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25화 (25/100)

제목      제  4장. 가르안 암살. (끝 )

달조차 없는 깊은 밤. 아카데미의 건물을 향해 달려드는 다섯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 같이 얼굴이 복면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중간 정도의 곡도를 들고 있었다. 아카데미에도 경비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아무래도 교육기관이다 보니 그리 엄중하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전시가 아닌, 평화로운 제국이다. 사람이 죽고 죽이고 하는 일 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그들은 담을 넘어 손쉽게 아카데미 안으로 침투한다. 아무래도 고위 급 귀족들이 머물고 있는 탓에 경비들이 숫자가 전 보다 늘어나 있지만 다들 긴장감이 없다. 하품을 하며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지나가자 곧, 암살자들 중 리더인 듯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린다. 이미 목표 의 방에 도달하는 루트는 모두 계산해 두었다. 다섯 남자는 그림자 속 으로 녹아서 사라진다.

발자국의 소리조차 없이, 곧 그중 한 남자가 가르안이 묵고 있는 기 숙사의 문에 이른다. 그리고 속으로 시간을 제며 다른 동료들이 자리를 잡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남자는 소매에서 기름을 꺼내 문의 연결쇠에 발랐다. 문소리 조차 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소리도 없이, 남자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들어서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붉은 화염뿐이었 다.

화아아악!!

비명조차 지를 세도 없었다. 곧 한 남자가 커다란 불길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 방문이 닫혀 있었지만 어디선가 바람 이 불어와 그 재 조차도 복도의 바깥으로 몰아내 버린다. 순식간에, 하나의 생명이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으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냉정해야 할 암살자들. 그러 나,눈앞에서 녹아내리듯 타서 사라진 동료를 보며 천장에 잠입해 있던 암살자는 작은 신음을 입에 담고 만다.

신음소리가 아니더라도 이미 가르안은 모두 알고 있었다.

“누구냐 너희는?

가르안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방의 중심에 떡 하니 서 있다. 그 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다 알고 있어. 괜히 숨어서 빈틈 같은 거 노리지 말고 나와라”

그러자 이미 죽은 한 남자를 제외한, 세 명의 암살자가 튀어나와 그 를 사방으로 둘러싼다.

암살자의 임무는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의뢰 받은 인물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암살인 만큼 잠들어 있거나, 혹은 방심해 있을 때 노 리는 것이 최고이지만 이미 깨어난 상대라 할지라도 그 임무에는 변함 이 없다.

암살자들 중, 리더가 나와 가르안에게 곡도를 겨눈다.

“네놈은 누구냐?

의뢰주는 조금 재능이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고 들었 다. 이 맴버가 최상의 암살자들은 아니지만,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 의 기사라면 어렵지 않게 목숨을 빼앗을 정도는 된다. 그런데, 검도 아 니고 마법으로 죽이다니. 게다가 저런 마법은 들어 본 적도 없다. 너무 나 강력하다.

반대로 가르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네가 나를 죽이러 와 놓고 누 군지 되묻다니. 뻔뻔함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진 가르안은 장난마저 치고 싶을 정도였다. 잠옷을 입고 있는 터라 별로 폼은 안났지만, 가르안은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대마왕 버언”

대마왕? 암살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저런 희극적인 태도라니, 그들에게도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일이다. 하 지만 일단 대마왕이라는 자는 일단 저런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 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함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 실. 서로 신호를 보내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 암살자들은, 곡도를 치 켜들며 낮은 자세로 가르안에게 달려든다. 방어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저돌적인 돌격.

그러든 말든. 가르안은 여전히 제 좋을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 다.

“이것이 나의 헬 파이어. 그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과 우아한 모습 때 문에 예로부터 마계에서는 이렇게 불린다”

삐에에엑!

어느새 불길로 타오르는 새 한 마리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방안 에 가득 매웠다. 달려들던 암살자들은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무심코 돌 격을 멈추고 말았다. 그야말로 마계에서의 대마왕이라 불릴 만한 모습 이었다.

