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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헌터:암왕 강림-90화 (90/111)

90화

승현이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심산유곡의 벽지가 아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즐비한 어느 번화가 골목이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기동성 정장을 입고 있는 승현은 잠시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을 무시하고 은밀히 마력을 퍼트렸다.

그렇게 확장된 마력이 어느 한 곳을 찾아냈다.

“나이트클럽?”

“30대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문 앞의 가드는 척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승현이 다가오자 딱 선을 그었다.

그에 울컥한 승현은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만으로 따져도 이제 30살이 된 숭현인지라 딱 입장 조건을 갖췄다.

본인은 증명의 장에서 잃은 4년을 빼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민증을 확인한 가드가 이름과 얼굴을 번갈아보더니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요즘 헌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 최승현입니까?”

“대한민국 소속 특수 대응 부대 대장인 최승현이 맞으니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조사를 해야 할 것이 있어서요.”

“조, 조사요? 영장이나 수사권은 있습니까?”

조사란 말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이 아무래도 뒤가 구린 이들인가 보다.

승현은 피식 웃은 다음 아주 예전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걸 대비해 미리 얻어둔 수사권과 선조치후보고의 원칙을 알려주었다.

특수 대응 부대는 국내 범죄의 모든 수사를 진행할 수 있고 누군가를 먼저 구속하거나 채포한 후에 영장을 받아도 무방한 상당히 막강한 권력을 지닌 집단이었다.

가진 권리만 해도 검사보다 위이니까 사법에 있어선 정점이 아닐까 싶다.

“특수 대응 부대는 유사시 상황을 대비해 국가로부터 수사권 및 구속영창 청구 등의 여러 법적인 조치를 보고 이전에 행할 수 있습니다.”

“마, 말도 안 돼.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소.”

“못 믿겠으면 나중에 국민청원을 넣든지 아니면 가까운 동사무소에 가서 민원을 넣든지 하세요. 아마 친절하게 우리가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줄 테니까.”

“지금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고 당신을 들여보내란 말입니까? 아무리 권력이 무서운 세상이라지만 그런 정도가 지나친 게 가능하지 않은 건 무식한 사람이라도 알겠다!”

가드의 고성에 주변을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에 이모였다.

그중에는 승현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실 가드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가드인 사내는 유저이다.

그러나 유저 중 특별한 취급을 받는 헌터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인 취급을 받는데 그런 민간인을 헌터가 핍박하거나 괴롭히면 언론과 대중의 몰매를 맞는다.

이미 그렇게 자숙하거나 게이트 혹은 던전에 죽치고 사는 헌터도 더러 있었다.

아무리 인지도가 높고 긍정적인 승현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의 따가운 시선까지 무시하진 못하리라.

무엇보다 그는 한 기관의 장이 아닌가?

생각이 있다면 분명 힘을 쓰지 못하고 얌전히 돌아갈 거다.

그런 생각에 가드를 담당하는 남자가 좁은 문을 턱하니 막고 섰다.

그에 승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봐. 지금 이거 공무집행방해야. 이쪽은 경범죄 면책이라 당신 정도는 무력 진압해도 상관이 없어.”

승현이 슬슬 기세를 올리며 겁을 주려고 할 때였다.

“돌덩아. 짝다리 형님 손님이라신다. 들여보내라.”

“······들어가십시오.”

“운이 좋네.”

승현은 정말로 그리 말했다.

그리고 잠시 승현의 심연처럼 깊은 눈 안에 타오르는 감정을 엿본 가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길을 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웨이터로 보이는 이가 길을 안내했다.

승현이야 이미 마력으로 모든 동선을 파악한 상태라 알아서 길을 걷고 있는 거지만 그 앞을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는 웨이터였다.

“그쪽도 무공을 익혔나 보군.”

“아, 예. 그렇습니다.”

승현은 툭하니 질문을 던졌다.

