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0장. 절대 예지. 4
로아도르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목검은 이미 버린 후였 다.반토막 난 목검이라 하더라도 그 길이는 일반적인 대검과 같았지만 강도가 문제였다. 목검으로는 로아도르의 힘을 견디지 못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나 순수 검사인 그의 주먹에 예기가 실려 있을 리는 만무했다. 엄청난 힘이 실려 있을지언정,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커 그너스는 요리저리 피하며 간간히 로아도르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었다.
간신히 버틸 수는 있을 정도, 하지만 마스터의 주먹이다. 안면에 푸 른 주먹이 강타하자, 로아도르의 이빨 두서개가 허공에 휘날린다. 상식 이상의 몸이지만, 애초에 안면부를 단련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두부를 몇 번이고 갈기면 제 아무리 로아도르라 할지라도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커그너스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는지 그의 공격은 머리 아 래로 집중되어 있었다.
“크윽!
결국 로아도르는 복부를 감싸 안으며 쓰러지고 만다. 저벅저벅.
쓰러진 로아도르의 옆구리를 발로 슬슬 건드리며 커그너스가 외친 다. “그래봤자!결국은 힘만 쌘 무식한 놈이라구!!”
하지만, 그 역시 지쳤는지 이마에 송글송글한 땀은 감출 수 없었 다.
짝짝짝!
갑자기 들려오는 박수소리.
“오오!분명 옳은 말이다.”
얄밉게도 박수를 치는 자는 사부였다. 게다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 벙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휘휘 저어 커그너스를 물러나게 한 사부는 명백히, 일부러 엎드려 있는 로아도르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 다.
“자,제자야. 죽어라 맞았는데, 여기서 얻는 교훈은 뭐냐?”
“주,주먹으로 하는 싸움....입니까”
목소리도 내기 힘들 정도로 두들겨 맞은 후라 간신히 대답했다. 하지 만 그런 기특한 태도에도 사부는 대 놓고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고. 다음은?”
머리가 띵해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보다, 멀쩡했어도 대답을 낼 수 있었을 런지는 의문이다.
“모,모르겠습니다.”
쯧쯧 하며 혀를 차는 사부.
“그야 당연하지 않냐. 느.리.니 까. 다”
로아도르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까딱이며 사부는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넌 힘만 믿고 돌진하는 파워형 전사라 할 수 있다. 그 리고 그것의 성장은 끊임이 없지. 아마, 물리 어쩌고 하는 상식을 뛰어 넘는 힘을 가지게 될 터다. 하지만. 그래서야 마왕 같은 거 잡을 수 없 지.”
머엉.
로아도르는 멍청한 눈으로 사부를 바라본다. 잊고 있었다.
이 수련을 하고 있는 이유. 물론 가르안에게 한번 더 도전하기 위해 서다. 녀석과 후회 없는 결전으로 이기는 것. 그것이 필생이 목표였다. 하지만 사부는 다르다. 사부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어디까지나 마왕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마왕.
천계의 신들과 태초부터 대립해 왔던 어둠. 악몽의 육망성중 하나를.
가르안에 앞서, 전설과 맞서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로아도르와 시선을 마주하기기 힘들었던지, 사부는 조심스레 그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주 단순한 거야. 바로, 그 공격을 적에게 맞출 것. 이것이 정답이 다. 제 아무리 산을 박살낼 힘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하냐? 적에게 맞출 수가 없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와서 스피드를 키운다? 이 것도 물론 맞는 말이다. 애초에 둘을 떨어져서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까.하지만 네가 힘에 치중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빠르기의 성장 이 더딘 것은 분명하지.
사부는 손짓으로 커그너스를 불렀다.
“자,여기서는 커그너스의 말을 들어 보도록 할까?”
“엥? 나?
무슨 뜬 구름 잡는 소리 하고 있냐는 식으로 둘을 바라보던 커그너스 는 엉거주춤 다가왔다. 도전할 생각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흠씬 제자를 두들겨 팬 다음의 사부는 두려운 모양이었다.
“무,무슨 말을 하란 말이오?”
“커그너스. 혹시 무의식적으로 뻗어간 주먹이 상대방에게 맞는 경우 가 있지 않나?”
“앙? 무슨 얘기를 하는 거유?”
