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9장. 오우거 슬레이어 (끝 )
사부는 뚜벅뚜벅 걸어간다. 로아도르는 자신의 단점이 무엇일까, 하 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그로서는 알 수 없을 따름이었다. 그때. 사삭.
순간, 로아도르의 눈앞에 검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니, 잠시 현기증이 일어난 것과 같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잠 깐 나타났다 사라진 느낌.
로아도르는 우뚝 멈춰 서서 눈을 비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는 멀쩡하다. 긴장으로 가득한 몸이지만, 그런 만큼 예민해져 있기에 잘못 봤을 리 없다.
‘어라?
“뭐야, 왜 그러냐?”
“아니, 방금 전에....”
“뭔 소리를 하는 거냐?배고프냐?”
사부가 이상하다는 듯이 로아도르의 위아래를 훑어본다. 사부의 표 정에 로아도르는 고개를 돌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을 전한다. 그러 자 사부는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렇다. 저 사부가 느끼지 못했다면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겠지. 하지만, 뭐랄까.
마치, 사부의 가방에서 망토가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1시간쯤 더 갔을까? 오크 부족이 한 개가 더 보였다. 조금 전 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오크의 부족. 로아도르는 이 오크들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키기기긱!
“케게겍!”
좀 전이랑 한 치도 다름없는 모습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로아도르는 다시 사부를 바라본다. 그러나, 로아도르를 바라보는 사 부는 그런 것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눈치다. 오히려, 진지한 눈빛 으로 돌아와 턱을 쓰다듬고 있다. 그러자, 로아도르도 각오를 굳히고 다시 목검을 들어 올린다.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 녀석은 지나치게 ‘검사 다. “자아, 시작해 보자!”
사부는 로아도르의 뒤에 붙어 달리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사부에 밀려 로아도르 역시 얼떨결에 달려지고 있었다. 오크가 눈 앞에서 글레이브를 들어 올리자, 사부는 양 손목을 쥐고, 로아도르의 몸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자,여기서는 정면”
퍼버버벅!
터져나가는 오크.
“웃차. 여기서는 발”
사부가 뒤꿈치를 살짝 차자, 로아도르의 발이 쭉 찢어지며 하늘을 가 른다. 그와 함께, 오크들 역시 찢어져 나간다. 사부는 손으로 왼손을 친다. 주먹과 함께 다시 터져나가는 오크의 머 리.
“키에엑!
오크들은 좀 전과 같이, 무기를 집어던지고 도망간다. 그러자, 사부 는 로아도르의 등을 밀며 그들의 뒤를 쫓아 달리게 한다. 로아도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부가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는 몸. 하지만 상대를 터트리고, 부숴버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힘이다. 이렇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어깨로 상대를 밀치고”
오크가 밀려나 검의 범위에, 다섯의 오크가 공중에 떠오른다.
“이 녀석들을 동시에 벤다!”
투두두둑!!
그리고 오크는 전멸했다.
숫자는 같았다. 하지만 처리하는 속도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시간으 로 따지면 2분도 걸리지 않았으리라. 로아도르는 멍청히 자신의 주먹 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로 얼룩져 있는 주먹. 하지만 새삼 그것에 놀 라고 있었다.
검으로 베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발은 그 에 전혀 뒤지지 않는 무기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사부는 거만한 표정으로 로아도르를 내려다본다.
“멍청아. 이제, 네 단점을 좀 알겠냐?”
로아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전히 자신의 몸에 숨어 있던 놀라움에 취해 있었으니까. 그러자 사부는 피식 웃으며 그의 뒤통 수를 톡톡 건드렸다.
“검에 목숨을 건다는 것. 좋다. 싸우는 자로서 자신의 무기에 생명을 거는 것은 올바른 자세다. 하지만 공격 수단이 검뿐인 것은 아니야. 오 히려 그 근간에 되는 몸. 그 힘의 놀라움은 너도 느꼈겠지. 지금까지의 넌 육체로서의 공격은 전혀 없더군. 진정한 무기는 오로지 검! 따위의 헛소리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겠다. 어떤 소리를 하건 네 말은 피스트 파이터 (fist fight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발언이 될 테니까”
그런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에 든 것이 검이었기에, 배운 것 이 검이었기에 이걸로만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부는 한심 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이 정도 융통성도 없어서야. 정말이지. 어쨌든, 이걸로 네 녀 석의 다음 목표는 정해졌다.
