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89화 (89/100)

이 사실을 빨리 가주 대행, 엘리엇에게 알려야 한다. 제목      제  13장 귀환자     8

“어머?”

신혼이라 했던가. 하기사, 보통 결혼을 하면 저택의 밖에서 따로 나 와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눈앞의 여성을 보고 나서야 떠올린 로아도르였다.

“하하. 이거, 조금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 혼인했습니다. 로아도르는 멋쩍게 웃고 있는 집사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의 아내를 둘러보다가, 단호히 돌아선다.

“아니. 오히려 내가 방해가 되는 것 같군. 여관을 찾아보겠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괜찮습니다.”

집사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 로,저 도련님은 그로서는 말릴 수 없는 존재다.

“어차피 지금까지 맞았다. 별 차이는 없다”

로아도르는 이미 걸음을 옮기기까지 했다. 그 행동에는 반쯤은 예의 를 차린, 이른바    잡아주면 머물겠다.’라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 다.

그때였다. 그의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어, 혹시, 에틴경...이신가요?”

로아도르는 낯익은 이름에 우뚝 멈춰 선다. 그리고 집사의 아내를 돌 아보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는 있지 않은 얼굴이다.

“나를....아시오?”

“역시, 에틴경이시군요!설마, 아직도 살아....”

살아 계셨군요 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것이 굉장히 무례한 표현인 것 을 깨달은 듯 입을 다무는 그녀. 이미 그녀의 눈에서 모르는 이를 경계 하는 기색은 사라져 있다.

그제서야 집사가 재빨리 끼어든다.

“아,제 아내도 바이파 저택에서 일을 했었지요. 도련님이 계실 때부 터 말이지요”

그런가 싶어서 힘껏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얼 굴은 없다.

“그..런가.”

그녀는 겁도 없이 로아도르의 천변기를 잡아끌며 집안으로 안내한 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남편이 존경하던 에틴경을 모실 수 있다면 저로 서도 영광이랍니다”

그녀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끌려들어간 집. 비록 작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힘껏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성이 한가득 느껴지는 곳이었다. 로아도르는 천으로 대충 몸을 닦고, 불을 피운 곳에 앉아 몸을 덥히며 따뜻한 차를 마신다.

“네. 그래서 저는 비싼 접시를 깼다고 혼나는 줄 알았는데, 도련님 께서 말없이 지나가시더라고요. 안심하면서도 나중에 더 혼나는 게 아 닌지 걱정도 되어서....”

“하하. 아마 도련님은 신경도 쓰시지 않았을 겁니다.”

집사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실재로도 로아도르는 기억에 없는 일 이다. 다만 자신은 시녀들에게 이렇게 보였나 싶었을 뿐이다. 새삼 느낀다.

옷을 닦고, 차를 마시며 따뜻한 곳에 앉아 있다. 이런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집사의 센스는 죽지 않았는지, 이 차는 로아도르가 즐기던 것이다. 비싸지 않고, 화려 함보다는 단아한 향을 내는, 그래, 그야말로 기사에게 어울리는 차라고 생각하던 그 차였다.

이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진다. 그때였다.

퉁퉁.

누군가가 문을 두둘기는 소리가 들려와 그들의 대화를 방해한다.

“어라, 누구지 이런 시간에? 누구십니까?”

이미 해는 지고, 게다가 비까지 쏟아지는 데? 그리 중얼거리며 집사 는 문을 연다.

그리고. 그의 몸이 흠칫 굳어지며 두 손을 시립하고 정중히 옆으로 물러난다. 그의 눈에는 한가득 놀람이 가득하다. 그가 이런 곳에 올 이는 아니다. 그러나

만약 로아도르 반 바이파가 이 곳에 있다면, 가장 먼저 달려와도 이 상하지 않을 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집 앞에는 하얀 망토를 걸친 장년의 사내가 바아파 가문의 기 사들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그는 집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 너머에 있는, 몸집이 큰 사내를 바라볼 뿐이다. 로아도르는 고개를 수그린다.

-로아도르, 당신을 친동생처럼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자신은, 감히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는. 그를 볼 면목조 차 없는 죄인. 그러나 이러고 있는 것도 예는 아니다. 로아도르는 일어 나 그를 향해 머리를 숙인다.

-당신의 선전을 기원하겠습니다. -

엘리엇 데 더르힌. 지금의 이름은 엘리엇 반 바이파 불리는 자이 다.

“확실하군. 로아도르 반 바이파. 나오라”

당당히 차기 가주로서, 전과는 달리 말을 낮추고 로아도르에게 외친 다.엘리엇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다.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검을 쥐어주고 가르쳐 온 로아도르다. 못 알아 볼 리가 없다.

쏴아아아아아!

챙!

쏟아지는 비속에서, 엘리엇은 이를 뿌득 갈며 그에게 롱소드를 내민 다. 자신을 향해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로아도르가 이리도 화를 나게 만드는지. 아니, 이것은 화가 아니다. 안타까움이다.

어째서 연락 한번 없었는가.

어째서 수도에 왔음에도 바이파의 저택으로 달려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도대체 우리가!

무슨 심정으로!

로아도르 반 바이파는 죽었다고!

세상에 선언한 줄 아는 것인가!

“검을 들어라”

화아아악!

엘리엇의 검에서 저 푸른 오러 소드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증명해 보여라!바이파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의 슬픔을 감당해 야 할 정도의 일이었는지 나에게 보여라! 그리고.

