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기미성에 한 자락 하는 이들이 너도나도 이름을 대고 빙제와 암왕의 비무를 견식하기 위해 참관인 자격으로 모인 상태였다.
빙제는 비무를 가지기 전에 차 한 잔을 나눌 것을 권했다.
“그대가 암왕이군. 개방에서 듣기론 랑아군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더니 개방의 소식도 이젠 믿을 게 못 되겠어.”
“글쎄요. 저 또한 기연 비슷한 걸 얻은 터라 신뢰를 저버리지 말라고만 충고하죠.”
“좋군. 단 보름이란 시간 만에 초절정의 고수가 화경의 고수가 되었다라. 그 비결을 알고 싶은 무인이 대양을 가득 채울 걸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는 겪는 게 어떤가요?”
승현은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느끼고 있는 빙제의 기세에 몸이 근질거렸다.
승현의 호전적인 발언에 빙제가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실로 오랜만의 비무인지라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 그래서 내 누이를 불렀는데 어떤가. 우리 남매의 합격술을 받아보는 건?”
“현경에 오래 머무른 2성도 상대하기 버겁다는 그 합격술 말입니까?”
“후후, 엄살을 부릴 거면 그 기대에 찬 얼굴부터 지우고 하게나.”
빙제의 말대로 승현은 오히려 두려움보단 흥분에 찼다.
빙제가 자신을 2성급으로 인정한다는 말이었고 이는 져도 명성을 얻고 이기면 더욱 높은 명성을 얻는 기회였다.
또한 다시 한 번 강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승현이 이들에게 비무를 신청한 것 또한 경지를 넘어서기 위함이었다.
그러하니 어찌 기대와 흥분이 안 들겠는가.
“도착하였군. 그럼 일어나지. 연무장은 너무 좁으니 외당 마당으로 가세나.”
차분한 빙제였지만 그의 눈에도 이미 투기가 올라 있었다.
승현과 빙제가 일어나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참관인들도 다들 외관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그중 백색 머리를 한 빙제와 달리 시뻘건 적색 머리를 한 여인이 굳은 얼굴로 마당 중앙에 서 있었다.
“동생 놈아. 저자가 우리의 합격술을 버틸 수 있겠어?”
“충분하오. 그가 전력을 다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지겠지.”
“넌 뭘 보고 그리 말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구나.”
염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곧 기미성에 자리한 구파 중 하나인 종남파와 공동파의 장로들이 대표로 나와 공정한 판단을 내릴 것을 선언했다.
비단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빙제가 비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정보를 다루는 개방의 장로와 하오문의 간부급 문도도 참관했고 그밖에 백대고수 중 여러 명도 참관했다.
빙제와 염제가 나란히 서고 그 앞에 승현이 섰다.
“그럼 한 수 배우겠습니다.”
“암왕이여.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염제의 말에 승현은 바로 기세를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무극신공이 형체로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빙화천문은 물론이고 기미성 남부 일대를 거대한 항거 할 수 없는 힘으로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범인은 그 기세에 몸이 무거워진 걸 느꼈고 무인들은 압도되는 환상에 사로잡혀 행동을 멈췄다.
그런 반응은 경지가 높을수록 더욱 심해졌다.
삼라만상과 대우주를 목도하는 자들이 느끼는 그 감상은 말로 표현할 것이 못 되었다.
그 기세에 짓눌린 건 이곳에 선 가장 높은 고수인 빙제와 염제에게도 해당되었다.
“과연. 아우의 말이 사실이군.”
“나 또한 이 정도일 줄은.”
감히 이 세계를 관장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를 목도한 기분이었다.
이는 승현이 가진 마력의 특성과 무극신공의 외의가 만나 일어낸 이적이었다.
생사경을 뛰어넘는 방대한 마력이 기세가 되어 방출되자 위의 두 특이점이 합쳐져 마치 우주의 만물을 엿보는 느낌을 선사한 것이다.
“자, 이제 그대들의 합격술을 보여주시오.”
“이런 호적수라니.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나!”
말을 끝낸 염제가 바로 기세를 올렸다.
염제의 형상은 하늘에 뜬 태양이었다.
이 행성을 비추는 거대한 열의 덩어리.
그것이 염제의 무공인 화염신공의 오의이자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태양조차도 우주 앞에선 한 없이 작아보였다.
그에 빙제도 함께 기세를 일으켜 마력을 형상화하였다.
그의 무공인 빙백신공은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심해를 만들어냈다.
너무나 깊어 뼛속까지 얼어붙을 그런 심해가 덮쳐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을 다 덮을 순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세가 하나로 합쳐진 순간.
