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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95화 (95/111)

95화

몰아치는 배도욱의 공격을 승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다 완성된 랑아권을 온몸으로 맞아봐서 투로가 어느 정도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랑아교혈권이란 랑아권의 오의까지 몸으로 받아냈던 승현에게 배도욱의 미숙한 랑아권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범재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수재였군.”

랑아군은 승현에 대한 평가를 올렸다.

처음엔 내공만 무식하게 많은 사술쟁이인 줄 알았는데 퍽 무재가 있는 무인이었다.

사파인이긴 해도 같은 무인인 승현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 편이 썩 가려웠다.

‘고놈 성장하면 나랑도 다시 싸워볼만 하겠어.’

랑아군이 생각을 하는 동안 전세는 다시 승현에게 넘어왔다.

최대한 무극신공의 묘리를 살리고자 정형된 동작을 펼쳤음에도 워낙에 고강한 무공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미숙한 랑아권을 사용하는 배도욱을 눌렀다.

하지만 배도욱도 마냥 수세에 몰리기만 한 건 아니다.

언제든 하체를 노리며 기회를 엿봤고 승현의 투로를 읽으려 노력하며 예측해서 반격을 두었다.

무인간의 결투는 마치 바둑과 닮았다.

처음 백지에서 서로의 수를 두다가 뒤섞이며 상대의 다음 수를 읽고 대처하고 또 상대가 자신의 수를 읽을 걸 예측하고 변수를 창출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고수가 될수록 심해지고 한 번의 수에 수십 수의 앞을 내다보며 상대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계산을 본능과 직감 그리고 경험과 판단으로 찰나의 순간에 마쳐야 진짜 고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직감과 경험은 많은 비무와 훈련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승현이 무극신공은 사실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초월 기술로 합쳐진 무극신공의 하위인 무극심법 등의 오의를 깨닫기 전에 아이템으로 그 깨달음과 오의를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사측연산을 하다가 중등 교육을 건너뛰고 고등교육으로 넘어온 셈.

그렇기에 승현의 기도는 많은 힘을 내포했으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거다.

판단과 본능의 영역인 전투감각은 날카롭지만 직감과 경험이란 정보가 없으니 무극신공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서서히 수세에 몰린 배도욱은 목젖과 명치에 주먹을 허용하는 실수로 인해 결정적인 승기를 내어주며 패배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다음에 다시 하죠.”

“······.”

포권을 해보인 배도욱은 어두운 낯빛으로 수련장을 떠났다.

당연히 랑아천문의 기재라 불리던 배도욱의 패배에 다른 제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분위기를 딱히 바로잡지 않은 랑아군 고병태는 승현에게 다가갔다.

“나름 열심히 했나 보군. 드디어 금강석이 연마되고 있는 것 같잖아?”

“그리 말하니 감사하군요.”

“하지만 아직도 돌덩이 속 금강석일 뿐이다. 어찌 된 놈이 내공은 나보다 많으면서 절정의 무인 하나를 그리 힘들여 이기는지.”

혀를 차는 고병태에 승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만이 묻은 색안경을 벗고 다시 보게 된 고병태는 생각보다 친절한 인물이었다.

일전에 하오문이 넘겨준 정보대로 정파의 행태가 싫어 사파가 된 인물이다.

말은 저리해도 나름의 칭찬인 걸 알 수 있다.

“언제까지 여기서 지낼 생각이냐?”

“조금만 더 다듬어지고 나면 비무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흥! 네 실력으로 비무행이라니. 네 녀석의 별호를 생각하면 백 년은 이르다.”

“하하, 아마 랑아군 당신과 비등해질 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까지 눌러 앉으시겠다? 식객 노릇은 톡톡히 해내야 할 거다. 거기! 이놈을 와관 객실로 좀 보내줘라.”

고병태의 명령을 받은 하인 하나가 승현을 객실로 안내해주었다.

승현은 외관 수련장에 매일 같이 나와 무극신공을 연마했다.

어떨 땐 극한의 속도로 무극신공을 펼쳐보였고.

또 다른 땐 낼 수 있는 최대로 느리게 해 무공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가상의 상대는 늘 랑아군 고병태였는데 그와의 가상 대련에선 늘 랑아군의 오의인 랑아교혈권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러나 거기서 진전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처음엔 맥없이 당했다면 다음엔 한 수를 막아내고 다음엔 네 수를 막아내고······.

수백여 수를 모두 거둬내진 못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승현은 서서히 랑아교혈권을 방어해냈다.

