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7장. 부수겠다. 4
노신관에게는 하루 쉬라는 의미로 내일 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말 을 듣고 로아도르가 편안히 쉴 수 있을 리가 없다. 로아도르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을 모아 턱을 괴고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요하다. 모처럼의 조용하고 편안한 밤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로아도르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죽을 정도의 수련은 각오했다. 그렇기에 한 달이 넘는 동 안 달리라고만 해도, 말없이 따랐다.
그러나, 자신의 온 몸의 뼈를 부숴서 다시 재조정하겠다니. 이런 범 위는 생각에 없었다. 게다가 밀려오는 지독한 공포감 역시 떨쳐 낼 수 없었다.
많은 것이 떠오른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남은 여생이라도 편안하게 지 내면 되지 않겠나?가르안을 이긴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 족들과 함께 웃으며 지내자.
하지만, 사부는 말했다. 녀석과 겨룰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게다 가 적어도 ’ 이 길을 밟는 동안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돌아 가서 무의미 하게 지내느니, 필생의 목표를 한번이라도 이뤄봐야 하지 않겠나?
로아도르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숨을 거칠게 내쉰다. 모든 것 을 결심하고 나온 길인데, 왜 이제 와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가? 어두둑한 방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동이 터오는 것이다. 그는 일어나 창가에 우두커니 섰다.
공통점이라고는 빛 밖에 없거늘.
어째서, 가르안이 떠오른다. 바로 그 순간 로아도르는 평행선을 이루 고 있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며 사부가 안으로 들어온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타이밍이다.
“결정했냐?”
“정녕, 이 방법 밖에 없는 겁니까?”
묻는 로아돌. 눈에는 한가득 불안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눈에는, 각 오도 담겨 있다. 사부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모르지. 내가 아는 방법이 이것일 뿐이다”
하지마라!차라리 단칼에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고통이 기다리고 있 지 않은가!
라고. 마음 한 컨에서 그가 외쳤지만.
“하겠습니다.”
로아도르는 그리 말했다.
로아도르가 나오자, 방 바깥에서는 신관들이 안절부절 못 하며 대기 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사부의 눈길을 피해, 슬며시 다가와 로아 도르에게 귓속말을 건낸다.
“저,청년, 정말로 할 셈인가?이건 미친 짓이야”
그러자,
로아도르는 자연스럽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로아도르.
“응?”
“로아도르라 부르십시오”
청년이라는 말로 다른 이들과 똑같은 취급하지 마라. 내 이름은 로아 도르다. 그토록 자랑스러운 바이파의 이름을 댈 수 없는 지금의 나일지 라도.
그리 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신관은 입을 다물었다. 나름 걱정해줘서 얘기했더니만 이런 태도라니. 하지만 묘하게도, 기분이 나 쁘다기 보다는 당연히 그리 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이 떠오른다. 그것은 천성, 사람들의 위에 있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이었다. 그들을 따라 내려간 곳은 신전의 지하. 이미 사방은 불을 밝혀 두어 지하 특유의 어두컴컴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밝은 감이 없 지 않아 있었다.
끼이이잉 쿵.
두터운 철문이 닫혔다. 아마 어떤 소리도 세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 지하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침상. 그곳에는 노신관을 필두로 한 네명의 신관이 사방이 대기하고 있다. 마치 흑마법사들의 의식과도 같 은 모습이었지만 그들처럼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 다.그들 모두 긴장 섞인,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행위에 대한 공포감이 섞인 눈으로 로아도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손을 벌벌 떨면서 로아도르에게 찰랑이는 액체가 들 어 있는 병을 하나 건낸다.
“이,이것을 드시면 조금 나아지실 겁니다”
“뭡니까?”
