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화신체는 여태까지 단 한 번 사용하였다.
처음 알타의 힘을 각성하였을 때인 증명의 장에서 한 번 말이다.
그때 무극신공으로 알타의 힘을 깨워 화신체가 된 승현은 낮은 레벨과 격을 가졌음에도 1,000레벨이 넘는 전사 일곱 명과 싸워 이겼다.
물론 어느 정도 봐주는 것이 있었다고는 해도 화력만 놓고 보면 당연히 압도했다.
알타의 힘을 최대로 방아야 한다는 점에서 컨트롤이 무척 어렵다는 점만 빼면 승현에게 있어서 거의 최강의 공격기였다.
현경에 경지에 도달한 무극신공의 깨달음이 더해져 알타의 힘이 폭발하듯 몸에 휘감겼다.
주황색에서 청색으로 다시 청색에서 백색으로 승현의 몸을 감싼 불의 색이 변했다.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한 룬은 그나마 가장 안전한 승현의 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하얀색으로 빛나는 불의 형체가 된 승현은 이제 물질계에서 비물질계의 인간이 되었다.
말 그대로 반신을 넘어서 신에 근접한 모습을 갖췄다.
알타의 힘을 한계까지 받아들인 승현은 이제 불의 화신이 되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주변의 땅이 녹으며 액체가 되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액체가 된 일대 너머에 것들은 불이 붙어 화염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지금은 아마도 아닐 거야.”
승현은 조금 멀리서 스르륵 나타난 노인의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지금의 모습은 알타를 대신해 현계에 강림한 상태라는 게 정확하다.
승현은 지금 알타 그 자체였다.
“자, 그럼 싸워보자고.”
승현은 곧장 고일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고에너지 덩어리인 승현이 이동하자 공기가 타오르면서 주변에 이상을 일으켰다.
화신체인 상태에서 무극신공을 펼치자 승현은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
고일은 머리에 경종이 울리는 걸 느끼고 강기를 발출해 승현을 상대했다.
그가 쏜 강기는 그대로 승현과 부딪쳤다.
그에 따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지만 승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리를 좁혔다.
화신체에서 마력만 충분하고 신체일부 중 한 곳만 온전하다면 몸 전체가 소실되어도 바로 재생한다.
애초에 육체가 사라지고 에너지덩어리로 변하는 것이니 에너지만 있으면 곧 그것이 몸이 되었다.
수백여 발의 강기가 날아들었으나 승현은 여유롭게 고일의 앞에 도착했다.
폐를 익게 만들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코앞에 도착하자 고일은 극도로 강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승현은 아직까지도 중원 게이트의 패널티가 걸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생사경의 무인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자 강기의 막에 불이 붙으며 마력을 태웠다.
승현은 순식간에 수백여 차례를 가격했다.
고일의 옷이 잿더미가 되고 살이 익어 흉물스럽게 변했지만 노인은 쉽게 등을 보인 승현을 공격할 수 없었다.
심장을 완전히 관통하여도 과연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발을 잘라보자.’
고민을 마친 노인의 손에 무형의 강기가 둘러졌다.
살수답게 은밀하고 색이 없는 강기였다.
그와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노인의 손이 그대로 승현의 어깨를 갈랐다.
푸화하아악!!
왼팔이 법칙을 무시한 극도의 날카로운 강기에 의해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몸 내부에 있던 거대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노인을 덮쳤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이들은 경이로운 광경에 그저 입을 벌렸다.
순식간에 수백 미터나 치솟은 백색 불꽃의 폭풍은 장관이라 부를 만했다.
그 장엄한 광경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 지옥불보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아나온 노인은 과연 생사경의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옷 전체가 다 타버리고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은 모습은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특히 승현의 팔을 절단한 오른손은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승현을 구성한 불꽃은 법칙을 넘어서 이미 신성에 다다른 것.
모든 걸 태워버리는 정화의 불꽃과 신수인 알타의 힘이 더해져 승현은 지상에 강림한 불의 화신이 되었다.
그런 승현에게 비록 반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곤 해도 아직 인간인 그들이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승현은 이미 의식과 사고력 또한 인간을 탈피했다.
