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승현의 웃음이 불쾌한지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뭐가 그리 웃기지?”
“아무것도. 그래서 그 유리관 속 네가 내가 찾는 초월자란 말인가?”
“아아, 그렇다. 나는 오직 뇌의 활동만으로 진리에 접근했다. 과거로 비유하자면, 그래. 현자가 깨달음을 얻어 신계로 간 그런 거다.”
“그러기엔 넌 아직 지상에 머물러 있군.”
“내 능력을 그저 외양으로 판단하지 마라.”
“좋아. 조커. 넌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원하나?”
“후후, 그럼 잠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겠나? 나름 기구한 삶이라 자부하는데.”
“상관없지. 해봐.”
승현의 승낙에 조커는 홀로그램까지 만들며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아주 평범한 해커였다고 한다.
실력은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 해커.
해킹을 통한 돈벌이보단 지하철역 인근 카페 알바가 더 많은 돈을 벌 때였다.
모든 생활에 신물을 느끼던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조금 특별한 사이트를 찾게 된다.
그것은 마더 브레인을 제작하던 회사의 하청 업체가 만든 사이트였는데.
뇌를 스캔하여 그 대가로 돈을 주는 불법적인 일이 제시된 곳이었다.
돈이 급하던 그녀는 흔쾌히 뇌 스캔에 응했고 수차례 고비와 위험을 넘어가며 그녀의 뇌는 마더 브레인 제작에 핵심 데이터가 되고 만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어진 추격과 납치 그리고 뇌 적출.
본래 육신을 잃고 어느 연구실에서 마더 브레인의 중추 샘플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그녀와 몇몇 샘플의 희생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마더 브레인.
그것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프로그램을 알던 그녀만이 탈출을 계획할 수 있었고 폐기처분 직전 도주에 성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리관에 든 뇌뿐이기에 자력으로 사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현 시점의 대장이라 불리는 노인에게 구함을 받는다.
노인은 마더 브레인이 가져올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준비하던 괴짜였고 그를 도와 그녀도 정보 수집과 여러 설계를 맡았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고.
“지금의 사태까지 진행되었지. 나름 기구하지?”
“그렇군. 그러면 넌 정보 처리와 기기 제작에 특화된 건가?”
“그게 메인이긴 하지만 여태까지 쌓아올린 자료가 있어서 나도 클론을 만든다면 어떤 전투 요원 못지 않게 싸울 자신이 있어.”
“좋군. 그럼 원하는 건 마더 브레인의 소멸인가?”
“아니. 나는 이 세계의 소멸을 원해.”
“······어째서지?”
승현은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커는 인류를 위해 많은 걸 받쳤다.
물론 그녀의 과거사는 분명 인간을 증오할 만하지만 인제 와서 그 증오를 풀기엔 시점도 맞지 않고 이유도 빈약하다.
“마더 브레인들은 지금 이 행성을 파괴할 생각이야. 그 에너지가 블랙홀을 만들고 그것이 널 덮쳐 죽이길 원하고 있어. 말 그대로 자폭이지.”
“그것과 너의 원하는 바는 상관관계가 없다.”
“있긴 해. 사실 내 목표는 동귀어진이었어. 그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지. 크로노 박사도 결국은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하더군. 이젠 인간에게 환멸을 느껴.”
“흐음, 그런가. 그렇다면 내 입장이 조금 미묘해지는군.”
“알아 네 행성으로 데리러 갈 거랬지? 날 데려가.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긴 해도 지금 시점에선 그 감정도 마모될 대로 마모되었으니까.”
“너 같은 것이 간다면 빠른 발전이 이루어지겠지만 널 통제할 인물이 없어.”
승현은 고개를 저었다.
조커는 분명 지구 문명과 전력 상승에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인간에게 적대적인 인물이 그 도움을 주었다면 늘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없이 베풀다가도 한 번 뒤돌아 뒤통수를 치면 즉시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후후, 내가 왜 너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을까? 굳이 신뢰를 잃을 말을 말이야.”
“글쎄. 나야 잘 모르지.”
“난 기계이지만 분명 이 뇌만은 생물의 그것이야. 그리고 내가 적출되기 전 나이는 18살. 현재까지도 이 안에 갇혀 있는 게 내 실정. 대략 130년이 되었지.”
