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85화 (85/100)

적어도 이 커그너스는 반드시 그중 하나가 되어 주마. 제목      제  13장 귀환자     4

한 남자가 성 앞의 바위에 앉아 있다. 이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이 나 되었을까? 아직 한참 젊을 나이임에도 눈이 보이지 않는지, 두 눈을 꾹 감고 몸을 지팡이에 기대어 지탱하고 있다. 그럼에도, 입가에 떠오 른 부드러운 웃음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제아무리 포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 보면 마주 웃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거 기에 그가 걸친 것은 낡은 성직자의 옷이었으니, 한층 더 그를 믿음직 스럽게 만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남자의 옆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니, 인기척 은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울리는 소리. 그것 은 청각이 발달한 장님이 아니더라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남자가 그의 앞에 우뚝 서자 눈먼 성직자는 빙긋 웃으며 그에게 말한 다.

“여행자이십니까? 터커 남작령에 잘 오셨습니다.”

“내가 여행자인지, 어떻게 아는가?”

남자의 말투는 굉장히 무뚝뚝하게 들렸다. 감정의 어조가 담겨 있지 않다. 게다가 초면에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말을 놓다니. 그러나 눈먼 성 직자는 자신의 눈 밑을 톡톡 건드리며 빙그레 웃는다.

“하하. 제 눈이 안 보이는 것 때문에 그런 의문을 품으시는 것 같군 요. 이래 봬도 전 이 터커 남작령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걷는 소리만 들어도 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지요.”

“그 눈은 어떻게 된 건가?”

쿵.

그의 옆에 남자가 같이 앉는다. 그 앉는 소리만으로 덩치가 어마어마 한 남자인지를 알 수 있다. 눈먼 성직자는 웃으며 조금 옆으로 옮겨 그 남자가 안기 쉽게 자리를 만든다.

“대마왕이 강림했을 때 잃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만, 그만큼 보람도 있지요. 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답니다. 제 눈은 사람들 을 지키다가 잃은 것이라고요.

“그런가.

남자는 어딘가 한탄스러운 듯한 말투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거기 엔 안타까움도 담겨 있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한지라, 눈이 먼 사제 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다시 한번 빙그레 웃고 만다.

“당신은 검을 들고 있군요. 수도로 가시는 길입니까?”

“그렇다.

“당신이 검사라면 수도로 가는 목적은 하나뿐이겠군요. 힘내시길 바 랍니다.”

“그런가. 고맙군.”

성직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른 이들에 비해 굉장히 말투 속에 담 긴 감정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남자이지만, 조금 전의 말에는 굉장한 한 (恨 )이 담겨 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가르안 대공의 얼굴이나 한번 보면 영광이겠다 싶은 검사들과 는 다른 느낌이다.

한참의 침묵 후. 남자는 불쑥 묻는다.

“하나만 묻겠다”

“그러시지요.

“만약, 신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의외의 질문인 듯 눈먼 성직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윽고.

눈먼 성직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이 없다는 가정의 질문은 달리 물으셔야겠지요. 신은 있고. 이렇 게 저희에게 힘을 내려주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번에 지상으로 강림 하신 검의 신도 계시지요. 신은 실제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달리라 한다면?

“믿는 신이, 만약 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셔 야 하는 게 아닐지?”

정확하다. 그렇게 묻고 싶었다. 남자는 놀란 듯 입을 꾹 다문다. 하지 만 성직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신이 없다는 표현보다 훨씬 더 과 격한 말이다. 남자로서도 차마 입에 담기 무서운 말이다.

“그렇군요. 저희가 믿는 신이, 신이 아니라 한다면 이라. 이런 가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라, 하하. 제가 제대로 된 대답을 드릴 수 있 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 한다면....”

신성모독으로 화를 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이 눈먼 젊은 성직 자는 호호롭게 웃으며 열심히 대답을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살겠지요”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성직자가, 자신이 믿는 신이 부정 된다면 그 존재 가치를 잃게 되리 라.그럼에도 저 눈 먼 성직자는 웃으며,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 다.

눈먼 성직자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나지막히 말을 이 어나간다.

