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무림맹을 필두로 한 정파와 이젠 아성이 무너졌지만 여전히 사파의 하늘인 패왕궁과의 정사대전이 벌어졌다.
관은 사파를 잡아들이고 그들의 문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궁지에 몰린 사파의 무인들은 관에 저항을 하거나 산지로 임시 본거지를 옮기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사파는 끝없이 손해를 봐야 했다.
정사대전은 황실의 조력과 절대강자의 부재로 인해 정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은둔고수들의 등장과 외세세력인 마교의 참전으로 인해 다시 팽팽한 줄다리기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천하에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안 들릴 날이 없었다.
마교의 본격적인 참전이 이어지던 때.
“실로 엄청난 기의 파장이군요.”
“누구의 것이지? 암왕? 아니면 혈마라?”
“이 기세로 보아 혈마라인 것 같아.”
“암왕이 무사할까요?”
무림맹의 회의장.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가운데 갑자기 느껴진 엄청난 기의 파장에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기의 파장이 끊길 걸 느끼며 모두가 입을 꾹 다물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갑자기 그 전조가 끊기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다들 암왕을 믿기로 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짰다.
“결론은 놈들의 본거지인 패왕궁을 공략하는 거군.”
“더 이상의 민간 피해를 막아야 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너무 많은 것을 잃으니까요.”
“그보다 마교는 어찌하면 좋겠나?”
“그들도 총력전을 원하는지 전력을 패왕궁 쪽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름 희소식이군. 이 전쟁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야 하네.”
책사를 자처한 천기자의 말대로 정사대전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중원 게이트를 생각하면 빨리 이 전쟁을 끝마쳐야 했다.
정파의 전력이 패왕궁이 자리한 곳 인근으로 집결하는데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속속 집결하는 전력이 물경 1만 명에 달하는데 그들 모두가 일류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다.
중원 역사상 이렇게 많은 고수가 모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일 째가 되는 날.
정파 세력 전력 1만 5천 명의 고수들이 패왕궁 앞에 집결했다.
사파에서도 막대한 전력이 모였는데.
마교를 포함해 2만여 명이 넘는 대규모 전력이 모였다.
2성 5제 7왕 12군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으며 천외천이라 꼽는 고수들은 물론 은둔하거나 이미 사망했을 거라 추정되는 전대 고수들까지 대거 등장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패악한 외세 세력을 끌어들여 중원을 위협하는 사파 무리를 이 자리에서 섬멸한다!”
“우와아아아!!!”
선봉에 선 한 무인의 외침에 정파 전력에서 함성이 울렸다.
다들 의기가 넘치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을 과시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이들이라 의협심을 뽐냈다.
양측 진영 모두 흥분이 고조된 가운데.
각 세력의 대표자들이 앞에 모였다.
사파 측에선 대략 30명이 나왔고 정파 측에선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각 문파의 문주 그리고 가주들이 나왔다.
“일을 기어코 크게 만들었군.”
“이쪽도 더 이상 사도라 불리며 괄시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허허, 사도를 사도로 부르는 것을 어찌. 순리를 받아들이게.”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무인이다. 이를 망각하다간 무인은 그저 위정자에 지나지 않게 될 거다.”
두 무리의 책사들이 대표로 나와 최후의 협상을 하고자 대화를 시도했으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에 정파의 책사인 천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대화가 더 이상 필요 없군. 할 말은 더 없나?”
“하하하! 벽과 대화하는 게 더 나았네. 천기자여. 그 오만을 깨달으라.”
말이 끝나고 두 세력의 대표들이 한 걸음 물러나기 무섭게 각 진영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뒤섞이기 시작한 두 세력은 난전으로 치달았다.
전쟁에 있어서 정의와 협을 찾아선 안 된다는 걸 모두가 알기에.
수많은 이들이 협공이나 암기에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암기를 쓰는 건 물론 싸우던 적의 뒤를 노리거나 죽은 척을 하다 상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도 하며 오직 파벌의 승리를 위해 더러운 수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잠시의 굴욕보다는 파벌의 숭고한 뜻이 더욱 높았기 때문이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아군 무인들 사이에 서 있던 각 대표자들도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천외천을 포함한 진정한 고수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여타 다른 무인들이 자리를 피했다.
아무리 의기가 넘친다고 해서 날파리와 같이 헛되이 죽을 순 없으니까.
수많은 고수들이 강기를 뿌리며 상대를 멸하고자 전력을 부었다.
사파에서도 많은 은둔 고수들을 끌어들여서일까.
결착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진짜 전력은 등장하지 않고 있었다.
천기자와 신승, 천외선인은 가만히 떨어져서 전장을 관망했다.
마찬가지로 적의 유일한 천외천이라 할 수 있는 천마교주와 북해빙궁의 빙백냉마도 전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 쪽 생사경 고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밖에도 은둔한 몇몇 생사경의 고수도 아직 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아미타불. 이런 혈겁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참으시오. 신승. 우리가 끼어드는 순간 저들 중 살아남는 자는 손에 꼽아야 할 거요. 아직은 때가 아니외다.”
생사경의 고수는 혼자서 산 하나를 평지로 바꿀 거력을 가졌다.
그런 그들이 전장에 참여하는 순간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손짓에 한줌 핏물로 변할 터다.
전장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승기가 정파 측으로 기울자 드디어 사파 측의 생사경 고수들이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순간 치열하던 전장이 각 세력 쪽으로 갈라졌다.
