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54화 (54/100)

제목      제  10장. 절대 예지. 2

데온.

중소국에서도 강국에 속하는지라,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분위기는 조 금 더 널널하게 보였다. 제국의 안정된 치안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금이나마 웃음기가 감돌고 있다. 하지만 그 강함이라는 것은 커그너스라는 걸출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지, 특별히 나라가 넓다거나 인구수가 많다거나, 혹은 돈이 될 만한 특산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마스터를 보유한 나라는 그 하나만으로 강국에 속하는 것 이다. 그런 이를 몇이나 보유하고 있는 제국, 게다가 최근에 탄생한 그 랜드 마스터가 있는 제국은 이미 당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사부와 로아도르는 데온에 들어온 지 이틀도 되지 않아 수도인 데스 턴에 도착했다. 수도답게 나름대로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였지만 제국 의 대귀족 출신인 로아도르에게 와 닿을 리가 없다. 가는 길목의 도시 에 들린 것처럼 태연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당연히 왕궁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부는 점점 어둡고 침침한 뒷 골목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는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주위 를 둘러 보고 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왕실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커그너스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 당연히 왕실에 소속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로아도르였다. 그러자 사부는 그럴 리가 있 냐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허어? 그 녀석이? 기사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냐? 소문으로 들 었으니 알 텐데. 기사 같은 거 할 놈이 아니야”

납득은 가지만, 이해는 할 수 없었다. 비겁함이니 뭐니를 떠나서 마 스터가 왕실에 소속되어 있지 않단 말인가? 로아도르는 다시 물으려 했지만 사부는 목적지를 찾은 듯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찾았다.”

사부가 가리키는 곳은 작은 술집이었다. 다 무너져 가는 술집. 간판 에는 곰팡이가 잔뜩 슬어 있고 가슴으로 열게 되어 있는 스윙도어의 한 쪽이 없다. 그야말로 뒷골목에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끼이익.

안은 어두웠다. 골목 전체가 어두웠지만 그 술집은 한층 더 어두웠 다.

그리고, 단 하나 밝혀진 촛불 앞에 앉아 있는 남자. ‘저 자가 피스트 마스터, 커그너스인가      ’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저 거대한 체구에 손가락 이 반쯤 나온 가죽 장갑.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노려보는 것이 척 보기 에도 살기등등했다.

그러나

“형님. 손님 왔는뎁쇼”

그 덩치로, 누군가에게 굽신굽신 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쇼파 에 몸을 파묻고 있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남자가 머리를 긁적거리 며 몸을 반쯤 일으킨다.

“아앙? 뭐야?

덥수룩 하다. 수염도, 머리도, 모든 것이 덥수룩하다. 잘 다져진 체구 인 것은 분명하지만 앞의 남자보다는 약해 보인다. 술병 하나를 끼고 쇼파에 몸을 푹 기대고 있던 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뭐야. 꺼지라고 해”

술집의 주인인가 본데, 손님에게 할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 런 가게 라면 정말로     ‘모처럼   ’온 손님일 터인데.

“못 꺼지겠다만?

그때, 사부가 불쑥 끼어든다.

그와 동시에.

덜컹!

남자는 벌떡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입가에 흐르는 술을 소매로 슥 닦으며 히죽 웃는다.

“이거이거. 생각지도 못한 인간이 왔구만.”

어째, 사부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에 경악감이 섞여 있다. 어쩐지, 사부 말투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눈치는 왔지만 설마 커그너스 까지 사부를 알고 있을 줄이야.

“이거 웬일이십니까. 한판 더 해보시려고?”

하지만 커그너스는 다르다. 다른 이들은 경외감이 실려 있었지만 그 의 눈에 한가득 담겨 있는 것은 투쟁심이다. 마치 이 날을 기다려 왔다 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사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전에,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 아 그 약속. 좋아좋아. 지켜드려야지. 그 뒤에 있는 덩어린가 보지?”

말에 담으면서도 커그너스는 로아도르를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이 자리에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 로아도르는 속으로 욱 하고 끓어올랐 지만 조용히 사부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모욕을 당했지만, 제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사부는 히죽 웃는다.

“그래, 이 덩어리다. 생각보다 무서운 덩어리니까. 흥이 나게 해 줄 정도는 될 거다.”

“좋겠지. 덤벼라 덩어리. 난 바쁜 사람이거든.”

방금 전까지 술에 쩔어 있던 주제에 커그너스는 손가락을 까딱 거린 다.익숙한 듯 거구의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을 밀며 공간을 마 련한다.

커그너스의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사부는 자신과 그가 겨루는 것 까지 안배해 두었던 모양이다. 로아도르는 긴장감을 힘으로 누르며 앞 으로 나선다.

제아무리 좋지 않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마스 터, 한때 자신이 꿈꾸던 경지에 이른자다. 로아도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사부가 그에게 무언가를 툭 던진 다.

“껴라.

사부가 애용하던 장갑이다.

“어차피, 네가 아무리 단련해도,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어. 마나에 견딜 수 있는 무구가 없는 한 네 녀석은 그냥 그런 존재니 까.”

언제고 들었던 말이다. 모욕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추억이 먼저 떠올 라 로아도르는 빙그레 웃었다.

“엘리엇과 똑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실로 오랜만에, 아니 처음 보는 것 같은 제자의 미소다. 사부는 적지 않게 놀라며

“어허 이 녀석 보게. 쪼갤 줄도 알잖아? 그런데 엘리엇이 누구냐?”

“사부도 보셨잖습니까. 제 첫 사부입니다.”

“아.그 녀석”

사부는 손가락을 튕겼다. 승부는 단번에 났지만, 그 역시 쉬이 찾아 볼 수 없는 검사였다. 가르치는 자로써는 썩 괜찮은 모양이다.

“생각보다 가르치는 재능은 있는 모양이로군.”

로아도르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장갑을 꼈다. 그 순간 로아도르의 눈앞이 검게 물든다. 퉁!퉁!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사내?아니다. 저건 망토 그 자체가 사람의 형 태를 띠고 있는 것 같다. 망토의 후드 아래로 붉은 눈이 번뜩인다. -나를 사용하기에는 이를 텐데. -

마치,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형태는 사라졌다. 다시 어두침침한 주점이 보일 뿐이다. 로아 도르는 놀란 눈으로 사부를 바라본다.

“사부.

“응?”

“이거, 뭡니까?”

사부는 뭔가를 눈치 챈 듯. 입을 꾹 다문다.

“에고다. 그렇게만 알아 둬.”

에고. 자아를 가진 무기. 하지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 금 전 사부의 말은 둘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고라고 해도, 녀석의 자아는 쓰잘 곳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에고를 가진 무기란, 보통 마법과 연관 되어 있다. 즉 수식과 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에고라 할 지 라도 그 힘을 부여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주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마나가 없는 자신이 이 장갑을, 자아를 지닌 마법 병기를 껴야 할 의 미는 대체 무엇인가?

꾸욱.

자신이 손에 딱 맞는 검은 장갑. 장착한 지금도 이 녀석의 재질은 알 수가 없다. 가죽인지, 천인지, 금속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모두를 사용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생각을 뒤로 물러 둘 때. 상대는 평생에 한번 겨 루기 힘든 마스터다.

“준비는 끝났소.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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