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4장. 가르안 암살. 6
쟉셀은 일어났다. 시종들이 보는 앞이라 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 실은 지금도 이불 속에 숨어서 벌벌 떨고 싶었다. 아니, 그 전에 이 공 포감을 빨리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이 쟉셀이 무언가를 무서워하게 될 줄이야.
그것이, 용서 할 수 없는 점이었다. 무엇 때문인가?도대체 무엇 때문 에? 가르안이라는 녀석을 그리도 두려워해야 하는가. 눈 한번 마주쳤 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을 무서워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 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귀족, 누구보다도 우위에 있어야 한 다.
쟉셀은 하인에게 명했다.
“형님을 만나겠다. 연락을 보내.”
“첫째 도련님을 말씀이십니까?”
“그럼 누가 있겠나? 빨리 연락해.”
쟉셀의 고양이 눈이 더욱 날카로워 지며 하인을 노려본다. 그에 하인 은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쟉셀은 혀를 차며 느려터진 하인을 발 로 차고 싶은 것을 달랜다. 어렸을 때는 가끔 있던 일이지만 철이 든 이 후로, 자신의 품격에 지장이 간다고 생각해서 자제 하고 있던 욕구였 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다는 욕망이 인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지만, 지금 쟉셀은 그런 것을 세삼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용서치 않겠다. 가르안 카이자.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쟉셀을 방문하는 이가 있었다. 뜻밖의 손님에 쟉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쟉셀!오랜만이구나. 그래, 아카데미 생활은 재미있느냐?”
빙글빙글 웃으면서 다가오는 이는 다름아닌 크로스트 가문의 후계 자. 시튼 반 크로스트. 자신의 친형이었던 것이다. 연락을 취하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직접 찾아 올 줄은 몰랐던 쟉셀은 허둥지둥 일어 나 그를 맞이했다.
“그,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형님.”
“하하하 말도 마라. 차라리 이런 곳에 놀러와 있는 네가 부러울 정도 로구나. 무척 바쁘다.
빙글빙글 웃으며 멋대로 의자에 털썩 앉는 그의 모습은 친근감이 넘 쳐흘렀다. 눈에서도 동생을 향한 진한 애정이 가득하다. 고,다른 이들이 보면 틀림없이 그렇게 여길 인상의 남자였다. 그러나, 쟉셀은 마치 치명적인 독사가 방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할 말이 있다고? 온 김이 한번 와 봤다만”
할 말도 할 말이었지만, 이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면 절대로 위험하 게 된다. 그것은 친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튼 반 크로스 트.로셀 백작. 그는 뒤에서 이렇게 불린다.
정계 (政界 )의 뱀이라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형님.”
“그러니까 내가 왔지 않느냐?빨리 얘기를 해 봐라.”
겉으로는 웃고 있는 시튼이지만 눈에서는 야비한 칼날이 튀어 나와 쟉셀을 찌르는 듯 했다. 끊임없는 탐색과 뭘 노리고 있는지 묻고 있는 그 눈.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쟉셀은 바로 말을 꺼냈다.
“아,암살자를 소개해 주십시오.”
“암살? 누구를 죽이려고?”
섬뜻한 동생의 말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능글거리며, 바로 답 한다.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쟉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 을 이었다.
“꼭,꼭, 사라져야 할 자가 하나 있습니다. 아,앞으로 크로스트 가문 에도, 해가 될 지도 모르는 인물입니다”
“호오, 꽤나 건방진 말이구나. 쟉셀. 네가 내 동생이라 할지라도 가문 의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튼의 말에 쟉셀은 몸을 부르르 떤다. 저것이 정계의 뱀으로 불리는 자. 언제나 웃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사악한 혀가 꿈틀거리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있다. 이것이 크로스트 가문. 기사도로 무장한 바이파 가문과는 달리, 권모와 술수로 그 힘을 키워온 집안의 내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 피는 시튼에게 확실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확신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불러서 온 것이 아니다. 부른 김 에 온 거라고, 뭔가 노리는 목적은 따로 있다고.
“솔직히 얘기 해봐라. 가문의 해가 아니라, 너에게 방해가 되는 거겠 지?”
쟉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문을 위해 서, 라는 것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가르안은 뭔가 불안한 요소 였다. 크로스트 가문뿐만이 아니라 제국에도 커다란 여파를 미칠 것 같 은,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가진 자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자, 시튼은 피식 웃으며 일어나 동 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뭐,좋아. 우리 귀여운 동생이 불쾌하다는 데에 뭔들 못해줄까? 소 개해주지. 나중에 연락을 줄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아,고용비는 네 용 돈에서 빼 쓰고.”
마지막까지 장난스럽게 말하며 시튼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방에서 사라지자, 쟉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뚜벅뚜벅.
방 바깥으로 나오는 시튼.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쟉셀 녀석이 그 유명한 에틴경과 친구라?좋아좋아. 동생이라 고 그런대로 쓸모가 있단 말이지. 환심을 사두는 것도, 덫을 걸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지 암.”
