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노모는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지 금방 승현을 알아봤다.
말을 하지 못하는 건지 수화를 해 보인 노모는 승현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타깝게도 희귀함 등급의 해석의 목걸이로는 수화까지 해석할 순 없었다.
그렇게 가정집 거실로 보이는 곳에 안내를 받은 승현은 낡은 소파에 앉아 전승인이 오길 기다렸다.
솔직히 이제강은 얻어걸린 거고 진짜는 바로 이 사람이다.
아마도 인류 최강이었을 인물.
어쩌면 현재도 최강일 인물.
알드리안의 스카우트망에 가장 먼저 걸렸으며 베트남의 숨은 다크 나이트.
회귀 전 천 레벨의 헌터를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최전선에서 함께 원과 대항하던 거의 유일의 전승인.
“반갑습니다. 후인 롱 씨.”
승현은 약간의 존경을 담아 롱을 보며 인사했다.
격한 운동을 한 듯싶지만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롱은 인사 대신 지그시 승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음료를 가져온 노모가 롱에게 수화로 뭐라 말을 걸었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반갑소. 후인 롱이오.”
“아, 예.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상관없소.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은 늘 그런 식이니.”
상당히 냉소적인 모습의 롱에 승현은 시작부터 조금 꼬였음을 인정했다.
승현은 지금 롱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화경 끝자락. 그러니까 곧 현경이란 중원 게이트에서도 천외천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둘 밖에 없는 경지를 지금 후인 롱은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그가 깨달음을 통해 각성한다면 아마 전력을 다한 승현과도 견줄 만할 것이다.
무엇보다 저 끈끈하면서도 진한 특성을 가진 마력은 한 번 공격을 허용하면 몸에 깊은 상처를 낼 것이다.
잘 길들여진 맹수를 품은 사람 같았다.
“우선 이렇게 찾아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승현은 친절한 말투로 상황을 쭉 설명해주었다.
원의 존재와 현재 상황, 영웅의 부재와 약화된 전력까지.
그를 위해 후인 롱이 해주어야 할 역할 등도 설명했다.
상당히 길 이야기였지만 1시간 정도로 설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때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던 롱은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 나라를 위해. 그리고 나아가 인류를 위한 일이라.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참여해야겠지. 하지만 나는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이 없소.”
“흐음, 그건 곤란하군요. 롱 씨가 본부로 합류하셔야 충분한 상승작용이 일어날 겁니다. 또 배포할 무공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할 테고요.”
“역시 생각이 없소. 내 국가에 위험이 도사린다면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나의 사명.”
“······롱 씨. 안타깝지만 베트남은 가망이 없습니다.”
승현의 확정적인 발언에 순간 롱에게서 진한 살기가 승현에게 집중되어 폭사했다.
승현의 근처에 있던 화분이 살기에 반응에 빠르게 죽어버렸다.
승현은 의연하게 그 살기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전 시간을 거슬러왔습니다.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꺼냈다.
중원 게이트에서 최강 용병을 구할 수 없다면 지구에서만은 구해내야 했다.
자신의 회귀는 알드리안이나 조커도 모르는 그의 비밀.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이 애국자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회귀 전 저는 원의 편에 선 인류의 배신자였습니다. 인류는 힘겹게 강력한 몬스터와 그를 조종하며 세계를 하나씩 몰락시키는 원과 대항했죠. 거기에 대한민국은 사실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한 대기업과 하나의 길드의 국가였기에 딱 해당 길드만큼의 영향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추축은 대국이라 불리던 미국과 중국 그리고 독일로 똘똘 뭉친 유럽 연합이었다.
그 세 곳의 고군분투로 원과 싸우며 힘들게 버텨냈다.
하지만 회귀 후 영웅들의 추악한 뒷면을 승현은 보고 말았다.
거의 모든 랭커들은 이미 원과 손을 잡았고 그 중심엔 영웅왕 게일 프리스가 있었다.
영웅 중의 영웅이며 전 세계에 영향을 뿌린 인물.
하지만 현재 미래는 회귀한 승현조차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회귀 전 동남아는 역설적이게도 베트남을 지키려던 후인 롱 때문에 종말을 맞이한다.
원에서 파견된 헌터들과 네 명의 원이 베트남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베트남은 죽음의 땅이 되고 만다.
당연히 전에도 애국을 행하던 롱은 주변의 말류에도 급히 베트남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원의 일원 셋과 수십 명의 헌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과거는 저로 인해 바뀌었습니다. 드래곤이란 등장해선 안 될 존재가 나왔고 증명의 장이란 없던 것이 생겼으며 게이트 안의 초월자들로 하여금 문명은 빠르게 복구되었습니다.”
“······.”
“게일 프리스는 사망했고 세상은 아직도 엉망진창입니다. 베트남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죠. 그나마 당신을 찾고자 온 알드리안에 의해 잠시 잠잠해진 것뿐 아직도 수면 아래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습니다.”
“내 존재로 인해 조국이 무너진단 말이오?”
“그건 어쩌면 이어질 수순일 겁니다. 롱 씨는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고 원은 그를 두고만 보지 않을 테니까요. 분명 롱 씨가 여기 있으면 원은 베트남을 침략할 겁니다.”
“······.”
“최대한 소중한 사람들을 모으신다면 그들 모두 한국으로 이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당신과 같은 이들이 한국으로 모인다면 분명 원도 한국만을 놀리 겁니다.”
“······하지만 미래에도 원이란 존재들은 날 노리고 베트남을 공격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한 곳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거점이 한국이면 원은 한국으로 전력을 투입할 겁니다.”
“그걸 확신하는 이유는?”
