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4장. 가르안 암살. 4
‘자,아까 남녀상열지사를 방해하던 그 자식은 신경 끄고 ’ 가르안은 팔짱을 끼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부처 가 해탈한 자세와 다름 없으니. 그가 해탈하는 것만큼이나 진지하게 고 민하고 있는 것은 로아도르와 루리아의 혼약을 무슨 수로 깨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드디어 루리아의 사랑은 얻어 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신분이 공주라는 것. 메르헨적이니 참 낭만 있구나 하며 혼자 속으로 흐뭇해하 면서도 막상 닥친 현실을 무슨 수로 돌파해야 할지 난감했다. 못한다는 게 아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나라를 하나 ‘건국 할까?
드래곤으로 변신 ’해서 선언해 버릴까?
황제한테 찾아가서 ’협박할까?
함께 도망쳐 ’버릴까?
남들이 들으면 다 현실성 없는 일이라 비웃음을 지을지라도, ‘가능한 이 ’에게는 진심으로 고려하게 되는 사안들이다. 엘 카이자의 힘은 설령 이 제국이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하나하나 이유를 들 며 기각하고 있었다. 건국하면 적국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 기각. 변신 하면 루리아가 무서워 할지 모르니 기각. 협박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기 각.도망치는 것도 싫어 할 것 같으니 기각.
‘끄응.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면 안 되지. 단순한 게 좋은데 ’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으니 ’고르기도 쉽지 않은 가르안이 었다. 한참을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로아도르란 녀석을 어떻게 하면 물 먹이면서 루리아와의 사랑을 멋지게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자 니,방문을 강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르안의 오감은 단숨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챈다.
최근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카시레타 반 제르타였다. 그는 가르안의 허가도 없이 덜컥 방문을 열고 들어 와서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뭐야 가르안. 혼자서 또 이상한 걸 생각하고 있군! “시끄러워. 방해 말고 나가.”
“어허!친구가 이렇게 납시었으면 굽신굽신 거려도 모자랄 판에! 이 거 섭섭하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카시레타. 가르안은 중요한 일에 방해 받은 사람 처럼 잔뜩 찡그리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제법 남자답고 열혈한, 하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어서 가르안은 그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술에의 열정. 그 검술로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겠다는 기상은 정말이지 훌륭하다고 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안도와 주고 배길 수가 없었다.
가르안은 카시레타에게도 베르패트에게처럼 도움을 주었다. 베르패 트 때의 경험으로, 그런 일을 함부로 하면 몸이 상한다는 것을 알게 된 가르안이었지만, 그 정도를 감수할 정도로 카시레타가 마음에 든 것이 다. 게다가 열심히 까지 하니 카시레타의 검술 실력은 쑥쑥 늘고 있었 다.아마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마나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 가르안, 베르패트, 그리고 카시레타. 이렇게 세명은 아카데미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다들 자신의 분야에서 두 각을 드러내고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기도 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카시레타. 가르안은 문뜩 자신이 고민 하고 있던 문제를 이 녀석과 대입시켰다.
‘흐음?
어떻게, 이 녀석을 이용해 먹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이용하기 위해 그를 도와준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녀석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은 순수 한 마음이었다. 지금도 그에게 손해를 안기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 지 않다.
다만, 그 건방진 로아도르를 손보기 위해 자신까지 나설 이유가 있을 까.하는 점이었다. 사실 이런 사소한 일에 나서기 위해 얻은 힘이 아니 다.언제고 부활할 대마왕. 마계 여섯마왕의 필두. 절망의 육망성 상관 (上官 )의 좌 座 ). 루스사이퍼를 상대하기 위해 엘 카이자가 자신에게 넘겨준 생명이었다.
그러니, 카시레타가 로아도르를 상대하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상대하게 만들어야 할지. 생각이야 좋았지만 방법이 떠 오르지 않았다.
“네 이놈 가르안!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거냐!”
“엉? 안 듣고 있었는데”
“카악!!정말이지, 내 놈과 친구의 맹세를 나누었다는 것이 부끄럽구 나!친구의 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한참동안이나 투닥 거리던 가르안과 카시레타. 좋은 녀석이긴 하지 만 덩치에 걸맞지 않게 시끄러운 것이 흠이었다. 하기사, 그것도 안 놀 아 준다는 것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 귀엽기는 하지만서도. ‘응?가만, 맹세?’
