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41화 (41/100)

제목      제  8장. 누구나 다른 이를 부러워한다. 1 까앙!까앙!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하얀 공간. 무수히 많은 가능성. 이곳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 다. 이토록 넓은 공간. 어떤 이는 탑을 새우고, 어떤 이는 집을 만들며 또 어떤 이는 성을 만든다.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뿐만이 아니다. 수 천의 꽃밭을 가꾸는 이도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숲을 만들고, 강이 흐 르게 만들며 산을 솟아나게 만들고, 바다를 만든다. 크건 작건. 조야하건 화려하건. 모두가 이 하얀 공간에, 무수한 가능 성을 꾸미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자의 마음은 이토록 하얗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무수 한 가능성을 모조리 비워 두고, 그 중심의 공방에서는 오로지 검 하나 만을 만들고 있다. 밑에 피어난 몇 안되는 꽃이 이 하얀 공간을 장식하 는 것의 전부.

그렇다면 그는 뛰어난 장인인 것인가?그렇지는 않다. 익숙하지 못 하다. 불을 지피는 것이 서툴고, 망치를 내려치는 것이 서툴다. 만들어 지고 있는 검조차 조잡하다.

서툴다. 모든 것이.

검을 만들고 있는 이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곳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그 중심에는 무척이나 화사한 검이 꼽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쥐고 있다. 화려한 성. 아름다운 꽃. 드높은 산. 넓은 바다. 검의 주변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 찬란하게 장식되어 있 다.

남자는 그것을 노려본다. 오로지 그 중심에 꽂혀 있는, 금색으로 빛 나는 찬란한 검만을 노려본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검을 두드린다. 무수한 공간을, 가능성을 뒤로 하고. 까앙!까앙!

“으음....”

눈을 뜨니, 지겹도록 봐온 천장만이 로아도르의 눈에 들어온다. 꿈이 었나? 꿈인 것치고는 너무 생생하다. 아직도 귓가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하다. 현실임을 확인하고자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지독하 게 지친 신관 하나가 그의 몸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이 현실인 모양이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년. 아직 신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그 동 안 로아도르의 시중을 들어 주었던 수습 신관이었다.

“아,정신이 드셨나요?”

“물.

성대가 울려 뼈가 욱신거리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다. 고개를 돌리는 것은 아직 무리였기에, 로아도르는 소년 신관을 눈만 돌려 쳐다보며 말 했다. 불과 한 달, 한달 만에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게다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뼈가 제대로 붙고 있다는 증 거다.

물을 떠서 로아도르의 입에 흘려주며 소년은 납득한다. ‘하기사..’

이 로아도르가 먹는 양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쓰러져 시체나 다름 없는 몸으로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저 상태로도 일반 성인의 세배 이 상 되는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정말 굉장하세요. 사람의 몸이 아닌 것 같아요.”

감탄하며 말하는 소년. 로아도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 지도, 않아.”

길게 말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에 이음절로 짤막하게 끊어 대답한다. 그때 문이 열리며 다른 이가 들어온다. 이꼴로 만든 장본인이니 당연 하겠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의 상태를 보러 오는 사부였다.

“여어. 이제 몸은 괜찮나?”

로아도르의 시선이 다시 천장을 향한다. 어째서인지 사부와는 아직 눈을 마주치기가 싫다. 그럼에도 사부의 눈에는 전과 다른 따뜻함이 들 어 있다. 로아도르가 이제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죽지 않겠다는 의 지로 여태까지 버티고, 그 의지를 십분 활용해 몸의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3개월로 잡았지만 적어도 보름은 앞당겨 질 듯 하다. 아마 본인에게 자각은 없겠지만.

그러자 그 대신 옆에 있던 소년이 빙긋 웃으며 답한다.

“네.상상도 못할 정도의 회복 속도에요”

“다 의지가 단련되고 있다는 증거야.”

히죽이죽 웃으며 말하는 사부지만, 로아도르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쓰지 않고 있으니 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신관들이 놀라는 것으로 봐서는, 자신이 확실히 비정상적으로 빨리 낫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딱히 뭔가를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은 데.그 어떤 것이라도 단련 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다만, 무언가 다른 것을 알게 되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고통이 하루 하루 줄어들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 만큼, 자신의 육체에 대 한 파악이 되고 있다고나 할까.

