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30화 (30/100)

가르안은 처음으로, 진지한 얼굴로 이를 뿌득 간다. 내면의 모든 것 을 무시한다. 카시레타가 졌다면 그걸로 되었다. 내가 눌러준다. 저 거슬리는 녀석을 빨리 치워버리고 뇌리 속에서 지워버리겠어. 제목      제  5장. 세컨드. (끝 )

이제 남은 것은 결승전 하나 뿐. 관중들의 환호는 이제 거슬릴 정도 로 시끄럽다. 나무 밑에 조용히 앉아 있던 로아도르는, 시종의 발소리 에 눈이 떠진다.

그리고 일어난다.

무대 위에는 가르안이 기다리고 있다. 로아도르는 무대로 향할 수록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다리를 잡으며, 그를 향해 걸어 나갔다. 한걸음 한걸음 나갈 때마다 다리가 진정된다. 녀석에게 이길 수 있 을까  ’.라는 불안감을, 반드시 이기겠다       ’는 각오로 바꾸어서, 로아도르 는 가르안에게로 나아간다.

그러나 무대 위로 올라서는 순간. 공간이 하얗게 물든다. 온통 하얀색의 공간. 땅이라는 것이 있는지, 하늘이라는 것이 있는 지.그 공간에 있는 것은 오로지 로아도르와 가르안이라는 존재뿐이었 다. 갑작스러운 공간의 변화. 로아도르는 깜짝 놀라 오거 린을 빼내어 가르안에게 겨눈다. 가르안은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서 있다.

팔짱을 끼고 위를 올려다보던 가르안. 불쑥 말을 꺼낸다.

“그러고 보면 만난 지도        3년. 오래라면 오래 되었군. 반말로 지껄여 대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알 수 없는 공간. 저 녀석은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다. 이것은 마법이 다.마법일 것이다. 다만, 자신으로서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고도 의 마법일 것이지만. 가르안 카이자. 인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로 아도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드래곤의 유희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드래곤이라면 녀석의 비정상적인 능력도 이해가 간다. 그런 로아도르의 기색을 눈치 챈 가르안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지금 이 공간 때문에?아냐 아냐. 이건 우연히 얻은 아티팩트에 의한 것일 뿐이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지 않는 게 좋아. 난 틀림없이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 공간 자체로 특별히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 어.다만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만들었다.”

아티팩트라는 말은 물론 거짓말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임이 분 명했지만 자신의 정체는 아직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의심쩍어 하면서도, 로아도르는 검을 내리고 가르안을 바라보 았다. 녀석이 드래곤이라면 과연 이런 귀찮은 행동을 할까? 본체로 변 신해 브레스 한번이면 수도의            3분지   1은 날아갈 터인데. 아티팩트라면 일단 말은 되지만, 그건 너무 뜬금없는 얘기다. 로아도르가 자신을 지나치게 경계하자 가르안은 다시한번 피식 웃었 다.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여기서 겁먹은 끝에 무너진다 하더라 도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겠지. 중요한 것은 녀석에게 해야 할 말이 다.

“난.루리아 공주를 사랑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어. 그렇 기에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들지 않아. 왠지 알아?”

가르안은 진지한 얼굴로 그를 주시한다.

“넌 그녀의 약혼자이니까. 그렇기에, 선언대로 너와의 파혼을 이뤄내 겠어.”

로아도르는 처음으로, 가르안의 진정한 면모를 보고 있었다.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 저 공주를 가르안은 이토록 사랑했단 말인가. 로아도르 에게는 아직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한 여성을 위한다는 것. 로아도르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것을 위해. 난 최선을 다해 너를 이기겠다. 앞으로 나와 루리아 공 주 사이에서 너의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이겨서, 이 순간 이후로 난 너 란 존재는 잊겠다.”

할 말은 다 했다. 가르안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서 속내를 털어 놓는 것은 아마도 변덕. 적어도 자신의 내면에 있을 강성훈이 로아도르란 존 재를 조금이나마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자,끝내자.”

화아아악!

그리고 공간은 다시 검술제의 무대 위로 돌아왔다. 수많은 이들의 함 성과 환호. 하지만 로아도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눈 앞 에 있는 최대의 숙적. 가르안 카이자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 다. 방금 전의 그 일은 꿈이었는가?그렇지 않다. 가르안의 눈은, 방금 전의 그 눈과 다를 것이 없다.

다시 한번 전의가 불타오른다.

아무래도 좋다. 녀석이 뭐든지 간에 이제 상관없는 일이다. 녀석이 드래곤이라면? 싸우다 죽겠다. 루리아 공주와의 사랑? 그딴 건 아무래 도 좋았다. 가져가려면 가져가라지. 다만. 승리만은 양보 할 수 없다. 난 그저, 지기 싫을 뿐이다.

자신의 열세라는 것 정도는 깨닫고 있다. 상대는    3년 전에 벌써 마나 의 사용법을 터득한 천재다. 그리고 자신은 재능조차 없는 자. 검을 치켜 올리고.

“가르아아아아안!!!”

로아도르는 고함을 지르며 달렸다.

검을 높이 들어 그를 향해 내려친다. 그 동안 수천 수만번이나 베어 왔던 최고의 검로다. 빈틈도 많지만 이것이, 로아도르가 할 수 있는 최 고의 공격.

틈을 노리는 대신, 가르안은 검을 상단으로 들어 올려 막는 자세를 취한다. 어째서인지 입가에 비웃는 듯한 기색이 가득하다. ‘물론 조금은 인정해주마. 하지만 말이지      ’ 그리고!

