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약도를 받아든 승현은 이번에야 말로 심산유곡의 어느 숲길 앞에 도착했다.
“확실히 기이한 기가 느껴지는군. 이게 진법이란 건가. 마법과 흡사하면서도 달라. 그런데 진법이란 건 분명 실전된 게 아니었나?”
승현은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제갈량이 있던 그 시절엔 분명 진법이란 신묘한 마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대가 지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진법은 실전되고 만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진법의 잔재로서 풍수지리와 같은 것들만이 남아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승현의 눈앞에는 멀쩡한 진법이 있었다.
자연을 다루어 환영을 만들며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그런 진법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것은 아마 사람을 죽이는 상당히 고차원적이면서 냉혹한 진법이었다.
아마 이곳을 찾는 자라면 모두 자신의 적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흠, 그럼 마법의 주문을 외쳐볼까.”
승현은 한숨을 내쉬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멀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야이, 땅딸보, 꼬맹이 자식아! 겁쟁이처럼 안에 처박혀 있지 말고 손님 받아라!!”
“어느 씹어 먹을 개 잡종 놈이야?!”
마법의 주문은 바로 키와 담력을 건드리는 도발이었다.
키와 담력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듯 이 말을 하면 바로 튀어나온다고 박춘배는 호언장담을 했는데 저쪽 반응을 보니 조금 잘못된 게 아닐까.
‘혹시 날 물 먹이려는 수작이었나?’
상당히 가능성 있는 생각에 승현은 잠시 후회했다.
그리고 총알처럼 진법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대로 승현의 안면에 냅다 주먹을 꽂아버렸다.
퍼억!
주먹을 맞은 승현은 그대로 쭉 밀려났다.
거력이 담긴 주먹이었지만 승현은 안면을 최대한 보호하는 선에서 주먹을 맞았다.
아무래도 한 대 정도 맞아주어야 이야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 뭐하는 자인데 남의 집 앞에서 행패인가?”
“크흠,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안할 것이 있어서요.”
“본좌에게 제안? 너는 이 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승현은 160은 겨우 될까 싶은 작은 키의 어린 청년을 보며 의식적으로 존대를 썼다.
저래 보여도 일단 나이도 비슷하다고 하고 느껴지는 마력도 범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부탁하는 입장이니 굳이 반말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당신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 춘배 고것이겠군. 그딴 말을 뱉은 것도 대충이나마 이해가 가. 그 녀석 만나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어야겠어.”
짜증을 내던 청년은 이내 승현에게 말했다.
승현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청년을 판단했다.
‘초경 초반. 어쩌면 랑아군과 같은 경지일 수도.’
초절정만 되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찜쪄먹는 걸 감안하면 이 정도만 되어도 1,000레벨 헌터와 싸워도 승산이 상당히 높을 거다.
“본인은 만천검신의 후생인 이제강이라고 한다. 전생을 자각하고 현재는 이곳에 터를 잡고 무력을 회복 중이지.”
“아직 전성기의 힘이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이다. 이 정도 가지고 만천검신이란 별호를 달았다면 천하가 비웃었을 터.”
“그렇군요. 어쩌면 제 제안이 당신에겐 썩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기껏 왔으니 들어라도 보마.”
여유가 있는 모습에 승현은 간단하게 제의를 요약했다.
“제가 가진 무공을 알려드릴 테니 세상 구하는 일에 합류하라는 겁니다.”
“상당히 귀찮은 짓거리구나. 헌터란 것들이 알아서들 잘 막고 있는 걸 굳이?”
“지금 세계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원이란 범 차원적인 존재들이 지구를 침략했고 이 망할 헌터와 유저를 탄생시킨 신들 때문에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고 있죠.”
“흐음, 그러고 보니. 너는 한국의 보물이라고 떠받들던 최승현이가 맞지?”
“그렇습니다. 현재 저는 여러 게이트를 통과해 그곳에서 전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럼 똑같이 하면 되잖느냐.”
