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가면 사내의 손짓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승현에게 적대적으로 변하며 거대한 압력을 만들어 승현을 짓눌러 터트리려 했다.
하지만 승현은 그런 압력 속에서도 의연함을 유지했다.
“신과의 싸움은 그 존재와 의지의 싸움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넌 분명 나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겠지만 역시 미숙해.”
“······그게 무슨 말이지? 미숙? 막 신이 된 네게 듣고 싶지 않은 단어군.”
가면 사내의 불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승현은 가볍게 손짓했다.
“바로 이런 거다.”
그의 손짓에 승현을 짓누르던 세상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갔다.
아니, 어느 무언가에 빠르게 빨려간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의 진명은 모든 걸 뒤덮는 탐욕의 어둠. 내 앞에서 틈을 주었다간 그 어둠에 빨려 들어가게 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승현의 진명처럼 세상에 존재하던 어둠이 승현의 편이 되어 모든 걸 뒤덮어 먹어치웠다.
불완전한 세상이라고는 해도 하나의 격리된 세상이다.
그 무한한 넓이와 크기를 자랑하던 공간이 빠르게 어둠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진명을 얻고 바로 이런 힘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글쎄? 내게 좀 많은 기연이 붙어서 말이야. 이조차도 창조자들이 정한 법칙에 의해 이렇게 되어버렸지.”
승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실제로 이런 강대한 힘을 막 신이 된 승현이 낼 순 없을 거다.
아직까지 인간이란 이념이 남은 그에게 있어서 강한 의지는 잡념에 의해 일정 수준에서 막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법칙들과 그를 무시하고 비튼 승현에 의해 승현은 어떤 신보다 강한 의지와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무려 네 개의 신성을 얻고 그것이 뒤섞인 최초이자 최후의 혼합형 신이 바로 최승현이다.
승현은 탐식과 무극과 불꽃과 어둠이란 각기 다른 신성을 모두 얻고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신이 되었다.
서서히 승현의 어둠에 잡아먹히는 가면 사내는 발악을 하듯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본신의 강대한 마력을 유형화하여 만든 검으로 승현을 놀렸지만 느릿하게 손을 뻗은 승현에 의해 그 발악조차 멈추고 말았다.
“이, 이익! 나의, 우리의 세상이, 나의 세계가···!!”
승현은 서서히 어둠에 뒤덮이는 원의 수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그는 원에게 복수를 마쳤다.
또 세상을 구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지만 아직 진짜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서히 어둠에 먹히던 가면 사내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냥 죽진 않을 거다, 최승현―!!”
“발악을 해도 상관없어. 넌 이미 죽은 몸이니까.”
“과연 그럴까? 하하하, 하하하하!!!”
광소를 하던 가면 사내가 완전히 사라지자 곧 불완전한 세상도 어둠에 잠겼다.
승현은 그런 세상 또한 완전히 먹어 치워버렸다.
하나의 세상을 삼킨 어둠은 고요하게 출렁일 뿐이었다.
다시 미궁으로 돌아온 승현은 곧 중심부에 떠 있는 창조의 큐브 조각을 발견했다.
“이로서 두 개인가. 아니, 네 개로군?”
승현은 잠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이 만든 불완전한 세계에 있던 오만가지 물건이 함께 넘어왔는데.
그중 두 개의 창조의 큐브 조각도 함께 넘어왔다.
승현은 바로 큐브를 합쳐 쓰지 않고 미궁 밖으로 나왔다.
“키에에엑!!”
미궁을 나오자 순간 자신을 발견하고 공격을 해오는 몬스터에 승현은 몬스터의 심장을 터트려 쓰러트렸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몬스터가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은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짓을 한 건진 모르겠는데 몬스터가 갑자기 게이트를 넘어서 미친 듯이 흘러나오고 있어. 이대로면 정말 몇몇 국가를 제외하곤 세상이 몬스터 차지가 될 거야.”
“그렇군. 이게 그의 마지막 발악이었나. 최대한 수비적으로 나서줘. 몬스터는 내가 처리하지.”
승현은 그리 말하곤 그대로 힘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신은 자신의 관할이라고 해도 전력을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워낙에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어 자칫하면 차원과 행성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만가지 법칙으로 둘둘 쌓인 지구는 승현이 전개하는 힘을 어찌어찌 버텨냈다.
승현의 근처, 아프리카 일대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그대로 존재를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저 힘을 개방한 것만으로 수만의 몬스터가 소멸해버린 거다.
“자아, 그럼 청소를 시작해볼까.”
어둠 그 자체가 된 승현은 씩 미소 지었다.
승현이 본신의 힘을 모두 개방한 승현이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에게 재앙이 찾아왔다.
천 레벨이 넘어가는 레이드급 몬스터부터 수많은 고레벨 몬스터까지.
신의 힘 앞에선 권능에 가까운 힘을 지닌 몬스터조차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소멸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정리한 승현은 곧 북상하여 몬스터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그건 거대한 먹구름이었는데 거대한 먹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몬스터들이 땅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에 고군분투를 펼치던 헌터와 유저들이 입을 벌렸다.
