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2화 (2/100)

제목      제  1장. 공작가의 도련님. 1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생각 따윈 없다.

남들은 나를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 그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내가 가는 것뿐. 오로지 그 한길만을.

그에 모든 영광을 오로지 나만이 누릴 뿐이다. 제  1장.공작가의 도련님.

“아시겠습니까 도련님?

눈앞의 소년은 오똑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10대 중반이나 되었 을까? 금발에 온 몸은 화려한 비단 옷으로 둘러 쌓여 있다. 어떻게 자란 것인지, 소년은 자신의 열배나 되어 보임직한 노인의 앞에 힘껏 고개를 치켜 새우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소년의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 를 끄덕인다. 소년은 응당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의 후예이자 바이파 가문의 유일한 남아. 차기 바이파 공작 제      1순위인 로아도르 반 바이파. 지금의 작위는 바실론 후 작,에틴경. 그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엑시엘 반 바이파 님이야 말로 시대의 진정한 검사요, 기사였습니 다.도련님은 그런 위대한 가문의 이름을 이어나가실 고귀한 태생이신 겁니다. 위대한 기사가 되시는 길. 다른 것에는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 니다. 무엇보다도 가문의 영광이 최우선시 되는 거지요. 바이파의 이 름.그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일 자는 황제 폐하 뿐이신 겁니다. 아시겠는 지요?”

소년에게는 다소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는 거침없이 고개를 다시 까 닥였다. 가정교사인 노인의 말대로라면 그는 그 노인에게조차도 공경 을 표할 이유는 없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요 도련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응.

그제서야 짤막하게 대꾸한 소년은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그때까지 옆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시종의 그의 책을 주섬주섬 챙 겨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소년의 뒤를 종종 따라간다. 소년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가 가는 길에 무엇이 있던 간에, 방 해가 될 것 같으면 하녀들이 알아서 치우고, 본인들이 방해가 될 것 같 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을 내준다.

많은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공작가의 저택이지만, 이 소년이 걷는 길만 은 언제나 고요함과 쾌적함이 함께한다.

챙그랑!

“죄,죄송합니다!”

아직 어린 시녀가 들고 가던 접시를 깨고서 안절부절 하고 있다. 그 에 고참 시녀들은 그녀를 꾸중하거나 달래기보다는 로아도르의 눈치만 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로아도르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는 거지요. 사소한 것에서는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응당 공작의 역할이라 함은 그러한 것이지요                ’ 머릿속으로 노인의 말을 떠올린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사람에게 는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은 고작 접시를 깬 시녀의 일 가지고 나 설만한 위치는 아니다.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 면서

로아도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들은 어린시녀에게 다가 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꾸짖기 시작했다.

“얘!하필이면 에틴 경이 지나가시는데 그런 실수를 저지르니!”

“죄,죄송합니다!”

한참동안이나 어린 시녀를 꾸짖은 그녀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접시 조각을 치우는 그녀를 도왔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모질게 나가지는 못 하는 그녀들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들의 대화에는 로아도르가 주제로 떠올랐 다.

“도련님은 언제나 너무 차가우시지 않니?”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여긴 공작저 라고.”

“아무도 없잖아. 하지만 사실이잖아. 저기, 내가 황궁에 친구가 공주 님 직속 시년데, 황궁의 루리아 공주님은 그렇게 착하고 온화하시데”

“루리아 공주님?공주님이면 에틴경의 약혼녀 아닌가?”

“뭐,쉬쉬 하지만 거의 확실히 되고 있지.”

정략 결혼.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나이도 정령기에 한참 모자 라건만,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건 말건, 무언가    있을 수 없는 일.’일이라도 일어나 지 않는 한 가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참 이상한 도련님이야. 차갑긴 하지만, 또 반대로 짓궂거나 하지           않 는 것은 다행이잖아?”

“그러게 그러게. 어떻게 보면 아이답지 않아서 좀 무서울 때도 있 고.”

“투정 같은 것도 없고. 말도 없고. 좀 이상하잖아? “하지만 굉장히 우수하시데. 그야말로 귀족으로 타고난 분이랄까?”

이제 겨우    14세. 로아도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이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로아도르는 자신의 검을 쓰다듬고 있었다. 무게와 길 이도 자신의 체중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연습용 검. 날조차 없는 검이 건만 로아도르의 눈매는 나이에 걸맞는 치기에 불타오르고 있다. 바이파의 가문은 기사의 가문. 위대한 엑시엘 반 바이파의 이름을 잇 는 후예다. 그런 만큼 로아도르 역시 가문에 무한한 영광을 가지고 있 었고, 어린 아이다운 치기 어린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역대 사상     2번째 그랜드 마스터의 칭호. 엑시엘 이후 많은 바이파의 남아들이 그 칭호에 도전했지만 실제로 손을 넣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커녕 한 단계 아래인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잇는 자조차도 없었다. 지금도 로아도르 의 아버지, 즉 바이파 공작은 상당한 수준의 기사이기는 하지만 소드 마스터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로아도르가 도전하려는 것이다. 그는 검술에 제법 소질이 있는 편이라서 바이파 공작으로서도 자신의 아들에게 보 내는 기대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 증거가, 현재 로아도르의 개인 검술 교사인 기사 엘리엇이었다. 현재 제국에서 손꼽히는           기사이자 황실 친위 기사단의 부단장은 그는, 근시일 내에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검의 달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쉬죠.”

로아도르는 말없이 검 끝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 청년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련님이 다음에 할 말을 알고 있었던 탓이다.

“싫어.