“어디로, 입니까.”
“피스트 마스터. 커그너스에게 가겠다.”
로아도르의 안색이 굳었다.
피스트 파이터 중에 마스터의 칭호를 얻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숨 어 있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대륙에 알려져 있는 인물은 단 세 명. 그 중 하나가 커그너스. 달리는 스트리트 파이터로 알려진 자. 그만큼 수단을 가리지 않기에 실력보다는 비겁함으로 알려져 있는 자이다. 정정당당함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로아도르에게는 반길 수가 없는 이름이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사,사부. 하지만....”
단번에 로아도르의 심정을 알아챈 사부는 코웃음을 친다.
“하!지금 네가, 마스터의 칭호를 붙은 이를 무시하는 거냐?!”
사부답지 않게 정색하며 진심으로 꾸짖고 있다.
“그,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그딴 건방진 소리 하지 마라. 어떤 소문이 돌 건 간에 커그너스 는 자신의 방식으로 마스터의 칭호를 얻었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닌 이다. 고작 해야 네 녀석이 비웃을 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사부.”
커그너스는 모르지만, 사부는 믿는다. 사부의 가르침을 믿는다. 그러 자 사부는 약간 풀린 눈으로 지긋이 로아도르를 내려다본다.
“앞으로, 그 누구라 할지라도, 노력해온 타인의 삶을 조롱하는 발언 은 허락하지 않겠다.”
전에 없던 엄한 눈에 로아도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다. 사부의 말이 아니더라도 옳은 말이다.
“자,그럼 이제 오우거나 잡으러 가보자”
그리고
사부와 로아도르가 떠난 공터. 피로 얼룩져 있던 오크들이 검게 변하 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의 인영으로 변해 붉은 눈을 번뜩인다. 이미 이곳에 오 크의 부족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저 숲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터였을 뿐이다.
-흐으으음. 이 내가, 시체 놀이나 하게 되다니. 놀랍게도, 명백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다.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한 소리다. 검은 망토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형태는 후드 아래의 붉은 눈으로 한참동안이나 로아도르와 사부의 뒤를 바라본다. -오우거는, 저쪽인가. -
스르륵.
망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쿠워어어어!”
오우거는 고함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이미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 소리가 저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다. 그 고함은 틀림없이 환호의 뜻. 어리석은 인간들은 또 다시 자신에게 속아 넘어 간 것이다. 오우거 답지 않은 오우거.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보다도, 이렇게 속여 넘기는 것에 더욱 큰 쾌감을 느끼는 변종이었다. 그러나.
스슥.
그것은, 오우거의 눈 앞에 나타났다.
-오우거씨. 스톱스톱. -
진중하고 공포스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장난스러운 말투다. 게다가 손으로 짐작되는 부분이 팔락 거리고 있다.
“우우우우..”
그러나, 그 존재가 그저 나타난 것만으로도, 오우거는 겁을 먹는다.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돌도끼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사람 두세명을 합 쳐 둔 것 같은 드넓은 어깨가 축 처진다.
그 존재와 마주친 것만으로, 오우거는 완벽히 굴복하고 있었다. -그래. 무기는 버리고. 돌아가라. 그리고 저 인간과 맞서 싸워라. 그 렇다면 네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겠지. -
그 존재가 하는 말은 대륙 공용어로써 몬스터가 알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오우거는 충실히 그의 말을 이행한다. 오히려, 살아 날 수 길이 있다는 것에 한층 더 힘을 내는 듯 하다. 쿵쾅거리며 달려가는 오우거의 등을 보며, 붉은 눈은 반월처럼 휘어 진다.
-후후. 앞으로 조금이다. 조금이야. -
스륵.
그리고 그 존재는, 마치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사부.
“왜?”
“여기는 아까 그 오크 녀석들이 있던 곳 아닙니까.”
