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3장. 재능조차 없었다. 끝 )
벌써 몇일 째인지. 로아도르가 방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지 상당한 시 간이 흘렀다. 안에 있는 로아도르도 괴롭겠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충분히 괴로운 시간이었다. 엘리엇은 그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에리지에는 로아도르와 같이 식사를 거르고 있었다. 평 소에 온화한 아가씨의 걱정에 시녀들의 고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로아도르의 시종 소년은 혹시나, 도련님이 혹시나 부르지 않을까 싶 어 방 문 앞에서 항시 대기 하고 있을 정도니. 그래서, 엘리엇은 어떻게든 수면을 취하고자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 었다. 조금 독한 술이라도 먹으면 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식당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엘리엇은 안의 촛불이 밝혀져 있음을 발견했다. 일하고 있는 시종일 것일까?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 이다. 공작저의 문틈을 들여다 보니, 촛불에 로아도르의 전속 시종이 시립해 있는 모습이 비췄다.
그가 이 집에서 식사 시중을 들 이는 오직 한명 뿐이다.
“로아도르!
엘리엇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독히도 야위어 있고, 눈 밑은 검 은 것에 머리는 헝클어진 로아도르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 다.
그런 로아도르가,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기품 있게 빵을 씹고 있었 다.
“휴우. 이제 냉정을 찾은 겁니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엘리엇. 그러자 로아도르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 꾸했다.
“배가 고프더군요”
우물우물. 빵을 씹는 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이런 저주 받은 육체라도. 배가 고팠단 말입니다. 그토록 좌절했는 데도, 이 몸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지르더군요. 이 얼마나.....”
냉정한 저 말투가 어째서 이리도 처절하게 느껴지는지. 다만 감정을 드러내며 빵을 씹는 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소년의 처절한 외침이 엘리엇의 귀에 들어오는 듯 했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데, 배는 고프단 말이냐, 이 저주스러운 육 체여!-
용케 울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엘리엇은 빵을 씹는 로아도르를 바라 보았다. 아니다. 저 긍지 높은 소년은 결코 다른 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설령 홀로 있다 하더라도 저 소년이 눈물을 보일 일이 있을까? “잘 했습니다. 식사를 해야죠. 그 어떤 상황이더라도 말입니다”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엣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체,스프를 떠서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제가 어설픈 위로를 해 봤자 전혀 소용이 없었겠지요. 답을 낼 수 있 는 것은 오로지, 로아도르, 당신 뿐이니까요.”
여전히 로아도르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예절에 어긋나지 않게 완벽 하게 고기를 썰어 자신이 입에 넣고 씹는다.
“미련은 없습니까?
그제서야 반응을 보이는 로아도르. 그는 포크와 칼을 멈췄다.
“미련?”
“난 기사.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 어떤 이 도 당신을 도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난 조금이나마, 어떤 것이라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부디 로아도 르,난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엘리엇은 가슴에 손을 대며, 진심이 담긴 맹세를 소년에게 건냈다. 미련이라.
로아도르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런 것을 가져 봤자 우스운 일이 다. 버릴 때는 확실히 버릴 것. 자신의 생명이라도. 그렇게 교육 받아 왔다. 이제 와서 이런 내가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단 하나 바라던 것은 무참히 자신을 외면했건만.
자신은, 오러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러?
문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가르안 카이자의 선명한 오러 였다. 녀석이 겸양을 떨며 점잖게 칭찬을 받아들이며 뿜어내던 오러. 어째서인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사용할 수 없는데, 그 이른 나 이에 벌서 당당하게 오러를 뿜어내는 존재가 있다.
“이기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말.
“네? 누구를 말입니까?”
로아도르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엘리엇을 올려다본다. 일년동안 쌓 인 더러운 감정.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던 질투라는 감정을 가슴에 가 득 채우며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가르안 카이자. 나와 같은 나이임에도 벌써 마나를 터득한 자”
“허어?”
그것은 엘리엇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이른 나이에 마나 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아카데미에 있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카데 미의 검술 수련에 초빙되었던 기사에게 굉장한 재능을 가진 이에 대해 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을 때는 그저 굉장하구나 하고 넘어갔 었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있던 로아도르에게는, 그 얼마나 용납할 수 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토록 굉장한 녀석이 있었단 말입니까?”
엘리엇은 용케도 그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했구나 생각했다. 얘기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자존심 강한 소년이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에 대 해 그리 쉽게 떠들 리가 없다.
