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68화 (68/100)

제목      제  11장. 신을 이겼던 검. 10

이제, 복도는 일직선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T자로 된 갈림길이 나오는 가하면, 거대한 창고와도 같은 방도 있었다. 그 도중에는 조금 전과 같이, 몬스터가 가득한 방도 있는가 하면, 금속으로 이루어진 침 대 같은 것도 있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 곳곳이 잘 곳 까지 마련되 어 있다. 공기도 실내라는 폐쇄적인 공간임에도 쾌적하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둘째 문제 치고서라도. 이 곳이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후우.

복도의 한 턱에 주저앉은 로아도르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 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일주일쯤은 지났는지, 아니면 고작 하루만 지났는지. 아무런 변화 없이 항상 밝은 곳이니까. 있는 힘껏 냉정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이성을 잃 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로아도르는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자신의 조금 후의 모습이 빤히 보이는 듯 했다.

그 어떤, 몬스터의 팔다리를 뜯고 있는 그를. 침대가 놓여 있는 방을 찾아볼까 했지만, 그럴 힘조차 없는 느낌이 다.로아도르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잠을 잘 때만큼은 굶주림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깡!까앙!

어디선가 쇳소리가 들린다. 평소와 같이, 꿈속에서 들리던 그 소리인 가? 그렇지 않았다. 정말로 평범한 대장간에서 한 노인이 우람한 근육 을 꿈틀거리며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한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막   7세쯤 되 었을까? 노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장구들 사이에 숨어 있다. 훌쩍.

코를 빨아들이는 소리에 노인은 소년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챈다. 노 인이 소리를 친다. 소년을 향해 마구 손가락질을 하며 문 밖을 가리킨 다.소년은    아앙.’하고 울며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 어째서인지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노인.

노인은 다시 망치를 들어 붉게 달아 오른 검을 내려친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이다. 태산 같은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검이었다. 코를 훌쩍이던 소년은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가마 앞에 앉아 있던 인자한 인상을 한 아주머니가 소년을 달랜다. 아무래도 소년의 어머니 인 듯 싶다. 소년의 등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른 건장한 한 남자가 집으로 들어온다. 노인과는 달리, 무언가를 베기 위해 적합한 몸을 지닌 이이다. 남자는 훌쩍이는 소년의 등을 두 들기며 크게 웃는다.

소년은 눈물과 콧물을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번쩍 든다. 그리고 남자 와 여자에게 뭐라고 선언하듯 외친다. 남자는 크게 웃고, 여자는 부드 럽게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지?”

로아도르는 퍼득 눈을 뜬다. 새 하얀 금속의 공간. 잠이 들기 전의 그 대로다. 변한 것은 없다.

그러나, 방금 전의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다. 무언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 것도 아니요, 어디에선가 겪었던 것도 아니다. 완전히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 본 듯 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로아도르. 그는 다시 한번 극심한 굶주림에 머리를 흔들며 쿠루다의 검에 의지해서 몸을 일으킨다. 이 상태로 있으 면 그대로 굶어 죽어 버릴 것이다.

조소가 나올 것 같다. 가르안을 이기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아 왔 는데 이런 알 수도 없는 곳에서 굶어 죽는다면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보는 이 하나 없을 지라도, 그 자신이 용납하지 못한다. 카강!카강!

검을 질질 끌며, 로아도르는 걸음을 옮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 다.

설령 몬스터든 무엇이든 간에, 돌이라도 씹어서라도. 검을 얻어야 한다.

어느새 시간은 물 흐르듯이 흐른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코를 훌 쩍이던 소년은 오간데 없이,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는 건장한 청년이 검 을 휘두르고 있다.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검을 들고, 청년 은 사방의 모든 것을 베어가고 있다.

아니, 벤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부수고 있다.

그야말로 패     (覇 ).힘의 궁극이다. 로아도르는 멍청히 그것을 바라본 다.어째서인지 모르게 알고 있다.