사부와 로아도르가 서 있는 곳은 첫 번째로 오크 부족과 만났던 곳이 다.오크의 시체에 벌써 파리떼가 달라붙어, 로아도르는 눈살을 찌푸리 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
“그 용병단에서 말하기로는....”
그때였다.
쿵!쿵! 쿵!
“크우워어어어!!”
어마어마한 고함과 함께 오우거가 숲에서 튀어나와 로아도르에게 달 려든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위로 올라간다. ‘도망가는 오우거라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맨손인 것도 조건이 너무 똑같다. 하지만 이상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바로 앞에 이른 오우거가 양 팔을 벌리며 그를 향해 조여오 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로아도르 역시 양팔을 벌려 자신의 머리통을 부수려 하는 오우거의 두 손을 맞잡는다.
“우워어어?”
오우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신음소리를 낸다. 두두둑.
단숨에 압사되어야 할 인간이, 버티고 있다.
“크으으윽.
로아도르는 이를 꽉 깨물고 오우거의 힘을 버틴다. 과연 오우거. 어 마어마한 힘이다. 한순간이라도 힘을 빼면 바로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 다.
오우거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빛이 나는 이상한 무기야 무섭지 만,무기도 없는 인간 따위가 맨몸으로, 그것도 힘으로 대항하고 있다. 제아무리 소드 익스퍼트에 이른 기사라 할지라도, 아니 그뿐만이 아 니라 소드 마스터에 이른 자라 할지라도 오우거의 힘에 힘으로 대항할 수는 없으리라.
지금까지, 오우거의 천적은 빠른 몸과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빛나는 검이었지, 맞받아치는 힘이 아니었던 탓이다.
“크으으으..”
두둑두둑.
그토록 단단해진 뼈가 다시 부러질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라 온몸에 서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오우거의 역한 냄새가 물씬 뿜어져 나온다. 숨을 쉬는 것도 괴로울 정도다.
제자가 이런 괴수와 겨루고 있음에도, 사부는 태연히 뒷짐을 지고는 그것을 구경하듯 서 있다.
“왜 내가 오우거와 맨 손으로 겨루라고 했는지 알겠냐?”
땅이 패인다. 오우거의 힘을 견디지 못한 대지가 푹푹 들어가고 있 다.
“이미 너는, 다른 녀석들과는 길이 달라. 오우거는 무서운 몬스터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소드 익스퍼트 상급은 되어야 이길 수 있는 훗.누가 정한 기준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연하게 말하는 사부.
“그러니까. 오우거를 힘으로 이긴다면,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그것 도 상급에 이르는 기사들과 비견된다 할 수 있겠지. 네 수준을 시험해 볼 기회다.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하지 않나?”
사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두두둑
오우거의 손목이 꺾인다.
어디까지 왔는가!
“쿠워어어어!”
오우거의 고통에 찬 외침이 숲에 울려 퍼진다. ‘오우거 따위에게!’
손의 뼈가 부러지며 뒤로 물러나는 오우거. 로아도르는 뛰어올라 머 리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과연, 오크처럼 쉽게 터져 버리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 부러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물러난다. 로아도르는 발로 오우거의 두터운 종아리를 걷어찬다. 두두둑.
오우거의 발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며 쓰러진다. ‘지려고 노력해온 게 아니다!’
로아도르의 앞에는 오로지, 눈부시게 빛나는 검을 들고 있는 가르안 만이 있을 뿐이다.
퍼억!퍼억!
로아도르는 주먹으로 오우거의 머리를 내리친다. 이미 숨은 끊어진 지 오래. 그의 주먹질은 사부가 말릴 때까지 계속 되었다.
“자 그만. 이걸로, 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
“네.후우. 후우.”
손에서 흐르는 피는 오우거의 것만이 아니다. 로아도르 역시 오른손 의 뼈가 상당 부분이 부러진 후였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은 알 거다.”
로아도르가 손을 다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부는 지금까지 그가 차 고 있던 쇳덩어리들을 풀러 로아도르의 몸에 걸쳐 주었다. 저런 부상 따위, 뼈만 제대로 맞춰 두면 일주일이면 다 낫는다. 오우거를 맨손으로 이긴 제자.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이 정도가 아니다. 이 정도로는, 택도 없다. 산을 집어 던지고, 바다를 가를 정도 의 녀석이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로아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쇳덩어리들을 몸에 걸치고, 땅 에 던진 목검을 들고 일어났다.