더욱이 화신체가 되면서 약점이란 거의 사라진 상황이라 그대로 날뛰었다.
쿠와아아!!
겨우 살아남은 노인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노인은 그 불기둥 안에 갇혀 쇠된 비명을 터트렸다.
암왕 때와 마찬가지로 에너지인 불기둥에 질량을 부여해 불기둥 안에는 수천 배에 달하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 불기둥을 직격으로 맞고도 살아남았다.
꼴은 이미 곳 죽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필살―!”
노인은 바람이 빠지는 소리로 필살을 외쳤다.
패도천성은 그것이 무었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개방과 하오문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은 생사경의 고수인 노인은 비록 살수로서 능력을 가졌다고는 하나 생사경의 무인이다.
감히 천외천의 어느 인물과도 비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순간 노인의 몸이 굉장한 속도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미 인간이 낼 수 있는,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의 속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빛에 가까운 속도로 승현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마력을 개방했다.
“죽어라!!”쿠구구, 사아―!!
승현이 피할 순간을 주지 않으며 달려온 노인의 몸이 그대로 빛이 되었다.
그건 거대한 마력의 폭발이었다. 한 차원을 날렸던 마력을 먹는 팔찌나 수십 개의 최상급 마력석과 비견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
그러나 그 폭발의 범위를 임의로 축소하여 그 위력을 집중시킨 자폭 공격이었다.
차원을 부수고 행성을 부술 그런 위력의 폭발이 승현을 덮쳤다.
이미 노인의 외침을 듣고 바로 빠졌던 패도천성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터지자 눈을 마력으로 보호하며 추이를 지켜봤다.
생사경의 고수가 말년에 창안한 모든 것을 파괴할 동귀어진의 무공.
원래라면 대장군과 여러 생사경의 고수가 모인 때에 터트려 일순에 정리하려고 했으나 이미 천외천보다 더한 놈이 눈앞에 있으니 상관없으리라.
폭발의 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워낙 많은 마력이 한 곳에 집중되어 터지다 보니 약 5초 동안 둥근 구의 형체를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일절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곧 구체 모양을 하던 형상이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아아―!!!
이번엔 마력으로 귀를 보호해야 할 정도로 강한 폭음이 퍼졌다.
폭발의 여파는 오지 하늘로만 퍼졌지만 그럼에도 멀찍이 떨어진 무인들에게도 그 전율스러운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런 수를 준비하다니. 이번 정사대전에 큰 변수가 되었겠어.”
천기자는 아직도 빛을 폭사하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마력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승현이 있던 자리에서 반경 1킬로미터만을 파괴한 동귀어진의 공격이 슬슬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허, 허허. 과연······.”천기자는 그런 마력 폭발 속에서도 여전히 하얀 불꽃으로 형체를 유지한 승현을 볼 수 있었다.
그 인세에 볼 수 없는 폭발을 당하고도 멀쩡하게만 보였다.
한편 승현의 죽음을 확정지었던 사파와 패도천성은 승현이 멀쩡하자 고개를 떨궜다.
“이런 식으로 깨달음을 얻었을 줄은 솔직히 몰랐어. 노인장의 명복을 빌어주지.”
승현은 나직이 말했다.
수 초 동안의 폭발 속에서 승현은 무극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건 우주의 탄생이라 부르는 빅뱅을 간접적으로 겪는 듯한 공격으로 잠시지만 승현은 의식을 던지고 폭발하는 마력 안에 전신이 흩어지고 희석되어 마력 그 자체가 되었다.
마력이 그였고 작은 입자가 모두 자신이었으며 그에 따라 일어나는 에너지도 모두 그였다.
화신체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을 자폭 공격이 화신체를 한 승현에게 약으로 돌아왔다.
“무극의 끝을 이루었다. 이젠 모든 게 새롭게 보여.”
무극은 끝내 모든 묘리를 담아야 했으며 모든 형상을 담아야 했다.
승현은 그것을 이룩하면서 생사경의 경지에 들었다.