“옛날에, 벌써   10여년 가까이 된 얘기군요. 저희 신전에 스승과 제자 인 두 사람이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분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는 모르지요.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했습니다. 사부라는 분이 제자의 온 몸의 뼈를 부시고, 나중에는 나무를 통 체 로 검을 만들어 그것을 휘두르게 하더군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지,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검사가 아닌 탓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참 열심히, 제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위해 힘껏 살고 계셨습니다.

사실, 전 그리 신앙이 깊어 신전에 들어 온 게 아니었지요. 그저, 먹 고 살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더 강했지요. 저는 그 사람들이 참으로 부러웠답니다. 그저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 아닌,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려는 그들이 참 부러웠답니다. 저보다 몇 살 위로 보이는 그 제자분에게는 그런 말도 했었지요. 그러자 그 분 께서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나도, 사부도 다른 이를 부러워한다.

세상에 남부러워 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도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한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때,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성직자로서 남에게 할 말은 아 니지만....”

사는 방식을 정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 하는 것도.

전부 신이 아닌

본인이 정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결국 신앙이라는 것도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일 뿐입니다. 저희에겐 쓰잘데 없는 돌맹이 하나일 지라도, 다른 이들에겐 신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이 신이 아니라면? 아아 이 세상에 살아갈 가치가 없 어!하고 죽을 순 없지요.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 하하.”

전혀 성직자 같지 않은 말을 하며 그 눈먼 성직자는 하하 웃는다. 본 인도 말 해놓고 영 아닌 것 같은지 나중에 남자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비밀이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한가.

눈먼 성직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남자는 나지막히, 조그마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군. 그저 열심히 사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인가. 성직자 옆에 앉는 남자는 멍청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얘기를 꺼낸다.

“옛날에, 한 멍청한 기사가 살았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면 모든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남자였지. 그런데, 그의 앞에 정말, 신이 내린 용사가 나타난 거였지. 그는 모든 지 할 수 있었고. 모든 이들이 그를 칭찬하고 찬양했다. 순식간에 두 번 째로 밀려난 남자는 분했고, 그런 그가 부러웠다. 그래도, 자존심 때문 에 그 어떤 말 한마디 못했고, 그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다. “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윽고, 그 멍청한 기사는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사부를 만났고, 뼈 를 부시고, 산을 베어가며 수련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재능 없는 자신 이 원망스러워도. 뭐라도 좋았다. 그리고 힘껏 수련한 끝에, 남자는 다 시 세상으로 나왔다.”

“당신은.......

눈먼 성직자는 그제서야 옆에 앉는 남자가 누군지 깨달은 듯 했다. 언제고, 온통 부셔진 뼈를 가지고도 세상을 향해 똑바로 바라보던 그 푸른 두 눈에 잡히듯이 생생하다.

별로 말이 없던 소년. 하지만 그럼에도 두 어깨를 쭉 피고 자신의 길 을 향해 달려가던 그 소년.

그는 그저 한번 이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자는 신이라 불리는 듯 하다.”

그리고 그가 그리도 이기고 싶어 하던 그 상대는 신이 되었다. 눈먼 성직자는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옆에 앉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향해 걸어 나간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신을 이겨보려 한다. 나를 뭐라고 부르겠는가? 나 는 무엇이 되는 것인가. 신과 싸운자는 필연적으로 악인 것인가. 그렇 다면 나는 악마이며 마왕인가.”

아니면.....

성직자의 대답을 듣지 않고, 남자는 제국의 수도를 향해 걸어간다. 와아아아!

아이들이 뛰어나온다. 지금까지 저 남자가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한 듯.아이들은 성직자의 몸에 매달려 쫑알쫑알 질문을 던진다.

“와아. 사제님, 저 남자는 누구에요?”

“악마 같아. 덩치도 크고. 저 커다란 검을 봐”

“게다가 저 검은 망토. 악마다!”

“악마다!”

어느샌가 자신들끼리 결론을 내고는, 이미 저 멀리 등만이 보이는 남 자를 향해 악마라고 외친다.

눈먼 성직자는 보이지도 않는 남자의 등을 바라본다. 아이들에게 무 엇이라 말해야 좋을까. 성직자로서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윽고.

그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라 말해야 하는지 정했다.

“여러분. 그런 말을 하면 안돼요. 저분은....”

신과 싸우려는 저 남자는.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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