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26화 (26/100)

제목      제  5장. 세컨드. 1

쾅!쾅!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투박한 소리가 공작저의 뒤뜰에서 울려 퍼진다.

엘리엇은 놀라움을 감추며 로아도르의 검을 상대하고 있었다. 최대 한으로 힘을 봐주고 있지만, 로아도르의 실력은 정녕 놀라웠다. 마나 한 줌 없이도, 약간이지만 오러를 실은 자신의 검을 막힘없이 상대하고 있다.

오거 린   (Orge lean).그것이 로아도르가 들고 있는 투핸드 소드의 이 름이다. 이름 있는 드워프가 만든 것으로, 어지간한 오러 소드에는 흠 집조차 나지 않을 명검이었다.

로아도르는 이 오거 린의 사용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익혔다. 지 금까지 익혀 왔던 것은 모두 롱소드 식의 검술로, 바이파 가문에 내려 오는 검술 역시 그것에 적합한 것이지만 일년 남짓한 기간 사이에 그 청년은 모든 것을 거검식          巨劍式   )으로 소화해낸 것이다. 검을 바꿀 것 을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엘리엇이었다.

보통, 거검은 마나에 자신이 없는 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투박한 검이 다.주로 고금 검술과 마나의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자들, 용병들이 많 이 사용하지만 그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갑니다!

쾅!!

상단을 내려치는 엘리엇. 로아도르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엘리엇의 검을 힘만으로 버텨낸다. 내려치는 힘과 올려 치는 힘이 비등하게 부딪 치며, 가각 거리는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몇 달 전까지는 수련 끝에 쓰러져 있던 로아도르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압도하는 면이 있다. 자신이 상정한 마나를 갓 익힌 자에 대한 솜씨 정도는 압도해 싸울 수 있을 정도다.

쾅!

오히려 엘리엇의 검을 쳐내며 반격까지 들어오는 로아도르다. 그 엘 리엇조차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날 정도. 자칫하면 상정하고 있는 힘의 리미터를 해제할 정도로 돌진적이고 격전적인 공격이었다. 엘리엇은 손을 저으며 대련의 종료를 알렸다.

“여기까지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부우웅!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고서는 검을 다시 휘두르는 로아도르. 엘리 엇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검 에 생명을 걸은 기사였지만, 로아도르 정도는 아니었다. 검에 모든 것 을 건 자. 그 말은 로아도르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말과도 같았다. 한때, 엘리엇은 로아도르에게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물론 재능 이라는 면에는 분명이 모자란 것이 맞다. 하나를 배우면 오직 하나만 알게 되는 우직한 이다.

하지만, 타고 난 것이 없으니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 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 로아도르라면 재능이 있는 자보다는 늦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소드 마스터의 검열에 들었을 것이다. 지 금만 하더라도 마나를 전혀 사용 할 수 없음에도, 아마 소드 익스퍼트 중하급의 기사 동수를 이룰 정도다. 필사적인 수련 덕분에 이른 한순간 만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보통의 의지를 가진 자라면 결코 닿을 수 없을 경지다.

불과   1여년 만에 이렇게 까지.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홀로 검을 휘두르는 로아도르의 눈은 점점 더 차분해져 간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검분. 모든 상념을 지운다. 오거 린의 두툼한 검신 은 왠지 모르게 자신과도 같다. 날카롭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기교를 부릴 수 없어서, 그저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과도 같다. 로아도르의 귀에는 오로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이, 눈은 검의 검로 만을 쫓으며 한도 끝도 없이 움직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몸을 움 직일 뿐이다.

1년 전, 쟉셀의 정신이 이상하졌다는 말을 듣게 된 로아도르는 아카 데미로 달려갔다. 아직 크로스트 후작가로 후송되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쟉셀과 마주하게 된 로아도르는 그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망토 자락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쟉셀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작는 눈으로 세상을 조소하며, 뭔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자기 자신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대 귀 족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무슨 추태냐 쟉셀”

여전히 쟉셀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을 따름이었다. 로아 도르는 그에게 다가가자 쟉셀은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안쪽으 로 몸을 숨긴다. 그에, 로아도르는 분노하며 그가 생명줄처럼 쥐고 있 는 이불을 거칠게 빼앗았다.

“비겁해지기로 하지 않았나!쟉셀! 이게 무슨 꼴인가! 비겁해지기로 했으면 끝까지 비겁해야 할 것 아니냐! 정녕 그리 선택했으면 비겁하게 죽어야 할 것 아니냐!정신 차려”

“아아아아!!”

그의 말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로아도르가 빼앗은 로 아도르가 주지 않자, 이번에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어찌나 떨고 있는지, 침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이게 무슨 꼴이냐. 쟉셀.”

이불을 떨어뜨리며, 로아도르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평생을 나눌 친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꼴이라니.

로아도른 힘없이 그의 방에서 빠져 나왔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 까? 크로스트 가문의 시종들에게 캐물어 봤지만 속 시원히 대답해 주 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몇은 뭔가 아는 듯 했지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가르안 암살에 대해 알고 있던 이들일 것이다. 가르안은 어떻게 되었나?

로아도르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 가르안 그 녀석이 뭔가 한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아침에 정신을 잃지는 않았 을 것이다. 게다가 아카데미에서 누군가 죽었다면 이렇게 분위기가 조 용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암살은 실패 했고, 그 것의 영향으로 쟉셀이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뜻인데 이것이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가는 길에 가르안과 마주치고 말았 다. 그리고 고민의 본인이 앞에 나타나자 로아도르는 확신을 굳혔다. 쟉셀에게 무언가를 한 것은 가르안이라고. 명백한 조소, 녀석은 웃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에틴경.”

“그렇군. 네 놈인가”

‘역시 네 놈도 알고 있었구나. 이 잘난 도련님아       ’ 가르안은 속으로 로아도르를 잔뜩 비웃으면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시치미를 땐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막상 친구를 해한 장본인이라 짐작되는 이를 만났지만 로아도르의 머릿속은 차가웠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다. 납득하고 있다. 쟉셀은 잘못했다. 가르안이 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녀석이 했다면 당당한 행위였다. 게다가 증거 따위 남아 있지도 않겠지. 도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까지 한 것일까?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 의 정신을 놓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녀석은 여전 히 그가 넘어서야 할 벽이다.

그토록 냉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래도 친구라는 이름 앞에. 분노 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을 노렸음에도 목숨만은 붙여 주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른 것일 터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는 말은 그냥 흘려들어도 상관없다. 혼 자서 하는 말일 따름이니.

꿈틀.

가르안의 눈썹이 올라간다.

공주 앞에서도 숙여 본 적 없는 로아도르가, 자신 앞에서 두 손을 모 으고 있었다.

“목숨을 잃어도 할 말이 없을 비겁한 행동을 한 친우의 생명을 남겨 주어, 감사의 예를 표한다”

흰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공작가의 후계자는 돌아선다. 눈에서는 더 할 나위 없는 분노의 감정을 심고서. 그와의 결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달고서.

그 잘난 등을 보며, 가르안 역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단짝을 잃었 으니 엄청 상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아카데미에 방문했다기 에 한번 빈정거려줄까 해서 찾아 왔건만. 저 끝까지 잘난 척은 여전하 다.

“역시 거슬리는 놈이야.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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