“음양도가 펼쳐지는군.”
무공에 박식한 개방의 나이든 장로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그것은 거대한 음양이었다.
음과 양이 합쳐져 태극을 이루자 거대한 우주와 삼라만상과도 얼추 견줄 만 해졌다.
단순히 기세를 형상화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대기가 찢어지고 파열음이 사방에서 들였다.
이미 외관 마당에 깔린 돌과 빙화설문의 담장은 그 여파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그럼 먼저 공격하죠!”
먼저 움직인 건 승현이었다.
이대일이며 실전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미완의 무극만으로도 충분히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단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승현은 발을 내디딜 때 극쾌의 묘리를 따랐고 순간 손을 뻗을 땐 유의 묘리를 따라 부드럽게 휘둘렀다.
그리고 주먹이 염제의 몸에 닿기 시작할 땐 태산 같은 중과 해일 같은 강의 묘리를 실었다.
쩌어어어엉!!!
“큿······!”
승현의 움직임은 두 사람에 비해 반 수 정도 빠른 정도였다.
그러나 염제는 빙제의 힘을 끌어다 써서 겨우 승현의 주먹을 막아냈다.
단지 한 번의 주먹질이었으나 그 안데 담긴 거력은 순식간에 염제의 몸을 뒤흔들었다.
잠시 주먹을 뻗은 상태로 멈춘 승현은 빙제의 반격을 받아쳤다.
처음 일격은 여태 학습한 수많은 무공의 묘리가 뒤섞인 주먹이었다.
그중에서도 극강을 담았으니 염제가 버티지 못하고 저리 물러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합격술의 첫째와 둘째는 당연히 동시에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승현의 첫 공격으로 그 단추가 잘못 꾀여졌으니 합격술이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는 승현이 노린 것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이쪽이 불리하니 첫 공세로 둘의 합격술을 뒤틀기로 마음 먹은 거다.
그렇기에 조금 무리해서 힘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콰아아아!!
승현의 강기가 날아가며 외관을 넘어 내관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이것조차도 빙제가 자신의 빙백신공으로 받아낸 결과였다.
‘이것이 화경, 아니. 현경에 다다르는 무극신공의 힘인가.’
승현은 무극신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처음 무극심법이 불가해로 지정되었는지 기어 때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이 되고 무극신공을 얻어서도 그 의문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의의 조각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동급의 무인 둘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감히 무극신공을 경시한 자신을 나무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술만 제대로 갈고 닦으면 능히 신의 반열에 들 수 있를 거다.’
이를 확신한 승현은 바로 주먹을 뻗었다.
일권에서 뿜어지는 강대한 마력은 집채마한 강기가 되어 다시 참전하는 염제를 밀어냈다.
이번에 승현은 후인 롱의 독문무공을 떠올리며 그를 모방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기로 이루어진 크고 무거운 마력 덩어리 수백 발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이런 공격은 마력 즉, 내공이 극히 많지 않으면 장기전으로 볼 때 극심한 손해지이지만 승현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수백 개의 강기 덩어리가 해일처럼 덮치는 장면에 참관인 모두가 경악했다.
하나하나가 초경의 고수가 낼 수 있는 극강의 공격과 맞먹었다.
그만큼 무식하게 많은 마력이 담긴 강기였고 그걸 수백 발이나 받게 된 빙제와 염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콰과과과과!!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흘려보내는 기술과는 거리가 먼 이들.
결국 그 강기를 모두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쏟아지는 강기의 속에서 승현은 자신의 몸을 던졌다.
그리고 강기를 막아내고 있던 빙제의 옆얼굴을 발등으로 찼다.
어찌나 강한 힘이 실렸는지 마력으로 지면과 장력을 강화한 빙제가 저 옆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승현의 무공이 화경에 이르자 이젠 무림인조차도 압도적인 힘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승현이 가진 마력은 질적으로도 그리고 양적으로도 압도적인 것이었다.
아마 현경에 완전히 오른다면 천외천에 이름을 올려도 무방하리라.
빙제가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자 염제의 얼굴이 굳으며 조화를 이루던 음양이 잠시 흐트러졌다.
그만큼 염제가 동생인 빙제의 타격에 마음이 흔들렸단 증거였다.
승현은 막대한 마력을 이용해 초음속을 내며 이번엔 염제에게 날아갔다.
참관을 위해 모인 이들 중 초절정 끝자락의 무인들은 이미 무너진 담장 밖보다 더 멀리 떨어졌다.
세 사람이 만든 여파를 견디지 못한 거다.
초경의 고수들만이 자신의 기세를 잔뜩 끌어올려 방어를 할 뿐이었다.
