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도르는 오거 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제목 제 5장. 세컨드. 4
연신 이어지는 시합. 로아도르와 가르안은 압도적인 강함으로 점차 결승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 카시레타 역시 로아도르 와 맞붙을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세 명. 그 중에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자는 로아도 르 뿐이었다.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그리고, 가르안을 상대하기 전까지 남은 자는 바로 한명 뿐.
“도련님. 시합에 나가실 시간입니다.”
로아도르는 오거 린의 검신을 쓰다듬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최초의 상대다. 자신은 마나는 없지만, 영원히 느낄 수도 없겠지만 지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다? 그딴 마음은 품지도 않았 다.이긴다. 절대로 이길 것이다.
녀석만큼은 이기고 가야 짧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 았다.
하지만, 그 전에, 카시레타라는 복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와아아!
로아도르가 나타나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함성 이 울려 퍼진다. 입소문을 타고난 것인지, 예정된 인원을 넘어서 빈틈 없이 빼곡히 차 있는 관중들이다. 반대편에서는 가르안의 시합이 있을 터이지만, 로아도르와 카시레타의 시합만큼 집중 받지 못했다. 가르안 은 물론 대단하지만, 준결승에 올라온 이의 기량은 그리 빼어나지 않았 던 것이다.
무대 위에 먼저 올라 있는 카시레타. 그의 모습은 전에 없이 기세가 등등해 보였다. 아마도, 먼저 깨우친 자로써의 자신감이 그의 어깨를 그리도 펴 주었으리라.
무대 위로 올라와 그의 앞에 서자, 그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 다.
“에틴경. 틀림없이 전 이름 없는 남작가의 자식. 하지만 그렇다고 해 서 당신에게 지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검과 검을 건 승부에는 그저 실 력이 모든 것을 말해줄 뿐이기에!”
카시레타는 선언하며 자신의 검을 뽑아 로아도르에게 겨눈다. 화악!
“가르안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노력을 하면, 그 대가를 받는 다고!그리고 그 대가가 이것입니다!”
카시레타의 검에는 하얀색의 옅은 오러가 타오른다. 관중들의 놀라 는 목소리가 로아도르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가르안에 비하면 한참 늦 었지만 카시레타의 재능도 굉장한 것이었다. 그래, 굉장한 것이다.
“좋겠군.
비꼬는 것인가? 카시레타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를 노려본다. 하 지만 로아도르의 눈에 빈정됨은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부러운 눈으로 카시레타를 바라볼 뿐.
좋겠다. 노력하면, 닿을 수 있어서 정말로 좋겠다. 나도 노력해서 닿 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카시레타는 당황을 겉으로 드러내며 검 끝이 흔들린다.
“나도 지진 않는다. 네 말대로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
카시레타의 당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귀족이라고, 바이파 가문 의 후계자라고 잔뜩 뻐기며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로아도르는 뭔가 아련한, 슬픈 눈으로 그의 검을 부러운 듯이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로아도르 역시 오거 린을 빼어내 그에게 겨루었다.
“나 역시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이 녀석은, 여태까지 이겨온 다른 귀족 놈들과는 뭔가 다르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으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갑니다!
카시레타는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로아도르에게 달려든다. 그의 검 에 일렁이는 마나, 그리고 일반인의 경지를 뛰어넘은 몸놀림. 이미 마 나를 검으로 방출 할 수 있을 정도면 몸 마나로 재구성에 들어갔을 터, 이미 범인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내려치는 카시레타, 지금까지의 시합과는 다르게 로아도르는 그것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해낸다. 이 명검이 부러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다.자신이 버틸 수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기회를 노릴 뿐. 콰앙!
카시레타의 검이 바닥을 내리친다. 무서울 정도의 속도다. 눈으로 보 고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카시레타 정도를 이기지 못해서야 가르안에게는 도전하지 못한다.
피해냄과 동시에 그의 옆을 베어 나가는 로아도르. 하지만 카시레타 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챙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러로 감싸인 검과 맞대고 있는 것 은 위험. 로아도르는 즉시 발을 놀려 안으로 파고 들어 검신으로 가슴 팍을 노리고, 카시레타는 여유롭게 피해낸다. 카시레타의 날카로운 공격이 연신 이어지고, 로아도르는 피할 수 있 는 것은 최대한 피하며 검을 휘두른다.
검과 검을 맞대는 것은 최소한. 피하는 것에 최대한의 중점을 둘 것. 그리고 그 틈새를 노려 공격한다. 바이파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 술.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로아도르. 빈틈을 노리는 로아 도르의 검술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카시레타는 육체적 우위로 커버해 낸다.
그러니, 공세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단연 카시레타였다. 로아도 르의 공격 역시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카시레타의 공격이 이 어진 직후였다.
그때밖에,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로아도르가 노릴 수 있는 때라고는 오직 그 뿐이었기에. 몇 번이고 그런 공세가 오간다. 몇 번이고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어 오른다. 그야말로 적중세.
관중들은 감탄한다. 지금까지, 저토록 화려한 공방전은 나온 적이 없 었다. 검술에 조예가 있는 자들조차도 눈여겨 볼 정도다. 그 중에서 오로지 엘리엇만이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그의 눈시울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는 조언했다. 마나를 사용하는 학생을 만나면, 무조건 치고 뒤로 빠지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절대로 불리하다고. 하지만 로아도르는 치 되 빠지지 않는다.
