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8장. 누구나 다른 이를 부러워한다. (끝 ) 로아도르는 여전히 팔굽혀 펴기를 하며 바닥에 있는 검을 노려보고 있다. 일단 그것을 들어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부가 내린 과제는 저것을 일반 검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등에는 소년 신관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올라타 있다는 점 정도일까.
로아도르는 자신이 무한한 성장을 한다면,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더 힘들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단축되니까. 처음에는 바위 같은 것을 생각했었지만,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게 다가 밧줄로 묶으면 피부가 너무 아팠다. 그러니 스스로도 ‘안 떨어질 무거운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하세요. 안 힘들어요?”
소년 신관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이 부탁을 받았을 때는 황당했지만 이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재밌는 탈것에 불과했 다.
로아도르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할 힘조차 아껴서 육체에 쏟아 붙고 있다. 소년신관도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정말, 대단해요...”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부러움이 한가득 담겨 있다. 부러움이라? 로 아도르는 소년신관을 내리게 한 뒤,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거지?”
“형도 그렇고. 저 사부님도요. 그토록 열심히 하는 노력이 부러워 요.”
신관들조차 이름을 모르는지, 다들 로아도르를 따라 사부라고 부르 고 있다. 그 전에는 남자, 어이 정도로 불렸던 모양이다. 노력이 부럽다? 로아도르는 눈썹을 찌푸린다. 왜 하지도 않고 남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하지만, 사부의 이름을 입에 담은 것이 더 의문이었다. 저 사람이 여 기서 한 거라곤 술 마시고 자는 것밖에 한 것이 없는 걸로 아는데.
“전부터 물어 보고 싶었다. 사부는, 대체 여기서 뭘 했기에 이토록 잘 해주는 거지?”
“그야, 큰 은혜를 입었으니까 그렇지요.”
“그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예.숨길 일은 아니니까요.”
소년 신관의 말대로라면 정녕, 저 사부라는 자는 대단했다. 마을의 위기.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사태였다. 수십 년에 한번 찾아오는 홍수. 근처에 큰 강은 없기에 범람의 위기는 없었지만, 문제는 산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산사태였던 것이다. 터커 영지는 산과는 제법 거리 가 떨어져 있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이곳에까지 여파가 미칠 것임이 분명했다.
터커 영주도, 그리고 라의 신관들도 서둘러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시 간이 너무 없었다. 농작지를 전부 망치는 것은 물론, 인명 피해까지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 그 남자는 불쑥 나타났다.
-도와주지. 대신 내가 부탁 하나를 들어줄 것. 이것이 조건이다. 어때?-
남자는 당장 우르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림에도 여유롭게 그들의 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노신관과 영주는 정신 나간 남자라고 생각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대책을 논의하던 신관 중 누군가가 말 했던 모양이다.
‘뭐든 해줄 테니까 할 수 있으면 빨리 해! 남자는 바로 손가락을 튀기며 히죽 웃었다. ‘오케이. 어디 보자. 이 정도 규모면 장갑으로는 무리겠는걸. 이거, 천변기(千變技)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투덜투덜 거리며 남자는 가방에서 검은 망토를 꺼내 둘렀다. 그리고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산사태는 영지를 피해갔다. 정확히는, 영지라는 한 부분 을.
“이런 일이 있었데요.”
말로 전해 들은 것이라 현실성은 없었지만, 이제야 이 신관들이 사부 를 대하는 태도가 이해는 간다. 어째서인지 모를 존경. 그리고 그 뒤에 숨은 공포를.
그리고 자신조차도 그리 느낀다.
‘산사태를 막았어? 사부가?
산사태는 인간이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마법사로 치면 8써클 이 상의 대마법사나 할 수 있을까?차라리 일으키는 일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막아낼 수 있는지, 로아도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힘을 지닌 이가 자신의 사부라는 것이다. 로아도르의 눈이 번쩍인다.
“부탁 하나만 할 수 있겠어?”
“네? 아 네.얼마든지요.”
