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9장. 오우거 슬레이어. 6
“흐음. 이쯤인가.”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는 로아도르를 뒤로 한 체, 사부는 부러진 목검을 내던지며 눈앞에 펼쳐진 숲을 바라본다. 가르스로부터 벗어나 사부 명명 전투 행군 (戰 鬪 行軍 )으로 이동하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로아도르가 목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 시기부터 시작해온 것. 이제는 일반 여행객의 속도보다 조금 느린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사부는 용병단에서 서류와 함께 준 지도를 꺼내 보고 있었다. 이윽 고,이곳이 맞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로아돌. 일어나라.”
사부는 쓰러진 로아도르를 발로 툭툭 건드린다. 이것도 익숙해진 일 인지라 그는 묵묵히 일어난다. 물론 이때 표정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경 우는 거의 없었다.
“어디, 그럼 오크 무리부터 상대해야겠지.”
“괜찮겠습니까? 오크로 막게 하고 도망가는 영악한 오우거라고 들었 습니다만.”
“괜찮아 괜찮아. 느려터진 오우거가 뛰어 봤자야. 그리고 수련차 하 는 것이니까 여차하면 내가 끌고 와서 네 앞에 대령해두마.”
최상급의 소드 익스퍼트조차 상대하기 힘든 오우거를 두고 시큰둥하 니 말하는 사부였지만, 실재로도 가능한 인물인지라 로아도르는 묵묵 히 고개를 끄덕인다.
숲은 고목이 많은 지역일 뿐,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평지에 있는 만 큼 지형의 고하도 그리 심하지 않았고, 너무 울창해서 불길하다거나 하 는 것도 없었다. 그저 지리상 길로서 쓸모가 없기에 사람의 손길이 지 나치게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수풀을 어느 정도 갔을까, 나무 아래로 두 개의 인형이 보인다. 로아 도르는 사부를 바라본다. 그는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쿠우웅!!
로아도르가 가죽을 풀자 쇳덩어리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 어진다. 그는 목검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맨손으로, 라는 조 건이 붙은 것은 오우거 뿐이다.
그제야 로아도르와 사부를 발견한 두 인영은 벌떡 일어난다.
“키에엑!
“케케겍!!”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한 목소리. 빈말로라도 인간의 목소리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150cm 정도로 보이는 작은 체구에 들어 올리는 무기 는 글레이브.
오크였다.
“자,네가 상대해봐라”
사부는 뒤로 물러난다. 마치 돌덩이를 눈앞에 둔 것처럼 태연했다. 빈말로라도 오크에게 죽을 정도로 가르치지는 않았기에 나오는 자신감 이다. 그러나 정작 나서는 로아도르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 보고 있었다.
수많은 대련을 겪었지만, 실전은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다. 저들이 강하건 약하건 간에,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 날로 자신의 생명은 끝 이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켠 로아도르는 오크들에게 달려든다. 두 마리의 오크 는 어마어마한 덩치에 어마어마한 검을 들고 오는 인간을 상대해볼 생 각이 들지 않는 듯,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로아 도르였다.
제아무리 몬스터라지만, 뒤를 베어야 하는가?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사부는 질렸다는 듯 “저 멍청이를 어떻게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이 마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상황은 로아도르가 원하는 대 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케겍!케겍!”
달아나던 두 오크. 로아도르가 공격을 하지 않자 서로 바라보며 뭔가 대화를 나눈다. 이윽고 만만하다고 여겼는지, 글레이브를 거칠게 들어 올리며 로아도르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움직임도 느리고, 힘도 없다. 지금의 로아도르에게 오크는 정말 로 손쉬운 상대다. 아니, 손쉬운 상대여야 한다. 로아도르는 잘 되었다는 듯 목검을 치켜 올렸다. ‘그래, 도망가지 말고 덤벼라.
그러나.
투두둑!!
‘이런 ’
나무에 부딪치는 목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장소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무식한 목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케게게겍!
괴상한 외침과 함께 글레이브를 찔러오는 오크. 핏.
다리에 글레이브에 베인 흔적이 남는다.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로아 도르는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서 있지만, 단 하 나.생명을 죽여 본 적이 없다는 점이 이 상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치잇!
이빨을 꽉 깨물며 로아도르는 목검에 힘을 주어 두 조각으로 부러트 린다. 그래도 그 무식한 크기는 여전했지만 적어도 휘두를 만한 크기는 된다.
그리고, 오크를 향해 부러진 목검을 내리쳤다. 쾅!
“키에엑!
