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17화 (17/100)

제목      제  3장. 재능조차 없었다. 4

모든 이들이 잠 든 깊은 밤. 엘리엇은 명을 받은 즉시 로아돌의 방으 로 향했다. 기사답게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그의 속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한단 말 인가. 바이파 공작의 명이 원망스러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공작 역시 고심 끝에 아들에게 말을 하고자 결심할 것 일 테니 그의 심정도 헤아 려 지는 바였다.

그의 방으로가 가기도 전에, 엘리엇은 촛대를 들고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벽을 바라보고 있는 로아도르를 발견했다. 그는 가슴이 덜컥하면 서도 로아도르에게 다가갔다.

“로아도르. 이곳에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엘리엇 경”

거느리는 이 하나 없이 벽에, 복도에 붙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로 아도르. 그는 곧 활짝 웃으며 그림의 주인공을 소개했다. 말하지 않아 도 알 수 있다. 공작저의 정 중앙에, 저렇게 크게 걸려 있을 그림은 단 한명 뿐이다.

“저 분이, 바로 엑시엘 반 바이파. 300년 전, 강림한 마왕을 몰아낸 영웅. 위대한 나의 조상입니다. 실로 멋지지 않습니까?”

소년은 꿈꾸는 눈으로 그림을 주시한다.

그림은 화사했다. 선두에 선 엑시엘은 하얀 백마를 타고 검에서는 짙 푸른 색의 오러가 그림의 반 이상을 뒤 덮고 있다. 뒤에는 수만의 대군 이 그를 따르고 있다. 모든 이들이 하나 같이 기대에 가득 찬 시선으로 그의 등을 주시한다.

대륙을 구한 영웅들을 이끄는 자. 그야말로 대 영웅. 300년이 지난 지 금에도 바이파란 이름이 내려오고 있는 이유였다.

“언제고 이분처럼 되고 싶다고.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습니다.”

그 답지 않게 약간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리고, 소년은 그 어린 시절의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 것이다. 그에 걸맞은 노력과 함 께.

엘리엇은 신을 원망했다. 왜, 왜 하필이면 절망의 선언을 해야 하는 이때에 소년과 이렇게 마주쳐 이런 꿈을 들어야 하는가. 얘기 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미루고 미뤄, 그 꿈을 계속 꾸게 해주고 싶다. 나 자신도 노력하는 소년을 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이 분처럼 될 수 없습니다. 엘리엇 답지 않은 독한 말에 로아도르는 놀랐다. 이런 말로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다.

“나에겐 재능이 없단 말입니까?  하, 하지만 더욱 노력하면 나

도....”

충격스러운 선언에 로아도르는 더듬거리며 반                  反 )했다. 화를 낸 다기 보다는 실망했다. 그는 엘리엇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이미 소드 마 스터인 사람에게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은 정말로 자신에게는 없 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고개를 저었다.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한층 더 침중한 얼굴로 말하는 엘리엇. 그의 단언에 로아도르는 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언제나 격려해주고 자신을 지도해준 그의 입에 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말이 심하십니다!엘리엇 경!물론 스승 된 이로써 쓴 충고를 한다면 달게 받아 들이겠습니다!재능이 없는 것도 인정하겠습니다!하지만 남 의 꿈을!긍지를 무시하지 마십시오!어째서 그런 말을”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로아도르. 당신은...당신은....”

한참이나 입술을 달착거리는 엘리엇.

“마나, 부적응자이니까요.”

결국, 이 말을 꺼내고 말았다.

“마나....부적응자?”

처음 들어 보는 말이지만 대충의 뜻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로아 도르는 그것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냉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 다. 그저, 머리 한쪽에서는 이해하고 있을 저 단어를 자신과 연결시키 지 못할 뿐이다.

“그게, 뭡니까? 마나 부적응자?”

“선천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병을 말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 지요. 이 질병을 앓게 된 이는, 수명이.....20세를 넘기기 힘들다고 합 니다.”

그제서야 마나 부적응자 라는 게 어떤 것인지 뇌리 속에 박힌다. 하 지만 아직도 자신과 그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로 아도르는 믿기지 않는 듯. 아니 믿을 수 없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옷의 소매를 걷어 올린다.

잘 단련되어 있는, 알맞게 근육이 붙어 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한 팔이 다.

“하,하하. 그럴 리가, 그럴리가요. 무슨 말씀을. 보십시오 엘리엇경. 이렇게 멀쩡하지 않습니까? 전 아프지 않습니다. 병 따위는 없습니다. 하루하루 단련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언젠 가는 소드 마스터가 되어, 엑시엘 반 바이파의 후예로써 부족함이 없는 기사가 되어...”

