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64화 (64/100)

제목      제  11장. 신을 이겼던 검. 6

“안녕하십니까.

건달 같은 남자는 광대 같은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인다. 그러 나, 그 인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살아 있는 존재가 아 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인사를 하고 있는 곳은. 죽은 것들이 산더미 같이 쌓인 곳의 꼭대기였으니까. 모든 것을 쌓아 올렸다.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르던 가축. 인간들을 괴롭히던 산짐승들. 혹은 날아가던 새까지도. 거기에 피 냄새를 맡고 시체를 파먹기 위해 날아온 까마귀까지도, 단 하나의 존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살육한 뒤이다.

“이거이거, 이거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정이란 게 있어서 말 이지요. 거 다들, 마왕 하면 그냥 불쑥 튀어나오는 줄 아는데, 우리도 꽤 사정이 복잡하답니다. 데몬들 정비하고 부대 배치해야지, 지휘관 엄 선해야지. 상위 마족들 꼬셔야지. 저것들 먹을 것 준비해야지. 그냥 우 하하하 하면서 나오는 게 아니라구요. 이거 원 참. 행정일이 좀 많아야 지.우하하하. 게다가 이래뵈도 제가 대마왕이란 존재라서, 좀 많이 데 리고 나오느라 늦었답니다.”

남자는 건들거리며 시체 더미를, 걸어 내려온다. 남자는 핏물이 고인 곳에 우뚝 선다.

“맞다 맞다. 어디보자”

끔찍하게도, 남자는 시체더미에 손을 넣어 한참동안 뒤적거린다. 남 자가 손을 뒤적 거릴 때마다 꿀럭거리며 죽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 러나 그 남자의 소매는 조금도 붉게 물들지 않는다. 그리고 찾아냈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그것을 꺼낸다. 탁!

길다란 연초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는다.

“후우!과연. 이 거 때문에 한번 나와 보고 싶었다지요. 마계에선 담 배가 재배가 안 되어서요.

남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시체를 한동안 뒤적거리더니, 금화 세 개를 꺼내 담배를 빼낸 시체에 가지런히 올려둔다.

“자,담배 값입니다. 갈길 바쁘실 텐데 노잣돈 삼으시죠. 한 개피에 금화 세 개면 무지 비싸게 쳐주는 거지요?”

그것도 방금 삥 뜯은 거지만.

“자,가자 멍청이들아”

남자는 휘날리는 연기와 함께 건들건들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엄청난 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은 무리가 움직 인다. 그들이 가는 곳에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풀은 시들고, 나 무는 썩어 없어진다.

크기는    3미터 이상. 이마에 솟은 뿔과 붉게 빛나는 눈. 입 밖으로 튀 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니. 철로 이루어진 것 같은 몸에 드래곤과도 같은 날개,

그런 것들의 숫자가        10만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스톤 제국의 황성은 마비 상태에 이를 정도로 시끄러 웠다. 대마왕이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소문이 전 제국에 퍼졌기 때문에 민심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따른 수많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 으로 일어났기에 그것들을 수습하랴, 또 다른 한면으로는 대비책을 새 우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황궁이었다. 그러나, 곧 병사 하나가 귀족들의 회의실에 전해온 소식에 새로운 국 면에 처하게 되었다.

“대마왕 강림했습니다”

싸아..

그토록 시끄럽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그 중에 가장 상석 쪽에 위치한 자. 회의의 주도자인 바이파 공작이 잔뜩 쉰 목소리로 그 병사에게 물었다.

“어딘가.

“서쪽입니다!극서 지방 아루우스트 왕국!”

“이런!

한 귀족이 이마에 손을 대며 외친다. 동쪽에 위치한 아스톤 제국에서 손을 쓸 수 없는 곳이다. 병사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데몬   10만 이상!자세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서열               10위 안쪽의 마족도 다수 있다고 합니다.

“10만이라고!

한 귀족이 경악하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럴 수가!여태까지 데몬은       3만 이상 나타난 적이 없는데”

마왕의 강림이라고 해봤자 단            2번이지만 그들의 여파가 컸기에 상당 히 자세히 전해져 온다. 게다가, 마왕들은 총 여섯이라는 둥, 그 각자의 이름과 역할은 무엇이라는 둥. 자신들의 정보를 지상에 꾸준히 알려 왔 기 때문에 마왕의 존재를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무슨 속셈인지          3번째로 강림한 자는 대마왕. 정상 의 좌 루스사이퍼다. 가장 강한 자, 대마왕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상식을 깬 순번이었다.

마법으로 순식간에 연락은 받았지만, 군대까지 순식간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당장, 군을 소집해야 합니다.

한 젊은 귀족이 호기롭게 외치자, 다른 귀족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다행히, 대마왕이 강림한다는 정보는 미리 가지 고 있었으니까요”

또 다른 이가 묻는다.

“지금, 카이자 후작은 어디 있습니까?”

