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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96화 (96/111)

96화

서서히 승현의 몸에도, 랑아군 고병태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나 승현은 알타의 힘을 받은 반신에 가까운 육체로서 그런 작은 상처 정도는 따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상당한 속도로 치유되었다.

랑아권이 가진 출혈 강화와 같은 억센 마력 공격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반면에 고병태의 상처는 승현보다 적었지만 치료가 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잘한 상처는 고병태에게만 잔뜩 보여 어찌 보면 승현이 유리하게 판을 이끄는 듯 보였다.

그러나 승현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가 아직도 자신의 본심인 랑아교혈권을 쓰지 않고 있음을 말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에서조차 막는데 급급했던 그 막강한 권법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게 고병태가 본인에게 건 페널티이자 자신에게 준 배려임을 승현은 잘 알았다.

“물어뜯어주마!”

고병태는 다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비단 적절한 기교로 완급 조절을 하던 고병태가 완전히 기세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승현은 마치 눈앞에 대형 트럭보다 큰 거대한 늑대가 침을 흘리며 자신을 살기에 찬 눈으로 노려보는 환상을 접했다.

비단 내공이라 불리는 마력의 특별한 운용으로 이런 환각까지 불러일으킨 것이다.

무공에 깊은 이해도와 그 오의를 깨달으면 기세가 형상화된다고들 하는데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단순히 기세가 형상이 된 건 아니다.

마치 사제의 버프처럼 대상자에게 이로운 버프를 부여하기도 한다.

혹은 상대에게 해로운 디버프를 걸기도 하는데 랑아군의 기세는 후자인 듯싶다.

승현은 절로 자신의 마력들이 위축되는 걸 감지했다.

늑대 형상이 후광처럼 생겼다 사라진 후로 체내의 마력은 물론 외부의 마력까지 늑대 앞의 사냥감마냥 쪼그라든 것이다.

마력이란 그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힘이자 작용인 마력이기에.

그것들이 쪼그라드는 걸로 승현의 몸도 잔뜩 위축되었다.

근육이 멋대로 수축하고 그에 따라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며 동작에 불균형이 일어났다.

원래 마력의 양이 많거나 비등하면 아무리 기세를 형상화하여도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받진 않지만 승현은 시스템이란 편법으로 무공을 익힌 만큼 마력의 통제가 본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승현의 의지가 깃들지 않은 마력은 순수한 작용에 의해 쪼그라들고.

결국은 이렇게.

콰가가가가!!

“이걸로 끝이다!”

슈아악, 퍽!

바람을 가르는 랑아군의 깔끔한 발차기를 가드를 통해 막아낸 승현은 수련장 너머로 쭉 밀려났다.

그렇게 비무는 랑아군의 우세로 끝이 났다.

“네 문제는 여전히 내공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거다. 사술을 집어치우고 무공의 본의를 깨닫는다면 이 몸을 넘볼 수 있을 거다.”

“후아, 가르침 감사합니다.”

“쯧쯧, 한 놈 구제한다고 또 외관을 망쳐놨군. 물어내라, 이놈아!”

“금자로 몇 돈이면 되겠는지요?”

“에잇! 날 소인배로 만드는군. 됐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어디로든 꺼져버려.”

“그럼 미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랑아군 대협.”

“대협이고 나발이고 갈 때 심부름이나 하나 해라.”

“물론 해드려야지요.”

“그럼 물건이랑 편지를 맡길 테니 내일 갈 때 일러준 곳을 잠시 들러서 전해줘라.”

말을 마친 랑아군은 그대로 등을 돌려 내관으로 돌아갔다.

실로 오랜만에 고수들의 비무를 본 제자들도 만족스러워하며 무너진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배당된 방으로 돌아온 승현은 가만히 내공이 된 마력을 살폈다.

중원 게이트에 들어오는 순간 마력은 내공이 된다.

무공을 안 익힌다면 그저 육체만 강화된 상태만 된다.

그걸 생각하면 이곳은 무공을 완성하기 무척이나 좋은 환경일 수 있다.

