 사타구니 아래에 깊숙이 파여 있는 딱 검 크기 만한 구 멍이 생겨나 있고, 그 사이에 로아도르의 대검이 박혀 있다.
“지진이라도 난건가”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다. 확실히, 지진이라도 나지 않는 한 땅이 저런 형식으로 파이는 것은 불가능 하리라.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로아도르 홀로서 검을 거두고.
“좋은 시합이었소”
예를 지키고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