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11화 (11/100)

제목      제  2장. 신경 쓰이는 자. 5

“괜찮아?”

“어? 아,어. 고마워. 하,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너에게도 위험하지 않을까...”

흑발의 소년, 가르안의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도 그를 걱정한다. 천성 적으로 무척 착한 소년인 모양이다. 그러자 가르안은 쓰러져 있는 귀족 중 한명을 발로 툭 차면서 말한다.

“괜찮아. 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도 못할 테니까. 대신, 너도 입 다물고 있어야 해?”

귀족을 발로 찬다는 파격적인 행동에 소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 었다. 가르안에게야 귀족이거나 말거나 상관 없는 차원의 얘기였지만 말이다. 그러자 가르안은 걱정 할 것 없다는 듯 빙긋 웃으며 그의 어깨 를 두들겼다.

하얀 빛으로 가득한 손으로.

“참 지독한 놈들이네.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짓을”

“흑..흑.....

가르안에 다정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는 소년. 아마 자신이 치유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할 정도로 그의 감정은 격앙되어 있었다. 그러자 가르안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아니 전의 강성훈과 너무나 닮았다.

오래전 얘기인 것 같기도 하지만, 바로 얼마 전이었던 이야기. 피로 딱지가 잔뜩 진 얼굴로 교실의 석양을 바라보던 그와 이 눈 앞의 소년 이 겹쳐진 것이다. 자,어떻게 해야 할까?이 소년은 그냥 두고 가야 할 까? 하지만, 자신은 전과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도 있 고.

힘을 줄 수도 있다.

“너.이름의 뭐야?”

“나? 나,나는 베르패트....”

“특과 수업으로 어떤 것을 받고 있어?”

“나,난 마법을 배우고 있어. 그다지 재능은 없지만.....

소년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재능보다는 동경에 의해 선택한 수업일 것이다. 가르안은 냉정하게 베르패트를 살폈다. 재능은 없지만 반대로 별다른 문제도 없고, 심성도 착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맹세해.”

“어? 무,무슨 맹세?”

“잔말 말고, 빨리 손을 들어 맹세해. 나는 나의 힘을 약한 이들을 위 해 사용하겠다고”

“어.어.나는 나의 힘을 약한 이들을 위해 사용한다.”

가르안의 다그침에 영문도 모르고 배르패트는 그를 따라 선언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마나의 양이 배르패트의 몸 안에 흘러들어갔다. 그 움직임의 여파는 아카데미 뿐만이 아니라 저 수도의 끝이라 할 지라 도 느껴질 엄청난 것이었다.

배르패트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상에 있는 모 든 이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가르안은 지금 상상을 초월한 마나로 배르 패트의 몸을 재구성했다. 당장 뒤바뀐 것은 없어 보여도 몸의 안은 마 법사로써의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나머지는 그가 얼마나 노력하느냐 에 따라 달려 있다.

이것은 가르안으로써도 굉장히 무리가 가는 일이다. 아마도 앞으로 3일 동안은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겠지. 그는 파리한 안색을 숨기며 배르 패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힘내.”

쟉셀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쓰러진 이들을 발로 차는 순간 발끈 해서 앞으로 나갈 뻔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가르안의 손에서 나오 는 하얀 빛에 다시 몸을 감췄다. 다른 것은 모른다. 다만 그의 손에서 나오던 것은 틀림없는 치유의 빛.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은 그 뒤에 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바로 앞에 있던 쟉셀이라 할 지라도 느 끼지 못할 것이었다.

마법사인가? 하지만 자신은 마나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했거늘 치유 같은 고급 마법을 쓰다니. 로아도르와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쟉셀의 느 낀 감정은 훨씬 더 졸렬한 것이었다.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 자는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야말로 최고의 마법사, 라는 따위의 거창한 생각은 없었지만 저 정도로 앞서 나가는 이는 틀림없이 앞으로 장애가 될 것이다. 이미 머리 속에 쓰러진 세 귀족에 대한 것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걸음을 돌려 자신의 숙소를 향했다. 그리고 도착 즉시 자신의 시종을 불렀다.

“검은 머리칼 말씀이십니까?”

“그래. 누군지 당장 알아와.”

“혹시, 다른 특징이라도....

시종은 난처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은 머리칼 자체가 굉장 히 드문 것이었지만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아카데미 안에도 손 가락으로 꼽을 정도는 될 것이다.

쟉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힌트라고는 흑발. 그리고 치유마법.

“아마, 마법 계통의 수업을 받는 이일 것이다.”

그 정도로만 한정을 두어도 범위는 굉장히 좁혀진다. 더 이상 물어 보면 그의 심기가 상할 것임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시종은 조 용히 물러났다.

시종이 나가자 홀로 남은 쟉셀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 신의 프라이드를 그런 더러운 감정으로 물들일 수는 없다. 그러니 남은 것은 분노, 그리고 증오였다.

귀족은 최고여야 한다. 설령 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아도르는 질시가 가득한 눈으로 가르안을 주시했다. 가르안은 힘 없이 칠판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완 벽한 답. 아니, 가르치는 선생들조차도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의 완벽을 뛰어넘는 답이었다.

