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2장. 제 7의 마왕. 8
“후훗.
가면 아래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농락의 좌의 손 안에는 두 자루의 병장기가 들려있다. 하나는 검이요, 다른 하나는 흔 히 랜스라 불리는 원꼴 모양의 기다란 창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원형은 갖추고 있으되, 음영이 전혀 없다. 그저 검 은 색일 뿐이다.
슈숙.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 도다. 그가 그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은 로아도르와 처음 만났을 때 이 후로 처음. 그러나 로아도르는 그때의 그가 아니다. 그의 절대 예지가 미리 감지하고. 로아도르의 육체에 명령을 내린 다.
저자가 랜스를 찔러오고 있다. 그 방향은 가슴. 빨리 옆으로 피해내 야 한다고.
그러나, 로아도르의 의지가, 사부에 대한 신뢰가 그것을 막아낸다.
“검을 들지 않을 셈이냐?”
로아도르의 가슴의 바로 앞에서 랜스를 멈춘 농락의 좌. 그는 삐쭉한 창 끝으로 그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피륙의 상태를 벗어난 로아도르의 육체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러나온다.
이 농락의 좌란 자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 것 따위, 로아도르는 알지 못한다.
“제발..그만둬 주십시오 사부...”
간신히 말을 꺼내 보지만 이런 상투적인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머리 속 어딘가에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그는 농담이 아닌 것을.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저 가면아래 있는 자는
달리는 로아도르의 옆에서. 항상 같이 있어 주었던 자였기 때문이 다. 후우.”
붉게 웃고 있는 가면 아래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정말이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이제는 흥도 식는 것 같다. 기껏 키워 놨더니 검을 들지 않는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지? 응? 날 좀 재미있게 해봐라. 아.그렇구나. 너 머리가 엄청 나쁘지? 머리 나쁜 놈은 패는 수밖에 없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농락의 좌는 기다란 랜스를 하늘로 들어 올린다. 슈숙.
어느새 랜스는 커다란 몽둥이로 바뀌어 있다. 원래대로라면 금속으 로 만들어진 전투형 몽둥이일 테지만, 농락의 좌의 손에서 그것은 그저 검을 뿐이다.
“좀 맞으면 정신을 차리려나 모르겠구나. 제자?”
부웅!
농락의 좌는 주저 없이 몽둥이로 내려친다. 퍼벅!
둔탁한 소리를 내며 로아도르의 머리를 가격하는 몽둥이. 로아도르 의 이마에서, 뺨으로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려온다. 그러나 로아도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물기 가득한 눈으로 사부라 부르던 자를 바라볼 뿐이다. 농락의 좌는 다시 한번 그의 어깨를 내려친다. 투둑 거리며 어깨의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검을 들어라!”
팔을 내려친다. 쩌적 거리며 근육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움직여라!
배를 찌른다. 로아도르의 숨이 일순간 멈추며, “그 검을 들고!”
등에 휘두른다. 사부가 그에게 준 절대 부러지지 않을 뼈와 충돌하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이 나에게 겨누어라!”
로아도르의 온 몸에서 피가 터져 나간다. 사부가 그에게 주었던,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무엇보다 강할 육체. 그럼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눈 아래에서 흐르는 것은 피인 것인지 눈물인 것인지.
“사부....사부......”
그저 하염없이 누구보다도, ‘아직도 ’신뢰하고 있는 자를 부를 뿐이 다.붉은 가면 아래로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이 나온다.
“질렸다. 정말이지. 넌 마지막까지 재미없는 놈이로구나. 역시 고를 때 개그 센스까지 고려해야 했어”
그의 손에서는 몽둥이가 사라져 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검.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죽어라. 죽은 네 시체에서 입만 살아 사부사 부 거리면 나도 조금쯤은 슬퍼할지도 모르지. 그래, 그건 좀 재밌을 것 같구나.”
그리 말하며 농락의 좌는 검을 로아도르의 심장에 겨누었다가, 다시 내린다.
“운이 아주 좋군. 하핫...”
가면 아래로 유쾌한 웃음이 흐른다. 실로 즐거운 것을 발견한 듯.
“사,사부?”
혹시나 하는 심정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의 웃음은 여전하다. 농락의 좌는 그에게 묻는다.
“말해보라 로아도르 반 바이파. 기사의 임무는 무엇인가?”
기사의 임무?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그에게는 아득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이런 와중에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 중에 이런 게 하나 있었지? 기사는”
농락의 좌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리고 로아도르의 눈 위로 나타난 농락의 좌. 공중에서 다시 나타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양손에는 두 사람이 머리칼을 잡힌 체 들 려 있었다. 하나는 장년의 남자요, 하나는 아직 어린 소녀다. 이 곳을 지나가는 여행자 였는 듯, 그들은 먼지 덮인 두터운 로브를 걸치고 있다.
두 부녀는 겁에 질린 표정도 아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처한 이런 상 황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사방을 둘러본다. 그리고 머리칼과 머리가 연결되어 있는 곳에서 오는 고통에 아등바등 거릴 뿐 이다.
“약한 자를 수호한다. 있었지?”
퍼벅.
흔히 악당들이 내뱉는 예고조차 없다. 농락의 좌는 가타부타 하지 않 고 소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통을 터트린다. 그것은 피로 이루어진 폭죽.
공중에서 터진 피들은 사방으로 튀고. 지탱하고 있던 머리가 없어진 남자의 시체는 땅으로 떨어져 다시 한번 피를 터트린다. 소녀는 멍한 눈길로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바라본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지도 않는 듯. 소녀의 사고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로아도르도 마찬가지였다.
눈 앞에서.
사부가.
사람을 죽였다.
농락의 좌는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소 녀를 들어 올린다.
“자아, 위대한 기사의 후예인 로아도르 반 바이파는 어찌 하실려나 모르겠군? 말 했을 터다. 나는 마왕. 그렇다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조차 마왕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되지”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농락의 좌는 소녀를 로아도르에게로 던진다. 로아도르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놀린다. 지금 그의 행동에는 사고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저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를 뿐이다. 로아도르의 한 손에는 거대한 검이 땅과 거친 소리를 내며 끌려온다. 다른 한 손으로 떨어지는 소녀를 받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농락의 좌는 다시 지상에 내려와 있다.
“눈으로 봐야 믿겠느냐 머리 나쁜 제자야. 나는 마왕이라는 것을. 자, 어떻게 하려나? 다시 사부사부 하면서 우는 것도 이제는 재밌을 것 같 구나. 널 다시 데리고 학살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재밌을 지도 모르겠 고.”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판에 울린다. 로아도르는 사부를 바라본다.
그리고.
붉은 눈물을 흘리는 남자는.
거검을 들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