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세컨드-1화 (1/100)

프롤로그

해질녘의 하늘. 붉게 물든 교실에 한 소년이 벽을 기대어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굴에는 푸른 멍이 군데군데 들어 있었고, 얕게 찢 어진 상처에는 붉게 달라붙은 피딱지가 눌러 붙어 있었다. 소년은 멍한 눈길로 교실로 천장의 텍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런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소년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킨다. 그 대신, 이미 한참 울어 부어오른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흐른다.

소년은 그 어떤 짓도,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 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주도 없어서 조용히 지냈 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이유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약하다.’ 이 두 가지만으로 그는 이렇게 피투성이가 되어서 학교의 빈 교실에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소년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창밖의 석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 그것은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져서 소년은 한층 더 눈물을 흘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분해서. 약한 자신이 증오스러워 서.

소년은 문뜩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학교 건물의 높이는 5층. 이런 곳 에서 떨어져서 살아남는 다면 그것은 오히려 재수가 없는 측에 속할 것 이다. 결코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것은 그의 삶을 더욱 괴롭게 만들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그 어떤 생각도 없어진 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 곳에서 떨어져 버리고 자신이란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린다면.

편안할까?

턱.

소년은 발을 창턱에 올린다. 몸은 한 없이 떨린다. 그의 본능은 이런 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고 외치며 그를 제지한다. 저 아래 블록이 깔린 바닥을 바라보며 눈동자가 쉴 세 없이 떨렸다. 떨어진 후의 자신 의 모습을 떠올리면 무섭다. 부러진 뼈에 튀어나오는 내장과 뇌수들. 그 부근의 땅은 온통 피로 물들겠지.

그의 이성도 그를 살리기 위해 썼다. 누군가 네가 죽으면 슬퍼할 것 이다. 친구? 친구는 커녕 주위에는 모두가 조소를 보내는 무리들일 뿐 이다. 부모님은 어떨까?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떠올린다. 그것은 일반적인 생각일 뿐. 그 와 부모와의 관계는 정이 깊다고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바쁜 부모님.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아침식사 대신 차가운 종이쪼가리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짤막한 메모조차도 존 재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래전에 일상화 되어버린 일인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들은 체면상 약간 슬 퍼하는 표정을 지어버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서로 얼굴 볼 일도 없이 일을 하고 돈만 벌면 만족하는 그런 생활로.

가자.

그는 눈물과 피에 얼룩진 얼굴로 발을 때었다. 제트코스터를 타는 듯 한 기묘한 부유감이 그를 지배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죽음이라 할지라도, 죽는다면 나를 조금이나마 생각해줄까?

그리고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떨어지지 않았다!

쿠웅!!

“아앗!”

소년은 엉덩이에서 오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통 증? 어째서 통증이 느껴지지? 소년는 의아한 얼굴로 엉덩이를 쓰다듬 으며 일어났다. 겨우 엉덩방아를 찧은 정도의 고통. 자신의 생각하던 그런 것이 아니다. 결국은 죽어본 사람만이 알겠지만, 떨어져서 자살하 는 사람의 경우 고통과 공포로 인해 정신을 잃는다고 들었다. 즉, 자신 이 엉덩이가 아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여긴......”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은 틀림없이 학교의 뒤뜰에 떨어 져 죽었어야 할 터인데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다. 동굴? 아니 이곳은 인 간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마치, 오래된 고성 같은 곳? 매끈한 바닥에 벽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빛.

“빛이.......있네?”

소년은 멍청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형광등도 아니고, 촛불도 아니 며 기름으로 태우는 램프도 아니었다. 그런데 빛이었다. 마치 홀로그램 같은 것이 있다면 저런 느낌이겠지. 하지만 소년이 알기로는, 홀로그램 은 그 자체로는 빛을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저것은 대체 뭐지?

소년은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그 것은 그 어떤 열기도 느껴지지 않 았다. 게다가, 만져지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빛이 떠 있을 뿐.

“하아........”