이주가 지났을 때 승현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무극신공은 정말 놀라운 무공이군.”불가해 등급의 기술이 초월되며 나온 무공이니 오죽하겠느냐만 파도 파도 새로운 게 나오는 정말 화수분 같은 무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승현은 기교라는 걸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무조건 빠른 것이 아닌 그 안에 무극의 묘리가 섞이는 것이다.

그쯤 발전했을 때 승현은 묘한 상승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작은 벽 하나가 허물어진, 막혔던 시야가 확 트인 그런 느낌이 말이다.

“이봐, 암왕! 나와 다시 비무를 하는 게 어때?”

“흠, 좋아. 비무를 하도록 하자. 랑아군에게 공증을 부탁해야겠군.”

“스승님껜 이미 말해뒀다.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는군.”

아교권, 배도욱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승현은 그의 마력 절대치가 상승했음을 알아차렸는데 아무래도 어떤 깨달음 혹은 영약 따위를 얻은 것 같았다.

또한 배도욱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이 외관 수련장 전체에 전에는 없던 랑아군의 기세가 은은하게 퍼져 있는 걸 알아차렸다.

‘하여튼 새침한 양반이야.’

고개를 살짝 저어보인 승현은 바로 기세를 피웠다.

딱히 식객을 들이지 않는 랑아천문파라 외관의 수련장은 수련생이나 종종 사용하는 것이어서 거의 승현의 개인 수련장처럼 쓰였다.

따라서 지금도 승현과 배도욱의 대련을 지켜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자신감에 차있는 배도욱을 주시한 승현은 자신이 찾은 기수식을 선보였다.

한 발을 뒤로 물리고 양손을 펴 가운데에 모은 상태의 독특한 기수식이었는데 이주 동안 가장 빠르게 무극의 묘리를 담을 동작을 찾다 보니 이런 승현만의 특이한 동작이 되었다.

승현이 기수식을 선보이자 배도욱의 얼굴이 살풋 굳었다.

기수식이란 가장먼저 무인의 기량을 드러내는 동작.

천외천의 고수들이야 그런 기수식 없이도 첫 수에 전력을 뽐내지만 그 이하의 이들이라면 대부분 허술해 보여도 그 기량을 엿볼 동작이 있다.

그리고 승현의 동작은 배도욱이 보기에 빈틈이 없었다.

“선수를 양보하지.”

“사양하지 않겠어!”

배도욱도 나름의 기수식을 선보인 상태에서 출수했다.

과연 마력의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 기세 또한 늘어났다.

예전엔 새끼 늑대였다면 이젠 어느 정도 성장해 홀로 사냥이 가능할 젊은 늑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역시 연륜이란 경험이 부족한 혈기 넘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승현은 기수식을 풀지 않고 배도욱의 선공을 여유롭게 방어해냈다.

방어와 동시에 그의 어깨를 노리는 일권이 꽂혔다.

“······!!”

“발전한 건 너뿐만이 아니란다.”

승현은 어깨를 맞고 재빨리 거리를 벌리는 배도욱을 보며 충고하듯 말했다.

승현에게 직감과 경험이 부족한 승현이었지만 단순해서 그렇지 상당한 전투를 치른 노장이었다.

대부분 상대들이 잘 가지치기가 된 무술이나 압도적인 힘으로 싸우는 스타일이여서 그렇지 전투로만 따지면 승현도 어떤 무인 못지않은 화려한 전투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속도전이라면 더욱 자신이 있는 게 승현이다.

비록 무극신공이 속도보단 무게에 더 치중을 둔 무공이라 해도 말이다.

이번엔 승현이 배도욱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초절정이란 경지를 넘본 배도욱이었으나 승현이 무극신공의 기교를 섞은 쾌속한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수십 번의 타격을 허용한 배도욱은 어느 순간 그대로 몸이 무너졌다.

“크윽······!”

“후, 대충 완성된 것인가.”

승현은 막 태어난 송아지마냥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배도욱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무극신공은 무(武)의 극(極)을 보는 무공.

하나이나 하나가 아닌 만류귀종의 묘리를 담은 무공이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무공의 기법들이 승현의 머리에 담겨있다.

여기에 더해 시스템으로 인해 터득한 웨폰 마스터리는 그런 무극신공의 효능을 배가시켜주면서 승현을 만능인으로 만들었다.

그런 승현이 가장 먼저 접근한 부분은 연계를 통한 상대의 완벽한 파쇄.