이 뼈와 뼈 사이는 이렇게 되어 있군. 근육은 이렇게 붙어 있는가? “그래도 좀만 참아라. 조금 괜찮아졌다고 지금 상태로 함부로 움직였 다가는 저 세상 구경하기 십상이다”

“....”

대답 없이 천장만을 바라보는 로아도르.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돈 다.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이라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부는 매일 와서 얘기를 건내고 있지만 정작 로아도 르가 받아 주지 않으니. 사부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앉아 있 었다.

건방지다고는 생각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니까. 로아도르는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 게 기억이 나기에 무엇을 뜻하는지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그 서툴게 검을 만들던 이는 자신이다. 그리고 그가 올려다보 던 이는 가르안이다.

로아도르는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만다.

“사부도, 누군, 가를, 부러, 워,한,적이, 있습, 니까?”

사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이 녀석이 먼저 사적인 것을 물어 오 다니. 이제야 마음을 터놀 준비가 되었다기보다는 어지간히 심심했나 싶어 그는 피식 웃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라.그야 당연히 있지.”

스르륵.

로아도르의 시선이 사부에게로 향한다. 눈에는 약간 놀라움을 담고 있다.

물론 사람이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기억한다. 엘리엇을 장갑 하나로 이기던 그의 모습을. 저 가 르안이라 할지라도 이 사부를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 다. 제 아무리 최상급이랑 칭해지는 소드 마스터라 할 지라도 같은 경 지에 이른 이를 한 수에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사부의 이름, 혹은 소 문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사부의 경지는                    ‘그랜드   ’의 경지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사부조차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니.

“누구, 였습, 니까?”

“다 죽어가는 늙은이 였지”

늙은이?

“아차차. 이렇게 말하면 실례군. 이래    뵈도 내 일생에서 본 이중 가 장 강한 이였는데. 흠흠

헛기침을 하며 사부는 웃음을 지운다. 그러나 로아도르에게는 진정 놀라울 따름이었다. 초월자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었단 말인가? 사부만한 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와 동수를 겨루던 이가 있다니.

“겉보기에는 정말로 초라했거든. 다 낡아 빠진 갑옷을 입고, 당나귀 를 타고 다니고 있었지. 그것도 숨 쉬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다 늙은 당 나귀. 너 같으면 상대나 하겠냐? 그런데 주제에 나와 겨루자며 버럭버 럭 소리를 지르는 정정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검만은 얼마나 손      질을 잘했던지, 번질번질 하더군. 그냥 평 소에도 손질을 잘했다, 라는 수준이 아니었지. 사실 검 자체도 굉장히 낡은 것이었어.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렇게나 찬란하게 빛나더군. 하지 만 그 검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지. 노인은 정녕 강했다. 나와 싸우면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았어. 나는 내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오만함은 노인과 겨루면서 한순간에 깨지고 말았지. 난 그 노인이 진심 으로 부러웠다. 후후후.

사부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빛을 띠운다. 로아도르는 이런 사 부의 눈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천년전의 마왕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이런 눈빛이었다.

“결,결과, 는 어떻, 게?”

그제서야 퍼득 정신을 차리는 사부. 자신이 넋을 놓고 얘기를 했다는 것이 창피한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흠흠. 그야 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답이다. 어쨌든 간에,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러워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거지. 그러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창피함이 도가 지나쳐,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어색한 듯, 재빨리 방을 나가려는 사부. 그는 나가기 전, 우뚝 서서 빙글 돌아 로아도르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저 녀석은 왜 저런 걸 물어 왔는가.

“그러니까, 로아돌. 너 자신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라. 너 자신을 비 하시키지도 마라.

네 몸을 봐. 네가 그토록 저주 받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결국 네 필생 의 목표에 답해줄 녀석도 그 몸이다. 주인이 그토록 저주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주인을 살리자고 힘쓰고 있는 것도 네 몸이다.”

쾅!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사부. 행동조차 제멋대로인 성 격 그대로다. 로아도르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몸.....”

로아도르는 눈을 아래로 깔아 붕대 투성이인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 다.

하지만...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년신관이 알 수 없는 대화에 눈을 껌뻑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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