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시청 안은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승현에게 달려들었던 무장 세력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간간이 밖에서 들리는 전투 소음만이 고요한 시청 안에 들릴 뿐이었다.
대략 100여 명.
평균적인 능력은 예상했던 250레벨을 상회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부산은 이들의 수중에 떨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만 나오는 게 어때?”
가만히 서 있던 승현은 이들의 대장이었던 고병환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사망한 그는 미동이 없었지만 승현은 그 눈을 계속해서 마주했다.
잠시 초점 없이 뜨여진 눈과 마주하고 있자 고병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체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경악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만 승현은 놀라지 않았다.
심장에 주먹 크기의 구멍이 뚫린 고병환의 시체가 서서히 일어났다.
“재밌는 놈이군. 어떻게 알았지?”
“넌 누구지? 이들에게 힘을 부여한 놈인가?”
승현의 질문에 고병환의 몸에 깃든 누군가는 큭큭대며 웃었다.
“아주 먹음직스럽구나. 내 다음 숙주가 되어라.”
순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고병환의 몸이 움직였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상당한 거리를 좁히며 접근한 고병환을 가만히 주시했다.
푹푹푹!
그러자 순식간에 고병환의 몸 곳곳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꼬챙이가 박혀들었는데 이로 인해 허공에서 멈추게 되어버렸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큭, 상당한 힘이군.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어.”
꼬챙이에 꿰어져 허공에 매달린 상태지만 그의 입은 태연한 어투의 말이 흘러나왔다.
이로 미루어 조종하는 신체의 통증 따위는 공유되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 승현의 뒤쪽에 쓰러져 있던 시체들이 튕겨지듯 일어나 승현의 뒤를 노렸다.
가까운 거리에 있던 터라 기척도 없이 달려드는 시체를 막을 겨를은 없어 보였다.
승현의 뒤를 노렸던 시체들은 순간 토막이 나며 바닥을 굴렀다.
“······!”
“잔재주는 그만 부리는 게 어때?”
“놀랍군. 설마 그걸 막아낼 줄이야.”
정말로 놀랐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승현은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했다.
사실 승현은 이 정체불명의 인물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원의 일원이었던 굴림이란 인물인데 원 안에서도 그리 강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정찰대원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본인의 힘은 약한 편이지만 생물의 몸에 침투해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은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하지만 놈이 능력을 부리기 위해선 적어도 수 킬로미터 안에 있어야 한다. 놈은 부산 어딘가에 있어.’
승현이 시간을 끌고 있는 진짜 이유다.
이미 고병환을 봤을 때부터 굴림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탐색을 시도 중이었다.
승현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심으로 널 가지고 싶어졌다.”
“한 번 해보시지.”
승현의 도발에 굴림이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시청 안에 쓰러진 백여 구의 시체가 들썩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물량으로 승부를 보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찾았다.’
승현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굴림이 능력을 사용하면서 일어난 마력의 파동으로 인해 그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냈다. 굴림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시청에서 몇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체들을 무시하며 바로 굴림이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강화되었다고는 하나 승현의 속도를 따라올 순 없었던 시체들이 멀어지기 시작하고 곧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었음을 깨달은 굴림이 은신처에서 나왔다.
승현은 저 멀리 보이는 굴림의 등에 머스킷을 꺼내 마탄을 쐈다.
마력이 듬뿍 실린 마탄은 굴림의 다리에 적중하며 다리 한 쪽이 완전히 날아갔다.
다리 하나를 잃은 굴림은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어느새 굴림의 앞에 도착한 승현은 그런 그를 보며 진득하니 웃었다.
“반갑다, 굴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군.”
“네, 네놈.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원도 이제 활동을 시작했나 보군. 내 질문에 충실히 답한다면 편하게 죽여주지.”
“내가 그런 걸로 답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고통 따위로는 날 어찌할 수 없어.”
“뭐, 그러겠지. 한 번 해본 소리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원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만 알면 충분하니까.”
승현은 절로 올라가는 미소를 참지 않았다.
드디어 원과의 결착을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승현은 뭔가 입을 열려고 하는 굴림의 머리에 그래도 마탄을 박았다.
머리를 잃은 굴림에 의해 어느덧 승현의 근처까지 다가왔던 시체들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승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머리를 잃은 굴림의 가슴 부근에 총구를 겨눴다.
“다른 이들이라면 머리를 잃으면 죽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조종하던 시체도 멈췄으니까.”
서서히 머스킷에 마탄이 장전되었다.
“하지만 날 속일 순 없어.”
타앙!
굴림의 가슴을 향해 쏘아진 마탄은 그대로 굴림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러자 굴림의 몸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약체라고는 하나 굴림은 원의 일원이다.
원에 속한 이들은 하나같이 초인적인 인물들이고 그건 굴림도 마찬가지.
그런 굴림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
“본 모습을 드러내라. 굴림.”
뿜어지는 연기는 곧 사람 크기의 구를 형상화했다.
굴림은 가장 먼저 헌터들의 손에 죽은 원이다.
