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인류는 패닉에 빠졌다.
단 하나의 몬스터에 의해 인류는 종말을 맞이할 뻔 했다.
지금만 해도 세상의 평화와 주축을 이루던 소위 랭커라 불리던 헌터 중 살아남은 건 최상위 중에서도 정예나 운이 좋았던 이들 뿐 모든 상위 헌터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더욱이 파라곤 길드와 아이실에 의해 복원이 빠르게 진행되던 서부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미국과 긴밀히 협조를 위해 국경 부근에 집중되었던 캐나다와 멕시코 역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빙어야 했다.
북아메리카 전체가 이번 드래곤에 의해 회생불능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많은 유저들이 이민을 선택했고 이동수단이 없는 일반인들은 그나마 건재한 미국 동부로 모였다.
워낙에 큰 충격 탓이었을까.
국제적으로 이미 패배심리가 짙게 깔리며 비관론이 줄을 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신흥 종교와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다면 어찌어찌 사화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는 그러지 못했다.
극심한 혼란이 두 국가에 찾아왔다.
중국은 마교란 무협에서나 등장할 종교가 발호했고 러시아는 국가 총수 암살을 시작으로 군벌들의 전쟁이 이어졌다.
그밖에도 유럽은 기존에 유지하던 UN이란 체제를 버리면서 각국이 단독 행동에 나섰다.
독일은 국가 전체에 마력장을 펼치며 외부의 침입 자체를 막아버리는 극단적인 수를 썼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유럽에서도 인구가 어느 정도 받쳐주는 곳과 일본 동남아 몇몇 국가와 한국을 제외하곤 모두 국가 기능을 상실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
승현으로서는 골치가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궁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국가들이 저 모양이라니.”
제공 받은 집에 앉아 뉴스를 보던 승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서 이제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미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원이 어떻게 행동하고 누가 어떤 식으로 등장하며 죽는지 모든 게 미지수가 됐다.
그것도 무척이나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여태 세운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원은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불러냈고 그로 인해 모든 게 어그러졌다.
물론 이 변화의 결정적 원인은 자신이다.
과거에는 자신과 같은 자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원은 게일 등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던 이들과 손을 잡았으니 충분히 여유를 부려도 되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이란 존재가 있음으로서 원은 여유를 잃게 되었다.
이제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승현 그조차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놈들이 총력전으로 나온다면 아마 승산이 없을 거야. 100여 명이나 된다고 했으니 그들이 전부 지구에 등장하는 순간 행성 자체가 끝장나겠지.”
아직도 원이 지구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승현은 원의 리더도 분명 재창조에 대한 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힘을 합쳐 재창조를 막아도 모자랄 지경에 왜 이런 일을 벌일까.
‘놈들은 이전 차원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해왔다. 그로 인해 무언가를 얻고 그걸 다시 우주적 존재들에게 거래를 한다. 놈은 뭘 얻는 거냐.’
재창조에선 창조주 바로 아래라는 창조자들조차도 소멸한다.
그렇다면 기껏 모아둔 무언가도 분명 소멸하고 말 터.
그렇게 생각을 전개하던 중 탈리아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서 벗어난 세계······.”
마신인 그녀는 분명 그리 말했었다.
그리고 승현은 그런 세계를 하나 알고 있었다.
“파를. 그녀가 있던 증명의 장은 분명 시공간을 무시했지.”
언뜻 답을 알 것 같았지만 아직까진 안개가 낀 듯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파를을 다시 만나거나 혹은 원의 리더를 직접 만나야 해.”
탈리아스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녀라도 명확한 답을 모를 거다.
만약 알았다면 그녀는 바로 자신에게 알려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약을 통해 조력을 약속했으니 말이다.
답을 얻으려면 결국 요행을 얻거나 원을 말살시키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증명의 장이란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긴 요행은 다시 바랄 수 없으니 결국은 원을 말살하는 방법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알드리안 같은 이들을 최대한 내 편으로 만드는 것.”
창조자와의 싸움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테지만 앞으로 벌어질 원과의 전쟁에서는 필수적인 이들이다.
법칙을 무시한 자들.
그러기 위해선 각지에서 열린 게이트를 들어가야 한다.
알드리안의 경우 전혀 의외의 곳에 숨어 있었지만 생각보다 고차원 게이트엔 초월자들이 더러 있었다.
승현은 그들을 편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밖에도 큰 도움이 안 되는 게이트와 던전은 철저히 파괴할 요량이다.
“몬스터는 창조자와 원의 편이니까.”
결정을 내린 승현은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수많은 국가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오직 한국만이 평화를 유지했다.
이유야 당연히 혼란의 원인이던 드래곤을 죽인 승현이 있기 때문.
어느 헌터나 유저도 승현에게 대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각국의 망명정부나 고위 공직자들이 한국에 모였고 몇몇 국제기관도 한국으로 이전을 한 상태다.
특수 대응 부대 본부 어딘가에 있는 알드리안을 찾은 승현은 자료실에서 자료를 찾던 알드리안에게 다가갔다.
“알드리안. 뭔가 건진 게 있어?”
“아아, 생각 보다 꽤 성과가 있었네. 여기 추려놓은 게이트야.”
알드리안은 추려낸 몇 개의 게이트를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그와 같은 초월자가 있거나 있을 거로 여겨지는 게이트와 던전을 찾아달라고 했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아홉 개의 게이트와 세 개의 던전이 추려졌다.
“가장 가까운 곳은 중국 국경인가.”
