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승현과의 공방을 이어가는 마교인은 계산을 마친 건지 기세를 폭발시켰다.
순간 검은 짐승의 형상이 떠오르며 사방의 마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배로 빨라진 마교인은 승현의 몸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곧장 방어에 들어갔지만 매초에 수백 번을 타격하는 통에 제대로 된 방어가 될 수 없었다.
‘움직임 하나가 이미 법칙을 어기고 있다!’
도대체 이 중원 게이트는 뭐하는 곳인지.
초경이라 불리는 무인조차 법칙을 어기고 비틀며 무시했다.
초경의 마력 수치를 레벨로 변환하면 700레벨 대.
적어도 1천 레벨은 되어야 가능할 법칙 무시를 밥먹듯이 해버린다.
이대로 싸운다면 필패였다.
아직 오의조차 모르는 승현이기에 최대한 가진 것을 활용해야 했다.
바로 성표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필중, 가속, 시간의 법칙을 어그러트린다!’
의지가 성표에 전달되자.
곧 세 법칙이 어긋나면서 마교인의 시간이 길게 늘어지고 무수한 승현의 잔상과 마주했다.
반면 승현의 시간은 느려지면서 몸은 더 없이 민첩해졌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 속을 멀쩡히 움직이는 사람 같은 느낌.
승현은 이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바로 타르샤를 역소환하고 자신이 개발한 연계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에겐 승현의 몸이 순간 생사경의 고수만큼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르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마교인의 공격이 허공을 격하는 것이 그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마, 말도 안 되는!”
“저 청년의 실력은 저 정도가 아닐 텐데.”
백걸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승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세검가의 소가주는 그저 무자비하게 당학도 있는 마교인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피잉, 퍼어어엉!!!
마지막 단전을 타격하는 연격을 모두 받은 마교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타격음이 있던 것처럼 마교인의 전신은 잔뜩 뒤틀린 채 사지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후우, 후우, 조금. 무리했네.”
찰나지만 억지로 세 개나 되는 법칙을 어긴 대가로 상당한 탄력감이 몰려왔다.
그만 어디 그늘에서 쉬고 싶단 생각을 할 때 저 멀리 처박힌 마교인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걸 맞고도 움직일 수 있나? 전신의 근육과 관절을 파괴했을 텐데.”
“······.”
푸쉬이이.
그때 마교인의 몸에서 연기가 뿜어졌다.
그 연기는 마력을 치환한 것으로 보였는데 연기가 나기 무섭게 마교인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몇 초가 걸리지 않았고 다음으로 그의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네 놈을 필히 죽이겠다.”
여태까지 한 마디도 꺼내지 않던 마교인이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그리고 마치 짐승마냥 손을 바닥에 붙이고 그대로 앞으로 뛰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는 만큼 손으로 땅을 짚는다고 해서 특별히 빨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방해가 되여 더욱 느려질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무시하는 마교인은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승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단순무식의 끝을 보여주는 단조로운 돌진에 슨현은 발을 높이 들어 타이밍에 맞게 마교인의 머리를 발등으로 찍어 내렸다.
쿠아아아앙!!
준비할 시간이 많았던 만큼 발에 모인 마력 또한 엄청났다.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마력이 담긴 발등이 그대로 마교인의 머리를 터트릴 각오로 내리쳤다.
그에 따라 마교인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다 못해 푹 들어갔고 주변 땅이 갈라지고 파였다.
덥석.
“······?!”
“크오오오!!!”승현은 확실히 죽을 것이라 단정 지은 마교인이 자신의 발목을 강한 악력으로 잡자 놀라 아래를 내려 봤다.
괴성을 내지른 마교인은 그대로 승현의 발을 들고 두 손으로 연속해서 승현을 양옆으로 내팽개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아직 성표를 사용한 후유증이 남은 승현은 머리를 방어하며 한 쪽 발로 연신 마교인의 머리를 찼지만 마교인은 끄떡 없이 공격을 이어갔다.
초식이 없는 즉, 그냥 몬스터나 다름없는 상태 같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무공이 섞여 있었다.
그 증거로 요동치는 마력을 들 수 있다.
승현은 몸을 회전시켜 억지로 손에서 벗어났다.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바로 타르샤를 다시 소환하고 날을 일직선으로 세워 찌르기를 준비했다.
그러자 승현의 기도가 보다 날카로워졌다.
의지가 검에 싣자 검이 그 의지를 받아내면서 생긴 변화였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건 마치 랑아군의 조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랑아권을 모방하였기에 그리 느끼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무극신공은 모든 무공의 총화와 같은 것.
그런 걸 익혔기에 랑아군의 무공을 겉으로나마 따라할 수 있었고 실컷 당한 랑아권의 위력을 잘 알아 그대로 진행했다.
날카로운 기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승현은 마교인에게 쇄도했다.
서걱.
찰나의 순간이었다.
서로가 교차될 때 승현은 마교인의 목을 반 이상 베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승현도 목과 옆구리의 살을 내어주어야 했다.
푹 파인 옆구리와 왼쪽 목 부분에서 울컥울컥 피가 솟아나자 승현은 룬과 알타의 힘을 소량 보내 지혈을 하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했다.
느릿하지만 확실히 회복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 승현은 목이 반 이상 잘렸음에도 꿋꿋하게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마교인을 노려봤다.
저 상태로 또렷한 적의를 드러내며 노려보는 게 대단했다.
“그만 가라.”
승현은 앞을 박차고 나가 마교인의 목을 완전히 잘라냈다.
마교인의 목이 떨어지자 백걸개가 승자의 진형을 외쳤다.
“승자는 랑아천문이오! 이로써 두 세력 간의 분쟁은 세검가의 양보가 있을 것을 권고하오.”
