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3장 귀환자 5
달린다. 로아도르는 제국을 넘어, 수도를 향해 한도 끝도 없이 달린 다.
산을 가르고, 강을 가르고.
모든 것을 가르며 앞으로 달린다. 한 곳을 향해. 그는 모든 것을 뚫고 일직선으로 달린다.
가르안 카이자를 향해,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던 큰 벽을 향해 달려 간다.
수도는 큰 곳이다. 수도라 부르는 곳 외에도 근처에 커다란 성들이 몇 개나 있고 그 사이에도 수천이 넘는 인구를 지닌 커다란 마을들을 거치며 로아도르는 한없이 달린다.
그리고 달리고 달려서.
-뭐야, 불도 못 붙이냐?-
로아도르는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기억에 남아 있는 곳들이다. 어딘 지 모르게 아련한 기억들이 남아 있다.
-나 원 참, 이래서 도련님은 글러 먹었다니까. 그리고 위대한 황성과, 그를 둘러쌓고 있는 성곽이 보이는 순간. 로 아도르의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언덕에 우뚝 서서 머나먼 황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곳에 있을 그 녀석을 상 상한다.
-그런 것도 못하냐?-
울면 안 된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했어. 이제야, 겨 우 이곳에 도달한 것뿐이야.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데. 긴 것 같으면서도 짧았던 자신의 여행길. 그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었 다.그리고.
그때의 그림자는 둘이었건만.
-나는 그것을 절대 의지라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없는 한 그림자의 모습에 다시 한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 나,절대 울 수 없다.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낼 때까지는 참아 낼 테다. 그리 생각했건만,
눈물이라는 놈은 그리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주르륵.
고개를 숙인 로아도르의 발치 아래로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저 곳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저곳에는 로아도르 반 바이파라 하 는,한 인간의 모든 것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으로 들어가 려 한다.
위대한 황궁의 수도, 아스톤을 바라보며 한 남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길을 지나가던 이들은 모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울고 있는 남자를 흘낏흘낏 바라본다.
과거, 제국을 구했던 영웅, 엑시엘 반 바이파의 후손. 로아도르 반 바이파.
그는 이렇게 돌아왔다.
외성의 관문소.
지나가던 한 상인이 로아도르의 모습을 흘낏 본다. 그러나 바로 고개 를 돌릴 뿐. 오히려 혀를 차며 “또 왔군”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무투회에 많은 기사들과 무인들이 참가한다는 뜻일 터, 로아 도르가 꽤 희한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다들 큰 관심을 주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한번 흘낏 보고는 지나갈 뿐이다. 로아도르는 묵묵히 서 있다.
물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 바이파 가문의 사람임을 알릴 수도 있 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디 사는 누구쇼?”
이윽고, 로아도르의 차례가 되자 병사가 건방지게 물어 본다. 워낙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한가득 담 겨 있다.
다가닥다가닥.
그리고 그 옆으로 한 마차가 지나간다. 그 마차에는 검문조차 없다. 걸려 있는 귀족의 깃발, 그리고 그 휘하의 기품 있는 마부가 관문소와 인연이 있다면 그것을 허락하게 한다. 건방진 검사와 마차를 번갈아 보 며 로아도르의 눈이 작게 변한다. 저 깃발은 그도 알고 있다. 바이파라는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이던 자의 깃발. 어디선가, 언제나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다녔던 에틴 후작의 이름이 나오려 한다.
“나는...내 이름은...”
그러나.
에틴 후작이라 말하려 했다. 로아도르 반 바이파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어떤 일 때문에도 아 니다.
그저, 모든 것을 버리고, 그저 하나를 위해 달려 나갔던 그. 그가 버 리고 간 것들 중에는 분명히 그 이름들도 있을 터이다. 모든 것을 버리 고 간 자신에게는 그 자격이 없겠지.
후우.
단 한번도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말한 적이 없건만. 어딘지 모르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실감을 느낀다.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고, 로 아도르는 병사에게 대답한다.
“로아돌.
“와아!저 병신이 또 왔다!”
“으헤헤헤!”
“놀려주자!
거리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웃으며 달려 나간다. 손에는 작은 자갈 같은 것이 한가득 들려 있는 것이 짓궂은 장난을 하려는 듯 하다. 한참 빨래를 들고 우물가로 향하던 아낙네들도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이 달 려간 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
“어이구 또 왔네. 도대체 저 집안은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그러게요. 제법 큰 귀족가의 자제인 듯 하던데.”
“아니, 그게요.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다나 봐요.”
“그래도 귀족이잖아요”
그 아이들이 향하는 곳에, 아낙네들이 수다가 향하는 그곳에 한 남자 가 비척비척 거리며 걷고 있다. 남자는 정신이 어딘가 이상한지, 눈의 초점은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고 입가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 다. 원래대로라면 꽤나 준수한 모습이었을 터이다. 입고 있는 옷도 보 통 일반인들이 입는 옷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흘린 오물로 한가득 물 들어 있어 그보다도 못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헤에....”
남자의 눈이 마치, 고양이처럼 곡선을 그리며 작아진다. 입가로 한가 득 웃음을 흘리며 손을 허공으로 휘젓는다. 그러자 아이들은 웃으며 손 에 들고 있던 작은 자갈들을 그에게 던진다.
“와아!바보!”
“멍청아!저리 가”
타닥타닥.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인지, 작은 자갈들은 맞아도 그다지 타격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을 모욕하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행위다.
고양이 눈을 한 남자는 고통도, 그 어떤 모욕도 느끼지 못하는 듯, 아 이들을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손을 한 없이 앞으로 뻗으며, 마치 무언가를 쫓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
로아도르 반 바이파라 불리던 남자가 서 있다.
“어.....”
아이들이 행동이 일제히 멈춘다. 이 거리에서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 재다. 저 커다란 키와 검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낀다. 숨 을 멈추고 있는 아이도 있고, 너무나 놀라 딸꾹질을 시작한 아이도 있 다. 이 정적 앞에, 그 고양이 눈을 한 남자는 어린 아이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로아도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잊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보는 순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언제고 저 남자의, 아니, 소년 ’의 모습이 떠오른다. 단정하게 자른 갈색 머리칼에, 고양이처럼 자신만만하게 웃던 그 소 년.
-그렇지 않아?로아도르. -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로아도르의 표정이 변하자, 아이들이 도망 가기 시작한다. 어찌나 놀랐던지, 울기 시작한 아이조차 있다. 로아도르는 그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아이들이 던지던 돌에도 반응 하지 않던 그 남자는 로아도르는 신기했는지, 헤에 웃으며 그를 올려 다 본다.
로아도르는 남자를 와락 끌어안는다. 남자가 흘리는 침이 그의 옷을 적셨지만, 오히려 끌어안은 힘은 커져만 간다. 남자의 어깨 너머로, 로 아도르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이게.....”
이게 무슨 꼴이냐.
쟉셀, 나의 친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