시스템의 적용이 최대한 적으면서 무공으로선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하니까.

가만히 참선을 시작한 승현은 마력을 세밀하게 조종해보았다.

여태껏 투박하게만 운용되던 마력이 세밀히 움직이려 하자 상당히 힘이 들었다.

‘과연 무극의 형상은 어떤 것일까?’

모든 무의 극의가 모인 이 무공이 형상화된다면 과연 어떤 형태를 이룰지 승현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극.

그 심오한 화두에 심취한 승현은 날이 밝는 날까지 참선을 하였다.

이른 아침이 되고 늘 평상시와 같이 하인 하나가 아침상을 가지고 찾아왔다.

“객께선 일어나셨습니까?”

“음, 들어오세요.”

참선에서 깨어난 승현은 아침상을 받았다.

깊은 참선을 하였지만 특별한 깨달음을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무인 한 명이 승현에게 편지와 목함이 든 보자기를 넘겼다.

승현은 목함에서 나는 피냄새를 맡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꼬인 일을 준 것 같은데 그래도 은혜가 있으니 그냥 처리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랑아천문파를 떠난 승현은 제자가 알려준 한 거대 세가에 들렀다.

호고성에서 조금 떨어진 성도보단 작지만 위성 도시로사 크게 발전한 가이현을 지배하고 있는 세간인 세검가의 앞에 도착했다.

문을 지키는 하급 무사들도 느낄 수 있는 비릿한 혈향에 바로 승현을 경계했다.

“본 세가를 찾은 목적을 말해라.”

“랑아천문파의 대리인으로서 이 물건과 서신을 전하고자 왔다.”

“기다려라. 외총관님을 불러줄 테니.”

세검가의 외총관이라 불리는 이는 기 싸움을 하고 싶은 건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승현은 그런 세검가의 작태를 보며 침착하게 기다렸다.

20여 분 정도가 지나고 나자 드디어 외총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왔다.

“그래, 랑아문에서 왔다고?”

“랑아천문에서 왔습니다. 이것과 이 편지를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으허허! 좋네. 우선 안으로 들어오지. 잠시라도 객으로 인정하마.”

승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병태가 그냥 호의로 가르침을 베푼 건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진, 예의를 차렸다곤 해도 결국 행패를 무린 무뢰한이니 그렇게 가르침을 준 것도 나름 대인배라 할 수 있겠다.

세검가 안으로 들어온 승현은 넓은 공터에 안내를 받았다.

절대 객으로 보는 것 같지 않은 행태였지만 팔짱을 끼고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상당히 파괴적이고 거친 마력을 품은 고수와 함께 어린 소년 무인이 등장했다.

“본인은 세검가의 소가주다. 네가 랑아문에서 보낸 대리인인가?”

“그렇습니다. 소가주. 나는 랑아천문에서 보낸 대리인입니다.”

“좋다. 그럼 대리 결투 진행하지. 이의 있나?”

“없습니다. 다만 상대를 살해해도 되는지요?”

“뭐? 그쪽이 원한다면 충분히.”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에 승현은 비릿하게 웃었다.

상대방은 고병태와 같은 초경의 고수였다.

다만 그 경지가 고병태보단 낮아 승현에겐 딱 알맞은 상대였고 말이다.

이왕 용병으로 뛰는 거 상대를 확실하게 부숴버리는 것이 좋았다.

“아, 그리고. 공증인 하나를 두고 싶군요. 마침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 백걸개를 공증인으로 세우고 싶습니다.”

승현은 혹여 다른 소리가 나올까 개방의 장로란 영향력ㄹ 있는 인물을 공증인으로 세우기로 했다.

소가주는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여 수락했다.

그리고 곧 식객으로 놀고먹던 백걸개가 불려나오고 바로 결투가 준비되었다.

승현은 저들의 시선을 돌리고자 펑퍼짐한 양 소매에 손을 넣고 마치 그 안에 있었던 듯 타르샤를 꺼냈다.