다들 그 존재감을 느낌으로서 알게 된 거다.
이 전장은 이제 그들의 전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갑시다.”
“천마교주를 조심하시오. 그는 우리가 막겠지만 뭔가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승현과 약속을 했던 두 명의 남녀가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실제로 가장 강한 존재감을 흩뿌리는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검은색 용포를 입은 천마교주였다.
선인이 된 두 명의 남녀가 내려왔을 정도로 천마교주의 힘은 이미 생사경을 넘어섰다.
각자 자신들의 상대를 눈으로 택하며 서로 기세를 끌어올렸다.
파드득, 파득.
서로의 기세만으로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농축된 마력은 대지를 떨게 하고 대기를 찢었다.
파앗, 콰아아앙!!!
순간 자리에서 사라지다시피 이동한 각 생사경의 고수들이 격돌했다.
그에 따라 땅이 갈라지고 터지면서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멀리 떨어진 각 파벌의 무인들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이 선계에 싸움이로구나.”
“실로 경이롭군.”
그곳에 모인 그 누구도 공방을 주고받는 생사경의 고수들을 눈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점점 넓어지는 여파에 좀 더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그렇게 장대한 전투를 치르는 중심에 두 남녀와 천마교주가 있었다.
검은색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은빛이 번쩍이며 충돌했다.
고수의 대결일수록 미묘한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법.
전투를 시작한지 불과 일각이 넘지 않은 상황에서 수만 번의 수를 주고받은 그들에게서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리한 쪽도 그리고 패배한 쪽도 결코 좋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몇 명씩 대지에 눕는 이들이 생겨날수록 오히려 더욱 서로가 부딪치는 기세가 더 강해졌다.
신승은 빙백냉마와 함께 대지에 누웠고 천외선인은 한쪽 팔을 잃는 걸로 사파에 속한 전대 고수를 쓰러트렸다.
천기자도 그 신묘한 무공을 부렸으나 두 명의 협공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왼쪽 다리와 귀 한 쪽을 내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이들이 하나씩 물러나자 전장은 점점 천마교주와 두 남녀의 전장이 되기 시작했는데 끝내 마지막 남은 이들도 결착이 나자 천마교주와 남녀만이 피를 흘려가며 싸우게 되었다.
“크흠, 이래선 도우려 해봤자 짐만 되니.”
천기자는 지혈을 한 잘린 다리를 보며 탄식했다.
천마교주만 쓰러트린다면 이 정사대전은 결국 정파의 승리였다.
수 명의 생사경 고수들이 죽었지만 사파를 대표할 고수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전투를 중단한 천마교주와 남녀는 서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뭔가 수를 썼군.”
“후후, 그렇다. 마교천하를 이루기 위해 나는 진정한 천마를 내 몸에 강림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보나?”
“글쎄? 이 많은 공양을 받는다면 가능하겠지.”
“설마······!”
남녀 중 남자 쪽에서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주위에 강하게 강기를 흩뿌렸다.
그러자 날아간 강기가 거대한 돔 형태의 검은색 막에 막혔다가 사라졌다.
“그래! 나는 이 모든 이들을 먹고 신이 되겠다! 하하, 하하하!!”
천마교주는 크게 광소하며 외쳤다.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돔 형태의 술법진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남녀를 포함한 수많은 무인들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신이여! 강림하라!”
돔의 중심에 선 천마교주의 외침에 따라 곧 막대한 마력이 그의 몸에 담겨지며 검은색 사람의 형체를 만들었다.
“안 되겠어, 월. 등선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이건 막아야 해.”
“잠시만. 하. 기다려봐. 뭔가가 저곳에 있어.”
“너무 늦으면 이대로 우린 천마교주의 양분이 될 수 있어.”
“아니. 괜찮아. 저길 봐. 하.”
월이라 불린 여성은 하라 불린 남성에게 천마교주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빠른 속도로 신성을 이루며 신이 되어가는 천마교주 발아래에서부터 침식되듯 빛도 통하지 않는 어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검은 형체에게서 무언가 영혼을 떨게 만드는 소리가 터졌다.
그건 엄연히 비명이었다.
무언가를 향한 비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건 그것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무릎 위까지 차오른 어둠은 서서히 완전한 신성을 갖추며 강림을 끝내는 천마교주를 먹어치웠다.
“저게 대체···.”
“하. 저건 승현의 힘은 것 같습니다.”
“뭐? 신이 된 천마교주를 집어삼키는 게 암왕이라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월이 그렇게 봤다면 그런 거겠지만.”
하는 월의 말에 마지못해 수긍을 해보였다.
어떻게 승현이 신을 잡아먹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의 안목을 믿는 하였다.
영혼을 뒤흔드는 비명을 지르던 천마교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사방을 덮은 검은 돔도 사라졌다.
그렇게 천마교주가 사라진 자리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승현이었다.
“다행히 제때 맞춰 왔군요.”
“예. 그보다···. 완전한 신성을 이루신 겁니까?”
하의 조심스런 질문에 승현은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파의 희망이던 천마교주까지 사라지자 부상을 당해 겨우 살아남은 사파의 대표들이 패배를 시인하였다.
그렇게 모든 사파의 문파와 세가가 봉문을 하기로 합의하며 중원 게이트의 정사대전은 끝이 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