그리고. 가르안은 그 마법을 실현한다.

“카이저 피닉스”

이 것 역시 비명조차 지를 세도 없다. 화염으로 불타는 피닉스가 그 들을 모조리 감싼다. 암살자들은 생각할 세도 없이 방금 전과 마찬가지 로,세상에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만다. 물론 헬파이어가 이딴 마법일 리가 없다. 헬 파이어는 지옥의 겁화와 도 같이 타오르는 형상이지 불사조 형상은 아니다. 약간의 조작을 가해 불길을 불사조의 형상으로 만들었을 뿐, 그저 예전에 만화에서 봤던 광 경을 한번 흉내 내고 싶었을 뿐이다.

“한번 따라 해보고 싶었어”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화염으로 인해 붉게 물든 곡도만이 남아 있었 다.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 들며 장난스럽게 히죽 웃는 가르안.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딘가에서, 그 옛날의 강성훈이 외치는 듯 했 다.

-지금 넌 처음으로 살인을 했어!그런데 장난을 칠 여유가 있어?!그러나. 엘 카이자의 힘이 깃든, 가르안 카이자라는 존재는 내면의 말을 무시한다. 아니, 애초에 무시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조금밖에 남 아 있지 않은 겁 많고 약한 강성훈의 자아. 근 일만년에 이르는 엘 카이 자의 기억. 그는 선한 드래곤이었지만 그 세월동안 무수한 생명을 없앤 것 또한 사실.

그는 강성훈이 아니다. 가르안 카이자다.

“어라. 한 놈이 남았나 본데.”

히죽히죽 웃고 있자니, 예민해져 있는 가르안의 감각에 다급히 뛰어 가고 있는 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몇 백미터는 떨어진 곳이었지만 가르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겁에 질린 자의 발소리다. 가르안의 모습은 방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로 그 순간, 뛰어가고 있는 복면의 남자 앞에서 나타난다.

“히,히익!”

갑자기 나타난 가르안. 암살자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친다. 애초 에 연락 담당으로 암살에 나서지 않았던 그다. 그런 만큼 모든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던 것이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잠옷차림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렸다.

“안되지. 누가 이딴 짓을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가야 할 거 아냐?”

황천길로 말이지. 쿡쿡 웃으며 말하는 가르안.

“마,말할 것 같은가?!”

겁에 질린 채로 간신히 발악하듯 대꾸하는 암살자. 가르안은 말하기 조차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튀기며 마법을 걸었다.

“모랄 프레셔     moral pressure)”

“크허헉!!”

침묵이 기본인 암살자가, 고통에 찬 절규를 지른다. 전 아카데미에 울려 퍼질 정도로 커다란 비명이었지만, 이미 사일런스와 마나의 흐름 을 차단하는 마법을 걸어 둔 가르안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그가 실토 하기를 기다렸다.

정신적인 압박. 말을 안 하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만이 그를 괴롭힐 뿐이다. 육체적 고통보다 몇배는 더 괴로운 고통이.

“사실 말로 들을 필요도 없지만, 남의 뇌 속까지 들여다보면 기분 나 빠지거든. 그리니 빨리 말해라. 누가 시켰냐?”

“크,크로스트 가문! 프리안 자작!큐엘 경이다!제발 살려줘!!!크아 아악!!”

“큐엘?”

내심 로아도르라는 이름을 기대하고 있던 가르안이었다. 그 의외의 이름에 놀라고 말았다. 별로 마주친 적이 없어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 지만, 어떤 녀석인지는 알고 있다. 그 재수 없는 로아도르와 함께 다니 던 고양이 눈을 한 귀족 녀석. 하지만 녀석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

“아,그러고 보니”