아직까지 미끼를 물지 않은 이제강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승현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모든 이들이 호의적인 건 아닙니다. 특히 중원 게이트는 가장 강한 유체적 무력을 소유했지만 원하는 자를······.”
“잠시. 중원 게이트?”
“예. 무림이 있고 무인들이 활보하는 게이트죠.”
“그 게이트에 나도 갈 수 있을까?”
이제강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걸 보고 승현은 엉뚱한 곳에서 미끼를 물었단 걸 깨달았다.
“갈순 있습니다. 1,000레벨 정도의 마력이 있으면 게이트는 강제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경지로 따지면 화경 후반 정도.”
원래는 조금 더 복잡한 이유가 필요하다.
권능을 가지거나 법칙을 비틀어야 하는데.
특히 시스템 법칙을 비틀려면 천 레벨은 훨씬 넘어야 한다.
그렇지만 회귀 전 전승인들은 화경 정도가 되면 다들 중원 게이트를 들락거리거나 원의 암살을 피해 던전이나 게이트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당시에 원의 전력은 화경의 고수도 몸을 사릴 정도로 막강했었다.
또 인류의 배신자들도 많아 습격을 자주 받았었다.
“화경이라! 1년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지. 좋은 정보야.”
“제가 알려드릴 무공이 뭔지 알려면 한 번 겪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와 대련을 해보시겠습니까?”
“음? 크하하! 좋다. 오랜만에 푸닥거리를 좀 하자.”
“저 또한 오직 무공만 쓰겠습니다.”
“아니야. 검사에게 검을 빼앗을 순 없지.”
“정 그러시다면 최소한만 사용하겠습니다.”
승현의 무력을 총합해 따지면 사실 생사경에 맞먹는다.
바로 그 중원 게이트의 최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불가해 아이템만 세 개에 시스템의 법칙에서 벗어난 정화의 불꽃과 알타의 힘 그리고 역시 불가해 등급의 기술인 무극신공이 있으며 전천후 서포터이자 딜러인 암왕이란 직업까지.
이를 완전히 활용한다면 중원 게이트에서 상대할 자가 거의 없으리라.
승현은 이제강이 허공을 움켜쥐는 걸 보고 살짝 놀랐다.
그는 바람을 잡아 검으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마력에 의해 기다란 막대 모양이 되었던 바람은 어떤 명검 부럽지 않은 예기를 품었다.
“비록 육신은 아니라고 하나 한때 생사경 끝자락을 본 몸이다. 이런 재주는 충분히 부릴 수 있지. 자, 무기를 들어라.”
승현은 그 모습에 속으로 작게 투덜거렸다.
‘전생을 기억해낸 것이 아니라 무슨 빙의를 하셨나.’
승현도 지지 않고 그림자에서 암검 타르샤를 꺼내들었다.
어둠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파괴되지 않을 검이다.
승현은 내친김에 알타의 힘까지 깨웠다.
“호오, 변신을 하는 거냐?”
“대충 그렇습니다. 그럼 한 번 붙어봅시다!”
콰아아, 콰아앙!
승현은 양손검 특유의 쾌속한 연계기를 선보이며 이제강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정립된 승현의 움직임에 그가 놀라며 수세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랑아군과 다른 점이라면 하나, 바로 알타의 힘이 내공이 아닌 육신을 뒤바꿨다는 것이다.
뒤바뀐 육신은 말도 안 되는 속도와 힘을 승현에게 주었다.
그 하나의 차이점으로 하여금 그때와 달리 공세를 쭉 이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엔 속도에서 밀리고 기술에서 밀리며 힘에서도 살짝 밀렸다면 지금은 기술을 빼면 모든 걸 압도하고 있었다.
그나마 기술적으로 뛰어난 이제강인지라 예측하며 검을 튕겨내고 승현의 검로를 방해해 뒤바꿀 뿐이었다.
