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2장. 제 7의 마왕. 4
"이 것이 그것이란 말인겨?"
"아 그런가벼!"
"이런 것이 있어도 되는겨?!
창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로아도르는 눈을 뜬다. 올려다 보고 있음에도 지내기에 굉장히 불편할 것 같은 낮은 천장이 눈에 한가 득 들어온다.
그 영원히 끝도 없을 것 같은 신의 배에서 나와, 사부에게 인사를 올 린 것 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사부 가 쉴만한 곳으로 옮겨 준 것일 터이다. '이런. '
로아도르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바로 잡고는 반신을 일으킨다. 사 부에게 신세를 지다니, 제자로써 할 행위가 아니건만. 스스로 추태라고 생각하면서 로아도르는 눈앞에 보이는 문을 열었다. 휘이이이잉!
문을 열자마자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아기자기하니 마치 어린아이 들의 마을인 것 같다. 아니, 실재로도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150이 될까 말까한 단신에 수염투성이의 드워프들이다. 왁자지껄 떠들고 있 던 드워프들은 입을 다물고 일제히 로아도르를 바라본다. 이 작은 마을에 이질적인 존재가 셋이 있다. 하나는 로아도르 자신. 다른 하나는 드워프들 사이에서 삐쭉 웃고 있는 사부. 그리고 마당에 박혀 있는 거대한 검이다. 그 검을 중심으로 온 마을 의 드워프들은 전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오.일어났군. 후후후. "
사부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로아도르에게로 다가온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사부의 질책을 기다린다. 적어도, 좋은 말을 할 사람은 아니 다.
"제 아무리 힘들었어도 제자라는 녀석이 사부 앞에서 털썩털썩 쓰러 지고 말이야. 쪽팔린 줄 알거라. "
"네."
순순히 인정하자 사부는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찬다. 그런 사제의 사 이로 한 늙은 드워프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온다. 저 드워프는 로아도르의 기억에도 있는 자다. 신의 배를 안내했던 그 드워프였다. 그 드워프가 말없이 담배 연기만을 내뿜고 있자, 사부는 다시한번 혀 를 차고는 로아도르의 어깨를 툭 치며 그에게로 떠민다. 더럽게 과묵해 보이지만, 실재로는 낯가림이 심한 늙은이일 뿐이 다.
"자자. 이 늙은이랑 안면 터둬라. 앞으로 검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이 늙은이한테 상담하면 될 거다. 적어도, 지상에서는 제일의 대장장이지. 네 검을 봐도 좋다는 조건이었다만.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사부가 하는 말에 토 따위 달리가 없는 로아도르다. 순순히 드워프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로아도르. 그러나 그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작은 오만함도 있었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검이다. 문제 따위, 있을 리가 없다. '
드워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부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쫙 치 며 외친다.
"하핫, 자!그럼 정신도 차렸겠다. 가자꾸나. "
그러자 놀란 것은 옆에 말없이 있던 그 드워프다. 표정 없이 서 있지 만 그 드워프는 로아도르가 고작 반나절 만에 일어난 것도 굉장히 놀라 고 있었다. 적당한 옷을 입히고, 씻기고, 머리칼을 적당히 다듬고, 면도 를 해서 겉모습이야 멀쩡해 보였지만 그 안에 들어갔다 온 이상 정상적 일 리가 없으니까. 한달을 쉬어도 모자를 터인데. 그런데 일어났다고 바로 출발한다고?
"벌써 말인가. 내 생각에는 몇일 더 쉬어야......
그러자 사부가 스윽 드워프를 내려 본다. 그는 입을 다문다. 그랬다. 언뜻 보면 연상하기 힘들지만. 저 자 는.....
분명히 웃고 있지만 사부의 눈에 떠오른 광포함은 이로 말할 수 없었 다.