“그 왜, 너희 피스트 사용자들이 하는 말로는 럭키 펀치라고 하던가? 그런 거 있잖아.”
“아,그거.”
커그너스는 김이 팍 빠지는 듯 했다. 뭘 대단한 것을 물어 보나 했더 니만.
“그거야 말 그대로 행운이지.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커그너스. 그러자 사부는 씨익 웃으며 이번엔 커그너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인다.
“글쎄, 행운이라? 애석하게도 난 기적이라는 건 별로 안 믿는 사람이 라서 말이지. 어쨌든 설명해봐”
럭키 펀치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로기 (groggy) 상태에 들어섰을 때, 무의식적으로 뻗어간 주먹이 상대에게 명중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소린지 알겠냐?”
무의식적으로 행한 공격이 적에게 명중한다. 이 것이 전부 아닌가? “물론 행운이라는 말로 끝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 면 평소의 노력이 너무 아깝지 않나?”
사부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읽은 거다. 네 몸이. 그리고 그에 따라 자연히 반응한 거지. 그건 머 리로 생각하고 한 공격이 아냐. 수백 수천번의 수련과, 수많은 실전이 네 몸을 이끈 것이지. 최적의 공격 루트를 말이다. 난 그걸, ‘절대 예지 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네가 얻어야 할 새로운 힘이지. 실전이라면 몇 번이고 죽을 정도의 대련과, 지금보 다 한층 더 엉망이 될 수련으로 말이다. 후훗. “ 사부의 예는 언제나 실상과 맞닿아 있다. 기적처럼 보이지만, 어디선 가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하지만 그 결과, 지금의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물론 그거 때문에 일부러 커그너스에게 올 필요는 없었다. 이 녀석 은 네 녀석의 격투 사부가 될 거다”
그러자 멀뚱히 사제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커그너스가 벌떡 일어난 다.
“뭐,뭐야!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대신, 얼마든지 나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지”
사부의 말에 커그너스는 끄응 하며 죽는 소리를 낸다. 둘 사이에 무 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커그너스 역시 라 신전의 사 제들처럼 사부에게는 큰소리를 못 치는 입장인 모양이다.
“아,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커그너스와 로아도르의 눈이 동시에 사부를 바라본다.
“주먹과 동시에, 검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멍해졌다. 그딴 것. 들어 본 적도 없다. 물론 검에도 능하고 격투에도 능한 이라면야 있겠지만
동시에?
“그,그런 게 어딨습니까.”
“있어야 해. 물론 검에 생명을 거는 것도 좋지만, 검이 없을 경우엔 어떡할 거냐. 지금처럼 두들겨 맞은 다음 땅에 누울려고?”
“그러기 위해 격투를 배우라는 것은 납득하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용하라니.
검을 휘두르며 주먹을 쓴다?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 은가.
“아냐아냐. 이건 이론을 듣지 않겠다. 네 나름대로 연구해 봐라.”
“하,하지만 이제 목검으로는 힘이 듭니다. 하다못해....”
“철제 검으로?돈 없다. 그딴 걸 만들 여유가 있을까보냐”
물론 로아도르도 알고 있기에 말을 흐린 것이다. 사부도 로아도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지, 잠시 턱을 매만지 며 생각에 잠긴다.
“좋아. 이 다음엔 검을 얻으러 가자”
“얻다니요?”
“그런 게 있어. 원래 좀 더 있다 가려고 했지만 뭐, 좋겠지.”
또다시 두리뭉술하게 대답하는 사부다. 이럴 때의 사부는 대답을 해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로아도르는 체념하는 목소리로 다시 물 었다.
“거긴 또 어딥니까?”
그러자, 로아도르는 드물게 사부가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 보는 것을 보았다.
언제고, 과거를 떠올릴 때 사부가 띠는 눈이다.
“이 세상의 가장 깊은 곳. 하늘과 가장 다른 곳. 그러나, 그 하늘이 만 들었던 곳”
뭔가, 대답을 해주는 것도 애매하다. 로아도르가 빤히 사부를 바라보 자 사부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그딴 얘기를 할 여유가 있는 거 보니 제법 정신을 차린 모양이 군? 일어나라!가볍게 달려보자꾸나!”
머나먼 옛날.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 태초에 이 땅의 주인들. 그들이 묻힌 곳.
그 곳의 중심에서.
우우우웅.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 ’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