종말이 찾아온 줄 알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소멸하는 몬스터를 보며 기쁨보단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만큼 신의 힘은 그 영역 자체가 달랐다.
지상에 몬스터가 폭주하고 불과 4시간.
수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많은 인명이 사라졌지만 인류는 무사했다.
다들 검은 먹구름이 바로 지구의 신이 내린 사도 내지는 신의 힘 자체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승현의 힘이 그의 상상대로 모습을 변하여 몬스터를 처리한 것이었다.
승현은 곧 대서양의 미궁으로 이동했다.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미궁에 들어온 승현은 다른 곳과 달리 바로 등장한 큰 광장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창고가 멋대로 열리고 어둠 속에 보관된 창조의 큐브가 빠져나왔다.
창고에선 여태 어디에 쓰이는지 모를 무언가의 결정이 빠져나왔다.
멋대로 빠져나온 그것들은 곧 중앙에 모이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도화?”
“안녕. 승현. 오랜만이네?”
형상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도화였다.
그녀는 수수한 원피스를 입은 모습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승현연은 그런 도화를 보면서 또 다른 수만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나 온 아저씨부터 갓난아이, 나이든 노인과 심지어는 동물로도 도화의 모습이 보였다.
실체는 도화의 모습이지만 눈으로 그리고 인지하기엔 그런 수많은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 모두가 도화 그 자체였다.
“너는, 누구지?”
“나는 네게 도화란 이름을 받은 가련한 신격체이자 수많은 생을 거듭한 세상의 근원.”
“···창조주라 이건가.”
도화는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앞에 이 사단을 만든 창조주가 등장했지만 뭔가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그건 아마 근원인 창조주에 대한 경의에 의한 것일 수 있고 도화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었다.
“자, 그럼 승현. 내게 바라는 걸 말해봐. 깨어난 지금 나는 그 대가로 네 말을 들어줄 의무가 있어.”
“재창조를 막는 건 안 되겠지?”
“후후, 그건 뒤엉킨 법칙에 의한 순리인 것.”
“그렇다면 간단하군.”
승현은 씩 입가를 올려보였다.
“내게 모든 창조자들을 소멸시킬 힘을 줘.”
“그 대가가 너의 소멸이라고 할지라도?”
“물론. 그걸 위해서 여태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잖아?”
“좋아, 인간에서 신이 된 위대한 존재인 최승현. 모든 걸 뒤덮는 탐욕의 어둠. 네게 창조자들을 소멸시킬 수 있는 운명을 부여할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현은 흐릿하던 법칙들이 하나씩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눈앞에 보이는 다양한 색깔의 끈들에 승현은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임을 알았다.
“자, 이제 네 운명에 간섭을 했어. 이제 넌 창조자들을 소멸시킬 수 있어.”
“확실한 대답 고마워.”
“별말씀을. 자아, 나도 이제 깨어났으니 다시 세상을 다스려야 할까봐.”
“그 말은 창조주로서 창조자들을 소멸시킬 내게 해도 되는 소리야?”
“물론. 승현의 싸움을 지켜볼 거야. 그리고 엉망진창이 될 세계를 보듬을 거고. 그럼 뒷일은 신경 쓰지 말고 한 번 날뛰어봐.”
그렇게 말을 마친 창조주가 사라지자 곧 승현은 광장에 혼자 남게 되었다.
“글머 가장 먼저 이 시스템을 만든 자부터.”
승현은 무수히 많은 법칙 가운데 시스템을 만든 창조자의 세계로 넘어갔다.
순식간에 세상이 반전되고 더 좁고 어두컴컴한 방에 섰다.
“여긴···?”
“아아, 결국 여기까지 왔나. 어쩔 수 없구만.”
“당신이 게임을 만든 창조자로군?”
승현은 눈앞에 앉아있는 삐쩍 마른 청년을 보며 말했다.
그에 청년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이 난장판의 처음을 설계했던 신이지. 설마하니 다른 이들도 내가 만든 법칙에 숟가락을 얹으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나는 당신을 제거하기 위해 왔습니다.”
“알아. 쭉 지켜봐 왔는걸. 이렇게.”
[바로 이렇게 말이지]
알람이 울리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이 판을 짠 당사자라서 말이야. 모든 걸 지켜봤어. 그리고 결국 네가 창조주를 깨우면서 이 게임의 엔딩을 완성했지. 비록 게임은 망가졌지만.”
“세상은 게임이 아닙니다.”
“나도 알지. 나는 그저 무료했을 뿐이야. 그리고 창조주를 깨우고자 이 게임을 만들었을 뿐이고. 여기에 멋대로 법칙을 짜집기한 다른 신들이 너무한 거라고. 뭐, 그들도 설마 이렇게 도리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청년의 몸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이 게임을 만들면서 나는 내 자신을 대가로 걸었어. 원래라면 게임을 클리어한 이에게 막대한 소원을 들어주고 나의 소멸과 함께 게임이 끝나겠지만···. 이 게임을 끝내주겠어?”