-지금까지 기다려 준 것도 오래 기다린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 어.-
더 가관인 것은 그 제자라는 놈이다. 도대체 무슨 식으로 교육을 받 아 온 것인지 사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것 이 아닌가. 그는 바로 검으로 다가간다. 그 검은 워낙에 높아서 정상적 으로 뽑을 수 없다.
로아도르는 검을 손에 쥐고. 땅에 박힌 채로 휘두른다. 그러자 박혀 있던 부분의 흙이 사방으로 튀며. 검은 아래로 내려온다. 드워프들은 입을 떡 벌리고 그 무식한 발검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말리던 그 늙은 드워프 조차.
오로지 사부만이 절정의 환희에 달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그 모습 을 황홀히 바라볼 뿐이다.
검을 쥐자 그 무게조차 달라진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를 전 드워프 마을에 흘리며 로아도르는 사부 앞에 선다.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사부.
애초에, 가지고 나온 것은 검 한자루뿐이었을 지니. 가지고 갈 것도 그 뿐이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득 뜬 늙은 드워프는 다시 한번 말린다. "하,하다 못해 식사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나?배도 무척 고플 텐 데."
'배 고프다?'
그제서야 로아도르는 인식한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로아도르의 어딘가 '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전의 발 검 장면의 충격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왁자지껄 떠들던 드워프들은 또 다시 입을 닫는다.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춘 로아도르는 '어떤 것 '을 갈 구하는 표정으로 사부를 바라본다.
그 어떤 때라도 냉정할 수 있는 마음의 검의 위력을 발휘한 것인지. 그는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냉철하게, 로아도르는 사부에게 말한다. "사부. 배가 고픕니다.
"어쩌라고 자식아!"
오히려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 것은 사부였다. "다 처 먹으면 우리 겨울은 어떻게 나라는 겨!"하며 절규하는 드워프 들을 뒤로 하고, 두 사제는 다시 길을 떠난다. 무표정의 드워프는 저래 뵈도 정이 꽤 많은 성격인 것 같다. 실재로 타격을 입을 정도로 많은 식 량을 먹어 치웠고. 그러고도 모자라 한가득 싸주기 까지 했으니. 그 뿐만이 아니다. 마을에서 사용하던 말 두 마리도 건내주고, 저 대 검을 꼽을 수레까지 준비 되어 있었다. 사람도 탈 용도로 된 물건이 아 니다. 오로지, 저 검을 넣고, 뽑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수레다. 바 로 꺼내 주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에 완성된 것인 것일 것이다. 아마, 저 드워프와 사부는 저 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알 맞은 검집마차를 준비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신의 배라는 존재를 안 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사부 역시 저 검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았던 것일까? 조급하게 굴던 것에 비해, 여행을 떠난 직후에는 차분한 심정을 유지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부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급하게 갈 것 없이 마차를 타고 가자는 말을 할 정도다.
아마도. 이 다음의 목표지는 사부가 그토록 원하던 곳일 텐데. 여전 히 사부의 심정은 종잡을 수 없다.
"아......"
무심코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만다. 이 얼마 만에 보는 사람이며, 마 을인 것인가. 로아도르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 본다. 그리고 의아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더욱 더 빈곤해 보인다. 대마왕의 여파는 이런 작은 마을에 까지 미쳤겠지.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리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인가? 그때. 로아도르의 귀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들어왔다. "역시 가르안 카이자라니까! 내 그 사람이라면 대 마왕을 물리칠 줄 알았어. "
"그 분은 대륙을 구한 영웅이야!"
다른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다른 한 아이가 나무작 대기를 들어 올리며 외친다.
"나는 용사 가르안이다!"
대마왕 역을 맡은 아이는 하기 싫은 듯. 잔뜩 울상을 짓고 있다. "가..르....안?"
사람들의 떠드는 사이에서.
로아도르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다. 자신이 신의 배에 들어가기 전, 대마왕이 강림한다 했었고, 어째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것은 그 대마왕이 사라졌음을 짐작 했어야 했건만.
