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검 ’밖에 어울리는 것이 없다. 제목 제 8장. 누구나 다른 이를 부러워한다. 4 가르안은 비공식적으로 황명을 받았기에, 일반적인 용사들처럼 모두 에게 환영을 받으며 떠나지는 않는다. 아무런 소문 없이, 조용히 떠나 가야 한다.
“가르안....”
인적이 드문 황궁의 뒤뜰.
루리아 공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가는 연인의 손을 마주 잡는다.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용사라니. 멋지기보다는 불안이 앞선다. 책에 나 오는 용사는 오로지 성공한 자일 뿐. 그에 앞서 수많은 자가 목숨을 잃 었다는 것 정도는 루리아도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가르안이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드래곤은 차원이 다르 다.
그러자 가르안은 빙긋 웃으며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걱정하지 마 루리아. 반드시, 반드시 루카펠을 물리치고 나서 너와 결혼할 테니까”
결혼이라는 말에 루리아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와의 시선을 피하 지 않는다. 기쁘지만, 정말로 기쁘지만.
“하지만, 당신이 없어서야 의미가 없잖아요.”
“걱정하지 말라니까”
자신의 몸 안에는 엘 카이자의 전신의 힘이 담겨 있다. 1만 년의 수명 을 꽉 채운 그의 힘은, 루카펠 정도는 물리치고도 남을 것이다. 문제라면, 그 힘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가르안....”
“루리아....”
어느새 분위기가 잡혀 있다. 서로 홍조를 띄운 체 바라보던 두 연인. 가르안은 그녀에게 입술을 맞추고, 루리아 공주는 뒤꿈치를 살며시 들 어 올린다.
그리고, 가르안이 드래곤을 잡으러 간다는 소식을 비밀리에 접하게 되어, 그를 만나고자 찾아온 아르시엘은 놀라며 새어나오는 소리를 손 으로 가린다.
언니의 키스씬을 목격하고만 아르시엘은 서둘러 기둥 뒤로 몸을 숨 긴다. 키스를 끝내고 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그의 자상한 얼굴을 보 며 아르시엘은 고개를 숙인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진정 저 남자와 맺어진다면 언니는 행복하겠다. 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르시엘로써는 가르안을 좋 게 볼 수가 없다.
그에게 패배해, 울면서 돌아서던 한 남자를 잊을 수가 없어서. 아르시엘은 물끄러미 손을 내려다본다.
가르안이 떠나고, 그 뒷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루리아가 돌아 설 때까지.
기둥에 몸을 기대어 한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앗싸 좋구나”
수도 아스토니아의 성 바깥으로 나온 가르안은 기지개를 쭉 펴며 외 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시레타가 투덜투덜 거리며 타고 있는 갈색의 준마의 갈기를 쓰다듬는다.
“앗싸라니, 천박하군 가르안. 왜 그렇게 신이 나 있는 건가.”
수습기사의 갑옷에서 여행용의 가죽 갑옷으로 바꿔 입은 카시레타. 그가 시큰둥한 표정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황 실 기사단에 들어갔건만.
이게 다 저 망할 자식이! 드래곤 퇴치의 동료로서 자신을 선택한 탓 에 이 꼴이다! 게다가 살아 돌아 올 수나 있을런지.
“하하. 언제나 활기찬 게 가르안의 매력이니까”
그리고 그의 옆에서 수수하게 웃는 소년은 베르패트. 아카데미의 마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이다. 18세라는 이른 나이임에도 4 써클 에 이르렀으니, 그 역시 주위에서 내버려 둘리가 만무하지만 가르안이 여행 동료로서 데리고 온 것이다.
“야 이 자식들아. 여행이라고 여행!좀 들뜨란 말이다”
그러자 카시레타는 한숨을 푹 쉬고, 베르패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린 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호응을 해주지 않자 가르안은 혀를 차며 하늘 을 올려다보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자 어떻게는 수습을 해보려는지 베르패트가 허둥지둥 말을 꺼낸 다.
“에,그러니까. 에이오튼 영지로 가야 하는 거지. 그러자 카시레타는 가르안을 찌릿 노려보며 말한다.
“그래. 서둘러야 한다 이거지. 앞으로 한 달 안에 도착해야 해. 어느 누구처럼 잔뜩 들떠서 지체할 시간도 없어.”
“아아, 괜찮아 괜찮아. 느긋하게 가자고”
카시레타의 신경질을 깔끔하게 무시해 버리는 가르안. 오랜만에 저 커다란 성 안에서 나온 가르안이다. 여차 할 경우엔, 날아가 버리면 된 다.
오오. 여행! 모험!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니던 때와는 다른 것 이다!게다가 공주와의 결혼이 걸려 있는 대모험이다! 그러나 이주일 후.
“아아아악!지겨워!”
가르안은 하늘을 향해 외친다. 그러자 불을 때고자 장작을 주워온 카시레타가 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네 이놈 가르안! 친구들이 밥을 하고 있으면 와서 썩 도와야지 뭣 하 는 거냐”
가르안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분다. 방대한 엘 카이자의 기억. 이상하다면 이상하 달지, 요리에 대한 기 억은 전혀 없다. 이것저것 먹은 기억만 잔뜩 있어서 입맛만 높아진 셈 이다. 그로서도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뭐야, 왜 몬스터가 안 나와!”