로아도르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년신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바로 후회했다.
20Kg은 될 것 같은 돌덩이를 끌어안고, 로아도르의 등 뒤에서 떨어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때, 진전은 좀 있나?”
볼일이 있다고 나가서 며칠이나 보이지 않았던 사부다. 언제 다시 신 전으로 돌아온 것인지 입에는 육포 같은 것을 우물거리며 그에게 어슬 렁어슬렁 다가온다. 등 뒤에는 가죽주머니에 뭔가 한가득 짊어지고 있 었다.
역시, 산사태를 막아낸 영웅이라 할지라도 저런 꼴을 보면 긴장할 마 음이 들지 않는다.
부우우웅!
로아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 있게 목검을 들어서 사부를 향해 겨눌 뿐이다.
목검의 끝에는 흔들림이 없다.
“건방진 놈 같으니.”
투덜거리듯이 말했지만 사부 눈에도 흡족한 기색이 담겨 있다. 그는 짊어지고 있던 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쿠우우우웅!!!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어서 가벼운 것인 줄 알았더니,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린다.
“자,그럼 이제 슬슬 달리러 가볼까?”
사부의 말에 로아도르의 인상이 구겨진다. 어째서인지, 저 가죽 주머 니가 무척 마음에 걸린다.
“다만, 이제부터는 조금 다르게 달릴 거다”
사부는 휘파람을 부르며 로아도르의 몸에 이것저것을 부착한다. 마 치 거미줄과 같이 늘어진 가죽끈이었는데, 안에 뭔가를 꼽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색이 까만 것으로 보아 소는 아니다. 아마 무슨 몬 스터의 가죽인 듯싶었다.
그리고, 사부는 잘 다듬어진 금속 덩어리를 꺼내어, 그 안에 꼽았다. 휘청!
몸이 절로 휘청거릴 정도의 무게다. 그나마 반대쪽에 꼽아서 몸은 균 형을 맞췄지만, 반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진다.
“개당 20킬로그램이다. 가뿐하지?”
이건가!이거 만들려고 그동안 안 보인 건가! 로아도르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이거, 앞뒤 양면으로 네 개를 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팔에 이어지는 부분은 꼽지도 않았다.
“하나하나 차분히 늘려가자고.”
씨익 웃으며 말하는 사부.
로아도르는 오싹해졌다.
전부 꼽았을 경우에는 320킬로그램이다. 인간이 담당할 수 있는 영 역이 아니다. 나름대로 해냈다고 의기양양해 있었는데 바로 이런 시련 을 주다니.
올 때와 마찬가지로, 떠나갈 때도 신관들의 눈에는 동정 어린 기색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3미터짜리 목검을 가장한 통나무를 들고 양 다리에는 도합 40킬로그램의 쇳덩이를 달고 있다. 자신이 생각해도 썩 좋은 꼴은 아닌지라 로아도르는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그러던 중,소년신관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이곳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아서인지, 소년은 헤어지기 아쉬운 듯 눈물을 그렁이고 있었다. 로아도르는 어째서인지, 지금도 공작저에서 기다리고 있을 충실한 전속 시종이 떠오른다. 쿵!쿵!
한발짝 나아갈 때마다 땅이 울릴 정도다. 신관들의 동정어린 시선이 한층 더 강해진다.
“나와 사부가 부럽다고 했나?”
로아도르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소년신관의 머리를 쓰다듬는 다.
“하지만, 나도, 사부도 다른 이를 부러워한다. 아니, 누구나 다른 이 를 부러워하지”
세상에 남부러워 할 것 하나 없는 사람조차도,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열심히 노력하는 거 아니겠나 그리 말하고 돌아서는 로아도르. 소년은 그의 손길이 오간 머리를 매 만지며 로아도르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말 자체가 저것을 지탱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사 부는 수레 마차를 구해 그 위에 올라타 있다. 어느새 또 만든 기다란 목 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사부는 그 목검으로, 로아도르의 등 뒤를 쿡쿡 찌른다.
“자아,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