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75화 (75/100)

제목      제  12장. 제  7의 마왕. 3

휘이이이잉.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이 산은 대륙의 북쪽에 위치하면서도 상 당한 고산. 그 추위는 이로 말할 수 없다. 그나마 여름이라면 모를까, 겨울이라 하면 사막과 더불어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곳 을 꼽으라면 분명 이 곳도 그 후보 중 하나에 들어갈 것임이다. 그런 고산의 동굴 앞에, 한 사내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 토 록 매서운 추위임에도 남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는 다름 아 닌 사부다.

로아도르가 동굴 안으로 들어 간지도               4년이 지났다. 그 동안, 사부는 동굴 앞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언젠가 나올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4년.녀석이 영원히 나오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그 의 머리 속에 떠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자박자박.

거친 눈보라 사이로, 눈 밟는 소리와 함께 땅딸막한 검은 인영이 모 습을 드러낸다. 전에, 사부와 로아도르와 함께 왔던 늙은 드워프다. 그 는 양손에 들고 있는 맥주잔 중 하나를 사부에게 건낸다.

“이거라도 마시게”

사부는 말없이 손을 뻗어 드워프가 건낸 맥주잔을 받는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건만, 그 사이에 맥주 위에는 약간의 살얼음이 생 겨 있었다.

맥주잔을 받은 사부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찬 드워프는, 시커먼 동굴을 바라보며 수염의 눈을 털어낸다.

“못 나오는 것 아닌가? 자네도 들어가 봤으니 알 터, 그 누구라 할 지 라도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을 말일세”

“녀석은 나온다”

그제서야 짤막하게 말을 한마디 꺼낸다. 4 년 동안의 기다림은 이 유 쾌한 사내조차 변하게 만들었는지. 그는 얼굴은 미동조차 없다. 그러나 드워프는 알고 있다. 오히려 이 것이 그의 본모습이다. 늙은 드워프는 가지고 온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허 하고 가볍 게 웃는다.

“참 재미있군. 그토록 누구하나 믿지 않고, 세상을 조소하며 살아온 이가 그 덩치 큰 어린 아이를 그토록 믿고 있단 말인가? “자네라면 알고 있을 터이다. 나는, 그토록 믿을 존재 하나를 찾기 위 해 그토록 세상을 조소하며 헤매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게 그 녀석이란 말이지. 재밌군 그래. 스르르륵.

그때, 사부의 가방에서 검은 망토가 튀어나와, 사람의 형태를 갖춘 다. 망토와, 그림자와, 얼굴로 추정되는 부위의 붉은 빛 형상 두개. 망 토는 사부를 향해 깊이 절을 하며 머리 부분을 땅에 대었다. 정작 사부 는 그 검은 망토를 바라보지조차 않는다. 다만, 사부의 눈에는 감정이 떠올라 있다. 그것은 분명 조소다.

어찌하여 허락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내 헛된 망상의 끝이 여.

그 검은 망토에 드문드문 하얀 눈이 뒤덮여 갈 무렵에야 사부는 가볍 게 고개를 끄덕이고. 망토는 미끄러지듯 일어나 다시 사람의 형태로 돌 아온다.

망토는 붉은 두 눈으로 드워프를 바라본다. -나를 만든 자인가. -

“그래. 오랜만이군. 천변기.”

그러나 망토는 사부를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조물주에 대한 공경심 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오연한 붉은 빛 으로 늙은 드워프를 바라볼 뿐. 그 늙은 드워프 역시 망토에게 바라는 것은 없는지 신경 쓰는 태도가 아니다. 사부는 망토를 형해 감정 없는 말투로 묻는다.

“무슨 일이지?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을 터이다. -이제 곧 그 자가 모습을 드러내기에, 마지막으로 말씀을 올리려고 허락 없이 감히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그래?”

그것은 한 순간.

사부의 얼굴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좀 전의 표정 없이, 세상을 조소 하던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는 벌떡 일어나 드워프의 어깨를 퉁 퉁 치며 크게 웃는다.

드워프 역시 입가가 비틀어지도록 웃음을 짓는다.

“설마, 설마. 그 자가 그 검을 가지고 나온단 말인가!그 것이 정녕사 실이란 말인가!!그걸 내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단 말인가!”

“하핫!!이것 보라구! 나온다고 그랬지 않나!하하핫!”

그토록 즐거운 분위기에,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 검은 망토 뿐이다. 망토는 다시 한번 사부 앞에 넙죽 엎드리며 말한다. -저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원하신다면 앞으로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 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어조도, 말투도 살아 있지 않는 자 답게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담긴 절박함 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을 터. 그러나 사부는 그런 망 토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망토를 향해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늙은 드워프다. 그는 웃음을 지우고 사부를 바라보며 혀를 찬 다.

“지독히 이기적인 자. 자신의 종이 그토록 바라고 있거늘. 어째서 시 선한번 주지 않는가?”

“시끄러워. 자, 너는 다시 들어가라. 곧 이제, ‘우리  가 될 시기가 왔 음이다.”

사부는 망토를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한다. 그러자 망토는 엎드린 체로 다시 한번 말한다.

-저는 영원히 오지 않음을 바랍니다. 부디....사부의 눈에 담긴 것은 짜증이다. 그는 웃음을 지우고 버럭 화를 내 며 망토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닥쳐!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다!꺼져라!당장 눈앞에서 사라 지란 말이다”

그러자 망토는 눈으로 들어 사부를 바라본다. 감정 따위 담길 여지도 없는 그 붉은 빛 덩어리에 어찌하여 그리도 애원의 빛이 담겨 있는 지.

-부디....-

그는 결국 다시 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하얀 입김을 몰아쉬며 자신의 성을 삭히는 사부. 돌연 그의 숨이 딱 하고 멎는다.

카가강.

아주 작은 소리였다. 저건 분명 바위에 쇠 같은 금속이 맞부닥치며 나는 마찰음이다.

카강!카강!

그 소리는 점차 커진다. 그와 동시에 사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동 굴 앞에 우뚝 선다.

그리고 동굴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는 엉망진창이다. 그토록 건장하던 체구는 비쩍 말라 있다. 드러 난 배는 등가죽에 닿을 정도였으며, 얼굴의 광대뼈가 고스란히 보인다. 눈밑은 온통 검은 색이다.

옷 또한 엉망이다. 어디선가 끈을 구해온 것인지. 입었다기보다는 여 기저기서 구한 듯한 각각 다른 어떤 가죽들을 대충 몸에 묶어둔 것이 전부다.

머리칼과 수염이 엉망이다. 묘하게 각이 져 있는 것이, 길면 손으로 움켜쥐고 대충 검으로 잘라 냈다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토록 엉망인 사나이는 눈 앞의 사부에게로 다가와 거대한 거검을 들어 올린다. 그의 키를 훌쩍 뛰어 넘는 검은 마치 하늘을 가를 것 같은 기세다.

그야말로 태산과도 같은 거검. 사람을 둘 합쳐 놓은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검. 검 외에는 아무런 용도로도 쓸 수 없는 검. 그것은 그저 검인 검.

그 자는 검을 옆으로 뉘인다. 세차게 올린 검이 하늘을 가를 것 같았 다면 이번에는 대지를 가를 것 같은 기세다. 그 자는.

자신이 허리를 숙일 단 한명의 남자에게 예를 표한다.

“다녀왔습니다.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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