“모,몸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모,모든 고통을 완화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제국에서의 치료라 함은 대부분의 신관들로 행해진다. 그런 만큼 약 초 같은 것은 대부분 평민들, 혹은 무언가를 증진시키는 정도로 밖에 쓰이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낙후 되어 있는 편이었다. 몸을 째서 하는 수술 같은 것도 네크로맨서나 할 사악한 수법이라 여 겨지기 때문에, 마비시키는 약 또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을 마비시키 는 약초라 할지라도 그리 강한 효과를 볼 수는 없을 터였다. 로아도르는 그것을 흘낏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습니다”
신관들이 놀라서 서로를 바라본다. 어차피 견디기로 한 것. 자신의 몸을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꺼려졌다. 게다가 그는 천 성 귀족, 몸에서 움직일 의지를 빼앗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 고 배워왔다.
그러자.
쾅!
강맹한 주먹으로 사부는 로아돌의 머리를 내려쳤다.
“잘난 척 하지 마. 너 아프지 말라고 먹이는 거 아냐. 몸을 고정해야 한다. 보나마나 고통에 꿈틀거리겠지. 하지만 잘 못 움직이면 너 죽 어.”
죽는다는 말을 그리도 담담하게 할 수 있는지. 사부의 말에 따라 뼈 까지 부서트릴 각오로 온 로아돌이다. 그는 다시 한번 오싹하면서도 묵 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관에게서 마비제를 받아 단숨에 들이킨 다.
그리고 침상에 누웠다. 마비제의 효과는 로아도르가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한층 더 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몽 롱한 환경으로 바뀐다.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마치 물속에 들 어온 것처럼 모든 사물이 굴곡이 이어 진다.
“자,시작하지. 준비들 해.”
사부의 말에 신관들이 기도를 하며 신력을 로아돌의 몸에 쏟아 붙는 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간다. 마비로 인한 것이 아니다. 신력으로 인해, 몸의 외관이 완전히 고정되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뼈를 부순다기에 망치 같은 것으로 내려치는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부는 그저 자신의 두 손으로, 마치 주무르 려는 듯 다리를 움켜쥐었을 뿐이다.
그리고, 강하게 한번 충격을 준다.
퉁!
마비되어 있는 몸,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딘가, 자신의 육 체가 부서지고 있음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체,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이다.
-아아아아아악!!!-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로아도르는 커다란 비명을 지르고 싶 었다.
그러나.
“아.아...”
마비된 몸에서는 아주 작은 신음 소리만이 나올 뿐이다. 신관들의 신 력으로 인해 몸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퉁!
그저 이 고통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퉁!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은 몸을 점차 타고 올라온다. 세세한 곳의 작은 뼈까지. 이런 잔인한 일을 하면서도 사부의 손길은 세세하기 그지 없다. 소드 마스터인 엘리엇조차 한수에 보내버린 그가, 땀을 뻘뻘 흘 려가며 세심하게 로아돌의 몸을 더듬고 있다. 퉁!
신관들의 신력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이지, 로아돌의 하체는 마치 연 체 동물처럼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가 진정한 고비. 사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옆의 신관에게 말했다.
“거기. 제대로 고정시켜. 이제부터 척추로 들어간다. 여기가 제일 중 요하니까 확실히 해야 해.
신경을 관통하는 곳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린다면, 혹 다른 이가 실수라도 한다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치유를 하면 안 되나?
원래부터가 진정한 신앙을 가지고 선하게 살던 신관들이다. 도저히 두고 못 보겠는 듯, 노신관이 묻자, 사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이 녀석한테는 안 통해. 필요 없어”
그것이 마나 부적응자다.
한순간, 그저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단 한순간만은 소용이 있겠지만 그 뿐이다. 지속 되지 않는다. 남들만큼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수십 배에 달하는 마나를 필요로 한다.
“자자, 그래. 조심스럽게, 조금도 움직이게 하지 말고 들어 올려. 거 기!안에도 신경 좀 써!뼈가 흐트러지잖아!안 까지 고정 시켜!”
사부의 지시에 따라 로아돌의 몸이 공중에 뛰어져, 뒤집혀 침상에 뉘 여진다. 사부는 몇배나 더 신중한 손길로 그의 등을 더듬는다. 그리고
퉁!
-!!-
다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충격이 가해진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아..아..”
퉁!
투둑투둑.
유일하게 자유가 주어진 곳, 로아도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서럽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가르안을 이길 수 없는 자신이 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