몇 번이고 더 손을 휘저어 본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 다. 아무래도 자신은 죽어 버린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가 사후라는 곳인 것 같다. 죽어다 살아난 사람은 없으니 죽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반대로 알 수 없으니 이런 현상도 태연하게 받 아들여진 것이다.

난 정말로 죽었구나. 속으로 생각한 소년은 일어나 복도를 향해 걸어 갔다. 49제라던가? 죽은 뒤에  49일 동안 걸어가야 하는 길. 그것이 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에는 다른 죽은 자들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홀로 걷고 있는 것인지 소년은 의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소년은 길의 끝에 도달했다. 시간으로는 얼마 지 나지 않은 것 같은데? 소년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자신을 가로 막고 있 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황금빛의 문. 오히려 광택이 진하지 않아 뉴

실제로 금으로 만들어 진 것 같은 문이었다. 문의 고리에는 붉은 보석 이 박힌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길죽한 주둥이에 솟아 오른 두개 의 뿔. 생긴 것으로 봐서는 어릴 때 만화에서 보던 드래곤과 비슷했 다.

“황금의.....용?”

어째서 이런 것이 저승에? 잘은 모르겠지만 매치가 되지 않는다. 저 승에 황금룡이 산다는 얘기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쨌 든 이 문이 길의 끝인 만큼 들어가야 겠지.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문에 손을 대었다.

드르르릉!

워낙에 거대한지라 자신의 힘으로 열릴 지는 의문이었지만, 문은 거 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빛! 소년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시 뉴

야가 확보되자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히이이익!!!”

털썩.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안은 거대한 돔형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소년이 들어 간 곳은 돔의 가장 높은 곳. 그리고 그 돔 안을 가득 매우고 있는 것은 거대한 황금이 었다. 하지만 그저, 쌓여 있는 금은보화가 아니었다. 내려다보는 위치 였기에 소년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다. 그리고 보고 있는 대로 거대한 황금 의 룡이다. 저것은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며, 보석보다도 더 빛나는 붉 은 눈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 없다.-

공중에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펴진다. 그렇지만, 소년은 그가 뭐라 고 하는 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저것은, 소리라서 귀에 들린다기 보다 는, 의지 그 자체가 머리에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인가.-

거대한 황금룡은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 나, 그 소리에는 틀림없이 다급함, 그리고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시간이 없다. 하지만 나의 의지를 이어 받는 자가 눈 앞에 나타나다 니. 이로 말할 수 없는 신의 안배로다.-

“시, 신의 안배? 의지?”

소년은 이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황금의 룡이 뭐라 고 지껄이는 것인지. 이미 자신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는 관심도 없 다. 그저 지금의 이 상황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의지를 이어 받아라. 그대의 이름은?“

넋이 나가 있는 성훈은,  그의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꺼냈 다.

“가, 강성훈.......”

-강성훈. 나의 이름은 엘 카이자. 계약은 이루어 졌다.“계, 계약이라니! 그게 대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정신이 퍼득 든 성훈은 일어나 서 외쳤지만 갑자기 불어 닥치는 거대한 황금빛 바람에 숨을 삼켜야 했 다.

구오오오오오오!!!!

-시간이 없다. 곧 모든 것을 알게 될 터! 대마왕 루스사이퍼의 강림이 멀지 않았으리니. 지상에 그를 막을 자, 나 엘 카이자의 힘을 이어 받은 자 밖에 없으리라!-

“아아악!!”

황금빛 소용돌이는 그 구심점을 성훈에게로 옮겼다. 성훈은 이미 숨 조차 쉬기 힘든 지경이었다. 온 사방에서 느껴져 오는 압박감에 몸이 터져나갈 것과 같았다. 그 소용돌이는, 그 중심에 있는 성훈의 몸에 하 나 둘씩 흡수되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나의 모든 것을 그대의 것으로 만들어라!성훈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마침내 모든 바람이 그의 몸에 흡수 되었을 때. 성훈은 돔의 중심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구타로 인한 상처는 깨끗하게 치유되어 있었으며, 피부는 백인의 그것보다도 하얗고 깨끗했다. 그리고 풍압을 견디지 못한 그의 교복은 하반신만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번쩍.