웨이터에게서 느껴지는 미약한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걸 가르쳐준 게 그 짝다리란 사람?”

“그렇습니다. 짝다리 형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 짝다리란 사람에게 가는 거지?”

“예, 짝다리 형님이 그쪽 분을 손님이라 칭하셨거든요.”

“흐음, 내가 꼰대 같아서 별로 말을 꺼내고 싶진 않은데 나 이래도 장관급 고위 공무원이야. 장난질은 치지 않는 편이 민간인이라 해도 좋을 거야.”

승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가 나면서 사방에 은밀하게 있던 카메라 등의 장치들이 일제히 부서졌다.

“그리고 나는 맨몸뚱이만 있어도 일반인이면 수만 명은 죽여도 체력에 여유가 있으니 이쪽도 필요 없잖아?”

승현은 어느 방 입구 앞을 지키고 있던 가드들의 허리춤에 걸린 금속탐지기도 파괴했다.

모두가 당황해 하고 있는 때 가드들이 지키는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들여보내!”

“그럼 실례.”

승현은 가드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세 명의 남자가 고급 양주를 홀짝이고 있었는데.

가장 상석에 앉은 사람은 무척이나 젊어보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짙은 마력이 느껴졌다.

“우리 업장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대장님.”

“여기 불법 유흥하는 거나 마약 판매하는 건 대충 들어오면서 눈치 챘지만 저는 그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온 이유는 하나, 거기 앉은 당신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캡틴을 보게 되니 나도 반갑구려. 박춘배라고 하오. 전에는 수호자 양반이더니 이번엔 캡틴이군.”

상석에 앉은 박춘배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캡틴이란 명칭은 승현의 별명인데 그가 한국에서 대장으로 통하고 있자 서구권에서 붙인 별명이었다.

때문에 동양에선 대장 혹은 두목이라 불렸고 서양에선 캡틴이라 주로 불렀는데.

한국에선 대장이 공식 명칭이기 때문에 대장이란 말 대신 캡틴이라고들 불렀다.

어떤 유명 영화가 떠올라 캡틴 코리아란 해학이 섞인 별명도 따라오기도 했다.

“박춘배 씨군요. 반갑습니다. 특수 대응 부대의 대장인 최승현입니다.”

승현은 일단 인사부터 했다.

알아본 바로는 박춘배는 새로이 생긴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사실상 무국적자였다.

그래도 조커가 찾아낸 과거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를 살핀 결과 그의 나이가 50세가 넘어감을 알아냈다.

그럼에도 30대 초반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박춘배 씨. 세상을 위해 일해 볼 마음이 없습니까?”

“전혀.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관여할 생각이 없네. 그런 걸 알아본 거라면 아쉽지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무조건적인 협력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은 제가 이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으니까요.”

“호오,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군.”

“뭣하면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크큭, 드래곤 같은 괴물을 잡는 건 확실히 지금의 내겐 무리겠지. 하지만 나 나름대로 자네를 뒤로 물릴 자신은 있는데 말이야.”

“시험해보시죠. 절 뒷걸음질 칠 수 있게 하는지 못하는지.”

“못할 것 없지. 동생, 건물에 기스 좀 나도 괜찮나?”

“형님 마음대로 하세요.”

옆에 앉은 중년 남성에게 허락을 구한 박춘배는 그대로 장풍을 날렸다.

장풍이란 마력을 바람에 실어 날리는 기술로 사실 그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대신 확실히 상대방을 뒤로 물리기엔 좋은 수였다.

날카로운 바람이 안구를 찌를 수도 있고 강한 힘이 실린 강풍이 일어 잠시지만 균형을 다시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현은 그런 장풍을 그대로 받았다.

지구에 오고 나서 룬의 자동 방어 기능이 돌고 있다.

균형은 물론 안구조차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졌다.

“차핫!”

순식간에 술상을 뛰어넘은 박춘배는 그대로 주먹과 발차기를 날렸다.