막대한 마력은 폭발 속에서 수급했으며 그러고도 남는 마력은 승현을 인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주었다.
“반신의 경지라. 신이 보는 시선을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구나.”
마치 개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가 인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이다.
그만큼 반신과 초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아이템으로 착용한 성표와 이젠 완전히 승현의 것이 되었다.
시스템의 작용을 받던 성표가 강제로 승현을 반신에 가깝게 만든 게 아니고 이젠 승현의 격에 맞춰 진화했다.
승현이 얻은 신성은 어둠과 불 그리고 무극이었다.
하나를 얻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승현은 조건이 충족되어 세 가지나 되는 신성을 얻게 되었다.
이제 승현은 세 가지에 한해선 관련된 모든 법칙까지도 뒤흔들 수 있게 되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어둠의 신성을 통해 낮을 밤으로 바꾸는 것도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행성에 오는 모든 빛을 어둠으로 차단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자 신성이라 부를 수 있는 권능이었다.
정화의 불꽃과 알타의 힘이 합쳐져 불이라 부리는 모든 열에너지에 대한 것과 불이라 부르는 정의를 모두 조율할 수 있게 된 것도 있다.
불은 무언가를 태운다는 것을 통해 승현은 이제 무엇이든 태울 수 있다.
설사 그것이 마력이나 같은 불이라고 해도 말이다.
무극은 생사경에 다다르며 무공의 극의를 깨달아 얻게 되었다.
이제 승현의 모든 행동과 마력엔 극에 이른 무리가 담겨지게 되었다.
신성이 된 무공은 더 이상 육체를 활용한 무술이라고 규정할 수 없었다.
그건 하나의 신비이고 이적이며 기적이었으니 말이다.
승현의 경지는 생사경을 넘어서 등선을 한다는 우화등선의 경지에 도달한 거다.
반신 중에서는 적수가 없으며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승현을 쉽게 넘볼 수 없을 거다.
그건 신과 동등한 입장인 창조자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신이되 창조주의 힘을 받은 것일 뿐이니까.
화신체에서 원래 검은 무복의 모습으로 돌아온 승현은 저 멀리서 자신을 보는 패도천성을 향해 한 걸음 걸었다.
그러자 땅이 접힌 듯 순식간에 패도천성의 앞에 선 승현은 수도로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목을 잘랐다.
쿠르르릉.
“이크, 힘 조절 실패네.”
고일의 목이 잘림과 동시에 뒤에 있던 무너진 산에서 다시 흙더미가 밀려나왔다.
이미 노인의 공격으로 거대한 구덩이가 생긴 곳에 우르르 쏟아지는 토사를 감흥 없이 보던 승현은 더 이상의 중원 게이트에서의 활동은 무의미하단 걸 깨달았다.
대신에 지구에서 자신의 부재 시 무력을 담당해줄 사람을 찾기로 했다.
느긋한 걸음으로 정파 측 인사가 모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처럼 힘없는 걸음 하나하나로 수십 미터를 도약했다.
모두가 승현을 경외, 감탄, 놀람 그리고 두려움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승현은 무림맹의 맹주인 조택현에게 말을 걸었다.
“사파에서 이름 모를 생사경의 고수가 나왔더군요. 혹여 곧 두 세력간의 격돌이 있는 겁니까?”
“···하러하네. 이미 물밑에선 사파와의 전투가 줄을 잇고 있지.”
“그렇군요. 약속한 대로 일전에 한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셨으면 하는데. 되겠습니까?”
“물론이외다.”
“고맙습니다. 그럼 전 천하제일대회에 참석하러 잠시 가보겠습니다.”
“그 대회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소.”
“이방인에겐 늘 임무가 주어지는데 제 임무는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이거든요. 아마 대회에서 입증을 하면 깨질 것 같습니다.”
물론 껍데기뿐인 대회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특급 게이트인 게이트 임무를 해결할 순 없을 거다,
임무는 만인이 인정하는 천하제일을 논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그거라면 이미 반쯤 이루어졌고 판도 곧 깔리게 되니 상관없다.
승현은 오히려 천하제일 대회에 이변이 있을까를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