가르안 반 카이자. 이 지상에서 가장 강한 자. 그의 이름이 나오자 그 들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희망이 감돈다. 그러자, 그의 친구로, 가장 말 단에 있던 카시레타 남작이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스럽게 얘기한 다.

“사실, 오늘 아침에 아비스의 마궁에서 발라그의 수급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오오!

사람들은 환호에 차 박수를 친다. 루리아 공주는 입을 막아가며 눈물 을 애써 참고 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발라그를 잡으러 간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말렸던 지.하지만 그녀의 애인은 결국 해낸 것이다. 숨은 악마. 실로 마왕들에게 필적할 것이라던 지상의 괴물의 목을 베 다니. 그야말로 시기에 맞춰 세상이 준 구세주가 아닌가! “그가 있다면...”

“그렇소.

“과연. 카이자 후작이 있다면 해볼만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희망에 찬 목소리로 한결 같이 말한다. 한달 전만 해도 천 한 출신이라고, 드래곤을 잡은 것도 우연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던 기색 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금 그저, 자신들의 목숨을 구원해 줄 구세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카이자 후작에게 한시라도 빨리 연락을 취하도록 합시다”

그러자, 황제의 왼편에 앉아 있던 아르시엘 공주과 외눈 안경을 만지 작거리며 그들의 말을 끊는다.

“여러분. 물론 카이자 후작은 무척 중요한 분입니다. 그분은 실로 저 희 인류에게 있어 신이 내린 구원자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실에 들뜰 것이 아니라 한시라 도 빨리 군을 재정비 하는 것이지요. 카이자 후작 홀로서        10만의 데몬 과 맞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온전한 힘으로 대마왕과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귀족들이 입을 다문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아르시엘은 자리에 서 일어났다.

“다행히,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제국의 총 병력      115만.한달 안에 소집이 가능합니다. 모든 병력을 모아야 겠지요. 어차피 저들에게 점령 이란 의미는 없습니다. 두 차례의 예로 저들의 목적은 살생. 그것뿐이 니까요. 오로지 총력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국의 후계자를 넘보고 있다는 오해까지 사면서 한 준비다. 부족할 리가 없다. 그러자 지금까지 사람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제국의 실질 적인 이인자인 바이파 공작도 발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몬이   10만이나 된다면 이 병력으로도 무리요. 전 세계의 병력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오.”

115만 대군. 이 정도의 병력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바이파 공작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 인류가 힘을 합 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납득한다. 예의 기록으로는, 데몬은 잘 훈련된 병사         100여명 의 힘에 필적한다 했다. 단순 숫자로만 따지자면 실로 일천만의 대군이 나 다름없는 것이다.

벌컥!

그때, 다시 문이 열리며 병사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아,아루우스트 왕국이 멸망했습니다!!”

아침에 들어 온 소식이 한층 더 절망적인 소식으로 변해온 것이다.

“그럴 수가 있는가!”

“하룻밤 사이에 왕국이 멸망했다고”

비록 아루우스트 왕국이 극서에 위치한 작은 소국이라 하나, 하루만 에 멸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애기였다. 그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온 병사가 피를 바닥에 토하며 쓰러진 다.

“어어억!”

“어,어이 자네. 왜 그러나?”

옆에 있던 병사가 그를 급히 부축했지만, 그 역시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같이 쓰러지고 만다.

“크어어억!

갑작스러운 일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다시 싸늘하게 변한다. 덜그럭덜그럭.

그 병사는, 마치 좀비처럼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귀족들 중에서는 기사도 제법 있기에 실력이 있는 자들은 황제를 중심으로 검을 뽑아 둥 그렇게 호위를 하고, 곧 회의실 밖에도 제국의 병사들로 가득 찬다. 그리고, 곧, 그는 얼굴을 들었다.

“안녕들 하세요. 여기가 지상 제일의 강국이라는 아스톤 제국 맞 죠?”

피가 가득한 얼굴에 환한 웃음. 어딘지 모르게 활기차 보이기까지 해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너,넌 누, 누구냐!”

“대마왕입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은 등에 한기를 느꼈다.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을 대마왕이라 밝힌 병사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을 이어나 간다.

“아,이걸 가르쳐 드리려고요. 저희 데몬의 피해 수는 총          12마리입니 다. 제법이에요. 병사가 일만도 되지 않는 소국이 저희 데몬을                  12마리 나 처치하다니. 지금, 아루우스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다음 나라로 가 고 있습니다. 에, 이름이 뭐드라. 아,데가튼 왕국이었죠. 하여간. 그냥 제국 한 두개만 있으면 따질 것도 없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나라가 많 은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세계 제일의 제국답게 다음엔 힘 좀 내서 통 일 좀 시켜놓으세요. 그럼 여러분한테도 편하잖아요?”

진실인지 아닌지,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다. 그렇기에, 한층 더 소름이 끼친다.

“자,그럼 병사 열심히 모으고, 실력자들 열심히 모아서 저희 쪽으로 진군 해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자,열심히 열심히!힘내세요! 병사는 주먹까지 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곤 쓰러졌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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