이 두 싸움은 이미 2성인 정파의 하늘이란 무림맹의 무성과 사파의 전대 고수인 살성이 생사결을 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광경이었다.
벌써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빙화설문의 내관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외관 마당과 외관 전체가 무려 3리나 되는 거대한 공간임에도 외관의 대부분의 건물을 무너트리고 내성에 피해를 주었다.
족히 1킬로미터는 넘는 지역이 모두 초토화된 것이다.
승현은 고삐 풀린 야생마가 된 듯 날뛰었다.
여태까지 머리로만 익힌 수많은 무공의 묘리와 오의를 풀어냈고 빙제와 염제는 압도하는 폭력을 힘겹게 막아냈다.
승현의 재주가 통하지 않던 건 절정 고수에 겨우 미치던 마력의 운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기교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가진 마력을 충분히 활용하게 되었고.
승현의 광대한 마력도 한 층 진화하면서 이젠 마력만으로도 현경에 이르는 고수를 찍어 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처박혀 잠시 움직임이 없던 빙제가 곧 몸을 일으켜 다시 승현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은 그런 그에게 극에 이르는 속도로 정권을 찔렀다.
앞으로 달려오던 빙제였기에 그 정권을 미쳐 다 피할 수 없었는데 염제의 난입으로 승현의 정권이 잠시 흔들리면서 충격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충격이 줄어들었을 뿐 그 위력이 완전히 상쇄된 건 아니었다.
“커헉······!”
정권에 맞은 빙제는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상당한 내상을 방금 일격에 받은 거다.
“아우야!”
염제의 비명 같은 외침도 바로 끊겨버렸다.
승현의 돌려차기가 염제의 옆구리를 가격했기 때문이다.
순간 팔을 오므려 막아낸 염제였지만 그녀 또한 내상을 입어야 했다.
두 사람이 내상을 입자 형형히 승현의 기세에 대항하던 태극의 힘이 옅어지면서 다시 주변을 승현의 마력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벌써 현경급 무인이 평생을 수련한 내공을 쏟은 승현이었지만 아직도 마력에 절대치엔 여유가 있었다.
이대로 더 싸운다면 빙제와 염제 모두 다신 이승을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승현은 여기서 행동을 멈췄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무이다.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사투가 아니었다.
승현은 현경의 고수 그것도 5제가 아닌 2성과 겨뤄야 현경의 경지를 노릴 수 있을 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5제 중 개개인은 무위가 낮은 두 사람으로는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걸 깨닫고는 일방적인 폭력을 멈추기로 한 거다.
“큭, 우리가 졌소. 암왕 당신은 진정한 무인이었군.”
“이거 이방인으로서 인정받으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여기에 당신이 가진 그 미지의 힘을 사용한다면 능히 스승님과도 견주겠군.”
빙제의 발언에 참관인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감히 천외천이라 불리는 불가사의의 인물과 비교되니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거다.
그나마 빙제는 천기자의 제자인 만큼 보다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으리라.
그런 점에서 봤을 땐 빙제의 저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발언이었다.
“극찬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기량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니오.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생사경이란 더 이상 무와는 무관한 미지의 무언가라 평하셨지. 어쩌면 그대의 힘은 이미 옛적에 거기에 닿았던 것일 수도.”
“아우야. 내상이 심하다. 말을 삼가해라.”
염제는 핏자국이 선명한 입가를 한 채 빙제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지친 얼굴로 말했다.
“암왕이여. 그대의 승리요. 그대는 오만하게 행동할 권리가 있소. 그대의 무력을 의심한다면 그건 이 나와 아우를 폄하하는 것이고 나아가 참관인들 전원을 무시하는 거겠지.”
“이제야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니 기쁘군요.”
“후후, 여태 본 무위로는 그대는 무왕이란 칭호가 어울리겠지만 그대 스스로를 암왕이라 칭하니 그리 불러주는 게 예의겠지. 암왕 최승현. 그대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요?”
“저는 천하제일대회에 참석할 생각입니다. 그 전에 무성과 신승을 만나 비무를 청할 생각입니다.”
“하, 하하! 대단하군. 그 무성에게 도전한다라. 거기에 신승까지.”
“도전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요.”
‘그렇지. 아우의 상태가 이러하니 우리 문파로 데려가 대접을 해주고 싶으나 꼴이 말이 아니군. 예의를 어기는 걸 용서해주시게.“
말을 마친 염제는 빙제를 부축하여 떠났다.
이미 난리가 난 빙화설문에선 제대로 요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관을 했던 이들도 승현에게 포권을 취해보이곤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