“개인적으로 그곳을 먼저 가주었으면 좋겠네.”
“과학문명? 이런 곳에도 용케 초월자가 나왔군.”
알드리안이 지목한 가장 가까운 곳의 게이트는 과학문명을 이룩한 세계였다.
대부분 안드로이드와 인공지능이 정복한 땅으로 일곱 개의 마더 브레인이 각자 서로 자원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특이한 점은 원래 임무는 한 지역의 완전 정복이었는데.
몇 차례 헌터들이 방문한 후 갑자기 임무가 모든 마더 브레인의 종말로 변경되었다.
지구보다 몇백 배는 더 발전된 곳이라서 기술을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우렸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곳이니 먼저 확인해서 나쁠 건 없지만.
“굳이 여길 선택한 이유가 있어?”
“이런 곳에서 나올 초월자라면 정신이나 지식 계열의 초월자이니 당연히 지금 내가 하는 이런 정보 계통의 일을 넘길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네.”
“흐음?”
“아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어디까지나 효율이야, 효율.”
의심의 눈초리로 알드리안을 보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분류하자면 서포트를 더 잘 해. 누군가를 치료하고 부서진 걸 복구하는. 그런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야 예술가가 영업사원을 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렇군. 그래도 너무 기대하진 마. 포섭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지구를 부탁해.”
말을 마친 승현은 전송기 위에 서서 게이트 앞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게이트 주변엔 나름 연구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폐쇄가 된 듯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승현은 잠시 연구실을 둘러보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슈아아아악!!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시작은 대기권 밖에서 한다더니.’
위성보다 위에서 열린 게이트 때문에 입장 시 마법사나 마법이 담긴 아이템 착용이 필수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입장한 이들도 마법사가 있어서 맥없이 땅에 처박히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승현은 몸을 일자로 만들고 빠르게 대기를 갈랐다.
낙하를 하는 중에도 승현은 주변을 살피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위성 아래로 내려가자 인근의 모든 위성이 승현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곧 저 멀리서부터 수십 대의 공중 전투 로봇이 날아왔다.
‘그보다 세계 전체가 필드로 지정된 건가. 아까 보니 대기권 밖 우주 공간까지 푸른 막이 덮여 있던데 말이야.’
이 게이트는 승현도 알지 못하던 곳이다.
정보가 없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선발대가 얻어둔 정보를 통해 승현은 바로 지척에 다가온 로봇에게 그림자로 된 원뿔 수백여 개를 날렸다.
위잉, 콰과광!!
상당히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건지 로봇과 부딪친 원뿔에서 상당한 반발력을 느꼈다.
선발에 선 로봇이 손쉽게 파괴되자 후열에 있던 로봇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입자를 이용한 공격부터 빛을 이용한 레이저 공격까지.
모두 한 대만 맞으면 맞은 부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격도 승현에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대로 공격이 날아오는 곳에 육각형의 그림자를 만들어 최소한의 면적으로 공격을 방어해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사거리에 있는 로봇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받으며 시장으로 착지한 승현은 어느새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수천 기의 로봇들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이런 장난감으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누군가에게 말을 전한 승현은 그대로 정신을 집중해 사방으로 그림자로 된 비수를 날렸다.
그 손바닥 정도 길이의 비수 수십만 개는 두부에 이쑤시개를 꽂듯 손쉽게 로봇을 관통했다.
십 킬로미터까지 날아가는 비수에 승현을 포착했던 모든 로봇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되었다.
그러자 순간 파괴된 로봇이 자폭을 시도했는데.
승현은 폭발과 함께 날아오는 파편을 피해 그림자 안으로 피했다.
폭발이 끝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나온 승현은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볼 수 있었다.
“그 정도 빠르기는 눈으로 식별이 가능해.”
승현이 손을 뻗자 미사일이 근처로 오기도 전해 폭발했다.
생명에겐 사용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내부의 그림자를 조종해 폭파시켰다.
“이게 끝인가? 그럼 어디 움직여 볼까?”
승현은 다리에 힘을 주어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향해 질주했다.
아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는 덕에 도시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칬, 수작질인가.”
달리던 중 승현은 몸상태에 이상을 감지했다.
무언가 내부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수집된 정보인 나노 로봇의 공격인 것 같다.
빠르게 신경을 갉아먹는 나노 로봇 때문에 승현은 달리던 중 앞으로 고꾸라졌다.
촤아아악.
“모양 빠지게 됐네.”
달리던 속도가 속도인지라 땅을 구르던 승현은 수백 미터가 지나서야 멈췄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노 로봇은 꾸준히 몸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는 좀 귀찮겠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승현은 이번 임무가 상당히 귀찮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걸 느낀 승현은 그대로 알타의 힘을 깨웠다.
전신에 퍼지는 알타의 힘에 의해 나노로봇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갉아 먹혀버린 신경도 빠르게 되살아났다.
적발적안으로 변한 승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퉤. 피를 보는 게 어쩐지 오랜만이란 생각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입에 머금은 죽은피를 뱉어낸 승현은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승현이 선 곳에 광선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
위성에서 쏘아진 광자포가 승현을 때린 것.
광자포 범위에 든 모든 것들이 입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단 하나, 승현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것들이 환영식을 아주 화려하게 하는구나.”
잠시간 이어지던 광자포가 사라지고 저 멀리서 무언가가 달려왔다.
안력을 돋아 바라본 승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거 나 아니야?”
수백 명이나 되는 최승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