“말도 안 되는. 분명 랑아군이 오는 게 아니면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소가주는 패닉에 빠진 듯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현은 아까 전 마교인이 보인 본능적인 짐승의 움직임을 복기했다.
마교인의 시신이 거둬지자 승현은 백걸개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공증인이 되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럼 언젠가 다시 뵙도록 하죠.”
“생사결 중에서도 성장하는 그대의 모습을 보니 얼마 안 있어 스스로가 정한 그 별호에 걸맞은 인물이 될 것 같구려.”
백걸개의 말에 승현은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게 상황을 종결시키고 세검가를 떠난 승현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승현이 갈 곳은 이제 몇 곳 없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명성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수도인 중경에서 열리는 천하제일대회에 참석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2성 5제 7왕 12군이나 여타 다른 고수와 비무를 벌일 작정이다.
12군은 모두 중원 외곽에 자리하고 있어 만나는 게 힘들지만 7왕과 5제는 중경 인근에 모두 포진해 있다.
수도인 중경에 가까워질수록 고강한 고수들이 더욱 많았다.
“지금의 나는 이제 초경 입문을 막 넘긴 상태이려나.”
승현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전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상대방의 무공을 떠올리며 픽하니 웃었다.
자신이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선 꾸준히 여러 상대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룬의 관리자가 말한 서포트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사실 이것 덕분에 빠른 속도로 무공에 대한 감을 잡고 무공의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했다.
앞으로 더 많은 무인과 싸우고 더 많은 경험을 축적하면 무극에 이르는 길이 열릴 것이다.
승현은 그렇게 중경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려가는 건 아니었다.
조금 빠르게 걸으면서 퍼트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기세를 옅게 퍼트리며 향했다.
그 이유는 중원 게이트 어딘가에 있을 영약이나 영물의 존재를 탐색하고 은둔고수를 자극하며 사방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기세의 망에 걸려든 영초라 불리기 애매한 식물이나 막 영물이 된 듯 신기한 모양의 동물을 간혹 마주칠 수 있었다.
승현의 기세가 탄탄하지 못해서 그렇지 마력의 양은 생사경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당연히 그런 마력으로 장악할 수 있는 범위는 생사경의 고수와 필적하는데 대략 4킬로미터 내의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승현의 기망에 몇몇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일류급의 무인이라. 이런 첩첩산중에 저런 무인이라면 강남녹림십팔채인가.”
아직 중부 지역까진 한참 남았으니 녹림의 산적들이라면 그때 봤던 강남녹림십팔채일 테다.
한 곳이 자신에게 몰살을 당했으니 복수를 하러 고수를 초빙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특히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으니 자신에 대한 정보가 개방이든 하오문이든 쭉 퍼졌을 것이다.
승현은 관도를 따라 걷던 걸 멈추고 염탐꾼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몇 킬로미터 정도를 가볍게 뛰자 점점 승현의 기망을 밀어내는 강한 기세가 감지됐다.
“강하다.”
단순히 기세와 기세가 부딪친 거지만 승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은 랑아군과 필적하는 혹은 그 이상의 강자였다.
랑아군보다 강한 자라면 승현으로선 피하는 게 상책이겠지만.
“이 끓어오르는 투쟁심을 억누르기엔 문제가 좀 많지.”
펄펄 끓어오르는 투쟁심은 승현의 발길을 고정시켰다.
그러면서 승현은 12군과 7왕 중 녹림과 관련될 이들을 떠올려 봤다.
“12군 중 가까운 랑아군은 아닐 테니 가장 높은 가능성은 녹림왕 가영호나 낭인왕 남중섭인가.”
7왕부터는 모두 화경의 고수들이다.
초경을 넘어선 초인들의 초인이었으며 승현의 모든 걸 쏟아 부어도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력자이다.
이제 이제야 중원 게이트 안에서 초경 입문을 넘긴 수준의 기교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한 박투라면 화경의 고수와도 충분히 승산이 넘치지만 상대는 단순히 육감으로 싸우는 자가 아닌 어떤 형식을 갖춘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무공 쪽에선 승현도 한수 접어주어야 하니 이 매치는 헤비급과 라이트급 선수와의 시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승현은 미련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철철 끓어 넘치는 투쟁심의 영향을 받은 기세도 이리저리 날뛰며 크게 출렁였다.
그, 변화를 감지한 상대방도 투기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기세와 기세가 부딪치며 그 사이에 있던 나무며 풀들이 기에 억눌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지척까지 마주한 승현과 상대방은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보였다.
“네가 그 암왕이라 자칭한 이방인인가?”
“그렇습니다. 당신은 녹림왕 가영호입니까?”
“그렇지. 우리 쪽 애들을 아주 묵사발을 냈다기에 내가 직접 왔다. 들리는 풍문이 과장되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실력은 있구나.”
녹림왕은 승현의 무위를 바로 알아차렸다.
기세를 풀풀 풍기고 있으니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승현은 다시 긴장으로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에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 이 긴장감, 이 활력. 마치 처음 검을 들었을 때와 같지 않은가.’
승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녹림왕이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너무 들뜨진 마라. 내 도끼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땐 전력을 다해 도망칠 겁니다.”
승현은 당당하게 도주를 예고했다.
무인에게 있어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건 수치 중의 수치였으나 승현은 못 이길 상대에게 오만함을 가지고 덤빌 생각을 일찍이 접었다.
그저 저 사내와 한 번 겨뤄보고 싶을 뿐이었다.
“겁쟁이로군. 뭐, 좋다. 감히 내 앞에서 만용을 부리지 않은 건 칭찬해주마.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가 없겠지?”
“그럼 한 수 배워가겠습니다.”
승현의 말이 끝나자 곧 두 사람에게서 살기가 폭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