챙강!

반토막나는 오거 린. 순간 가르안은 로아도르의 귀에 속삭인다. 너무 나 다정하게.

“얼마 남지 않은 세월. 편하게 지내라”

로아도르가 목숨을 걸고 올라갔던 아카데미 검술제. 그것은 너무나 허무하게, 단 한 순간에 결판이 나고 말았다. 가르안의 짙푸르게 빛나는 검과 함께.

“푸,푸른색의 오, 오러 소드다!”

“저렇게 선명한 푸른빛이라니!”

“세상에!소드 마스터란 말인가?!!”

주변에서 관중들이 경악에 찬 소리를 지른다. 가르안, 로아도르의 나 이대에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 제국 을 통틀어서도 소드 마스터는 체            5명이 안되는데, 그 중에 가장 어린 자 가 기사 엘리엇으로, 그 역시 서른을 가깝게 바라보고 있는 나이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역사상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겨우       17세의 소년이!

모든 이들이 경악할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새로운 강자, 새로운 영 웅에 모든 이들이 주목한다. 가르안은 짙푸른 오러 소드를 들어 올리며 자신이 승리했음을 널리 알렸다.

챙그랑!

토막난 오거 린을 바라보는 로아도르. 마나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해 낼 수 있다고, 약해지는 마음을 다 잡으며 나왔던 결승전이다. 이건 결 투가 아니었다. 이기는 것만을 생각했다. 진다 하더라도 이렇게 끝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검을 들어 가르안의 반격을 막아야 할 것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오거린을 들어 올려 본다. 그러나 막아야 할 검이 보이지 않는다.

베어야 할 검이 보이지 않는다.

로아도르는 멍한 눈으로 검에서 가르안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검술제의 무대 위에는 가르안과 뛰어나온 루리아 공주가 서로 껴안 고 있다. 루리아 공주에게 그 어떤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때 마나 자신의 아내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 이가 다른 이에 게 안겨 너무나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다.

열광하는 관중. 모든 이들이 가르안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고, 로아도르는 보이지도 않는 듯 했다.

졌는가? 이렇게,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그저 이 순간만으로 끝 나 버리는 것인가?

그렇게도 지기 싫었는데, 단 번도 넘어 서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노력했는데.

세상이 뿌옇게 변한다. 로아도르는 눈물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믿기지 않음에도.

그저, 떨리는 손을 모아서.

“내가 졌...다..”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로아도르는 부러진 검을 가슴에 붙이고 패배를 시인하며 예를 표한 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라도 기사도는 지켜야 함이니. 패자의 예에 답해야 할 승자 가르안은 루리아 공주를 안고 오러 소드 를 들어 올리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상대했던 자에게조차도 잊혀 진 존재가 되어 버렸다. 로아도르는 돌 아서, 모든 이들이 환호를 뒤로 하고 물러난다. 그제서야 물방울이 그의 얼굴에 흘러 목을 타고 내려와 옷을 적신 다.

투둑.

로아도르는 울었다.

제목      그리고 남자는 찾았다.

남자는 오랫동안 대륙을 헤매었다. 그에게는 목표로 삼은 것이 있었 고,또 그것을 위해 찾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찾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흐르고 흘러, 그는 아스톤 제국의 수도. 아스토니아에 이르렀다. 이 제는 그도 지쳤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찾는 것은 없었다. 이번은 아스 토니아의 첫걸음이 아니다. 벌써 서너 번은 왔던 것 같지만 없었다. 하 지만 혹시, 자신이 못 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러한 심정. 그 사이에 이 곳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

수도에 이른다 한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은 없었다. 저잣골목에서 귀 족들의 대저택에 몰려 있는 호화로운 거리까지. 그는 구석구석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검술제 결승전이 오늘이군”

“결승전에 오른 학생은 평민이래!”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무투회라는 것은 그리 자주 열리는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무투회에는 사람이 몰린 다. 이 근방의 사람 뿐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든다. 자신이 찾는 것이 있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아진다. 그는 차분한 걸음으로, 가는 도중에도 혹시 스쳐지나가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조아리며 검술제 가 행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과연, 많은 이들이 아마도, 찾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을 터. 그는 한 참  3, 위 전에 벌어지고 있는 시합은 보지도 않았다. 혹시나 찾는 것일 까 싶어 한번 바라보기만 하고 눈을 돌렸다. 오히려 관중석을 돌아다니 며 그것을 찾았다.

그리고 가르안과 로아도르의 결전. 소드 마스터와 마나는 한줌도 없 는 부적응자의 대결.

“오러 소드다”

“소드 마스터다”

경악할 말들을 외치고 있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남자는 보았다. 지치고 지친 눈이 순식간에 광채를 발한다. 모든 피 로가 사라진다.

“찾았다....”

모든 이들이 이 곳에 있는 그 모두가 소년 천재, 최연소의 소드 마스 터 가르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 녀석의 본질은 대충 눈에 보인다. 저딴 것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반토막난 검의 파편을 내려다보고 있는 절망에 가 득한 검사.

“드디어 찾았어....”

온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그를 보고, 주변의 관객들 이 걱정스러운 듯 어깨를 흔들며 괜찮냐고 물어 온다. 하지만 그는 주 위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저, 패배한 소년이 눈에 가득 들어 와서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저,패배 했음에도 검을 손에서 놓지 않은 저 소년만이 눈에 들어 왔 을 뿐이다.

울고 있는 저 소년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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