가만히 선 상대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연신 타격을 주어도 승현에게 유효타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의 주먹과 발이 행하는 진로에 검은색의 넓은 판이 생겨 공격을 막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박춘배의 모습을 쫓던 승현은 그의 경지가 현재 초절정 정도라는 걸 깨달았다.

‘확실히 백걸개보단 아래야.’

사력을 다해 검은 판이 생기는 것보다 빠른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검은 판은 승현의 인지를 초월해야지 넘을 수 있다.

그리고 승현의 인지를 초월하려면 적어도 랑아군 정도는 되어야 한다.

초경의 중반 정도는 되어야 그림자 판보다 먼저 움직여 승현을 격할 수 있다.

승현은 대놓고 하품을 하곤 상체 쪽으로 오는 모든 공격을 직접 받아내기 시작했다.

순수한 속도와 근력만으로도 이미 압도했지만 승현은 무극신공의 색이 잘 묻어나오도록 금나수와 같은 잡기 혹은 흘려보내는 방어를 선보였다.

자신의 무공보다 고강한 무위로 자신을 꺾기 시작하자 박춘배의 눈에 이글거리는 열의가 피어올랐다.

“크하합!!”감히 금나수와 같은 수법으로 흘려보낼 수 없게 강격을 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드럽게 잡혀서 부드럽게 옆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무극심법과 무극권법은 무겁지만 부드러운 중과 유의 무공인데 저렇게 강과 쾌만 있는 무공과는 상성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런 무극 시리즈가 통합되어 더욱 난해해진 무극신공이니.

한참을 타격하던 박춘배는 무려 30여분 동안이나 공세를 펼쳤다.

“슬슬 끝낼까요?”

“나는 아직이오!”

“내가 끝내고 싶군요.”

승현은 그대로 박춘배의 주먹을 잡아채고 꺾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30분 이후로 첫 반격이었다.

형편없이 넘어진 박춘배는 득달같이 일어나 다시 공격했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넘어지길 반복했다.

“······내가 졌소.”

결국 서른 번 정도 넘어지고 나서야 패배를 시인하는 그였다.

가만히 그런 박춘배를 보던 승현이 그에게 말했다.

“내 무공 탐나지 않습니까?”

“······!”“나와 손을 잡으면 내 무공의 근간을 가르쳐줄 겁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 소재를 파악한 인물만 당신을 포함해 7명을 찾았죠.”

“후우, 그거 탐나는 일이지만 내겐 아무래도 자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내게 무공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을 소개시켜드리죠.”

“노령의 고수입니까?”

“웬걸요. 저보다 어립니다.”

“······?”

박춘배의 말에 승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나이가 대략 60대 초반인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스승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보다 젊다니?

“미안한데 무공을 배운 게 언제부터입니까?”

“20년이 되었지. 스승님과는 스승님이 아주 꼬맹이일 때 연을 맺었었고.”

“상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란 말이군요.”

“올해로 28일 거요. 그럼 약도를 그려줄 테니 거기로 가보시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이 말을 하면 반드시 스승님이 나올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승현은 박춘배가 들려준 말에 웃음과 불신을 얼굴에 떠올렸다.

“정말 그렇게 외쳐야 합니까?”

“그렇소이다. 워낙에 속세에 초탈해서 그렇소. 사방에 진법이 펼쳐져 있는데 그걸 당신의 힘으로 뭉개면 예의가 아니지 않겠소?‘

“그게 더 예의가 없어 보이던데······.”

승현은 박춘배가 알려준 마법의 주문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이야기가 다 정리되고 나자 승현은 여전히 박춘배에게 권유했다.

“내 제안은 유효합니다. 언제든 특수 대응 부대로 찾아와 이름을 대면 나나 혹은 관리자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소. 그럼 살펴가시오.”

승현은 찝찝함을 느끼며 나이트클럽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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