친동생이라고 해 봤자, 얼굴 몇 번 못 본 사이다. 그가 직접 찾아 온 것은 앞으로 바이파 가문과의 연줄을 이어두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어 차피 쟉셀 따위는 경쟁상대도 되지 않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 이파 공작의 후계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미 조사해 두었다. 쟉셀이 누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평민 하나 죽이고서 얻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인연이었다. 다만, 그가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쟉셀과 로아도르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를 몰랐다는 것 정도였다.
“어서와 쟉셀”
쟉셀의 공작저의 방문에 로아도르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반가운 얼굴도 잠시, 오랜만에 보는 친우의 얼굴은 전의 자신만만함이 사라져 있었다. 몇일은 굶은 것 같은 야윈 얼굴. 공주조차 조소하던 그 의 고양이 눈은 한 없이 처져 있었다.
“너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다행이네.”
전신에 알맞게 솟아 오른 근육. 이제 훈련에 익숙해져 가는 로아도르 는 그가 보기엔 정말로 건장해 보일 것이다. 쟉셀이 힘없이 웃으며 말하자 로아도르는 차마 할 말이 없어 씁쓸한 미소를 떠올린다. 마나 부적응자는 겉으로 들어나는 병세는 없다. 다만 때가 오면 마치 줄이 끊기듯. 뚝 하고 죽어 버릴 뿐이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새삼 안부 차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문한다는 연락에 ‘할 얘기가 있다 ’고 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쟉셀은 자신의 두 손을 꽉 잡으며 이를 뿌득 갈았다. 그리고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르안을, 없애겠다.”
가르안이라는 이름에 로아도르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친다. 지금 당 장이라도 달려가 결투를 신청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하지만 쟉셀의 말 에 로아도르는 평정을 되찾았다. 없애겠다니, 현실성 있는 발언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쟉셀”
“녀석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그저 조금 재능 있는 평민이라면 아무래 도 좋아. 괜찮은 인재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쓰면 된다. 하지만 녀석은 달라. 하는 것을 봤으니 알 것이다. 누군가의 밑에 있을 녀석이 아니다. 언제고, 우리를 위협할 녀석이다”
쟉셀은, 자신에 대한 공포를 그렇게 결론지었다. 녀석이 설마 드래곤 피어 같은 무시무시한 것을 쏘아 보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공포 감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위대한 핏줄이 어딘가에서 경고를 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쟉셀”
“없애겠어. 이 세상에서”
이제야 와 닿는다. 쟉셀은 지금 진심으로 가르안을 죽이겠다고 말하 고 있다.
탕!
로아도르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헛소리하지 마라. 그런 비겁한 짓을 하겠다는 거냐!”
그렇게, 기사 집안의 소년은 외쳤고.
“우리는 귀족이니까, 그 누구보다 위대해야 해. 수단을 가릴 이유가 없다. 아니지, 우리는 그 핏줄 하나만으로 모든 수단이 정당화 되는 거 야.”
그렇게, 정계 집안의 소년은 차갑게 조소한다. 너무나도 큰 생각이 차이에 로아도르는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 다.천천히 얘기를 해보자. 쟉셀은 말이 통하는 친구다. 그렇게 자신을 되내이며 로아도르는 자리에 앉았다.
“쟉셀. 나는 육체, 재능은 평민들과 다를 것 없다. 나보다 뛰어난 인 물이 평민들 중에서도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가르안 카이자란 자가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 지.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귀족이기 때문에, 네 말대로 누구보다 위대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보다도 뛰어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야. 그것이 우리의 의 무가 아니겠어?”
그렇기에 뛰어넘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자 쟉셀은 “하!”하고 조소를 지으며 대꾸한다.
“의무?!아니야 로아도르, 우리는 지도자의 핏줄. 그것은 권리야!”
로아도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친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 장 잘 아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가 추구하는 이상향도 같 았다. 그와 함께, 나라를,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대화 를 나누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언제고 기사가 되어, 그는 마법사가 되 어 이 제국을 발전시키자고, 서로 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길이 다르다. 생각 자체가 달랐다.
“분명히 말해두겠어 쟉셀. 하지 마. 시도조차도. 진정 네가 생각을 꺾 지 않겠다면 전 바이파 가문의 이름을 걸고 너를 막겠다. 아니, 크로스 트 후작가까지 말려들 각오를 해라”
그것이 권리일 리가 없다. 권리라면, 지금 자신의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 해진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쟉셀의 절친한 맹우가 아닌, 제국 굴지의 가문의 후계자인 로아도르 반 바이파였다. "너를 믿겠다. "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듯, 로아도르는 방을 나선다. 쾅.
쟉셀은 상처 받은 눈으로 로아도르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생각을 다를지라도, 그 역시 로아도르가 한 말이 상처를 받았다.
“나야말로, 너를 믿었다 로아도르.”
그렇기에, 이렇게 찾아와 얘기를 한 것이었는데. 쟉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공작저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 의 뒤를 시종이 따른다. 그리고 복도의 저편에 이르러, 아무도 없었을 때 쟉셀은 냉철하게 말했다.
“오늘밤, 당장 녀석들을 보내.”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암살자들을 투입만 하면 되는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