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2장. 제 7의 마왕. 6
투둑투둑투둑
덜거덕덜거덕
삐걱삐걱 거리며 풍차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로아도르는 그 앞에 멍 히 서서 한 노인을 떠올린다.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해 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그저, 마치 지나가는 환영처럼, 한번 스치듯이 보았을 뿐이다. 한 노인이 풍차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그 노인을 보았던 것은.......
“사부?”
그러나 로아도르는 사부에게서 다시 눈길을 돌리고 만다. 사부는, 어째서인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다. 아니,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웃으면서 운다. 그 어느것도 아니지만 그 외에는 표현 할 수 없는 그 어떤 회한이 가득한 얼굴.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면서도 증오하고. 사랑하면서도 무엇인가를 갈 구하는 얼굴.
‘어째서입니까 사부.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 자신의 옛날 얘기를 싫어하고. 저 풍차를 보면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지금까지 물어온 것도 많다. 하지만, 로아도르는 단 한마디도 사부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덜그럭덜그럭.
어째서인지, 사부가 이 들판에 들어서기 전에 말을 팔아 버려 로아도 르가 자신의 검을 끌고 있다.
한밤중이 되었지만 그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급 히 가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황량한 들판을, 두 사제는 계속 걸어갈 뿐이다.
“길다면 길었구나. 너와 지낸 시간은.”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사부는 마왕을 무찌르면 어디로 가실 것인가? 이 뒤의 얘기는 단 한번도 나눠 본 적이 없다. 로아도르 자신은 이 다음에 가야 할 곳은 단 한곳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부는? 물을까 하다가 로아도르는 입을 꾹 다문다. 나중에. 마왕을 물리치면 알 일이다.
묘한 일이다. 마왕과 싸우러 가는데.
왜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그것은 아마도, 이제 자신의 힘에 대 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부가 지도해준 이 힘은, 결코 지지 않으리라. 고요한 들판이다. 밤중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다. 이 곳에는 틀림 없이 낮에조차 인적 하나 없는 고요한 곳일 것이다. 가도 가도 보이는 곳은 저 검은 지평선뿐이다. 나무 한그루조차 보이 지 않는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해온다. 해가 뜨려는 것인가?한 숨도 자지 않 고 걸음을 옮긴 셈이지만 로아도르와 사부의 표정이 피곤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말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리고 저 지평선 끝에서 붉은 해가 올라올 무렵. 늙은 고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토록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부는 그곳에서 우뚝 걸음을 멈춘다. 로아도르도 따라 멈춘다. 그는 막연히, 사부가 쉬어가려니 했다.
그런데 이 고목과 들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사부는 말했다.
“이 곳이다”
더 이상의 말은 없다. 로아도르도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입을 꾹 다 물고 자신의 검의 자루를 손으로 집는다. 온 몸에 긴장감이 돈다. 무서움 탓이 아니다. 싸움 전의 고조감이 그 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다.
“마왕은 언제 나옵니까?”
눈을 번뜩이며 묻는 로아도르. 그러나 사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다시 한번 고요함이 감돈다. 그 사부조차 긴장한 탓인지, 얼굴에 아 무런 표정이 없다. 그는 그저, 팔짱을 끼고 나무 아래 서서 지평선 너머 로 떠오르는 붉은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네가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사부는 불쑥 말을 꺼낸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어조다. 이 제 막, 그 누구도 존재조차 모르는 마왕의 강 기다리고 있던 로아도르. 긴장한 탓일까?사부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조차 흠칫 놀라고 만다. 사부의 목소리에 놀라다니. 약간이나마 창피함을 느끼며 로아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네.그랬었습니다.”
“지금 알려주마”
그리고 사부는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은 입꼬리가 양 귀에 닿을 정도로 큼지막하게 올라간다. 세상 에,저 만큼의 조소의 뜻을 담은 웃는 표정이 있을까 정도로. 오싹하고 무서운 웃음이다.
그런 웃음을 지으며 사부는 말했다.
-올해로 1078세다 -
“사부....”
이런 때까지 농담이냐고. 한마디 핀잔을 주려 했다. 그러나. 로아도 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펄럭!펄럭!
사부의 옆에 검은 인영이 서 있었다. 저 자가 마왕인 것인가? 로아도 르는 본능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로아도르는 저 자를 단 한번 본 적이 있다.
천변기라 불리는 사부의 무기. 망토와 장갑이었다. 그것이 완전한 형태로 변해 서 있다.
그 단 한번 보았던 검은 망토가 현실에서 휘날리고 있다. 후드 아래 의 붉게 빛나는 눈.
그 망토는 사부를 향해 엎드리고.
그 두 존재 사이로, 아침의 해가 떠오른다. 세상은 붉게 물들어 간다.
사부의 웃음도 붉게 물든다.
새하얀 이는 마치, 피처럼, 붉어진 웃음이다. ‘아니다 ’
이상하다고 생각 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그것을 단숨에 잘라 버리곤 했다.
그의 가벼운 비웃음조차.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외치고 있지만. 로아도르는 절대로 믿을 수 없 다.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염원을 담아 그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믿고 있던 존재를 불러본다.
“사,사부?”
이미 사부의 귀에 로아도르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 듯 하다. 그의 찢 어진 입가는 그것으로 모자라, 한층 더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물었을 것이다. 마왕은 언제 강림하냐고. 그 질문에도 대답 해주마.”
그리고 사부는 말했다.
-지금, 네 눈앞에 있지 않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