승현이 특별해 보이는 검을 꺼내들자 몇몇 무인들의 눈에 탐욕이 일었다.

그만큼 타르샤의 자태는 무척이나 고아하고 기품 있는 모양새였다.

“오랜만입니다. 백걸개.”

“호오, 그때보다 더욱 발전했군. 그리고 자네, 존대도 할 줄 알았나?”

“그렇게 됐습니다. 세상은 확실히 넓더군요.”

“껄껄껄! 랑아군에게 된통 당했나 보군. 그 양반의 손은 자비가 없긴 하지. 그보다 용케 멀쩡하군?”

“제가 치유력이 좀 뛰어납니다.”“자, 그럼······. 공증인으로서 말하는데 이번 승패는 랑아천문과 세검가의 분쟁을 결정짓는 대리 결투이오. 나 백걸개는 그를 공증하며 이 결과의 승패는 곧 개방의 공증이오.”

백걸개의 선언이 떨어지고 바로 결투가 이어졌다.

승현은 랑아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끈적하고 어두운 마력을 마주했다.

“으음, 마교인가······.”

승현은 백걸개의 침음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눈앞의 상대는 천마신교라 불리는 종교에서 파견된 인물 같다.

하오문이 넘겨준 정보에는 마교나 외세에 대한 정보는 없어 상대를 특정할 순 없었지만 마교가 이번 분쟁에 끼어들었단 건 많은 걸 시사했다.

외세 세력이 중원에 들어온다는 소리였고 그것 곧 기존 힘의 구도를 깨트린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승현은 생각을 접고 기세를 피우는 마교 고수를 공격했다.

쩌적!

마교인이 손을 허공에 휘젓자 마치 보호막처럼 불투명한 흑색 막이 생기면서 승현의 타르샤를 막아냈다.

그리고 잠깐 시야가 차단된 틈을 타 발로 승현의 복부를 찼다.

복부를 맞은 승현은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완화했다.

서로간에 탐색전을 한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승현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아본 마교인이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방으로 그의 기세가 뻗어나가며 주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승현의 무극신공의 특성 중 하나인 주변의 기를 활용한다는 걸 꿰뚫어 본 거다.

두 사람의 공방은 빠르게 이어졌다.

초경의 고수가 본격적으로 실력을 드러내자 상황이 승현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현도 결코 무기력하게 밀리지만은 않았다.

팡, 팡, 팡!

빠르게 오가는 공방 덕분에 주변 공기가 터져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현은 상대방이 아직 본 실력을 내지 않았음을 잊지 않았다.

상대는 권법의 고수가 아닌 검법의 고수였다.

그것도 연검이라 불리는 얇고 긴 검의 고수 말이다.

혁대처럼 둘러진 연검을 살피며 언제 그 검이 출수할지를 가늠하며 무지막지한 마력을 뿌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고치는 알타의 힘 중 일부도 함께 투자되자 끈끈하던 상대의 마력이 열을 품은 마력에 의해 밀려났다.

그렇게 막대한 마력으로 밀어붙이자 마교인이 드디어 연검을 뽑아냈다.

출렁이는 연검이 뱀의 혀처럼 승현을 노렸다.

차창!

마치 채찍을 보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연검을 막아낸 승현은 점차 거리가 벌어지는 마교인을 쫓았다.

하지만 연검으로 교묘하게 밀어내는 통에 제대로 쫓을 순 없었고.

결국 연검의 최대 거리를 허용하고 말았다.

“흠, 이거 이변이 없다면 저 청년의 패배가 되겠군.”

이번 결투는 생사결 형식임을 이미 공지했기에 승현의 죽음을 어느 정도 감안한 백걸개였다.

그렇지만 승현도 아직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마교인의 패턴을 알기 위해 일부러 지는 척 연기를 하고 있던 것뿐이다.

지금 마교인이 뽐내는 실력은 초경 초입.

랑아군의 실력이 초경 중반이니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도 초경에 접어들면 자신의 무공이 가지 오의를 깨닫는 단계이니 방심하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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