성훈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검은 빛의 눈동자. 하 지만 지금 그의 눈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한참동안이나 빛나는 눈으로 허공을 주시하던 성훈은, 곧 손을 휘둘 맨스, 일반

러 허공 속에 손을 넣었다. 공간의 마법. 9서클의 경지에 올라야 가까스 로 시전 할 수 있는 지고의 마법을 그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행한 것 이다.

위대한 전설의 검 갓 블레이드. 신이 내린 금속으로 황금의 에이션트 드래곤 엘 카이자가 직접 주조한 최강의 검.

검을 손에 쥔 성훈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쥐어 허공을 베어본다. 너무 나 자연스러운 동작. 빛과도 같은 하얀 전설의 검은 잔상을 남기며 부 드럽게 움직인다.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성훈은 이번엔 그러자 예스러운 하얀 망토, 그리고 하얀 예복이 그의 몸에 걸쳐 진다.

그리고 선언한다.

“이제 난, 예전의 강성훈이 아냐! 다시 태어난 나의 이름은 가르안 카 이자!!”

그의 선언에 자연의 모든 마나가 요동을 친다. 새로운 주인에 경배라 도 하듯 그에게 굴복한다. 온 전신에 흐르는 강력한 힘!

“아하하하하!!!!!!!”

자신 만만한 웃음과 함께 그의 몸이 떠올라 순식간에 사라진다. 플라 이 같은 저급 마법이 아니다. 역중력을 이용한 비행이동, 9써클의 고위 마법사라 할지라도 경악 금치 못할 광경이다. 아무도 보는 이도 없건 만, 그는 순간이동 같은 마법으로 재빨리 이동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과시하려는 화려한 마법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아스톤 제국에 강림한 영웅. 가르안의 행적은 그 어떤 인간이 라 할지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제국의 수도인 아스토니아로 가서, 아카데 뉴

미에 입학한 것이었다. 엘카이자의 방대한 지식을 가진 그로써는 더 이 상 배워야 할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드래곤만의 것이었다.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출신은 엄연히 인간이 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 와 중에, 그는 천생의 배필을 만나게 된다.

황제의 딸, 아스톤 제국의 제  1황녀 루리아 엘 아스토. 그녀는 당시 세상에서 2번째로 기록 되는 그랜드 마스터 가문의 후예, 로아도르 반 바이파와 태중 혼약인 상태였으나 그의 오만방자하고 지극히 귀족적인 태도는 다정다감한 그녀에게는 커다란 부담감이었다. 그에 루리아에게 한눈에 반한 가르안은 로아도르 반 바이파와 승부를 겨루고 그녀와의 혼약을 파기시켜 훗날을 기약하게 만든다.

아카데미에서 사상 최연소 소드 마스터의 기록을 남기며 졸업을 하 게 된 가르안, 그가 다음에 행한 일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악 한 블랙 드래곤, 루카펠을 처단한 일이었다. 당시 엘 카이자의 모든 힘 을 흡수하지 못했던 가르안으로써도 힘든 일이었지만 죽음 직전에 깨 달은 카이자의 힘으로 그는 루카펠을 물리치고 만다. 그 공적을 인정받 아 그는 아스톤 제국의 카이자 후작이 되고, 황제에게 공식적으로 제 1 황녀의 약혼자임을 인정받는다. 황제에게는 황자가 단 한명도 없었으 므로, 실질적으로 제국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험심이 들끓었던 그는 세상에서 아무도 정복한 적이 없다는 아비스의 미궁에 들어갔다. 발록 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전설의 미궁. 그는 그곳에서 발록의 수급 을 가지고 나와 그 전설이 사실이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 전설조차 깨뜨리고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낸다