“물론.”
승현의 장담에 청년은 웃었다.
“그럼 미안하지만 뒷일을 부탁해.”
끝내 완전히 사라진 청년을 본 승현은 곧 청년의 세계도 소멸하기 시작하자 그곳을 나왔다.
한편 지구의 헌터와 유저들은 갑자기 작동을 멈춘 시스템에 당혹감을 느꼈다.
여전히 힘을 느끼고 있지만 게이트에 들어가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창고며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이 끝이 났으니 당연한 거지만 잠시의 혼란이 찾아왔다.
“허허, 이거야, 진짜로 창조자를 소멸시킨 건가. 승현.”
알드리안은 뭔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에 열심히 기기를 조작하던 조커가 말했다.
“사고 하나는 제대로 칠 줄 아는 놈이잖아. 새삼스럽게 뭘.”
“그렇지. 그보다, 거대한 흐름이 뒤바뀌고 있군. 법칙이 요동치고 있어.”
알드리안의 말대로 수많은 법칙이 동시다발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중원 차원의 신과 여태까지 이 사태를 방관한 여러 신들이 주 법칙의 소멸로 근간부터 뒤흔들리는 엉킨 실타래를 풀고자 창조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멸한 신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며 그에 해당하는 법칙도 사라질 거다.
행성이면 행성, 차원이면 차원이 소멸할 거지만 이미 누만 년을 홀로 선 신들에게 창조주가 깨어난 지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에게 피조물들은 개미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개미가 어찌 되든 그들에겐 큰 감흥이나 여파가 없다는 소리.
신들의 싸움에서 소멸한 신들에 의해 세상을 뒤죽박죽을 변했지만 다시 창조주에 의해 혼란이 잡혔다.
게임 시스템이 사라진 후엔 차차 몬스터의 존재가 지구에서 사라졌고.
던전이 사라졌으며 다음으로는 게이트가 사라졌다.
차차 하나씩 소멸하며 원래의 지구로 돌아가려는 모습에 헌터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짙은 마력이 옅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에 따라 극한까지 몰린 여러 헌터나 유저들이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서서히 힘을 잃으며 유명무실하던 경찰과 군대 그리고 화기가 다시 위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헌터들의 범죄에 공포에 질렸던 일반인들도 서서히 밖을 나돌기 시작했다.
이미 세상의 대부분이 크게 망가지고 많은 국가가 멸망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세상은 과거, 가상현실 게임인 기어가 나오기 전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특수 대응 부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해체되었는데.
이방인으로서 힘을 소유한 알드리안과 조커 그리고 월과 하는 여전히 귀빈으로 대접받았다.
우스운 건 그들을 제압하고자 특수부대를 보냈다가 크게 대인 한국 정부가 뒤늦게 사과하면서 그들을 국빈으로 모셨다는 거다.
그밖에도 전승인들도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마력이기에 마력이 희미해져도 여전히 대단한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을 때.
“하, 하하. 이렇게 끝나는군.”
“안녕히 가세요.”
승현은 마지막 남은 창조자를 소멸시키며 그에게 인사했다.
이제 뒤엉킨 수많은 법칙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기존에 잘 흐르던 법칙들 중에서도 소멸된 것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창조주에 의해 원래 기능을 빠르게 회복했다.
승현은 서서히 세상을 지우려 하던 재창조가 뚝 멈춘 걸 느꼈다.
그 거대한 존재감이 멈추며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승현은 그와 함께 엉켰던 법칙의 마지막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의 존재까지 사라져야 재창조의 힘이 완전히 사라지겠지. 하하, 원하는 걸 이루니까 허탈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네.”
긴 여정을 떠나온 나그네처럼 종착지에 도착하니 맥이 다 빠졌다.
승현은 자신의 존재감을 점점 옅게 만들며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최승현이란 인간이 신이 되었으며 세상의 위기를 구한 걸 지구의 어느 인류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저 그를 위해 알드리안과 조커 일동만이 작은 무덤을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평화가 찾아왔군.”
“그러게. 새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가 없으니 조금 무료할지도.”
“자넨 무료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해.”
“맞습니다. 조커는 너무 충동적입니다.”
“하, 다들 너무하네.”
조커는 자신에게 모이는 말들에 가볍게 탄식했다.
승현이 모든 걸 되돌리고 10년이 흘렀다.
무너졌던 여러 국가들 중 살아남은 인류는 텅 빈 땅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마나 초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중립 표방에 의해 전쟁은 현대전이 되었지만 조커에 의해 발전한 문명으로 여러 곳에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세상은 원래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자, 그럼 우리도 슬슬 물러가자.”
조커는 승현의 무덤을 떠났다.
다른 이들도 그의 무덤을 떠나면서 그 자리엔 비석 하나만이 자리를 지켰다.
비석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세상을 위해 헌신했던 한 청년을 기리며]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