생물을 숙주로 삼아 강화하고 조종하는 그의 능력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지만 역시 본신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아 본체가 발각된 후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굴림은 한 차례 토벌에도 불구하고 다시 등장하였고 다시 한 번 사냥을 당한다.
이미 능력을 간파당한 상태라 두 번째는 비교적 쉽게 사냥에 성공했는데 그때 그의 진짜 힘이 드러났다.
“넌 뭐하는 놈이지?”
“곧 죽은 놈이 알 필요 없을 텐데.”
“······언제까지 그 여유가 계속될지 두고 보지.”
굴림의 본체에서 강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진짜 힘은 숙주로 삼은 이들의 마력을 갈취하는 것으로 저렇게 본체가 되었을 때 그 마력을 마치 레이저처럼 쏘아대는 능력이다.
단순하지만 굴림의 마력포는 무시하기 어려운 힘을 가지고 있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원의 일원으로서 정말 많은 숙주를 가지고 있던 탓에 무한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마력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승현은 꾸역꾸역 마력을 모으는 굴림을 가만히 지켜봤다.
지금 당장 손을 써서 막을 수도 있지만.
대신에 승현은 뒤쪽을 의식하고 옆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쿠와아아아!!!
엄청난 굉음을 내며 마력으로 이루어진 밝은 광선이 쏘아졌다.
승현이 있는 지점을 시작으로 긴 선이 그어졌다. 광선의 범위에 들어간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필로 검게 칠한 도화지를 지우개로 쭉 그어놓은 것 같았다.
승현의 뒤로 배경처럼 솟아있던 산도 광선이 관통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걸 시작으로 굴림은 사방으로 마력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부산 중심부에서 시작된 무차별적인 공격에 복원된 건물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조차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력의 파장으로 이미 주변을 정리하던 헌터들이 승현과 굴림이 있는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전기에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승현은 슬슬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지금 여긴 괴집단에게 점거된 부산입니다. 거리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강덕민은 카메라의 줌을 당기며 거리를 비췄다.
그는 지금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원래라면 수백도 안 됐을 시청자의 수가 수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한국에서 지금 사태는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 저기 보세요. 시청에서 뭔가 튀어나왔습니다.”
덕민은 얼른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화면은 곧 제복을 입은 승현과 굴림을 비췄다.
“협상을 위해 들어갔던 특수 대응 부대의 대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요?”
원래라면 이때쯤 화면을 돌리며 수금을 했겠지만 덕민은 긴장되는 마음에 숨조차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곧 굴림의 본체가 등장하고 굴림이 거대한 광선을 쐈다.
콰아아아!!
천지를 뒤덮는 굉음과 함께 덕민이 있는 건물 옆으로 광선이 스쳐지나갔다.
잠시 마력의 파장에 굳어있던 덕민은 후들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잠시 광선이 지나간 방향을 비췄다.
“바, 바, 방금 봤어요?”
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처럼 그의 방송 채팅도 술렁였다.
곧 굴림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무너지는 건물과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사이로 다시 승현과 굴림의 모습을 잡았다.
두려움으로 떨리는 덕민의 몸 때문에 화면도 흔들렸지만 오히려 시청자는 배로 늘어났다.
덕민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슨 생각이 든 건지 자리에 서서 승현과 굴림을 비출 뿐이었다.
곧 그의 화면 속 승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현의 몸에서 청색 불꽃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사방을 덮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날아들던 마력포가 승현이 있는 지점으로 집중되었다.
하나만 맞아도 흔적조차 남길 수 없을 강한 위력이 담긴 마력포 수천이 승현을 향해 날아들었고 당연히 승현의 주변은 초토화되었다.
근처로 다가왔던 헌터들조차 승현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덕민은 물론이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승현은 이미 죽은 인물이었다.
그저 남은 헌터들이 저 괴물을 무사히 물리쳐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승현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수십 미터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의 기둥이 일어났다.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덕민에게도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몇 분 동안 이어진 불기둥이 사라지고 자리에 남은 멀쩡한 모습의 승현뿐이었다.
알타의 힘으로 굴림의 존재 자체를 태워버린 승현은 무전기를 켜고 말했다.
“적은 소멸했다. 지금부터 민간인 구조를 시작하고 상황을 정리하라.”
말을 마친 승현은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근처에서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던 헌터들은 승현이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오자 긴장한 채 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무너진 건물에 있을 수 있는 생존자를 구조하세요.”
미소를 지은 승현은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곤 통제실로 이동했다.
통제실로 돌아온 승현은 그곳에 있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지금부터 적에게서 얻은 정보를 공개하겠습니다. 이는 극비사항이니 권한이 없는 이들은 잠시 자리를 비워주세요.”
무겁게 분위기를 잡는 승현에 권한이 없는 이들이 통제실 밖으로 나갔다.
통제실에 남은 주요 인사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승현을 주시했다.
대재앙 이후로 처음 벌어진 재앙급 사건이다.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고는 하나 이번 일은 인류에 있어서 중대한 사항일 수도 있다.
승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