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9화 (9/100)

제목      제  2장. 신경 쓰이는 자. 3

로아도르가 머물고 있는 방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최고급의 숙소를 제공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황족의 공주가 머무는 곳에는 미치지 못했 다.원래는 강당으로 쓰이던 곳을 급히 개수한 곳이었다. 그저 넓은 공 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황족의 공주가 머무는 곳에 어울리는 화사한 방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의 접대 테이블에는           2명의 공주가 마주 앉아 있었다.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는 공주 하나. 그리고 얼굴까지 내밀며 다다 다 얘기를 하고 있는 공주 하나.

“언니, 그러면 안 된다구!”

걱정에 가득 찬 아르시엘의 목소리는 루리아의 귀에 닿지 않았다. 오 로지 그녀의 머릿속은 낮에 마주쳤던 흑발의 소년으로 가득 차 있었 다.

“그렇게 막 움직이면 안 된단 말이야. 언니는 공주잖아. 왜 그렇게 다 른 귀족들에게 안 좋게 보일 행동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나중에 위험해 질지도 몰라”

혹 서로가 권력에 욕심을 내는 타입이었다면 이런 얘기는 커녕 오히 려 반길 상황이었지만, 두 자매는 무척 사이가 좋았다. 평상시에는 활기 발랄하고 현명한 동생의 말을 귀담아 들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지금 평상시가 아니었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한참 그녀에게 열변을 토하던 아르시엘은, 자신의 말을 드는 둥 마는 둥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루리아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 었다.

“언니,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어? 아 미안. 뭐라고 했니?”

깜짝 놀라며 급히 말하는 루리아. 아무래도 언니는 자신의 말을 제대 로 들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아르시엘은 한숨을 푹 쉬며 바로 찾아온 목적을 꺼냈다.

“다과회라도 여는 게 어때?”

“다과회? 무슨?

“후우. 적어도 바이파 공작가와 크로스트 후작가의 자제를 한번은 만 나야 할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듯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초대하란 얘기야.”

바이파 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루리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르시엘이 하는 말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로아도르와 쟉셀을 초대하 라니. 그런 끔찍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르시엘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즉시 언니가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숨을 푹 쉰다.

“할 수 없지. 그럼 내가 나갈 테니까. 언제는 핑계 거리라도 만들어 둬. 초대는 언니가 하고,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운 언니               ’ 대 신 내가 접대 하는 것으로 하면 문제는 없잖아.”

물론 그 두 귀족, 특히 로아도르 반 바이파가 눈치 못 체리라고는 생 각하기 힘들지만 그들에게도 이 초대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주가 그 두 사람을 초대했다는 것이니까.

“그래주겠니? 고마워 나의 동생아”

루리아는 일어나 아르시엘을 살며시 껴안았다. 아르시엘은 볼을 잔 뜩 부풀리면서도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냉정하지 못하고, 마음이 약한 공주지만, 그래도 아르시엘은 착한 언 니를 좋아했다.

“후욱. 후욱.”

엎드린 로아도르는 정면을 바라보며 팔을 굽히고 있었다. 입으로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다. 호흡은 규칙적. 내려갈 때마다 숨을 들이 마 시고, 올라갈 때 내뱉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떠나기 전 엘리엇의 조언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체력 단련은 기사로써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물론 마나의 단련이 시작되면 육체적은 요소는 극히 적어지지만 그 기본이 되는 그 릇이라는 것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꾸준히 단련해두면 결코 자신을 배신하는 법이 없죠. -

그의 책상 위에는 시종이 준비해둔 고대어에 관한 책들이 여기저기 펴져 있었다. 체력 단련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한번 씩 훑어 둔 것이다. 바이파 공작가는 기사의 가문이지만 그것이 학식에서 모자람이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학식을 쌓을 필요가 있 다.

“구십팔. 후욱. 구십구. 후욱. 백!

털썩.

목표된 개수를 채우자, 긴장이 풀린 그의 몸은 바닥에 쓰러졌다. 차마 시종이 있는 앞에서는 단련을 할 수 없다. 자신의 하인에게뿐만 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숨을 몰아쉬며 땀을 잔뜩 흘리는 흐트러진 모 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아카데미에 온 뒤로는 이렇게 잠자기 전에 조금씩 단련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로아도르는 일어나 미리 준비해둔 물수건으로 몸의 땀을 닦았다. 근 육에 살며시 이는 경련. 로아도르는 이 느낌을 좋아했다. 그 만큼 자신 의 체격이 단련된다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마음대로라면 조금 더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한 그로써는 이 정도 선에 멈 췄다. 욕심을 내다가 몸을 망친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다. 빨리, 몸의 성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애초에 귀족인 만큼 좋은 것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쉴 수 있기에 동갑의 평민들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 남자에 필적할 정도인 것은 아 니다.

아직도 성장기니까. 남들보다 키가 크고, 또한 팔과 다리가 길다면 한층 더 유리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로아도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냉정했다.

이상한 것은,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있음에도 아직도 마나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말에 따르면 육체를 단련하는 도중 자연스럽 게 쌓이는 것이 마나이고 그 쌓이던 것이 한계치를 넘으면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아직도 모자른가?조금만 더 몸을 움직여 둘까? 로아도르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3년만 참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성장기가 끝나는 순간, 누구 도 자신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자기 자신이라 할 지라도.

‘드디어 내일이면 다시 손에 검을 쥘 수 있는 거네                ’ 침대에 몸을 뉘이며 로아도르는 주먹을 꽉 쥔다. 내일은 그토록 기다 리던 검술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정작 검술의 수업이 시작된 순간.

“뭔가 이건”

로아도르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렸 다. 수련용 철제검을 기대하며 왔건만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목 검이었다. 물론 목도 자체는 최고급이었다.

그의 한 마디에 검술을 담당한 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아카데미 자체는 고등 교육기관이었으므로 그 역시 상당한 실력을 자 랑하는, 황실 소속의 기사였지만.

“철제 검은 없는가?”

변변찮은 작위도 없으니 역시 로아도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게 다가 그의 전 검술 스승은 황실친위 기사단의 부단장인 엘리엇이다. 어 느 모로 보나 로아도르의 한마디에 자신의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하지만, 에틴경. 아카데미의 방침 상 목검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 습니다. 부디 감안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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