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9장. 오우거 슬레이어. 4
아스토니아 제국은 오랜 세월로 인해 분위기가 느슨해진 것은 분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기본적인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타락한 것은 아니다. 틀림없는 대륙 제 1의 대국이었고,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국경을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빈 틈을 찾기는 덩치에 비해 의외로 찾기가 쉽지 않다.
“야!좀 더 빨리 달려!”
사부의 외침에 로아도르는 이를 뿌득 갈면서 달리는 속도를 올린다. 미운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얄미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말 위 에 올라타서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고 있다니! 애초에 이런 거, 그냥 버리고 가면 쉽게 도망칠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두두두두!!
그리고 그들의 뒤로, 10명의 기마 병사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 다.
“거기 서라!”
“멈춰라 이 범죄자들!”
그들의 외침에 로아도르는 머리 속에서 핑 ~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분명 납득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도 내렸다. 그렇지만. 뭐라? 이 나에게 범죄자라고!?
물론 저들의 입장이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허나, 사람에게는 이성을 넘어서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위해 로아도르가 돌아 서려는 것을 사부가 급히 목검을 쿡쿡 찌르며 못 돌아 서게 방해를 한다.
“멍청아!!뭐 하는 거냐!”
“못 참겠습니다 사부!왜 제가 범죄자 소리까지 들으면서 국경을 넘 어야 하는 겁니까?!”
“시끄러!!시끄러!!일단 닥치고 달리란 말이다!!나중에 삼박 사일동 안 설명해 줄 테니까!!달려!”
돌아서고 싶어도 사부의 목검 때문에 돌아 설 수도 없다. 로아도르는 분한 마음을 삭히며 다시 달렸다.
애초에 로아도르의 속도로는 말을 이길 수가 없다. 아니, 원래 마나 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을 이길 수가 없으 리라. 그러나, 현재의 로아도르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온 몸에 주렁 주렁 달고 있는 것을 버린다면, 틀림없이 말 보다는 빠르다. 어쨌든, 달고 있기에 따라 잡힐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두두두!
결국 기마대는 그들을 앞지르고 말았다.
“로아돌!막아라!”
막으라니! 차라리 모욕을 당할지언정 당당한 제국의 귀족인 자신이 제국의 병사들을 손 댈 수는 없다. 혹 영지전이라도 벌인다면 모를까, 이들은 귀족들의 사병이 아닌,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군인들이 다.게다가 저 들은 임무에 성실히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마 손을 댈 수는 없기에 멈춰 서 있는 사이, 그들은 빙 둘러 사부와 로아도르를 포위한다.
그들을 인솔하는 한명의 남자가 앞으로 나온다. 제대로 된 갑옷과 기 사단의 문장을 새긴 깃발. 제국의 기사였다.
“흐음? 척 보기에도 수상한 자들이로군.”
기사는 의아한 듯 사부와 로아도르를 살핀다. 그도 그럴 것이, 행색이야 둘째 문제 치고서라도 제국 내로 들어오려 는 밀입국자는 많아도, 빠져 나가려는 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검을 뽑아 올린다.
“어찌되었든, 좋지 않은 이유임은 분명하겠지. 자,저 범죄자들을 인 행하라!”
핑 ~
로아도르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외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멈춰라, 영광스러운 제국의 기사여! 부디 내 얘기를 들어 주길 바란다!나는 로아도..읍읍!”
순발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로아도르의 손으로 막은 사부는 크게 웃 으며 외친다.
“하하하!우리는 이름 높은 아노스 도둑단의 두목과 그 부두목! 신속 의 잭신과 부 (?)신속의 로아돌이다!!”
도둑이라고? 이 내가?
이제 로아도르의 눈에 핏줄이 선다. 그러나 기사도, 병사들조차도 믿 어주는 기색은 전혀 없다. 도둑이 자신이 도둑이라고 밝히는 경우는 없 다.기사는 한층 더 의아한 눈길로 그들을 살핀다. 도대체, 어떤 자들인지 알 수가 알 수가 없다.
“이유야 아무래도 좋다. 잡아 놓고 조사해보면 될 일이다. 기사가 지시를 내리자, 기마병들은 장창을 겨누며 그들을 둘러싼다. 일반 보병, 설령 저 기사라 할지라도 지금의 로아도르에게는 상대가 안 될 터.
“차라리 잘 됐군. 다 때려눕히고 가자. 다행히 10여명 밖에 안 되고 게다가 기사도 아니니까. 너라도 할 수 있을 거다.”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같이 가서 당당하게 신분을 밝히고 나오도 록 하지요. 이대로 도둑 취급을 받고 갈 수는 없습니다”
로아도르는 차라리 후련한 듯 답했다. 정말로 꽉 막힌 녀석이다. 사 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암암.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가서 조사받고, 제대로 확인 절차 제대 로 받고 하면 3개월은 걸릴 텐데. 게다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엘 로운으로의 통행증이 나올리는 없으니 어찌 되었든 간에 범죄는 범 죄...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범죄자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드물게 사부의 말을 자르며 로아 도르는 단호히 답한다. 그러자 사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에서 내렸 다.