얼마 전, 루리아와 깊은 포옹을 나누던 중에 창가에서 노려보던 놈이 그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때 조금, 아주 조금 드래곤 피어를 녀석에게 보냈더니 우당탕 넘어지면서 도망가던 녀석. 그것 때문에 쫄았겠지 싶 어서 신경을 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왜 살기를 뿌리며 자신을 노려봤는지. 그것부터 생각해 봐야 했는데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는 것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퍼득 미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녀석도 루리아 공주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크로스트 후작가. 꽤나 위험한 집안이다. 아카데미의 생활로 귀족들 의 집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된 가르안은 쟉셀을 죽이면 여러모 로 귀찮아 질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훈적도 남지 않을 테 지만 아카데미에 수사랍시고 기사단이 몇 번이나 들락거릴 것임이 분 명하니까. 골치가 아픈 듯 가르안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뭐,겁 정도만 주면 될까? 아니지. 그것보다는. 이제 이 암살자에게 볼일은 없다. 왜 죽이려고 한 건지는 본인에게 물어 보면 될 일이다.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튀기자 그 암살자는 다른 동 료들과 마찬가지로, 한줌의 먼지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르안도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쟉셀은 테이블에 앉아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는 심정에 차를 연 신 들이키고 있었지만 소식이 올 때까지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다. 아 마도 밤이 지날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리라. 이러쿵저러쿵 해도, 쟉셀 로써도 누군가를 죽이려는 행위는 처음 하는 것이다. 제 정신으로 편안 히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따로 연락이 오는 것은 아니다. 접점선을 아카데미에 만들어 두 는 과오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 그가 기다리는 것은 그저, 내일 아침에 있을 가르안이라는 학생이 무참히 사살된 모습으로 알려지기를 기다리 고 있는 것이다. 성공의 여부를 확인할 길은 그것 밖에 없었다. 사라락.

그러나, 그는 멀쩡히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바로 눈앞에서.

“뭐,뭐냐!”

의자에서 쓰러지며 경악하는 쟉셀. 그러자 가르안은 반가운 듯 가볍 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가르안이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 무나 잘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눈앞에 서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무슨 수로 문도 통하지 않고 이렇 게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무,무례하다!네가 감히.”

“사람을 죽이려고 해 놓고 무례를 운운하다니. 누가 더 무례한지 모 르겠군 그래”

알고 있었단 말인가!그러나 이 녀석이 이렇게 앞에 나타난 이상, 순 순히 시인 할 수도 없다. 쟉셀은 고개를 획 저으며 외쳤다.

“가,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썩 사라져”

“아,시치미를 떼시겠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내 볼일을 보도록 하 지.”

이번에는 정신적 압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내밀어 쟉 셀의 이마에 대고, 그의 기억속을 훑어봤을 뿐이다. 직접 말 했던 대로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이 녀석의 사고 패턴은 가르안으로써는 이해하 기 힘들었다.

그의 모든 기억을 읽은 가르안은 기분 나빠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 거렸다. 걱정했던 루리아 공주와 연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짜증나는 이유때문이었다.

고작해야 자신에 대한 공포와 질투 때문에?이러쿵 저러쿵 포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그 근본이었던 것이다.

“허?!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냐? 어지간 히 쓰레기로군”

기분도 나빠졌겠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던 가르안은 쟉 셀에게 명령했다.

-내 눈을 똑똑히 봐라. -

가르안은, 인간이라면 견딜 수도 없을 정도의 강력한 피어를 쏘아 보 냈다.

“아아아아악!!”

절규하며 쓰러지는 쟉셀. 일부러 사일런스 마법을 걸어 두지 않았기 에 바깥에 있던 크르소트 가문의 하인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 다.

“이 정도로 해두지. 네 정신력이 대단하다면, 한  50년 안에 제 정신을 차릴 수는 있을 거야.

목숨을 붙여 둔 것도 대단히 봐준 거다. 아니, 사실 봐주고 싶은 것도 없지만 이 녀석도 사라지게 하면 귀찮은 일이 잔뜩 불어날 테니까. 콧 방귀를 뀌며 가르안은 사라졌다. 이 자리에는, 온갖 오물을 질질 흘리 며 동공 풀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쟉셀만이 있을 뿐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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