“로아도르.

엘리엇은 차마 소년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겠는 듯 그의 말을 잘랐 다.그것은 소년에게도, 엘리엇에게도 너무나 가혹했기에. 그제서야 로아도르도 자신이 정신없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굳게 입을 다문다. 하지만,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다. 받아들이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정녕 자신의 수명이           20세 까지라면, 이것은 일생을 걸어온 꿈 이었다.

“로아도르, 참으로 힘들겠지만..”

“아무런 말씀 마십시오 엘리엇경”

로아도르는 돌아섰다. 더 이상 이 그림 앞에 설 자격은 없다고, 머리 한속에서는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로아도르는 믿기지 않는 듯 힘 없이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엘리엇 은 그를 잡지도, 막지도 못했다.

그는 소드 마스터. 한 소년이 필사적으로 바라던 것을 이미 이룬 자.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쥔 그가 가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자에게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로아도르!문을 열어 로아도르!”

에리지에는 손수 동생의 방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그러나 방 안에서 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벌써 몇 일 째인지, 그녀의 뒤에서 시녀들은 그녀를 말려야 하지만, 말릴 수도 없어서 어찌 할 줄 몰라 하 고 있다.

에리지에는 엘리엇에게 로아도르에 대한 것을 듣고 바로 동생에게로 달려왔다. 그렇게나 열심히 검술을 수련하던 동생이었다. 모든 일에 냉 정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정했던, 가문의 후계자로써 자신에게 엄격하 면서도 검술에 대해서 얘기하면 쑥스럽게 살짝 웃는, 어른다우면서도 소년 같은 꿈을 꾸던 동생이었다.

에리지에에게는 소드 마스터니, 오러 소드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 았다.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제   살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살게 해봐야 하 지 않겠는가.

시녀들의 뒤에 서 있던 엘리엇은 탄식의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로 다가갔다.

“잠시 혼자 있게 두십시오 에리지에.”

“하지만!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로아도르!이 누나를 봐 서라도 제발 문을 열어!

쾅!쾅!

에리지에는 그녀의 여린 손은 붉게 물들어 있다. 엘리엇은 이러다가 에리지에까지 상하겠다 싶어 그녀를 말리려는 순간. 방안에서 로아도 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십시오 누님”

힘없는, 그러나 어째서인지 위엄까지 느껴졌다.

“괜찮습니다. 전 바이파가 아닙니까. 바이파의 이름을 가진 이가 방 에서 아사라니요. 선조님을 뵐 명복이 생기지 않습니다. 걱정 말고, 잠 시만 혼자 있게 해주십시오.”

차분하기 까지 한 그의 말에 엘리엇은 오싹함을 느낀다. 모든 것에 절망하고 저주하며 정신을 잃었다 할 지라도 엘리엇은 이해했을 것이 다.

그런데도, 바이파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아직도 자신은 바이파임을 잊지 않고 있다. 저 끝없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은, 이토록 꺾일 줄 모르 고 있었다.

창가에서 로아도르는 뜰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보인다. 저 꽃과 우거진 나무속에서 뛰어놀고 있 는 로아도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뭇가지를 꺾어 용사 놀이를 했다. 또래의 소종 들,시종의 아이들을 데리고 로아도르는 엑시엘 반 바이파의 흉내를 낸 다.

-자,봐라 마왕이여!내가 엑시엘이다!나의 오러 소드가 그대를 쓰러 뜨릴 것이다     -

마왕 역을 하고 있던 소년을 로아도르는 찌른다. 소년은    -크윽!- 하 는 어색한 신음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로아도르는 나뭇가지를 높이 치 켜 새운다.

-내가 승리했다!마왕을 무찔렀다       -

-와아아아!-

시종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놀이임에도, 로아도르는 정말 용 사가 되었다는 심정에 기뻐했다.

점차 나이를 먹어간다. 함께 뛰어 놀던 아이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홀로 남아 있다.

어느새, 그는 진지하게 목검을 들고 휘두르고 있다. 검로는 확실하게 일직선을 그리며 성장해 가고 있다.

어릴 때의 유치한, 그러나 찬란했던 그 꿈.

가문의 후계자로써 자신을 자각한다.

사실, 마왕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용사란, 그 마왕과 함께 나타나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럼에도 꿈은 남아, 소년은 아직까지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단 말이지.

이렇게 되었다 할 지라도, 나는 로아도르 반 바이파. 위대한 엑시엘 반 바이파의 후손으로써.

“난.....바이파다.......

그는 두 손으로 눈을 눌렀다. 바이파이기에, 당장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막아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