그 와중에 함께 아비스의 미궁에 들어갔던 동료, 하이엘프 엘라이라 와 깊은 관계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지만 그만한 영,

웅에는 자연 여자가 많을거라 사람들은 판단한다. 루리아 역시 가르안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지만, 그만한 남자는 홀로 감당해 낼 수 없 다는 것을 깨닫고 순순히 엘라이라와의 관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르안이 이 세계로 올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 엘 카 이자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세상을 떠나게 된 원인. 대마왕 루스 사이퍼가 강림하게 된다. 마계의 십만 데몬을 이끌고 나타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세상은 공포에 비명을 질렀고, 대륙의 모든 것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의 앞을, 가르안이 가로 막았다.

그야말로 멸종의 위기에 놓인 인간. 그는 전 대륙의 병력이 집결한 2 00만 대군의 가장 앞에 서서 맞서 싸웠다. 마계의 데몬은 홀로서 100명 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마계의 괴수. 200만 대군이라 할지라도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가르안 한명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대군이 전멸의 지경에 이르고, 만신창이가 된 체로 가 르안은 대마왕 루스 사이퍼 앞에 서게 된다.

대마왕은 실로 강했다.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조차 뛰어넘은 가 르안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가 모든 힘을 다 쓰고, 쓰러져서 우뚝 서 있는 대마왕을 노려보고 있을 때.

이 세상에 신이 강림했다. 빛과 함께 강림한 주신. 그는 한줄기의 빛 을 가르안에게 내려주고.

검의 신이 새로이 탄생했다. 온몸이 빛으로 빛나는 검의 신은 신의 검을 들어 대마왕을 향해 겨누고.

가르안은 두 명의 아내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고요한 정원과는 다르게, 바깥은 시끌벅적하니 요란했다. 오늘은 그가 대마왕 루스 사이퍼를 물리치게 된 날, 대륙의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것을 기리는 날이었다. 거대한 축제가 벌어지고, 황궁의 비무대에서는 한창 검술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주신에게 조 차 인정받은 검의 신. 가르안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웃으며 엘라이라와 대화를 나누던 가르안은 루리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았다.

“음? 루리아,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둡지?”

언제나 온화한 웃음만을 보여주던 그녀가 아닌가? 그는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분노에 차올랐다. 감히 그녀를 슬프게 하 다니. 그런 존재가 있다면 대륙 끝까지 쫒아가서라도 말살 시킬 용의가 있는 가르안이었다.

그런 가르안의 기색을 살피던 루리아.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 다.

“저어, 가르안. 혹시 로아도르라는 이름을 기억하나요?”

“로아도르?”

가르안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런 사람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드 래곤의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역시 두뇌는 사람의 그것 이었기에, 망각이라는 것 또한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가르안이 영 알아차리지 못하자 그녀는 다시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 를 숙였다.

가르안이 그녀를 달래려고 엉거주춤 일어났을 때, 정원 안으로 시종 이 조용히 들어와 나직히 고했다.

“대공 전하. 검술제의 승자가 가려졌사옵니다.”

“흠. 그래.”

나중에 해도 되겠지. 그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일어났다. 그는 이 미 인간이 아니다. 신들에게 동급으로 인정받은 검의 신. 무(武)라는 측 면에서는 신들 중 그 어떤 자 보다도 돋보이고 뛰어난 존재이다. 검술 제의 승리자라 할 지라도 제법 뛰어난 존재일 뿐. 그에게는 가볍게 눌 러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세상에, 나를 이길 자는 없노라고.

이럴 리가 없다. 그는 마스터라 불리는 단계를 벗어난 자. 검에 관해 서는 인간조차 벗어나 주신에게 검의 신으로 인정받은 가르안이 한 인 간을 보며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로 긴장감을 느낀다.

그자에게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 은 자.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마나조차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미 죽 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신체다.

그러나 태산과도 같은 검을 들고.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 넘치는 기백으로 서 있다.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로아도르 반 바이파.

인간으로써 신에게, 검사로써 용사에게 도전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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