그만큼 강해졌는가.

엘리엇의 머릿속에 얼굴 한가득 조소로 가득했던 남자가 떠오른다. 소드 마스터였던 자신을 단 일수로 꺾어 버리고 로아도르를 데리고 떠 났던 그 남자가.

그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자신이 졌다는 패배감보다는, 한 층 더 강해질 로아도르를 떠올리며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인류가 대마왕을 물리치고, 가르안이 라는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 앞에 바이파의 이름이 초라해져도. 로아도르 반 바이파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엇의 분노 앞에 뒤 따라온 기사들과, 집사 부부는 모두 몸을 부 르르 떨었다. 오직 로아도르만이 슬픈 눈으로 엘리엇을 바라볼 뿐이 다.

“그만하십시오.

로아도르는 자신을 향해 검을 내밀고 있는 엘리엇을 향해 슬프게 말 한다.

저에게, 또 다시,

사부에게 검을 내밀란 말입니까?

그렇다. 어찌 세상에 스승이 하나뿐이겠는가. 눈앞에 있는 엘리엇도, 자신을 그리도 아껴주었던 사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거두어지지 않는 엘리엇의 검. 그는 몸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 이 검끝조차 미동이 없다. 그리고 자신을 주시하는 눈. 곧 로아도르는 깨닫는다. 누구보다 신뢰했던 그 사부의 눈처럼. 엘리 엇 역시 자신의 강함을 시험해보고자 한다는 것을. 시퍼렇게 타오르는 엘리엇의 검을 향해. 로아도르는 검을 들어 올린다. 엘리엇의 눈이 차갑게 변한다. 보통의 검이 아닐뿐더러, 저 크기. 마나 한점 없는 몸으로, 저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아니, 감당 따위가 아니다. 제대로 제어해내고 있다. 엘리엇은 일그러질 것 같은 표정을 억지로 누른다. 대견함이 아니다. 로아도르의 고생이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도대체 사랑하는 제자에게 무슨 짓을 시켰던 것이냐! 게다가.

엘리엇의 시선이 로아도르의 손과 어깨로 향한다. 저 검은 망토와 장 갑.저 중에 장갑은 기억에 있다.

스승의 물품을 제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의 의미는 보통 한가지 밖에 의미하지 않는다.

엘리엇의 표정은 결국 무너진다.

잘도 우리 바이파의 보물에!

“크아아앗!”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기합을 넣으며 엘리엇은 로아도르에게 달려 든다. 그는 제국 최강의 기사. 인간을 넘어선 가르안을 제외하고는 최 고의 강함을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

그리고 그에 맞서.

그리고 로아도르의 검이 사선을 그으며 그 범위 안의 모든 것을 벤 다.아니,

부숴버린다.

그것은 엘리엇으로서도 따라 갈 수 없는 속도였으며, 그 파괴력은 또 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콰장창!

그것은,

마치 과거, 그의 스승과도 같은 단 일격. 바이파의 보석에 무슨 짓을 했나?

어떻게 했기에, 바이파의 보석을 저토록 강인한 검으로 만들어 주었 는가.

시퍼런 마나가 부셔진 검의 파편에 실려 나온다. 그러자 로아도르는 천변기를 둘러 모조리 막아낸다.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천변기로 모든 파편을 쳐낸 로아도르는 검을 거두며 다시 한번 엘리엇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여전히.

그제서야.

“여전히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구나.”

엘리엇은 제자를 향해 웃음을 지어준다. 비록 못난 스승이었지만. 저 토록 열심이었던 녀석에게 절망 밖에 안겨주지 못했던 못난 스승이었 지만 말이지.

엘리엇은 로아도르를 데리고 떠났던 이를 떠올린다. 이미 죽었어야 할 로아도르가 살아있고, 게다가 저토록 강해져 있다. 감히 그에게 무 슨 말을 할 수 있을까?그자야말로 저 로아도르의 진정한 스승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소년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못했던 자신과는 달랐던. 뒤돌아서는 엘리엇. 그는 뒤에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사에게 턱짓으로 지시한다.

“저 자에게 주도록 해라”

그리고 엘리엇은 물러난다. 바이파의 기사들은 그를 따라, 들고 온 궤짝 하나를 로아도르의 앞에 내려놓고 후다닥 뒤따라간다. 엘리엇과 기사들이, 다시 말에 올라타고 사라질 때까지. 로아도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끼이익.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로아도르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궤짝에 가지런히 접혀 있는 하얀 옷 을 들어 올린다.

“아.....”

바이파의 문장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목숨보다도 귀중하게 여기던 바이파의 그것이다.

엘리엇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가르안 대공은 검의 신. 대륙의 영웅. 인류의 구원자. 바이파의 가주 를 맡고 있는 자로서 너를 직접적으로 응원할 수는 없다. 바이파의 이 름이 가르안 대공에게 적대하는 행위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엘리엇은 빙긋 웃는다.

-그래도, 너를 응원하겠다. 나의 제자이고, 처남이고. 동생인 로아도 르 바이파. 가르안을 이기기 위해 그토록 힘내온 너를 응원하겠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비속에서.

하얀, 바이파의 예복을 가슴에 안으며 로아도르는 서 있었다.

“엘리엇...”

로아도르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첫사부의 이름을 부른다.

“사이즈가 안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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