가르안!가르안!

그 검술 수업 이후로 가르안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의 눈에 들어왔 다. 그가 검술만 빼어난 인재였다면 그냥 검에 굉장한 재능을 가진 이 려니 하고 넘어 갈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점이 가장 용납할 수 없지만            ),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학식. 검술. 혹은 모르지만 마법에까지 소질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렇다면.

로아도르가 타고난 것이 바이파의 이름이었다면, 가르안은 재능 그 자체를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는 하나씩 하나씩 로아도르의 자부심을 무너트리고 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르안을 볼 때마다 그는 더러 운 감정에 자신이 물들고 있는 것 같았다.

“후우.

“어째, 힘이 없는 것 같네?”

같이 식사를 하고 있자니 쟉셀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아니. 최근에 잠을 설쳤더니 좀.”

설쳤다기 보다는 안잤다 라는 것의 의미에 가깝다. 책을 붙들고 있을 때가 많아졌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단련하는 강도 는 점차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러니 절로 몸이 피로해질 수 밖에. 상대를 앞에 두고 예의 없게 굴었다 싶어 쟉셀을 바라보니, 그 역시 눈빛이 파리파리했다.

“그러는 너도 그리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어?”

“아,좀.”

그는 대답하기를 꺼려했다. 로아도르는 의아했지만 남이 말하고 싶 어 하지 않는 것을 털어 놓게 할 사람은 아니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말 해주겠지 싶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그 점에 쟉셀은 감탄한 듯 로아도르를 보았다.

쟉셀에게 있어, 이 로아도르는 여태까지 만난 이 중 최고의 친구였 다. 단순히 바이파 가문의 후계자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어른들 중에서도 로아도르 같은 귀족다운 귀족을 본적이 없다. 똑똑.

그때, 방의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시종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아르시엘 엘 아스토 공주님께서 곧 방문 하신다 합니다”

“이런이런. 제  2공주님이라고?”

그 점에 여태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공주들이다. 쟉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당연히, 제  1공주, 루리아 공주의 방문을 기다 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랫 사람으로써 직접 찾아가는 것이 도리이 긴 하지만 이 정도의 무시를 당했으니 그들에게도 내세울 자존심은 있 었다.

그에 비해 로아도르의 얼굴은 한층 풀려 있었다. 호감을 갖고 있다 면,차라리 루리아 공주보다 아르시엘 공주에게 더 가지고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시엘 공주는 시녀들을 거느리고 로아도르의 방에 들어왔다. 완벽한 기품에 태도.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 아하지 않는 루리아 공주에 비해 확실한 자각은 있는 듯 했다.

“두분께서 담소를 나누시는데 방해를 해서 죄송해요.”

“천만의 말씀을.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우아하게 자리에 앉고, 시종이 따른 차를 사뿐 들어 올리며 말을 건 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바로 용건을 말씀드리겠어요. 제 용건 보 다는, 루리아 공주님의 용건 때문에 방문했답니다”

그 점에는 쟉셀과 로아도르 둘 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 제    2공주님인가, 싶었더니만 제      1공주의 용건인가? “그 동안, 루리아 공주님은 학식에 힘을 쏟느라 두 분과 제대로 된 대 화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해서 오늘밤, 다과회에 초대하고자 하니 부디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주 면 감사하겠다고, 전해 달라 하셨지요.”

말이 끝나자 뒤에 대기 하고 있던 시녀가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내민 다.

“흐음.

쟉셀은 생각해 보는 척하며 조금은 만족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늦어 도 너무 늦었지만 만족스러운 용건이다. 초대장을 건내고자 제          2공주 를 보낸 것도 아마 늦어진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겠지. 그 동안 공주가 자신을 초대하지 않는 것에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지. 그것은 공주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차원이 아니라 공주에게도 초 대 받지 못한 대 귀족이라면 얼마나 비참한가. 자존심을 꺾고 먼저 찾 아 가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로아도르는 표정을 감추고 있었지만 대강의 사정을 눈치 챘다. 아마, 이 다과회에서 제       1 공주의 얼굴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루리아의 초대 장을 건내고자 나온 아르시엘. 그리고 루리아의       ‘어쩔 수 없는    ’ 부재로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대접하게 될 아르시엘.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틈 잡을 구석이 없다. 너무나 완벽 한,대외적으로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멋진 초대다. 게다가 아마도. 이것을 생각해낸 것은 루리아가 아는 저 눈 앞의 아 르시엘일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아르시엘 엘 아스토. 황실의 말괄량이로 알려져 있지만 그 총명함 역 시 널리 알려져 있다.

온통 가르안이라는 존재로 머리를 채우고 있던 로아도르였지만, 그 순간 만큼은 아르시엘 공주를 주시하고 있었다. 카아아악!쓰기 싫어!!

라는 게 현재 솔직한 심정입니다. 글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 니라, 정말 쓰기 싫은 부분도 있다는 거지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산다. 라는 말은 멋지지만, 그 좋아하는 것을 하 기 위해 도중에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건가 봅 니다.

꼭 필요한 부분이니 안 쓸 수도 없고.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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