지금 배도욱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육체와 근육은 상당한 과부하에 걸려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승현의 타격 하나하나가 혈이 위치한 부위를 타격하며 기혈을 억제하고 근육에 가는 기를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몇 번의 타격만으로는 절대 초절정에 입문한 배도욱에게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 못할 테다.

하지만 수십 차례에 달하는 타격으로 초절정이란 고수조차 기를 완벽히 조절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이주 동안 승현이 연마한 나름의 공격 기술 중 하나였다.

“쯧쯧, 이놈아. 그러게 네놈은 덤빌 짬이 안 된다고 말했잖냐. 하여간 스승의 말도 더럽게 안 들어서는.”

“스, 스승님······.”

“그래. 이제 좀 쓸 만해졌군. 기력이 좀 남으면 나하고도 푸닥거리나 좀 할까?”

“아직, 랑아군 당신에게 닿을 정도의 실력은 아닙니다. 몇 주만 더 시간을 준다면 완벽할 것 같군요.”

“에잇, 됐다. 너, 그냥 오늘 나랑 싸우고 내일 떠나라.”

“그리 급할 것 있습니까? 차차 시간을 갖도록 하죠.”

“남의 집 밑천 거덜낼 일 있나! 그냥 가라면 가!”

“하하하, 그럼 그렇게 하죠. 한수 배우겠습니다.”

승현은 유쾌하게 웃으며 비무를 승낙했다.

그러자 랑아군은 근처의 제자들을 불러 배도욱을 멀리 옮긴 후 수련장 가운데에 섰다.

“보아하니 네놈의 그 괴물 같은 치유 능력도 많이 죽은 것 같은데 살살 해주랴?”

“그러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적당히 전력을 다해주세요.”

“······이건 뭐,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군. 강도야. 그러면 어디 네놈의 그 사술이나 좀 보자. 검을 꺼내라.”

“후후, 검은 별로 수련하지 않았는데 그걸 짚어내는군요,”

“네 무공이 그런 것 따지는 부류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으니 그냥 잔말 말고 들어라.”

랑아군의 지적에 승현은 그대로 타르샤를 꺼내들어 양손에 쥐었다.

그의 말대로 무극신공은 권법이자 검법이자 도법이고 조법이자 장법이며 각법인 만능 무공이었다.

양손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 시커먼 검이 들리자 랑아군은 가볍게 손을 늘어트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풀더니 선공을 양보한다는 듯 손짓했다.

승현은 그대로 랑아군에게 달려들었다.

파앙!

순식간에 가속한 승현이 있던 자리에서 강한 폭음이 울렸다.

배도욱 때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를 본 배도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보였다.

승현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는 일수에 목이 달아났을 거란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주 동안 성장한 승현은 확실히 초경에 들어선 고수만큼의 기교를 가졌다.

특히 무극신공을 통한 연계기는 초경의 고수도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담고 있었으니 전력을 다하는 순간 랑아군보다 빠르면서도 비등한 실력을 낼 수 있었다.

콰아앙!!

“역시 더럽게 빠르군!”

“하아아압!!”

랑아군은 바로 부딪치는 검을 튕겨내며 말했다.

승현의 속도는 일전에도 그를 넘어섰지만 기, 그러니까 마력을 더 잘 다루고 지배하게 되면서 그 속도가 더욱 올라갔다.

초경의 고수와 마력만은 현경 끝자락을 넘어 생사경을 넘보는 승현과의 충돌은 잘 다져진 땅을 갈아엎고 근처의 건물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다.

멀찍이 떨어진 하인과 제자들은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담장이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관전을 이어갔다.

이미 수련장을 두른 땅은 푹 파였고 근처 담장은 모두 허물어졌다.

그리고 승현의 검을 막는 랑아군의 손에는 자잘한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거 짜증나게 날카로운 검이로구나!”

“그러면서 잘만 받아내는군요!”

콰가가강!

승현과 랑아군은 슬슬 본심이 되어 부딪치기 시작했다.

랑아군의 손에 강기가 맺히며 승현의 타르샤를 부러트릴 기세로 휘둘러졌다.

그러나 승현도 강기처럼 고도로 압축된 건 아니지만 마력을 두른 타르샤로 랑아군을 압박했다.

초경이나 되는 고수간의 대결은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대결인 만큼 마력 파편과 그 충격파에 미세한 내상을 입을 수 있음에도 랑아천문의 모든 제자들이 모여 비무를 관전했다.

아직까지 극한으로 단련된 랑아군의 기교에 상당히 못 미치는 승현이었지만 그걸 빠른 스피드로 메꾸면서 승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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