“에고. 정 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톡.
가볍게 수도로 목을 건드리자.
쿠웅!
엄청난 먼지를 휘날리며 로아도르는 쓰러진다. 사부는 한숨을 푹 쉰다. 로아도르는 몰랐겠지만, 애초에 이런 선택도 있었다. 녀석을 기절 시키고 자신이 매고 도망가면 된다 라는 선택지도 말이다. 저 녀석의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 아무런 말도 안하고 있었건 만.
정말 돈이 없다. 금속은 비싸다. 이 상태로라면 정말 도둑질이라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그럼. 죽일까 살릴까.”
사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안장에 매어두었던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낀다. 기사와 병사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동료를 쓰러 뜨리는가 싶더니, 검은 장갑 하나 끼고 털레털레 앞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묘하게 태연한 것이, 섬뜻하기까지 했다.
“뭐,뭐 하는 짓이냐?”
기사는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뭐,제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제국의 신민들이시니, 내 목숨은 붙여 주도록 하지”
기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간 사부.
“아악!”
“뭐,뭐야 이건!”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창을 들어 올린다. 그러나, 이미 사부는 기사의 말 머리에 쪼그려 앉아 히죽 웃고 있었 다.속도도 속도지만,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머리 위에 뭔가 있다는 자각은 있는지 푸르르 거리며 머리를 갸웃 rj고 있다.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사부는 살포시 기사의 검을 꺽었다.
챙강!
“자,그럼. 물러나 주실까? 아니면 이 한 벌판에서 죄다 기절이라도 해보실텐가?”
“으으음!”
기사는 부러진 검과 사부를 번갈아 보며, 이럴 리가 없다는 듯 신음 소리를 내뱉는다. 이윽고 기사는 안장에 달려 있던 새로운 검을 꺼내 사부를 향해 겨눈다.
“놀라운 자로군!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국경을 지키는 것이 다.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지!”
“젠장할 놈 같으니. 끝내 귀찮게 만드는 구만.”
알아서 도망가 줬으면 편안히 놔줄 생각이었건만, 끝내 일을 귀찮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된 이상. 말 한 마리는 나에게 내놔야 할 것이다.”
사삭!
말 머리위에서 뛰어 오른 사부는 기사의 뒤편으로 이동하며, 로아도 르와 마찬가지로 수도로 목을 툭 친다.
“아악!
“으으윽!”
순식간에 기사, 그와 동시에, 병사 다섯 명을 똑같은 방법으로 쓰러 뜨리는 사부.
말 위의 병사들중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다른 이에게 눈짓을 하 고, 남은 인원으로 다시 포위망을 구축한다. 눈짓을 받은 다른 병사는 제국의 영지 쪽을 향해 달려간다.
지휘자가 없음에도 차분히 대응한다. 나름,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다.
“자,어차피 너희가 나서도 나를 쓰러 뜨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거 다.그렇다면, 이들을 수습한 다음 위쪽에 알려야 하는 게 도리 아니겠 어? 나를 귀찮게 한 대가로 말은 한 마리 정도 넘겨주어야 겠지만 전멸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선임 병사의 눈빛이 흔들린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보이지 않는다. 모두 기절만 했을 뿐이 다.게다가 혹 말에서 떨어져 부상이라도 입을까, 전부 말 위에 고스란 히 쓰러져 있었다.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자다.
“좋다. 하지만 그 실력을 보니 오히려 범죄자라는 생각이 확고해는 군.”
“음 제법 말이 통하는 친구로군.”
그의 악의에 찬 대답을 듣고도 사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아도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말 위에 쓰러져 있었다. 천천히 몸 을 살펴보니 몸에 달고 있던 쇳덩어리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길 을 돌리니, 말에서 내려 자신의 쇳덩이를 대신 차고 걸어가고 있는 사 부가 눈에 들어 왔다.
“타국에 오는 것은 처음이지?여기가 엘로운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은 드넓은 벌판.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로아도르는 공허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보냈으니까.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요”
사부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다.
“저는, 모든 것을 견딜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설령 저의 온 뼈를 부신다 하더라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생각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저들은 그저, 임무에 충실하려고 했을 뿐인데....”
단순히 방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조금 더 근본적 인 문제일 터이다.
이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누구나,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그 누구라도 말이 다.”
사부는 나지막이 말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아무것도 안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하하. 아니지. 아무것도 안했다. 라는 것조차도 다른 이들에 게 피해를 준다. 그렇다면 모두 죽어야겠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살아간다는 그런 거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제 아무리 신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하지. 세상에 는 신을 증오하며 죽어가는 이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건 네 녀석이 내어 야 할 답이겠지.”
사부는 돌연 히죽 웃으며 로아도르의 다리릍 툭 친다.
“괜찮잖아? 적당히 자신을 생각해도.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제 좋을 대로 행동하는 것과,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신 념대로 행동하는 것은 분명 차이점이 있을 테니까”
사부는 손을 벌리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