승리의 희열 따윈 없다. 이걸로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은 로아도르 역 시 알고 있다.
고작해야 이 정도의 성장에 기뻐할 줄 알고. 아직이다. 멀었다. 사삭
“음?”
그때, 로아도르는 다시 한번, 사부의 가방에 검은 것이 아른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그것뿐이었다. 사부는 평소와 같이 말 위 에 올라타서 로아도르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
그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사부. "
로아도르는 술잔을 단번에 들이킨다.
"왜 그러냐. "
"생각해봤는데 말입니다. "
"그런데 왜?"
"제 시종은 남자였습니다. "
"그랬는데?"
로아도르의 주정 같은 말이 이어진다.
"첫 사부는 남자였습니다. 둘째 사부도 남자입니다. 시종도 남자고 그,수도원에서 저를 돌봐 준 것도 수습 신관도 소년, 즉 남자이고 수도 원장님도 남자. 그리고, 피스트 마스터 커그너스도 남자죠. 앞으로 만 날 타이탄의 검이네 뭐네 하는 것도 늙은이 드워프가 얽힌 거잖아요. 그리고, 마왕도 남자죠. "
뭔가 네타 비슷한게 흘러나오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사부는 술잔을 들이키며 제자의 시선을 피한다.
"왜 다 남자입니까!"
로아도르는 술잔을 거칠게 내려 놓는다. 그러자 사부의 강맹한 주먹 의 그의 뒷통수를 강타한다.
"이런 멍청한 놈!진정한 남자는!남자에게 인기 있는 법이다!"
쾅!
"그,그렇단 말입니까!
"그렇다!남자에게!할아범에게! 소년에게! 모든 남자에게 인기 있는 남자야 말로 진정한 남자인 것이다!
"오오 사부!"
로아도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부를 바라본다. 사부 역시 한줄기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외쳐라 제자!"
"네!사부!"
-동정 [童貞 ]이라 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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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동문 일단 찍고 읽자 ㅋ
3 백전 2008-06 02 18:47:11??
이런.. 가문의 영광! 읽고 써도 수늬권 4 朴 龍 熙 2008-06 02 18:48:46??
피그미 ㅡㅡ ;;
로아도르는 이제 소드익스퍼트 상급 < 로아돌 < 소드맛스타 정도인가요?
근데 오우거한테 말 거는 애는 누구지? 5 행쇼 2008-06 02 18: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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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1.0 되는 라식찬스! 불황을 이겨낸 중소기업, 그 비법은? [선호작 추가 ] [윗글 ] [아랫글 ]
글쓴이 광천광야 글보기 화면설정 글쓴날 2008-06 03 16:30:33 댓글 부분으로 고친날 2008-06 03 16:30:33
읽은수 17034??[ 2547자 ]
제목 풍차의 노인.
“어머, 또야.”
“도대체가, 정신도 멀쩡한 것 같은데 왜 저러지?”
“무슨 말이야. 저러고 있는 것 자체가 무슨 정신이 말짱하다는 거 야?”
아낙내들은 빨래를 이고 수다를 떨며 지나간다. 그녀들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한명의 노인.
노인은 멍하니 풍차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갈고 갈아 얇아 졌으면서도 그 광채는 잃지 않은 검 한 자루. 노인의 일과는 검을 들고 멍하니 풍차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시기다. 검 따위, 높으신 나리들에게나 쓸모가 있 지,마을의 풍차 지기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처음에는 검을 들고 있 는 노인을 보고 놀라는 일도 많았지만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노인은 집안 대대로 이곳의 풍차의 주인이었다. 귀족이나 거상인 것 은 아니지만, 마을에서 나름대로 지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세금을 징수해서 영주에게 바치는 일도 하기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기 시작했다. 바로 저 정신 나간 행동 때문이었다. 노인은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주는 그를 내쫓았다.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해 남은 여생을 간신히 먹고 살 정도의 재산만을 남긴 채. 하지만, 노인의 그런 기괴한 행적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다 른 이의 소유가 된 풍차를 한 없이 바라보며 서 있는 것 이다. 아낙내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일을 끝내고 오는 농부들이 노인을 보며 혀를 찬다.