맹세라는 말을 들으니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이파 가문. 기사 의 가문이었다. 기사란 맹세에 얽매이는 존재. 고위 귀족이라고 다를 것 없지 않겠는가. 아니 오히려 보는 눈이 있는 만큼 한층 더 크겠지. 속이야 어쨌든 간에 겉으로는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가 좋을까? 그래. 커다란 대회 같은 배경이 좋겠다. 수많은 관중들 이 있는 곳. 아니지 아니야. 대회는 그 결전의 배경이 되어야지, 선언하 는 곳이 되어서는 조금 이상하다. 그래, 그 전에 언제 한번 사람들이 우 글거리는 곳에서 선언하자.
루리아 공주와의 사랑을 걸고 결투를 벌이자고. 나름대로 기사도를 배우며 자랐을 테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라도 녀석은 결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전하기에 앞서 카시레타에게 패배해 버린다 면?
“뭐야, 있었잖아.”
녀석에게는 제대로 물을 먹일, 그리고 루리아와의 사랑도 이룰 수 있 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말이다.
“엉? 뭐가 말이냐?”
갑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는 가르안을 보며 카시레타가 미친 놈 처다 보듯이 한다. 그러든 말든, 가르안은 벌떡 일어나 카시레타를 끌고 나 갔다.
“가자 카시레타!검술 연습이다!”
“어엉? 갑자기 왜?!”
“시끄러!빨리 따라 오지 못해!
속으로 떠올린 명안에 가르안은 자기 자신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멋모르는 카시레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에게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님께서 오셨다고?
어쩐지. 하며 속으로 받아들이는 로아도르였다. 요즘 수련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더니 바이파 공작이 영지에서 돌아 올 때라는 것조차 잊어 먹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저택이 몇일 전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아침부터 어째서인지 엘리엇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시 하는 이 없이도, 오전의 수련을 마친 로아도르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아도 르의 목소리는 시종의 귀에 간신히 들어올 정도였다. 그러자 시종은 밝 은 얼굴로 엘리엇의 말을 전했다.
“네.엘리엇 경께서도 오늘은 쉬시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모처럼 하루를 통째로 쉴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로아도르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시종으로써는 그저, 도련님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 실만이 안심이 될 뿐. 그러나, 로아도르는 비척비척 일어난다. 깜짝 놀 란 시종은 급히 그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로아도르는 그런 그를 가볍게 밀어낸다.
이미 공작저의 입구에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하다. 안에 들어가 서 씻고 나올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아버님께서 오셨는데, 그럴 수 없지. 땀을 씻을 물수건하고 예복을 가지고 와”
“도, 도련님. 공작님께서도 도련님께서 쉬시는 것을 바라실 것입니 다.부디, 부디 안으로 들어 가셔서....
시종은 어떻게 해서는 만류하기 위해 감히 바이파 공작을 입에 담으 며 만류한다. 그 무례에 로아도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이 시종이 고맙기도 했다.
“공작의 후계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네?”
평민 출신인 시종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다. 로아도르의 허리가 쭉 펴진다. 언제 지쳤냐는 듯, 수련을 시작하기 전의 완벽한 도련님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의 아들이기 전에,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거다. 그것이 바이파 공작께 충성을 받치는 나 바실론 후작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 바이파 가문의 가주께서 오셨다. 그 후계자가 되는 이가 조금 지쳤다고 마중을 나가지 않는다니, 이 무슨 무례란 말이냐. 빨리 예복을 가지고 와!”
조금 지치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속으로 그리 외치는 시종이었지만, 로아도르는 평소와 같이 위엄 있 는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감히 거절 할 수 없던 시종은 허리 를 굽히며 급히 물러났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로아도르에 대한 섭섭함에 가득하면서 도 그에 대한 걱정은 가득하다. 그런 시종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로아 도르는 숨기고 있던 숨을 몰아쉰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간신 히 버티며 서 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는다고 내키는 대로 한다면, 그 얼마나 꼴사나운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