저렇게나, 저렇게나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도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 는다. 저 긍지 높은 바이파의 자식은. 단 한걸음의 물러남조차 패배로 여기고 있다.
고작해야 아카데미의 검술제. 다른 이들이라면 목숨을 걸 이유 따위 는 하나도 없는데도....
“승부를 보겠습니다”
한참이나 공세가 오갔지만 변한 것은 없다. 결국 먼저 뒤로 물러난 카시레타가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그의 오러는 한층 더 짙게 피어오른다.
겉으로야 적중세였지만, 카시레타가 보기에는 얄미운 방법이었다. 제대로 검세를 나누지 않고 얕은 공격이 오가고 있을 뿐이지 않는가? 그런데 로아도르의 검이 의외로 날카로워 큰 공격을 해볼 틈조차 없었 다.
‘흥분했나 ’
그에 비해 로아도르는 충분히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빠 른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힘을 잔뜩 실은 자세다. 흥분하면 동작에 빈틈이 생긴다. ‘지금이다 ’
부우우웅!
틈을 타 갑자기 로아도르가 먼저 달려 들었다. 그에 카시레타는 여태 까지 먼저 공격을 해온 적이 없는 로아도르였기에 더욱 놀랐다. 쾅!
“샤브 온 shove on)!!”
로아도르의 가합과 함께 검과 검이 맞부딪치고. 이번에는 떨어질 생각 없이 밀어 붙이는 로아도르의 검세에 카시레 타는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입가에 실소를 띠우며 힘으로 대항했다. 로아도르의 오거 린이 오러를 버텨주고 있지만 재구성 되고 있는 이 몸의 힘이라면 지지 않을 터!
카가강.
그러나.
로아도르는 밀려나지 않았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오히려 힘으 로 그를 조금씩 압도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이 녀석?!’
그제서야 카시레타는 깨달았다. 속도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이 녀석 은,힘과 힘으로 겨룰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육체의 재구성. 극 성으로 인해 힘과 속도는 전에 비해 상식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것이 불가능 했던 로아도르는, 한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 다.
‘단련했다. 이기기 위해 2년 동안 난 그렇게 단련해 온 거다 ’ 콰드드득!
검의 접점은 점차 아래로 내려와 가드끼리 서로 맞부딪치며 거친 소 리를 낸다. 검을 뺄 수도 없는 상황에 카시레타는 어찌할 줄 몰랐다. 애 초에 이런 식의 대결은 롱소드보다 투핸드 소드가 유리, 게다가 상대의 힘이 너무 거세서 빠져 나올 수조차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힘 의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쾅!
결국 먼저 힘이 풀려 버린 카시레타의 검이 튕겨져 버린다. 탁.
그의 목에, 로아도르의 검이 살며시 놓였다. 승리자의 여유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의 검 끝은 막대한 힘의 소 모 끝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땀을 잔뜩 흘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 고 있었다.
반대로 카시레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다. 어느 모로 보 나,이길 수밖에 없는, 모든 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는 카시레 타였다. 겉모습만으로 보면 카시레타가 승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 나 이 것은 명백한 패배다.
방심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상대가 범상치 않음은 검을 나 누기 전부터 깨달았다. 그렇다면 진 것은.
말했던 대로다. 실력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부정할 여지가 없다. 자신은, 저 로아도르보다 약했기에 진 것이다.
“졌..습니다.”
카시레타는 순순히 선언했다.
“에틴경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
관중들이 환호성을 보낸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자가 사용 하는 자 를 이기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다. 마나 외의 모든 기량에서 우위에 있어도 힘들다.
로아도르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일찌감치 시합을 끝내고 온 가르안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 었다. 굳이 계급을 나누자면 카시레타는 소드 익스퍼트의 하중급 정도 는 된다. 그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사의 작위를 줄 수 있는 만큼, 카시레타의 현재 경지는 어수룩한 기사는 뛰어넘는 다는 뜻 이다.
그 정도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로아도르가 저 카시레타를 이기다니. 계획에서 어긋난 것보다도 그 사실이 놀라웠 다.
가만. 뭔가 이상하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 저 정도의 기량을 가지 고도?
가르안은 그제서야, 로아도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지금까지는 눈 이 마주치는 것도 싫어 했다. 그러니 로아도르가 어떤 놈이건, 어떤 상 태건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저 콧대로를 눌러버릴 상대였을 뿐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로아도르는 몸에 마나가 전혀 없다. 외부에서 마나 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마나는 지니고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전혀 없다. 엘 카이자의 방대한 지식이 곧 답을 찾아낸다. 마나 부적응자.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버티고 있는 것은 타고난 생명력. 육체는 저 토록 강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곧 죽을 것이다. 가르안의 놀람은 당혹에 물든 얼굴로 바뀌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큐엘 사건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저 건 그 훨씬 전부터 다져온 실력이다. 그리고 실력이 향하고 있는 곳은 오로지 자신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가르안은 아주 조금 식은땀을 흘린다. 로아도르가 무서워서 흘리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알 수 없는 집념이, 생명조차 걸고서 자신을 노 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오는 땀이었다.
어딘가에서 조그마한 강성훈이 말하는 듯하다. -그토록 힘이 없던 시절, 너는 그저 맞고 있었지. 하지만 저 힘이 없 는 자는, 다름 아닌 너에게 맞서기 위해 저토록 힘을 길렀어. 뭔가 느껴 지는 바가 없어?-
“웃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