여기에 무극신공의 묘리가 녹아들자 서서히 방어조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쯤 되자 이제강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는데.
분명 어딘지 어색하고 틈틈이 빈틈을 보여주는데도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제대로 허를 찌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대단한 무공을 배울 걸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니.
“이런, 제기랄! 아주 지랄 맞구나!”
한 차례 목소리에 마력을 담은 음공을 뱉으며 거리를 벌리는 이제강이었다.
그 정도 음파 공격으로 승현이 타격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가 물러나는 걸 허락했다.
그리고 그건 이제강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잠시 발로 땅을 차며 분기를 가라앉힌 이제강이 승현에게 말했다.
“좋다. 인정하마. 너의 힘은 분명 전성기의 나와 닮았다. 그리고 그 무공. 그 무공의 개세적인 위력을 또한 인정하마.”
“그럼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내가 모든 무공을 회복한 날. 다시 한 번 겨뤄보자.”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이제강은 진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나왔다.
“좋아, 오랜만에 속세 구경 좀 해보자. 춘배 그것의 엉덩이도 걷어차고.”
“그럼 내 손을 잡으세요.”
승현은 공간이동 장치를 켜며 이제강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본부로 이동하여 이제강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그를 조커에게 데려갔다.
이제강은 조커에게 느껴지는 마력을 보곤 바로 달려들려고 했으나 조커는 승현과 각종 무술의 데이터를 총집합한 전투를 익히고 있었다.
레벨도 천 레벨이 넘어가는 마력을 품고 있어 이제강은 생각보단 쉽게 제압되었다.
“그래서 원이란 놈들을 족치면 된다 이거 아닌가?”
“그 놈들의 실력이나 능력 때문에 그걸 제대로 못해서 문제지.”
“흠, 이치를 거스르는 힘은 확실히 무섭지. 내가 전성기 땐 이를 거스르는 건 아주 일은 아주 쉬웠는데 말이야.”
“네 자랑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거든? 어쨌든 상황이 이러니까 넌 여기서 ᄈᆞ르게 실력을 키우고 또 다른 전투요원이 되어주어야겠어.”
“좋다. 자, 그럼 승현이여. 내게 약속한 무공을 가르쳐줘.”
“그건 조커가 알려줄 거야. 그녀에게 무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수련해봐.”
“끄응, 알겠다.”
이제강은 조커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렇게 환생자인 이제강을 포섭하는데 성공한 승현은 곧장 다른 지역의 전승인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국가에서 활동 중이었고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
다만 한 명은 승현의 무공에 강한 호기심을 비추며 조만간 연락을 주겠단 답변을 남겼다.
러시아의 전승인은 노숙자로 지내고 있었는데 워낙에 성격이 나태해서 그런지 승현에게 술병을 던지는 걸로 흠신 두들겨 맞고 끝이 났다.
그렇게 승현은 마지막으로 베트남에 있는 전승인을 찾아갔다.
베트남의 어느 작은 무술학원.
이곳이 마지막인 베트남의 전승인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 아직 찾지 못한 전승인이 더 많을 거다.
실제로 원이 등장하고 세상에 등장한 전승인의 숫자만 해도 40명이 넘었다.
그러니 아직 은거하며 자신을 숨기는 자들이 많을 거다.
그럼에도 이곳을 마지막으로 잡은 건 최소 초절정을 넘긴 이들만 선별해서이다.
일정 경지를 넘은 전승인은 자신을 숨기는데 능통하고 실제로 이제강과 같은 엄청난 강자는 자신을 숨기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마력을 몸 밖으로 완전히 배출하거나 이제강처럼 주변 환경을 바꿔놓은 게 아니라면 결국 알드리안에게 걸리게 되어 있다.
그렇게 스카우스망에걸려든 것이다.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저는 한국에서 온 최승현이라고 합니다.”
승현은 반긴 건 나이든 노모였다.
안에서 들리는 몇 명의 기합 소리를 봤을 때 아마도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