쇳덩어리를 뗀 로아도르의 속도를 오크가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즉시 두개골이 박살나며 싯누런 뇌수가 분수처럼 뿜어진다. 로아도르 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로 물든다.
다른 한 마리는 겁을 먹은 듯, 글레이브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 아 있다. 로아도르는 그 앞으로 다가가 목검을 들어 올린다. 그러나, 차 마 바로 내려치지는 못하고 침중한 눈으로 오크를 바라보고 있다. 방금 전,너무나 손쉽게 한 마리의 오크를 죽였다. 패자다. 약자다. 죽여야 하는가?
그러자 옆에서 사부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려쳐라. 대련과는 다르다. 이건 실전이란 말이지. 봐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로아도르의 눈이 잠시 흔들린다. 하지만 각오를 다진 눈으로 오크를 노려본다.
콰앙!!
로아도르는 말없이 오크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켜보던 사부 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착한 놈은 아니다. 아마, 첫 살생이라는 점에서 당황하고 있는 것을 터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흔들리면 곤란하지.
사부는 로아도르의 머리를 툭 쳤다.
“가자. 아직 생각에 잠기기엔 할 일이 많다.”
“네.사부.”
그는 퍼득 정신을 차리며 사부의 뒤를 따른다. 두 오크는 정찰병 비슷한 존재였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로아도르의 눈에 넓은 공터에 자리 잡은 오크 부락이 보였다. 그들은 당당하게 걸어오는 인간들을 발견하자, 케게겍 거리는 외침 과 함께 일제히 글레이브를 들어 올린다. 숫자는 약 40.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부족이라면 활도 갖추고 있겠 지만 그들은 오로지 글레이브 뿐이다. 하기야, 이 정도로 낙후한 부족 이니 오우거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일 터이다. 쿵!쿵! 쿵!
로아도르는 사부에게 받은 새로운 목검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간다. 검을 올려 든 높이는 무려 5미터에 육박한다. 생각지도 못한 두려움에 오크들은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에 오크들에게 파고든 로아도르.
“하아압!!”
콰과광!!!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서너 마리의 오크가 공중에 떠오른다. 글레이브 로 막아보는 녀석도 있었지만, 워낙에 검신이 두터운 목검이라 베어지 지 않는다. 오히려 글레이브가 부서지거나, 통째로 공중에 떠올라 버리 는 것이다.
순식간에 20여 미터 이상 떠오르는 오크들은 비명을 지른다.
“키게게겍!”
투두두둑!!
땅에 떨어진 오크들은 터져 버린다. 지들끼리 부딪쳐 죽어 버리는 경 우도 있었다. 순식간에 피로 물드는 땅.
이번에는 반대로 로아도르는 검을 들어 올려, 원을 그리며 비스듬히 아래로 벤다. 아니다. 이미 베어버린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힘으로 짓 이겨 버린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거기에 말려 들은 오크들은 몸이 두 개로 ‘찢어져 ’피로 물든 바닥에 투둑투둑 떨어진다.
거기까지였다. 오크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집어던지고 달아난다. 개중, 몇몇 용기가 있다 싶은 오크는 로아도르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차례차례 터져 나가거나, 몸이 찢어질 뿐이다. 게다 가 조금 전과는 달리, 로아도르는 독한 눈으로 도망가고 있는 오크들조 차도 봐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오로지 힘으로,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로아도르. 그러나 그 를 지켜보는 사부는 어째서인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주시한다.
“쯧.
사부는 가볍게 혀를 찼다. 예상이야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실망 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물론 누가 봐도 ‘압도적 ’이라는 표현은 옳 았다. 하기야, 지금의 저 녀석에게 오크 40여 마리가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첫 살생 어쩌고 하면서 당황하는 것도 다 예상 범위에 넣었던 것 이다. 하지만.
“역시나 ~ 가르쳐 주지 않으면 모르는 정도라는 것인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부는 생각을 고친다. 그저 ‘검에 생명을 걸었다.’따위의 고리타분함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저딴 움직임 을 보일 뿐일 것이다.
“키에에엑!”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마지막 오크를, 목검으로 머리를 내 리쳐 터트린 로아도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후우!
숨을 몰아쉬며 로아도르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오크의 피를 닦았다. 첫 살생이었기에 힘 조절이 안 되었고, 그의 눈동자는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멍청한 놈.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이지. 쯧..
로아도르는 멍하니 사부를 올려다보았다. 이겼다. 오크 40마리를 상 대로. 그런데도 사부는 자신을 질책하고 있다.
“따라와라. 네 녀석의 단점을 가르쳐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