“원은 효율을 따지는 존재입니다. 강한 무력을 가졌지만 활동하는 일원의 수는 늘 10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만약 행동에 제약이 있다면 인류의 전력이 모인 한국을 공격하겠죠.”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때동안 전 베트남에 있는 범죄자나 게이트를 닫도록 하죠.”
말을 마친 승현은 노모에게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왔다.
승현은 자신이 말했던 대로 베트남에 있는 게이트와 던전을 잇달아 공략했다.
최상급 게이트나 특급 게이트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공략하지 않았지만 상급 게이트 정도는 게이트 안에 들어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공략을 해냈다.
나중에 게이트는 몬스터들이 넘어오는 통로가 된다.
몬스터가 넘어오려면 앞으로 2년 정도 남았지만 상황이 급변한 만큼 원의 수작으로 당장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 있다.
그걸 잘 아는 승현이기에 롱의 마음을 얻고자 게이트와 던전을 클리어했다.
그러면서 밤에는 수많은 범죄자를 잡아들였는데 수도인 하이노에서만 거대 조직 두 개를 소탕하고 유저 범죄 수백 건을 해결했다.
한국을 제외하면 그나마 독일과 영국과 같은 유럽 쪽이 가장 치안이 높은데.
나머지 중국과 미국 남미와 아프리카는 최악의 치안을 달리고 있었다.
특히 미국은 구심점이던 게일의 사망으로 개판이 되었고 말이다.
동남아에 있는 베트남도 상황이 그리 좋은 건 아니었기에 끝도 없이 일어나는 범죄를 해결하느라 일주일 동안 잠도 줄이며 움직인 승현이었다.
게이트와 던전을 클리어하고 들어오는 보상 중 검은 모두 탐식에게 먹이고 남은 것들은 모두 한국의 경매장에 팔았다.
최하급 게이트부터 상급 게이트까지 고루 돈 덕에 희귀함부터 전설적인까지 아이템 등급이 널뛰기를 했으나 다들 게이트 완료 보상인 만큼 상당히 비싼 값에 팔렸다.
승현은 그렇게 번 돈을 베트남 정부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돈에 연연하는 단계는 이미 옛적에 넘어갔고 언제든 창고에 있는 금화를 팔면 거부가 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장 월급은 상당히 높았다.
때문에 승현은 베트남 헌터들의 성장을 방해한 것에 소소한 성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 승현은 다시 롱의 학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승현을 맞이한 건 노모였다.
그녀는 인사를 건네곤 슨현을 뒤뜰로 안내했다.
거기엔 간편한 복장을 한 롱이 있었다.
“다시 보게 되었군. 일주일 동안 우리 베트남을 위해 헌신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오. 하지만 그 행동이 내 심경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했다면 헛수고였소.”
“그저 롱 씨가 조금 더 편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한 작은 배려였습니다.”
승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롱과 승현은 마주보지 않고 어느 한 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진한 살기를 풍기는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청객이군요. 이 정도면 아마 원일 겁니다.”
“당신의 말대로 원이란 세력이 날 찾아온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 제 위치를 알고 찾아온 것이겠죠. 단단히 준비를 했을 게 분명합니다. 제가 그들을 좀 화나게 했으니까요.”
승현의 너스레에 롱은 그저 조용히 가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먼저 앞으로 튀어가며 살기를 뿌리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갔다.
승현도 그런 롱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는 곳이 산이 있는 방향이어서 민간인 피해는 그리 없겠지만 롱의 학원까지 오면 마을이 초토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수천 미터를 돌파한 롱과 승현은 곧 살기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엔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3남2녀로 이루어진 원의 일원이었다.
그중 아주 익숙한 대검을 든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탐식의 모조품이군.”
“이 검의 이름을 알고 있군?”
탐식의 모조품을 든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승현은 대답 대신 아우성치는 탐식을 꺼내 바닥에 박아 넣었다.
“이런! 설마 했는데 진짜를 보게 될 줄이야. 이거 군침이 도는군,”
남자는 뱀 같이 길고 갈라진 혀를 날름거렸다.
승현은 나머지 네 명의 원을 살폈는데 승현이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원 쪽에서 자신을 위한 특별반을 파견한 것 같은데 능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승현은 조용히 알타의 힘을 깨우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붉은색으로 변한 승현의 머리카락을 지켜보던 원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그중 한 여인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법사는 하나고 나머진 다 딜러 포지션인가.’
탐식 모조품을 든 남자를 필두로 톱 같은 무기를 든 자가 하나, 두 자루의 권총을 든 자가 하나, 마지막으로 채찍을 든 자가 하나였다.
근접이 셋이고 원거리가 하나이고 서포터로 보이는 이가 하나였다.
퍽 잘 싸여진 파티라고 볼 수 있어 이쪽이 극히 불리해보이지만.
“롱 씨. 지금부터 버프를 걸어드리겠습니다.”
승현은 그대로 탐식에 담긴 각종 버프와 디버프를 발동했다.
막대한 마력이 빨려 들어가며 수백 가지의 버프가 걸리고 적들에겐 디버프가 걸렸다.
중력의 경우 탐식 모조품을 든 남자가 모조품의 능력으로 상쇄시켰지만 디버프까진 막을 순 없었다.
수많은 버프를 받은 롱은 현경 중간 단계까지의 무력을 가지게 되었다.
승현에겐 그런 엄청난 차이를 주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마력이 낮으면서 일단은 일반인인 롱에겐 버프의 효과가 극대화 된 것이다.
“롱 씨. 제가 상대할 테니 저기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 쪽을 노려주십시오.”
“알겠소. 그럼······!”
팡! 파앙!
롱은 마력을 손바닥에 모아 앞으로 쏘아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