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9장. 오우거 슬레이어. 2
물가에 위치한 공터에 이르자, 두 사제는 짐을 풀었다. 말에서 내려 온 사부는 휘파람을 불며 배낭을 바닥에 던지고는 그 위에 드러눕는다. 로아도르는 지체 없이 숲으로 들어가 장작거리로 쓸 나무를 주워온다. 그리고 나무를 비벼 단숨에 불을 붙인다. 전과는 달리, 미숙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숙련되어 있 다.
“뭣 좀 잡아 오겠습니다”
“그래라.
시큰둥하게 답하는 사부. 이제 도저히 일반 ’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 도의 육체를 가지게 된 만큼 먹는 양도 남다르다. 마을에 들릴 때 준비 해둔 식량으로는 로아도르의 양에 차지 않기에, 식사는 대부분 현지 조 달하고 있었다.
쿠웅!쿠웅!
역시 익숙하게, 로아도르는 몸의 쇳덩이를 바닥에 집어 던진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물가의 자갈들이 퍼벅 소리를 내며 깨지는 소리를 들린다.
마치, 몸에서 중력이란 것이 없어진 느낌. 두둑두둑
주먹을 말아 쥐자 손마디에서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손의 마 디마디에는 마치, 옅은 잉크로 그어 둔 듯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옷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온 몸의 관절이 있는 모든 곳 에는 그 검은 줄이 그어져 있다.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푼 로아도르는 준비자세도 없이 바로 숲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투웅!
엄청난 힘에, 엄청난 속도였다. 마치 마나를 사용하는 자가 달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원리는 다르다.
저건, 그저 어마어마한 힘으로 박차고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눈앞에서 로아도르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사부는 자신의 손을 내려 다본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목검을 쥐고 있던 그 손.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고 있는 손.
“후후후..”
사부는 입고리가 찢어지도록 짙은 웃음을 흘린다. 그 웃음에 담겨 있 는 것은 분명.
애 (愛 )그리고 증 (憎 )
아아, 기대된다. 너무나.
사부의 광기 어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로아도르는 사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른 가신들과 접대용으 로 나온 사냥터에서 몰이꾼이 몰아온 사슴이나 잡아 봤을까, 야생에서 살아가는 날짐승을 쫓아본 경험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육신은 활도 없이, 맨 육체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다.
투두두두!!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숲 속의 동물들이 깜짝 놀라는 것이 보인다. 토끼도 보이고, 급히 날아오르는 새도 보인다. 하지만 로아도르가 노리 는 것은 그런 작은 것이 아니다.
일단, 성에 안찬다.
한참이나 더 숲에 들어갔을까? 저 멀리 멧돼지가 몇 마리 보였다. 자 신을 숨기는 기색 하나 없이 달려오는 로아도르를 보고서는 화들짝 놀 라는 모습이 보였다. 저돌적인 멧돼지라고는 하나, 명백히 보이는 강자 앞에서 무턱 대고 달려들 짐승은 아니다. 그들은 로아도르가 자신들의 포식자임을 분명히 인식한 것이다. ‘쿠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급히 달아난다.
로아도르는 달려서 그것을 앞지른다. 그 중에서 가장 두툼해 보이는 녀석. 시선이 마주치자 멧돼지의 눈에 공포감이 떠오른다. 터억!
손으로 머리를 잡자, 멧돼지가 쾌엑!’하며 비명을 지른다. 멧돼지가 달리던 가속도에 로아도르의 힘이 합쳐져 멈출 수도 없다. 로아도르는 머리를 잡고
나무에 쳐 박았다.
콰아아앙!
나무가 부셔지는 것과 동시에, 멧돼지의 머리뼈가 완전히 함몰 되는 것을 로아도르는 느꼈다.
즉사해버린 멧돼지를 어깨에 턱하니 걸치는 로아도르. ‘이걸로 한끼는 되겠군 ’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멧돼지를 한 마리 더 잡아 갈까 하다 가 그것은 너무 양이 많다 싶어 관둔다.
문뜩, 자신이 처량함에 한숨을 푹 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무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은 틀림없이 푸르렀다. 분명 강해지기는 했다. 몸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다. 그저, 앞이 너무 막막할 뿐이다.
“드래곤이라....”
중얼 거리며 로아도르는 손을 내려다본다. 정확히는 검은 줄을 보고 있다. 이것으로, 로아도르는 육체가 온전히 자신의 것만으로 이루어지 지 않게 되었으니까.
벌써 몇달전이었던가?
“아아아아악!!”
달리는 것은 견디다 못한 로아도르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 다.그의 양손은 무릎을 부여잡고 있다. 결국, 과도한 무게를 그의 육체 가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쯧쯧. 하기사, 이 정도도 잘 버틴 셈이지. 사부는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분명 이 상황을 예 측하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그는 연신 혀를 차며 가방에서 검은 망토를 꺼낸다. 찌이익.
이상한 일이었다. 틀림없이 천의 재질일 터인데, 사부가 원하는 만 큼,마치 종이처럼 찢어져 나온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마치 망토 자 체가 사부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로아도르가 고통에 시달리건 말건, 사부는 계속해서 망토 자락을 미 세하게 찢었다. 자세히 보면 그 크기는 전부 달랐다. 무릎을 전부 감쌀 만한 것에서부터, 겨우 손가락에 감을 정도의 크기까지. 그리고 사부는, 그것으로 로아도르의 관절을 꼼꼼히 감쌌다. 로아도 르가 마치 검은 미라처럼 변하자.
사부는 두 손을 로아도르의 몸에 대었다.
“천변기. 내 뜻을 따르라.”
-이 순간부터, 나에게서 독립하여 로아돌에게 종속하라 부우우웅!
어마어마한 검은빛 덩어리와 함께. 검은 망토는 로아도르의 몸에 스 며들어 간다.
순간, 고통을 잊고 사부를 바라보는 로아도르. 사부 역시 마나 부적응자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 로 해본 적조차 없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부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 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건, 마나를 이용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오러 소드 같은 것이 아닌 마법이라 불리는 종류일 것이다. 로아도르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사부가, 마나까지,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지상에 저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존재는 할 것인가? “자,끝이다.”
사부가 히죽 웃으며 로아도르의 무릎을 탁 쳤다. 그는 그제서야 퍼득 을 차리며 무릎을 내려다봤다. 고통이 사라져 있었다.
“사,사부. 이것은 도대체?”
“네 관절을 대신할 물건이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버틸 거야. 설령 몇백 킬로그램이 넘는 검을 든다 하더라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