“저 영감님. 또 저기서 저러고 있네”
“참나. 가족도 없는데”
“왜,거 당나귀 한 마리 있잖아”
“아 그, 써먹을 라야 써먹을 수도 없을 것 같은 늙은 당나귀 말이 지?!”
남자들은 크게 웃으며 지나간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노인은 검을 들어 풍차를 겨눈다. 마치, 어떤 괴물을 상대하는 것처 럼 진지하다.
부웅!부웅!
이윽고 검을 빙글빙글 돌린다.
마치 풍차처럼.
석양을 맞으며, 노인은 붉게 물든 풍차를 바라보며 붉어진 검을 돌린 다.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평화.
그러나
“살인마가 나타났다는군”
“무시무시하다는데.
“마왕 아냐?
“아냐. 마왕이 나올 때는 징조가 있다잖아.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니 까.”
“그럼 뭐야 그놈은?”
“나도 모르지. 하지만 듣기에, 왕국의 이름난 기사들도 한꺼번에 몰 살당하고, 군대도 모조리 죽었다던데”
“마법사들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군”
마을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그에 대한 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소문. 마치 마왕이 강림한 것처럼 사람들은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그 얘기는 이윽고, 노인의 귀에도 전해진다. 노인은 굽어져 있던 허리를 핀다. 그는 검을 치켜 올리며 고함을 지 른다.
“오오오오오!!!드디어 나 자신을 시험해볼 때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노인을 바라본다. 그러나 노인은 풍차 앞에서 넋을 놓고 있던 그 노인이 아니었다. 노인은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마을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중심에는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살인마를 무찌를 용사를 모집하노라!이 자를 잡는 자에게 왕국의 공주와 혼인을!평생 호화스럽게 살 수 있는 재물을 주겠노라”
그러나, 이런 마을에 용사가 있을 리가 없다. 병사 징집을 한다 하더 라도 무시하고 지나갈 만한 작은 마을.
관리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이윽고 다른 마을로 떠나려고 한다.
그때.
“내가 가겠소!”
카랑카랑한 노인네의 목소리. 그 기백에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그 관리는 노인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린다. 낡아 빠진 검.
낡아 빠진 옷.
주름이 가득한 얼굴.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
“노인장이 가서 뭘 하려오? 상대는 군대조차 상대할 수 없는 살육마 란 말이오”
그러나 노인은 외친다.
“그러니 내가 가겠소!”
관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노인을 무시하며 말 위로 올라탄다. 마을사람들은 창피함에 얼굴을 붉힌다.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는 노인이 가건 말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 려 거추장스러운 미친 늙은이가 사라진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른 이가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설마 그 나이에 공주와 혼인이라도 하려오?”
“내 나이가 있는데 어찌 그토록 어린 공주님과 혼인을 하겠소?! 그런 것이 아니외다”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설마 그 나이에 명예를 가지고 싶소? “그렇소!하지만 다른 이들이 내게 주는 명예 따위는 필요 없소! 오로 지 나 자신이 수여할 영광이 필요할 뿐이외다”
또 다른 사람이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그렇다면 그 살인마를 무찌르면 노인장에게 무엇이 남는다고 그러시오?”
“바로 내가 남소이다!”
이름조차 없는 작은 마을의 광장에서, 노인은 그 살인마를 물리치러 가겠노라 그리 선언했다.
낡은 갑옷에 푸르릉 거리는 늙은 당나귀. 이름이나 간신히 바느질한 푸대 같은 깃발. 그 위에 올라선 노인은 검을 치켜들고 외친다.
“가자!가자!”
당나귀는 느릿느릿 움직인다.
하하하하 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을 전체에서 울린다. 아이들은 나와 조롱 섞인 시선으로 노인을 구경한다.
동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있지만 막지는 않는다. 그는 세 금을 징수해 가던, 나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