“그러니까. 인간 사회에 섞이고 싶다 이 말인가?”
‘인간은 증오스러워. 하지만 이 행성의 파괴로 모든 게 정리되면 이 묵은 앙금도 해소된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것. 간단하고 좋잖아?“
“내 행성은 아주 위태로운 상태다.”
“그러겠지. 너 같은 강자가 이런 곳에 오는 걸 보면.”
조커는 쉽게 수긍했다.
승현으로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결국 그에겐 조커의 능력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녀가 지구로 와주는 게 좋다.
“알았어. 조건을 받아들인다. 이 행성과 궤도를 도는 모든 잔여물까지 모조리 파괴해주지.”
“할 수 있겠어? 이 행성의 에너지는 아직까지 건재해. 아무리 네 힘이 강해도 파괴의 여파를 벗어날 순 없을 거야.”
“다 방법이 있어. 넌 이 행성이 파괴되었다는 증거가 될 무언가만 준비하면 되.”
“그건 걱정하지 마. 이상한 막에 막히긴 했지만 무인위성 몇 대가 아직 행성 궤도를 돌고 있어. 그것들 모두는 내 관할에 있으니 행성이 파괴되면 바로 알 수 있어.”
“혹 그 위성이 네 영혼과 연결이 된 건가?”
“영혼이라. 그래, 내 의식과 연결되어 있어 어딜 가더라도 난 그것들을 인식할 수 있어.”
“아주 좋아. 그럼 당장 의체를 만들어라. 이곳을 탈출한다.”
“역디 시설이 별로라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려. 그보다 네 변신 후 샘플을 좀 주겠어? 이왕 조력자가 되는 거 그 강할수록 좋잖아?”
“맞는 말이야. 하지만 조금 염려스럽군.”
“내가 배신이라도 할까봐?”
“아니야. 네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의 문제야.”
승현의 말에 스피커가 최대 출력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아하하하!! 내가 무엇으로 초인이 되었는지 모르는 거야? 난 지식과 정신력으로 이곳에 적용된 어떤 세계적인 프로그램에 개입을 했을 정도야. 그 정돈 충분히 버텨.”
“그렇다면 내어주지.”
승현은 흔쾌히 알타의 힘으로 강화된 신체의 머리카락을 한 올 주었다.
알타의 힘은 신수의 힘이다.
초월자보다 몇 개의 층계를 밟고 나서야 가능한 신이란 영역이다.
그걸 계약자가 아닌 이가 과연 다룰 수 있을까?
옆으로 온 로봇에게 머리카락을 넘긴 승현은 그림자를 이용해 의지와 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림자 안에 담아둔 여러 차 종류를 꺼내 주전자에 넣고 차를 우렸다.
“이렇게 전선이 많은 곳에서 꼭 차 같은 걸 먹어야 하겠어?”
“괜찮지 않나? 내 감각에 이 정도로 영향을 받을 건 하나도 없었어. 그보다 의체 제작은 얼마나 걸리지?”
“기다려. 유전자 분해와 분석만 하면 만드는 건 금방이야.”
호언장담을 하는 것과 달리 조커는 몇 시간 동안 유전자 분석에 들어가 있었다.
그만큼 알타의 힘은 불가사의한 것이었고 그걸 감히 탈각한지 100년도 안 된 이가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조커가 먼저 두 손을 들었다.
“후, 이거 해석 불가라니. 엄청나군. 중앙기억장치에 접근해도 권한 밖이라 해석이 불가능하네. 그래도 일부 손을 좀 봤으니 나름 괜찮은 물건이 나온 것 같아. 기다려 봐.”
“하암, 이제야 준비가 끝난 거야?”
“그물침대를 만들고 누워서 잠을 청하던 승현은 그녀의 말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얼마 안 있어 엄청난 양의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곳에 이 정도 마력이 급격히 집중되자 주변에 있던 수많은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의체 제작을 하는 조커는 유리관 속 자신의 뇌를 중심으로 빠르게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두개골로 뇌를 감싸고 척추를 만들고 골반과 어깨, 팔과 다리를 만들었다.
그 후엔 근육과 신경다발 그리고 피부까지 이어지면서 성인 여성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적발적안의 엄청난 미인의 탄생을 무덤덤한 눈으로 보던 승현은 짧게 평했다.