안 봐도 뻔하다. 그를 넘어서기 위해 혼자서 죽어라 노력했을 것이 며,넘어서지 못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뿐. 혹,그를 넘어섰다 면 굉장한 재능을 가진 녀석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칭찬했을 것이다. 그랬을 로아도르가, 이토록 감정을 드러내며 그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엘리엇은 자신의 맹세에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지요.
“네?”
로아도르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본다.
저,가르안을 넘어서 보자고?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소망이라면 그 자를 넘어설 수 있도록, 마지 막의 마지막이라도,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넘어설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가르안은.”
“당신답지 않군요. 지금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말 하는 겁니까?”
지금의 엘리엇은 소년을 처음 가르치던, 완벽한 검술 교사로 돌아와 있다. 그가 엄한 눈길로 바라보는 순간, 로아도르의 태도에도 약한 구 석이 사라진다. 가슴에 활력을 담을 목표가 새겨진다. 단 하나 남아 있 는 소망. 그것은 대의를 건 목숨을 건 큰 뜻이 아닌. 그저, 한 남자를 이기는 것.
저 치기어린 눈빛. 약한 모습이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 마치 소드 마 스터를 꿈꾸던 로아도르와 같다. 엘리엇은 약한 미소를 띠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아직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아도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자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거야 오러 소드 아닙니까?”
빛으로 타오르는 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것이야 말로 소드 마스터 의 진정한 위력이다. 그는 긍정하며 다시 물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오러 소드라는 것이 어떤 효용이 있느 냐,그걸 물어 보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벨 수 있는 검입니다.”
“물론 그것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러 소드의 최고의 장점은, 바로 중 거리, 장거리의 공격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본적 으로 검사란 단거리의 공격을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지고 들자면, 창보다 사정 거리가 짧은 무기여야 하지요. 하지만 오러는 그것을 무위 로 돌릴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전 아직 초급의 소 드 마스터인지라 잘 사용할 수 없지만, 오러를 실어 검기를 쏘아 보내 는 것도 가능하죠. 이것은 활조차도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검이라는 단병으로, 중,장 모든 공격이 가능하죠. 이게 바로 소드 마스터, 오러 소드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숨을 돌리는 엘리엇. 로아도르는 하나도 빠짐없이 듣겠다는 듯, 눈조 차 깜빡거리고 있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쌓인 마나는 그대로 있지 않고 육체의 재 구성이 들어갑니다. 들어 보셨을 겁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자는, 좀 처럼 늙지 않는다는 말을요.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면 다시한번 젊음을 되찾게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과는, 그저 단련으로는 쌓을 수 없는 경지의 육체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수십 미터를 뛰어 오 를 수 있고, 남들보다 몇배나 되는 강한 힘과 빠른 스피드를 가지게 됩 니다. 하지만. “
로아도르는 깨달았다. 엘리엇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나이에 그것이 가 능할 리가 없습니다. 즉”
가르안이라는 소년이 아무리 뛰어나도, 완벽하게 완성된 이는 아니 라는 얘기다.
아직은, 적어도 지금은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저 높아서 쳐다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던 가르안이라는 벽을. 로아도르가 이해한 듯하자 엘리엇은 손가락을 두개 꼽았다.
“당신이 그 가르안이라는 소년을 이기기 위해 갖춰야 할 것. 그것은 오러에도 견딜 수 있는 강한 명검과.”
아마도. 저 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것.
“재구성 되고 있을 ’ 육체에도 뒤지지 않는 육체. 그 두 가지만 있다 면 그 가르안이라는 소년도, 한번 이겨볼 기회가 생기겠지요. 이게 나 의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해보겠습니까?”
“하죠.
바로 대답하는 로아도르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괜찮겠습니까? 분명 바이파 가문은 명가. 오러에도 견딜 수 있는 명 검은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아무것도 갖추지 못 한 당신이 재구성 되고 있는 육체를 가지려면.....”
엘리엇은 다짐을 강요하는 눈빛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아마, 지금까지 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련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까지는 앞으로의 성장을 고려해 맞춘 수련만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런 것 따지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그저 이 육체로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뽑아내야 할 때다.
“하겠습니다.”
다짐하며 답한다. 최후의 목표에, 좌절하고 있을 틈 따위는 없다. 온 몸에, 전과 같은 힘이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