다시 바락 소리를 지르는 가르안. 그러자 스튜가 달라붙지 않도록 휘 휘 젓고 있던 베르패트가 답한다.
“수도에서 나온 지 보름도 안 되었는데, 벌써 몬스터를 만나면 제국 의 치안을 의심해 봐야지.
“그것도 그렇군”
뚱하니 말하는 가르안.
“내일 하루만 더 가면 에르엔 산맥을 타게 되니까. 그때쯤이면 만나 기 싫어도 만나게 될 거야”
“아,에이오튼 영지는 에르엔 산맥 끝자락에 있다고 했지.”
그렇게 각자 아웅다웅하며 식사를 하고 있던. 그때였다.
“호오?”
가르안은 귀를 쫑긋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 멀리에 있지만 이 소리는 분명히 쇠와 쇠가 마주치는 소리. 거기에다가 작은 비명소리까 지 들린다. 좀 더 청각에 집중해보니, 대부분 여자가 지르는 높은 톤의 비명이다.
“따라와. 먼저 간다”
가르안은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검을 들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가 버린다. 카시레타와 베르패트 역시 굳은 얼굴로 자신의 스태프 와 검을 들어 올린다. 어떤 상황인지 물어볼 새도 없었지만, 가르안의 능력만큼은 믿고 있으니까. 무언가 위급한 상황인 것은 분명한 것이 다.
도착한 가르안이 목격한 광경은, 수십 명이나 되는 이들이 검을 들고 한 명을 둘러싼 모습이었다. 복장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병장기도 제멋 대로인 것으로 보아 마치 산적 같았다. 그에 비해,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한명, 그 여성은 등 뒤로 십수명의 여자들을 홀로 지키며 검을 휘 두르고 있었다.
굉장한 속도였다. 얇고 기다란 다리, 그리고 팔. 민첩한 몸에 어울리 는 빠른 움직임으로 남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지만, 막기에 급급한 듯 좀처럼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라면 시 간은 걸릴지 몰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텐데. 가르안의 감각에 그녀의 손목에 걸려 있는 팔찌가 걸려든다. ‘마력이 구속당해 있어?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자, 등 뒤에 있던 남자들은 버럭 소리를 지른 다.
“이이!빨리 저 엘프년을 잡아!”
“어째서 검을 쥐고 있는 거냐! 누가 뺏겼어!”
“상처 없이 잡아!가격 낮아진다!”
가격이라는 말에 가르안은 눈살을 찌푸린다. 저들은 아무래도 노예 상인인 모양이다. 제국은 기본적으로 노예 제도는 금지되어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귀족이라는 절대 신분이 있는 이상 노예라는 신분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엘프라는 말에 가르안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본다. ‘사람이 아니야?’
휘날리는 금발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저 기다란 귀. 아마 도 엘프라 불리는 종족이었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이 종족에 가르안은 멍하니 바라보다.
어떻게 생겼을까? 그때, 그녀의 팔에 베인 상처가 나며 피가 공중에 휘날리는 것을 본 가르안은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멈춰라!”
“뭐냐?!
“누구냐 네 녀석은!”
저 엘프 하나 당해내는 것도 벅차하던 남자들은 갑자기 새로 나타난 자에게 당황하며 무기의 방향을 뒤로 돌린다.
“실로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나 한 여성을 이리 핍박하다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척 보니 기사 수행을 막 떠나온 풋내기이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남 자들은
“뭐 하는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본 이상 살려 둘 수 없겠는걸.”
“죽어줘야 겠다. 흐흐흐흐”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남자들.
“네놈들에게 말해줄 이름 따윈 없다!”
저들 중 누구도 딱히 이름을 물어 보지 않았건만, 가르안은 그리 말 하며 검을 뽑아 그들에게 겨눈다. 그리고 짙푸른 오러로 불타오르는 검.
“소,소드 마스터다”
“아니, 왜 이런 곳에!”
“도망가라!
그야말로 길가다가 돌이 굴러 떨어진 격이다. 남자들은 모두 무기를 집어던지고 제각각 달아나기 시작한다. 검을 들고 멀뚱히 서 있던 가르 안은 모두 잡아 죽일까, 아니면 내버려 둘까 고민하던 중, 눈앞에 다가 온 엘프를 보고는 마음을 접고 검을 집어넣었다.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머엉..
가르안, 그리고 그제야 도달한 카시레타와 베르패트 역시 멍청히 그 녀를 바라보고만 있다.
천상의 목소리다. 사람과는 명백히 다른 목소리. 게다가 얼굴 역시 아름답기 짝이 없다. 엘프라고 해서 반지의 제왕의 아르윈 정도를 생각 했더니, 이것은 마치 로도스도 전기에서 디트리트가 만화 속에서 튀어 나온 것 같지 않은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실사판으로 말이다. 속이 살며시 보이는 나풀거리는 옷조차 그녀가 입고 있으니 성 (聖 )스 러워 보일 정도였으니.
대답이 없는 남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리던 엘프는, 다시 한번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엘라이라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