한 두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소년에게 맞춰진 연습용 검 이라 할지라도 목검이 아닌 철제검. 그것을 미동도 없이 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로아도르는 무수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로아도르는 확실히 우수한 인재다. 그것은 검술 교사인 기사 엘리엇 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천재는 아니다. 무언가를 지시하고 그에 빈틈없이 따른다. 그럼 조금 더 무리한 것을 지시하고, 저 소년은 그것에 조차 따라오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노력하는 자. 그것을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없건만 그럼에도 소드 마 스터가 되기에는 모자라다고 느낀다.

소드 마스터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야    ’ 되는 것이 다. 가르치는 것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 그 자신이 그 천재인 엘리엇은 이미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로아도르는 타고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계속해서 가르치는 것은, 그 보람이 있다는 것. 제 아 무리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르침을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오 는 로아도르에게 호감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그 재능도 틀림 없이 보통 이상은 넘는다. 훗날엔 뛰어난 기사가 되어 있으리라.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금은 말릴 상황. 엘리엇은 자심의 검으로 로아도르의 철검을 아래로 내리고는 훈계에 들어갔다.

“에틴경. 몸을 무리하게 상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무리만큼 성장하 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몸을 망치기 쉽지요. 가르치는 자의 말에는 충분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감히 공작의 자제이자 후작의 작위를 가진 에틴경, 로아도르에게 그 런 식으로 말 할 수 있는 자는 스승이라 이름 붙은 자 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아직 몸이 성장할 나이가 아닙니까. 신체적 조건 또한 검술 에서는 틀림없이 지금처럼 무리를 하다가는 유리한 신체를 가질 수 없 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는 로아도르도 마음에 걸리는 듯, 검 끝이 흔들리기 시작했 다.그러나 아직 검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한참 그가 로아도르를 꾸짖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수련중인가요?

낯익은 목소리. 엘리엇의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굳이 그가 로아도르 가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출입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공 작의 부탁만으로 이곳에 출입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유로는 조금 떨 어진 곳에서 하얀 양산을 들고 서 있는 아가씨 때문이기도 했다. 에리지에 반 바이파.

바이파 가문의 장녀로써 그 뛰어난 미모로 인해 사교계의 스타인 그 녀는, 무엇보다 로아도르와는 달리 더 없이 순수하게 자랐기에 많은 귀 족들의 구혼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달리 말하면 맹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지만.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기사 엘리엇도 예외가 아니었고, 또한 바 이파 공작도 은근히 자신의 딸이 엘리엇에게 호감을 가지기를 기대하 고 있다. 엘리엇은 작위와 가문은 형편없지만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뛰 어난 기사. 젊고 뛰어난 기사이면서 황실 친위 기사단의 부단장이니 앞 으로의 출세는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딸로서도 얼굴도 모르 는 체 이루어지는 정략결혼보다는 실력도 인격도 확실히 보장 되어 있 는 엘리엇은 누구에게나 탐이 나는 인재였다.

“외출하십니까?”

“네.그래프트 남작가에 가려고 합니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에리지에. 엘리엇은 바로 로아도르의 검을 강제 로 내려 버렸다.

“에스코트하지요. 도련님. 수업 종료입니다.”

엘리엇은 순식간에 수업 종료를 선언하고는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녀가 들고 있는 양산에조차 햇빛을 비추지 못하겠다는 듯 그 녀의 등 뒤에 철썩 붙어서.

순수한 처녀인 누이. 그리고 우수한 기사인 엘리엇. 로아도르는 여전 히 무표정 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따스했다. 그러다가, 약간 미간이 모였다.

엘리엇은 기사단의 부단장이다. 바쁜 사람이다. 그러므로, 로아도르 의 검술을 다듬어 주는 시간은 극히 짧다. 그런 소중한 시간인데, 누님한테 빼앗겼다.

그 무렵. 수도 아스토니아의 성문 밖.

한명의 남루한 청년이 멍하니 성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는 발전한 곳이잖아?”

청년은 이곳에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 은  이 세계   는 생각보다 훨씬 더 구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성만은 달랐다. 청년이 제대로 된 성을 봤다고 해봤자 수원성 정 도 일까? 하지만 그 규모와 화려함. 모든 면에서 그것보다는 뛰어난 것 같았다.

하기사, 여기는 동양의 세계관이 아니라 서양의 세계관을 지닌 동네 같지만. 카이자의 기억에도 이런 곳은 없다. 그의 기억은, 너무 오래된 것이 많으니까.

“요컨대, 제대로 된 곳은 이 수도 정도라는 것이구만. 청년은 볼을 긁적거리면서 드높은 성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게 제대로 된 기회라는 것이군. 여기에서 여기가 어떤 동네 인지 확인을 좀 하고 다시 나서도록 할까”

청년은 자신만만하게 걸음을 옮긴다.

수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전시가 아닌 만큼 검문은 그리 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루한 행색의 청년이 다가왔음에도, 병사는 시큰둥한 얼굴 로 그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통행증을 보여주시오”

“통행증?”

청년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검게 빛나는 눈동 자.순식간에 병사를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이 만들어 버렸다.

“나는 가르안 카이자. 이곳을 통과한다. 너는 나에게 모든 경의를 표 하며 통과 시킨다.”

마지막의     모든 경의    는 그의 취미 범위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자 병사는 동공이 풀린 채 충실히 경례를 붙이며 크게 외쳤다.

“네!가르안 카이자님!이 곳을 통과하셔도 됩니다! “음음. 그래야지.”

“충!!

청년, 가르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태연스레 다른 병사 들은 병사가 경례가지 붙이며 높은 사람이라고 짐작하고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수도는 여전히 평화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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