로아도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언젠가 어릴 때의 자신은. 저렇게 뛰어 놀았었다. 그 이름은 그토록 영광스러운 자신의 선조 엑시엘 반 바이파. 그리고 지금은 가르안 카이자.
"나는......."
저렇게 자신의 이름이 다른 이들이 불러주기를 그토록 바랬다. 용사라고. 영웅이라고.
한 노인이 다가온다. 그리고 밝은 웃음을 띠우며 말한다. "보아하니, 당신들도 대마왕과의 싸움에서 돌아온 모양이구려. 천만 다행이오. 이 모든 것이 신의 안배요, 이제 검의 신이 되신 가르안 님의 안배인 것이야. 다행이오. "
겉모습만 보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로아도르의 커다란 덩치를 봐서 는 척 봐도 병장기로 먹고 사는 용병과 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아니야.
나는.
그 당신들이 말하는 영웅을 이기기 위해서.....
그러나 로아도르는 그리 말 할 수 없다. 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세상에 홀로선 기분이 든다.
그러나.
지금 그의 옆에는 사부가 있다.
“어차피 넌 용사 따윈 될 수 없다”
사부의 냉철한 말에 로아도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물리쳐야 할 대마왕은 이미 다른 자가 물리쳤다. 거기에 네가 물리 칠 마왕은 알려지지도 않은 자. 네 이름이 거론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위해 무찔러야 할 악은 앞으로 수백년은 나오지 않겠지. 선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위해 ’강해지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강해져야 할 이유는 오직 너 자신이 찾을 수밖에 없겠 지. 무엇을 원하나? 무엇을 추구하는가? 누구하나 대답해줄 수 없다. 하지만 너 자신은 알고 있겠지?
사부는 과장된 행동으로 두 손을 쫙 벌린다. 그리고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씨발 저 새끼 재수 없어! 어디서 잘난 척이야? 그 높디높은 콧대를 콱 눌러 버리겠어!”
본래 진지한 로아돌은 사부의 이런 면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뭐라 말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사부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거잖아?넌 그냥 지고 싶지 않을 뿐이잖아? 그렇지?”
그의 눈빛이 다시 빛나고 만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고 해도 사부의 말 만큼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순 없으리라. 그냥 난.
그 놈한테 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부는 히죽 웃으며 이제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은 로아도르의 머 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그거면 되는 거다. 뭘 멋들어지게 이유를 붙이려고 하고 있 어? 이러니까 이래야 돼. 저러니까 저래야 돼. 그렇게 무언가가 필요한가? 핫!폼 잡지 마라.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러니까 이렇게 해야. 가 아니다. 이러고 싶다. '
이런 것도 존재하지.
그렇다고 해서 네가 뭘 잘못했냐?누가 피해를 입었나?넌 오거를 때 려눕히고 바위나 들었다 놨다 했을 뿐. 그 어떤 더러운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네가 세상에 못 내보낼 더러움 따위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멋 대로 움츠려 들지 마라. 스스로에게 당당해라 “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다. 로아도르의 행동에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부는 괜찮다고,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있 다.
“용사 따윈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자가 되라. 손안에 쥔 작은 것조 차도 놓칠 수가 없어서 급급하고, 놓쳐버린 작은 것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쥐기 위해 일어나는 남자가 되란 말이지.”
“남자....”
손에 쥔 작은 것조차 놓칠 수 없어 불안함에 떨면서도 앞으로 나아가 는 자. 설령 손에 쥔 것이 열등감이라는 하찮은 감정에 불과해도, 그것조차도 버릴 수 없어서.
로아도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굳은살이 어쩌고 하는 경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다른 강인한 손이다. 그러나. 이 손은 용사의 손이 아니다. 이 손에 세계의 운명 같은 건 걸려 있지 않다.
그저.
로아도르는 주먹을 꾸욱 쥔다.
이것은 그저.
지는 것이 싫다는. 그 작은 이유 하나로 열심히 살아온. 한 남자의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