“레벨은 1,200레벨 정도인가. 상당히 강력하군. 알드리안과 싸워도 승부를 가리기 어려울 거야.”
알드리안의 마법이 서포트에 집중되 었어서 그렇지 만약 전투에 집중됐다면 승현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가 알드리안이다.
그런 알드리안과 호각을 이룰 정도로 강한 마력을 품은 의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완전히 몸이 완성되자 그 다음은 의복이 만들어졌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 슈트에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은 조커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영롱한 붉은빛이 눈에서 폭사하며 사방을 비췄다가 사라졌다.
유리관 속 액체가 빠져나가고 유리관이 열리자 가볍게 발을 굴러 수 미터의 유리관을 넘어 승현 앞에 착지했다.
“흠흠, 아주 좋아. 이 공기, 이 감촉!”
“전부터 의체를 만들면 되지 않았나?”
“그야 그렇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내가 클론을 통한 완벽한 의체 기술은 아주 최근에 습득했어. 바로 너를 통해서 말이야.”
“내 DNA정보를 말하는 건가?”
‘바로 그거야. 그것 덕분에 이렇게 완벽한 몸을 만들 수 있었지.“
“자, 그럼 이제 다음 문제로 내 기기를 손봐주겠어?”
“얼마든지. 어디 봐봐.”
조커는 승현의 그림자를 요리조리 살폈다.
하지만 승현은 두르고 있던 룬을 팔로 집약시켜 팔을 내밀었다.
물론 이번엔 간단한 옷을 안에 입은 상태다.
“으응? 팔은 왜? 설마 그 형상기억금속 같은 갑옷이 기계라는 거야?”
“잘 아네. 이게 락이 걸려 있어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어. 제작자가 이 안에 힌트를 남겼다고 하는데 내가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오호라. 잠시 보여줘 봐.”
조커는 유심히 룬을 살폈다.
하지만 룬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승현 룬이 상시로 잡아먹는 마력의 양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이 괴물은 은하 단위의 마력을 승현에게서 갈취해갔다.
그러면서 큰 변화를 가지지 않았는데 그러면 그 갈취한 마력은 어디에 사용한 걸까?
흘려보냈다기에는 여태 관찰한 결과 룬에게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따로 저장장치에 보냈다는 거고 그 저장장치가 있는 곳에 락을 풀 수 있는 비밀이 있을 거란 것이다.
하지만 그걸 찾는 일이 불가능했기에 여태까지 룬을 방치해두었다.
“이거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거야?”
“일단 총으로도 변할 수 있고 방패나 검 창 등 부피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변할 수 있어.”
“그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지. 컴퓨터로 변하게 만드는 거야.”
“뭐······?”
“왜, 간단하잖아. 뭐든 변할 수 있으면 컴퓨터로 바꿔. 기계라고 하니 소프트웨어도 있을 거고 내가 그걸 해킹하여 락을 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야. 어서 해봐.”
승현은 전혀 생각도 못한 접근법에 황당함을 느꼈다.
설마 병기라 불리는 룬을 컴퓨터로 바꾸라니.
그래도 혹시나한느 마음에 의지를 일으켜 룬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룬은 승현의 팔에서 벗어나 흔히 가정에서 쓰이는 컴퓨터가 되었다.
“이건 모양이 너무 구닥다리 아니야? 그래도 내용물은 다를 테니. 기다려 봐.”
조커는 전선을 끌고 와 룬에게 연결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는데.
깜빡깜빡, 지직!
“와! 전력 잡아먹는 거 봐. 여기 있는 컴퓨터가 몇십만 대에 달하는데 그 모든 전력을 다 잡아먹잖아?”
조커는 허공에 대고 빠르게 손짓을 해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컴퓨터가 속속 소리를 멈췄다.
“음음, 아주 복잡한 코드로군. 내가 전혀 모르는 거야. 이걸 프로그래밍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1억 년은 더 걸려야 락을 풀 수 있었을 거야.”
조커는 연신 허공에 손가락을 두들겼다.
그녀의 눈에는 게임 시스템과 같은 무언가가 보이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하던 중이었다.
“아, 됐다.”
“정말?”
그녀의 외마디에 기다리던 승현이 즉각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