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 1장. 공작가의 도련님. 3
“몸 조심하렴”
“나중에 또 보자꾸나.”
그리고 입학식 날. 어차피 한 수도 안에 있는 시설인 만큼 바이파 공 작은 요란하게 그를 보내지 않았다. 일가족과도 조찬을 같이 한 것 외 에는 평범했다. 실제로, 로아도르는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 지 만나려면 만날 수 있는 곳이며 나름대로 귀족이 머물만한 환경이 갖 춰진 곳으로 가는 것이다.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육두 마차에 올라타면서 로아도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을 떠나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귀 찮음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마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어떤 일들 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경험은 있었다.
공작저에서 아카데미는 그리 멀지 않다. 얼마나 갔을까, 로아도르는 주위가 급격하게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슬쩍 창밖을 내다보았 다.
아니다 다를까, 요란한 것은 아카데미였다. 입학자들뿐만이 아니라, 공주 ‘들 의 입학 소식에 부랴부랴 고위 귀족들의 자제들이 뒤따라 입학 하는 바람에, 아카데미의 총책임자인 루쉴드 자작이 직접 나와 이마의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실, 아카데미로써도 이런 고위급들 자제를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이 기 때문에 난리를 피울만도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황족의 입학은 그 리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로아도르조차 극빈중의 극빈. 그보다 높이 취급해야 할 만 한 사람은 공주 들 ’밖에 없다. 바이파 가문의 문장을 단 마차가 다가오 자 루쉴드 자작은 인사를 하고 있던 귀족에게 급히 사과의 말을 올리고 로아도르 쪽을 향해 달려왔다. 에틴경. 바이파 공작가의 후계자. 그 이 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서 오십시오 에틴경.”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쉴드 자작.”
로아도르가 마차에서 나오자 주변에서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귓속말 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웅성웅성.
“저 분이 에틴경.”
“소문으로는 어린 나이에 만만찮은 분이라던데.”
“그럴 것이오. 그 바이파 공작의 유일한 후계자이지 않소. 그러자 로아도르는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다소 오만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지위에 있다. 그러자 수많은 시선이 그에게 쏟아 졌다. 역시나, 누구하나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어울리는 당 연한 태도다.
‘피곤하군 ’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앞으로도 이런 눈길을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소년은 절로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건 귀 찮다.
루쉴드 자작이 직접 안내하여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길 목의 끝에서 한층 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이윽고, 그 소란의 정체는 밝혀졌다.
“루리아 공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헉!
기다리던 취고의 귀빈이 납신 것이다. 루쉴드 자작은 로아도르의 귀 에 들릴 정도로 큰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로써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 을 것이다. 로아도르가 보통 귀족이라면 좀 전과 같이 사과의 말을 올 리고 그쪽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바이파 공작의 이름은 그 정도로 가볍지 않다.
그의 곤란을 눈치챈 로아도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돌렸 다.
“루리아 공주님이라. 저도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군요”
“아,그,그러시겠습니까?”
루쉴드 자작은 눈에 띌 정도로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기가 막힐 정도로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자였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학장을 하고 있겠지 ’ 특별히 그를 무시해서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루쉴드 자작의 학식은 황궁의 관리가 자문을 청할 정도로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렇게 얼굴에 솔직히 드러나서야 귀족들 간의 알력 다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란의 중심에는, 황가의 문장에 크게 새겨져 있는 금색의 마차에서 한 금발의 소녀가 사뿐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작은 탄성 이 일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과연, 제국 최고의 미녀라 불려도 과의치 않을 외모 의 소녀였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로아도르에게 ‘한눈에 반했다.’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워낙 에 표정이 없어서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오히려 시큰둥한 얼굴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특별히 여성을 접해본 일이 많지도 않 을 뿐더러 로아도르에게는 아직 이성에게 관심도 없을 때였다. 게다가, 외모는 분명 뛰어나지만, 로아도르는 눈앞의 공주에게 그다 지 좋은 감정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싫다는 쪽에 가깝다. 지금 자신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그녀 때문이니까.
“에틴경?”
루쉴드 자작이 나지막히 그의 이름을 부르자 로아도르는 정신을 차 렸다. 공작의 후계인 것을 떠나 그 자체로도 대귀족인 로아도르를 뒤에 두고 먼저 나아갈 수 없는 것이 그의 입장인 것이다. 공주는 공주. 로아도르는 예를 차려 공주에게 나아가 한쪽 무릎을 꿇 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리아 엘 아스토 공주님. 저는 로아도르 반 바이 파.현재 바실론 후작, 에틴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로아도르의 인사에 루리아는 흠칫 놀란 듯 했다. 아마도 로아도르를 보며 모든 이들이 느끼는 이질감을 느낀 것이리라. 어린아이 같지 않은 어린아이.
“일어나도록 하세요 에틴 경”
약간 떨리는 목소리, 그녀에게 로아도르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 볼 수 가 없고 눈동자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으니 어른 이 봐도 약간 위압감이 느껴질 진데 아직 어린 공주가 보기에는 어떠할 까?
그렇게 언약으로만 되어 있는 혼약자들은 만났다. 그렇게 황족과 대귀족이 만나고 있는 순간. 한 남루한 청년이 소란스러움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든 곳에 호기심이 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젖 히고 안쪽으로 들어가 그 소란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년과 소녀, 특히 소 녀쪽을 바라보자.
“호오!!”
그 남루한 청년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야말로 공주에 어울리는 미 모.화사한 금발, 우수에 젖은 파란 눈동자. 앞으로 어마어마한 미인으 로 자랄 것이 분명하리라.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 버렸 다.
쉽게 말해, 청년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슬쩍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18세의 몸. 그녀와 10살은 차이가 난다. 몇 년후의 그녀라면 모를까, 지금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은 변태라는 소리를 들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귀족들 간의 혼약이라면 나이차 보다는 가문차가 더 중요시 되 긴 하지만 그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고, 또,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좋아, 결심했다. 이것이 키잡 루트라는 거군!!
딱!
손가락을 튀긴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몸은 15세 정도의 자그마한 소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외모만이 아니다. 남루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화려하지는 않 지만 모자라지도 않을 복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이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는 듯 했다.
“나도 접수해 볼까나 ~~”
어차피 상대방에게 마법을 걸면 그에게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10대 의 소년이 된 가르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접수처를 향해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연신 공주 쪽을 흘낏 거리면서.
“그런데, 저 놈은 누구지?”
루리아 공주 앞에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있는 소년. 보아하니 좀 높은 귀족쯤 되나 본데 어찌 저런 소녀 앞에서 저리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미소녀는 그에게 잔뜩 겁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그에겐 그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이 형이 혼 좀 내줘야 겠네”
연신 빙글거리던 그의 눈빛이 잠깐 빛나는 듯 하더니, 그는 다시 걷 기 시작했다.
일단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