저것이야 말로, 지금의 자신이 궁극에 달한 모습이다. 군더기 따윈 전혀 없고, 잔재주는 들어갈 영역이 아니다. 청년이 검을 내려놓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한 처녀가 수줍은 얼굴 로 다가와, 청년의 얼굴을 닦아 준다. 청년의 얼굴 역시 붉게 물들어 있 다.

해가 지고, 마을의 중앙에 거대한 불이 타오른다. 불을 중심으로, 몸 에 갖가지 색으로 칠을 한 전사들이 모여 있다. 검을 들고 있는 이도 있 고,도끼를 들고 있는 이도 있다. 활을 들고 있는 이도 있다. 이윽고, 그들은 병장기를 들고 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춘 다.

야만인들의 의식에 가깝다. 대부분이 건장한 청년들인 것으로 보 아  성인식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청년도 있다. 청년과 같이 거대한 검을 든 이들이 여럿 있다. 청년은 춤을 추며 좀 전의 처녀와 눈이 마주친다. 처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고. 청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벙긋 웃는다. 이윽고, 춤이 끝나고. 춤을 추던 이들은 각자 산속으로 흩어진 다. 그것은 청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청년이 가는 곳은 다른 청년 들과 달랐다. 마을의 모든 이들이 눈을 크게 뜨며 청년이 향하는 곳을 바라본다. 처녀는 혼절하여 쓰러진다.

그만큼, 남자가 가는 곳은 위험한 곳인 것 같다. 청년은 산속 깊이 들어간다. 산을 넘고, 계곡을 헤엄치며 절벽을 기 어오른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 있는 거대한 동굴 앞에 우뚝 선다. 동굴 안에서 커다란 포효 소리가 들려오고, 곧 쿵쿵거리며 거대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날개가 달리고, 수십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체. 그리고 그 몸체 를 모조리 감싸고 있는 붉은 비늘.

로아도르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이 세상의 누구라도 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드래곤이다.

청년은 바로 그 드래곤에게 검을 내민다. 로아도르는 의아함을 느낀다. 그 거대한 드래곤에게 지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몬스터와 같이, 오로지 야성만이 느껴질 뿐이다. 다 만,입에서 뿜어내는 불길만큼은 지금의 드래곤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 어 보인다. 강함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생명체임은 분명하 다.

그러나.

무섭다. 무서운 것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정말 저 청년은 무섭도록 강하다. 제 아무리 마법을 지니고 있지 않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검 하나로 브레스를 갈라내고, 순수한 힘으로 드래곤의 비늘을 갈라낸 다.

마침내, 청년은 드래곤의 입 안에 거대한 검을 꼽아 넌다. 그와 동시 에 청년이 쓰던 거검        倨劍  ) 역시   드래곤은 괴음과 함께, 그 거대한 육 신이 땅에 쓰러진다.

드래곤의 뿔을 잘라, 청년은 그것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간다. 벌써 새벽녘에 이러 있다.

다른 청년들은 모두 돌아와 있다. 각자, 몬스터의 수급이라던지, 정 체를 알 수 없는 나무의 풀뿌리라던지, 증표를 손에 들고 있다. 드래곤의 뿔을 지니고 있는 것은 오로지 청년뿐이다. 들고 있기에도 벅차 보이는 거대한 뿔을 번적 들어 올리자, 마을의 모든 이들이 환호 를 지른다. 처녀가 달려와 청년의 품에 안기자, 그 환호는 한층 더 커진 다.

덜그럭. 덜그럭.

어디선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마을 사람들 이 동시에 입을 다물며 길을 만든다.

그 노인이다. 검을 만들던 그 노인이, 완성된 그 검을 가지고, 불 앞 에 선 청년에게로 가고 있다.

두근. 두근.

로아도르의 가슴이 고동을 친다.

저 검이다.

저 검이다.

노인은 청년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청년은 묵묵히, 노인이 수레에 실어온 검을 들어 올린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검.

-당신의 의지가 부러지지 않는 한 이 검 역시 부러지지 않으리니. 이 제부터, 당신이 소드 마스터입니다           -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로아도르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소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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